00:00 인트로 01:47 ① 전두환 인터뷰 04:19 ② 지만원 광수의 진실 06:11 ③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의 광주 투입 발언? 06:48 ④ 황장엽의 미공개 문서의 진실? 07:28 ⑤ 김일성의 5.18 발언 07:49 ⑥ 북한 교과서의 5.18 09:12 ⑦ 북한이 5.18을 기념한다? 10:20 ⑧ 북한에 5.18 열사 묘가 있다? 11:06 ⑨ 미국 CIA 기록 11:35 ⑩ 조중동의 5.18 시각 13:32 ⑪ 외국 기자들이 본 5.18 14:27 ⑫ 정부의 5.18 조사 결과 15:18 ⑬ 북한군이 서울도 아니고 왜 광주? 18:09 ⑭ 공수부대의 무능? 19:15 ⑮ 광주의 육군보병학교는? 19:33 ⑯ 민간인이 어떻게 무기고를 털어 무장할 수 있냐? 21:21 ⑰ 일반인이 장갑차를 운전한다? 21:56 ⑱ 북한군이 평화 시위? 22:51 ⑲ 광주 해방구의 풍경 24:50 ⑳ 한국전쟁 이후 국군과 북한군의 교전비
탈북자의 "카더라"통신을 지만원과 월간조선 편집장 조갑제 및 관계당국에서 의도적으로 방송에 노출했고, 아직도 그걸 믿는 사람들이 노인층에선 많습니다. 탈북자 정명운 씨가 최초로 추측성 인터뷰를 했고,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탈북자 이주성 씨가 "나도 그렇게 들은거 같다"를 확대 생산했습니다. 거기에 대해 JTBC에서 3년전 뉴스에 방송한거 링크달아둡니다. ruclips.net/video/ZhJMcwyhl14/видео.html 한가지 아쉬운 것은...세월호 참사때나 이태원 참사때도 보면 기무사나 방첩부대를 투입해서 유가족을 감시한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대형참사같은 게 터지면 그런 조직에서 꼭 유가족을 감시하며 붙어서 아직까지도 내사한다는게 참 짜증납니다.
김경재씨가 김대중이 집권하던 시절인 새정치회의 국회의원 시절 김대중의 밀사 자격으로 1999년 12월 6일부터 14일까지 8박9일간 北京(베이징)을 거쳐 북한을 방문했을 때 자신을 안내한 조선노동당 간부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평양시 형제산 구역 신미동에 위치한 애국열사릉을 방문하였는데 노동당 간부들로 하여금 5.18 에 가담하였던 '北특수군묘역'이 가묘로 조성되어 있다는 설명과 함께 10개 내외(9~11개)의 묘비가 있었음을 목격하였다고 밝혔습니다. 김경재씨는 그동안 광주 5.18 사태에 대한 세간의 민감한 사안 때문에 가만히 지내다가 24년만에 목격사실을 처음으로 밝힌다고 하였습니다. 김경재씨는 당시 5.18 가담자 묘역 앞에서 소개한 노동당 간부 2명에게 이 묘역의 진위여부를 재차 물었으며 한결같이 "광주 5.18 때 참전한 인민군 용사들이 맞습니다" 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북한 어쩌고 저쩌고 가 아니고 이게 역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실제 북한군 개입 하나도 없는데 일단 전뻐커가 시위 진압하고 어찌 수습 해야 하는데.. 그냥 죽였어 하기에는 말이 안되고 북한은 쿠데타야 ~~ 하나의 반란군이야 하다가 그냥 한 개 같은 소리죠 ... 북한군이 날 죽일려고 해서 그랬다,,,;; 그냥 지어 낸 거예요 왜 죽였냐고 물어 보니까,.. 할말 없으니..
내 나이 20살 서울에 살 때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44년만에 처음으로 지난 11일 국립 5.18 민주 묘역을 참배하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현장에 가보니까 저절로 눈물이 나고 44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제서야 가본게 그때 희생당하신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숙연해졌습니다 5.18항쟁이 끝나고 서울 사직공원에서 5.18항쟁 사진전이 있었습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사진들도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ㅜ
11공수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원사 이상의 간부들에게서 5.18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철저히 그들의 시선과 입장에서 종종 들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당시 교육을 받았던 그 사고방식으로 "광주사태", "폭도진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단 한번도 북한과 관련된 언급은 들은적이 없습니다 그들도 산 증인인데 만약 북한군이 침투했다면 그들은 그 북한군과 대치하고 싸웠다는 무용담을 떠들기 더 좋지 않았을까요? 2011년 군번이며 11공수에서 복무했는데 당시 간부들에게서 1980년 5월의 광주이야기를 들을때 북한에 ㅂ자도 언급이 된바 없습니다
80년대 학번인 저는 한때 해마다 5월에 광주 금남로에 가고 임동성당 가서 추모 미사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이 훌쩍 흘러 엊그제 홍대 오픈콘서트-기억록 에서 뵐수 있어 너무 좋았어요. 공연중 임펙트한 강의가 역시나 최고였고 공연전 응해주신 사진도 넘 감사드려요. 덕분에 학창시절 이후 가장 뜻깊은 5월을 보낼수 있었습니다
20:20 왠만한 중.고등학교 창고에는 칼빈소총 무기고가 전국의 학교에 다 비치되어있었어요... 지금이야 없지만.7~80년대...하물며 82년대까지는 모형 총 무기로 수업했었지요 나중에는 교련 폐지되면서 모두 회수폐기되었죠... 아무튼 창고가면 칼빈소총 한무더기가있었지요
전남대 2 학년( 1980년) 때 광주 현장에 있었습니다. 살아있기에 갖는 죄책감과 결코 우리는 폭도가 아니기에 모두 한 뜻으로 하나가 되어 폭동 조건(1. 은행,주유소,상점 약탈 2. 강도, 강간, 절도 3. 방화, 살인)을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사적 사실과 증거 자료로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해 주셔서 마음이 시원합니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황현필 선생님 존경합니다.
75년 생인 저제가 5살 때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 났었죠. 뭘 알았겠습니까. 하지만 기억 나는거 3가지가 있습니다. 1. 당시 주월동 무등시장 근처에살았던 저는 평상시와 같이 친하게 지냈던 앞집에 놀러 갔습니다.(아마 3형제인 저희 형제들을 케어 하시느라 어머니께서 마당에서 놀겠지 하는 마음으로 저를 잠깐 못보셨나 봅니다) 그런데 평상시 반기는 아주머니 모습이 아니라 저를 혼내면서 왜 돌아다니냐고 큰일 날라고 그런다고하시며 저의 손목을 잡고 집으로 끌다시피 데려 가셧던 기억. 2. 저녁에 잠을 자다 잠깐 깼는데 아버지 어머니께서 겨울 솜이불을 꺼내서 유리창을 막고 계셨던 기억(t사실 저는 총소리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두살 터울의 저희 형님은 총소리를 들었다고 하네요) 3. 아마도 시민군이 도청을 사수하러 나가는 날이었나 봅니다. 어머니께서 플라스틱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서 바가지와 함께 큰길가로 나가시는데 따라 갔습니다 . (주월동 신우아파트 앞 큰길) 당시 아스팔트가 깔려져 있는 큰길가로 가니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길가에 많은 사람이 나와 있더군요. 그런데 아스팔트 길로 군용차량(흔히 60 트럭이라 불리는)차들이 농성동 로터리 방향에서 백운 로터리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플라스틱 바가지로 떠온 물을 차 위로 올려주니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서로 돌려 마시고 차 밖으로 던져주고, 어머니는 그차츷 쫒아가다가 떨어져 흙먼지가 묻은 바가지를 주어 멀로 행구거 다시 다음 차에 올려주고... 몇번을 반복하였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 또한 다른 분들은 김밥도 올려 주는걸 보았고. 당시 환타(갈색 병이었지요)를 누군가 올려주니 어떤 분께서 트력 옆에 돌려 쳐서 병목을 깨서 돌려 먹던걸 봤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때 트럭 안에서 전투경찰 헬멧을 쓰고 총을 들고 계셨던 삼천뻘 아저씨와 눈이 마주 챴는데... 아직도 그분의 멍하다고 할까 모든것을 잃어버린 듯한 서글픈 눈 빛은 지금도 정확히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그분은 당시 돌아가셨을 지도 모르지요. 추가 : 중학교 1학년 때 대학 다니는 형이 있는 친구가 당시 사망하셨던 분들의 사망 사진을 칼라판으로 가져와서 본적이 있습니다. 군화발에 짖밟혀서 총에 맞아서 개머리판으로 맞아서 얼굴 형태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일그러진 사진들도 다수 있더군요. 그때의 충격이란... 그 때까지도 수시하던 터라 518에 대한 언급을 쉬쉬하던 때. 87년 중2 때 6월항쟁 때 노태우의 629 선언을 보고 처음으로 정치라는게 머리로 각인 되었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노태우 좋은 사람으로 생각 했었답니다. 87년 대선 때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진실을 알았지만요. 5.18 광주 민주화운동 44주년. 비록 서울에 살고 있어서 직접 나의 고향 광주 방문은 힘들지만 멀리서나마 묵념을 올렸고.. 황현필 선생님의 강의에 다시한번 폄훼 세력의 장난질에 분노를 느낍니다. 국짐에서 어제부터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지만 그놈들은 또 돌아서면 헛소리 하는 놈들이기에 흘려 듣습니다.
김경재씨가 김대중이 집권하던 시절인 새정치회의 국회의원 시절 김대중의 밀사 자격으로 1999년 12월 6일부터 14일까지 8박9일간 北京(베이징)을 거쳐 북한을 방문했을 때 자신을 안내한 조선노동당 간부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평양시 형제산 구역 신미동에 위치한 애국열사릉을 방문하였는데 노동당 간부들로 하여금 5.18 에 가담하였던 '北특수군묘역'이 가묘로 조성되어 있다는 설명과 함께 10개 내외(9~11개)의 묘비가 있었음을 목격하였다고 밝혔습니다. 김경재씨는 그동안 광주 5.18 사태에 대한 세간의 민감한 사안 때문에 가만히 지내다가 24년만에 목격사실을 처음으로 밝힌다고 하였습니다. 김경재씨는 당시 5.18 가담자 묘역 앞에서 소개한 노동당 간부 2명에게 이 묘역의 진위여부를 재차 물었으며 한결같이 "광주 5.18 때 참전한 인민군 용사들이 맞습니다" 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지씨는 고생 좀 할것 같고 조현병(調絃病)에 노구(老軀)에 요즘 너무 힘들겠지만, 어떡하나, 워낙 싸질러 놓은 것들이 많아서: (1) 2017년 6월 서울역 앞 집회에서 '광주교도소는 북한 특수군이 공격했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고, 인터넷 매체에 같은 취지의 사설을 게재했다가 2017년 12월 10일에 불구속 기소. 다행스럽게 실형임에도 고령이며 성실히 조사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법정구속시키지 않았고. (2) 2015년 7~9월부터 뉴스타운을 통해 '특종 1980년 5·18 광주에 황장엽 왔다. 충격 5·18광주 침투 北 군·관·민 구성 600명 남한 접수 원정대'라는 제목의 호외를 발행, 결국 뉴스타운과 지만원에게 모두 8,2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에서도 상고 기각 (3) 2021년 2월, 법원은 지만원의 저서 '북조선 5·18 아리랑 무등산의 진달래 475송이'에 대해 법원의 결정을 어기고 해당 도서를 출판, 발행, 인쇄, 복제, 판매, 배포, 광고하여 단체 대표자와 관련자 등 9명에게 1회당 200만 원씩 지급해야 한다.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 (4) 지씨가 71광수(노동당비서, 황장엽) 지목한 박(남선)씨는 2017년 지만원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걸어 1심과 2심에서 승소 (5)지씨가 광수로 지목한 43번, 44번, 139번, 184번 이들은 지씨에 '법적대응, 검찰은 ‘5.18 북한 특수군 광수’ 주장 지만원에 징역 4년형 구형. (6) ‘73광수 (인민군 대장, 오극렬) 지목한 지(용)씨는 지난해 6월4일 지만원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7)1980년 광주에 파견된 북한 특수부대원으로 지목된 일명 ‘탈북 광수’ 11명은 (2019년 1월) 16일 지씨를 명예훼손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 사식(私食)이나 넣어 주던지, 아니면 중국에 산다는 "노숙자 담요"와 함께 쓴 창작소설 책이나 팔아주삼~
독립유공자 외 유공자 명단은 개인정보보호법으로 비공개 원칙 아닌가요? 5.18 특혜 받는 사람 추려내려고 유공자 명단 까라는건 다른 유공자도 가짓 유공자 있을 수 있고 형평성 어긋나는거 아닌가… 물론 가짜 유공자 있을 수 있겠지만 다른 유공자도 가짜 유공자 없으리란 법 없고 5.18만 왜 비공개냐고 하는건 참… 일단 5.18만 비공개라는건 명백한 오류입니다
중국, 일본자본의 인터넷 및 언론사들은 내분을 부추기고, 일부 기득권은 잘못 된 역사인식으로 갈라치기를 한다 !!! 더 큰 문제는 반복되면 믿게되고, 그 잘못 됨을 믿는자가 신념으로 요직에서 많은 이들에게 다시금 전파한다 !!! 우리는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 오늘도 좋은 영상 고맙습니다~👍
그 장갑차 이야기 나오니까 한 말씀 드립니다 지금도 과음하시면 그 날의 충격을 이야기하시는 한 분이 계십니다 예전 아버지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시던 조수셨는데 군 복무 당시 장갑차 운전병이셨습니다 당시 친구분이랑 장갑차 끌고 다니시다가 위에 있던 친구분께서 스나이퍼에게 총 맞고 돌아가셨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머리가 아예 없어지고 사방에 피가 낭자 했었다는군요 친구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리 된 것에 대한 분노등등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시면서 여러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십니다 당시 아버지께서 근무하셨던 회사(당시 저유소였슴 지금은 철거됨)와 기아자동차(과거 아시아자동차 - 군수차량 생산했으며 지금도 생산중!!!!!)는 바로 옆이었습니다 바로 가서 가져오시기가 수월하셨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증언과 기록들은 50대 이상 분들에게 생생하게 들으실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2004년도쯤 국사 선생님이 광주 분이셨고 518교육하는데 비디오들고 눈물글썽이며 비장한 모습으로 교육하셨습니다 평소 재미있으신 분이셨는데 그날 유독 오바 한다 생각했고 영상보면서도 그저 한국근현대사 에 나오는 시위중 한개 정도? 느낌 이었구요 06년 에 특전사에 입대 했으며 제기억으론 화려한 휴가 영화가2007년 즘 개봉한거 같은데 영화보지않았다 불온영화 ,픽션이 가득한 영화 라고 외박나갈때도 신신당부하더군요 보지말라구요 몇일 지나니 대대급을 연병장 쪽 계단에 집합해서 대대장이 정신교육 한다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조00 원사에게 그때현장분위기 와 화려한 휴가 가 왜 불온영화이고 거짓된 픽션영화 인지 설명해 줬습니다 이틀? 정도 평화로운 시위였다 그런데 점점 과격해지다가 군경쪽에서 희생자가 나왔다(부상인지 사망인지 확실치않음) 너희같으면 옆에 전우가 당했는데 가만있을수 있는 사람 있냐 영화보면 도청에서 애국가 울리는걸 신호로 군인이 총을 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픽션이다 그런적없다 뭐 이런내용 교육이고 근20년 전일이라 기억나는 정도로 적었는데 뭐랄까 그 조00원사 말들어보면 진압과 관련하여 우린정당했다 영화 의 픽션으로 왜곡된게 많다 등.. 이제와 돌이켜보면 나는 광주사람도 아니고 그당시518 이 정확히 뭔지 도 모르고 화려한휴가 영화도 안봤던 지라 그 원사의 당당함과 논리정연한말에 '영화는 픽션이고 진압은 정당했다 '가 내결론 이었고 교육이끝나고 대대 막사로 복귀하려 계단을다 올라갈무렵 157기 한ㅅㅊ 하사 가 나에게 '00아 넌 저말을믿냐?' 라고 물어봤고 나는 '그래도 현장에 계셨던분인데 맞지않겠습니까?' 라고하자 '아니다 저거 전부 거짓이다' 라며 말했고 그 말에도 그하사의 말이 와닿지 않았다 그이후 전역하고 광주에서 터를잡고 살게되었는데 애기가 아파 광주기독병원 에 진료보러갔다가 518당시 사진들 을보았다 7년전 내가 들었던 것과 그사진들을보며 사고회로를 돌리는데 어..어.. 이게아닌데 내가 아는 모습이 아닌데.. 그때 머리가 띵 하더라 그냥 사고가 몇초간 정지 되었다 눈시울은 붉어지고 `00아 넌 저말을믿냐` 라는 물음에 그렇게 대답했던 내자신이 창피햏고 어느정도 진실을 알고있으면서도 그자리에서 조00 원사의 교육내용에 속으로 아닌데.. 아닌데 하며 속으로 오열했을 그 157기 한ㅅㅊ 하사 가 갑자기 생각나서 몇자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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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7 ① 전두환 인터뷰
04:19 ② 지만원 광수의 진실
06:11 ③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의 광주 투입 발언?
06:48 ④ 황장엽의 미공개 문서의 진실?
07:28 ⑤ 김일성의 5.18 발언
07:49 ⑥ 북한 교과서의 5.18
09:12 ⑦ 북한이 5.18을 기념한다?
10:20 ⑧ 북한에 5.18 열사 묘가 있다?
11:06 ⑨ 미국 CIA 기록
11:35 ⑩ 조중동의 5.18 시각
13:32 ⑪ 외국 기자들이 본 5.18
14:27 ⑫ 정부의 5.18 조사 결과
15:18 ⑬ 북한군이 서울도 아니고 왜 광주?
18:09 ⑭ 공수부대의 무능?
19:15 ⑮ 광주의 육군보병학교는?
19:33 ⑯ 민간인이 어떻게 무기고를 털어 무장할 수 있냐?
21:21 ⑰ 일반인이 장갑차를 운전한다?
21:56 ⑱ 북한군이 평화 시위?
22:51 ⑲ 광주 해방구의 풍경
24:50 ⑳ 한국전쟁 이후 국군과 북한군의 교전비
애국보수 황현필 화이팅
북한군이 개입했지??... 하면서 기자회견 하면서 그냥 말도 안되게 양념 무치듯 버물려 버린거죠..;;
오~~ 드디어 5.18강의 시작이군요.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고 기대했습니다.
더이상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속 시원한 영상들이 나올 거라고 믿고 있구요.
앞으로도 열심히 잘 챙겨 보겠습니다.
황선생님 파이팅!!!!!
탈북자의 "카더라"통신을 지만원과 월간조선 편집장 조갑제 및 관계당국에서 의도적으로 방송에 노출했고, 아직도 그걸 믿는 사람들이 노인층에선 많습니다. 탈북자 정명운 씨가 최초로 추측성 인터뷰를 했고,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탈북자 이주성 씨가 "나도 그렇게 들은거 같다"를 확대 생산했습니다. 거기에 대해 JTBC에서 3년전 뉴스에 방송한거 링크달아둡니다.
ruclips.net/video/ZhJMcwyhl14/видео.html
한가지 아쉬운 것은...세월호 참사때나 이태원 참사때도 보면 기무사나 방첩부대를 투입해서 유가족을 감시한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대형참사같은 게 터지면 그런 조직에서 꼭 유가족을 감시하며 붙어서 아직까지도 내사한다는게 참 짜증납니다.
개입했는지 안했는지 알수 없다. 그럼데 왜 개입안했다고 강조를 할까 그점이 의 강사를 의심하게 만든다
진짜 바로 잡아야 합니다.....근데 이 사람의 사상 이란게 정말 지독히도 고집이 쎄서 왠 만해서는 바뀌질 않네요...저희 어머니도 마찬가지구요....ㅠㅠ...참
교수님의 노력과 열정과 정신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사랑합니다~~~
선생님 항상
응원하고 감사드립니다 ~^^
선생님 고맙습니다 ~
❤❤ 오늘도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역사 팩트체크는 황혈필 선생님께~
필승 건승하세요
강하게 응원합니다
중요한 기록을 이렇게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안기부장이 북한군 490명 내려왔다는 자료 내놨다
북한군개입은 사실이다
@@Cherry-wf1tl 님은 일부러 알면서 정치를 위해 그러는건가요? 아니면 진짜로 그렇다고 믿고 있는건가요? 주장을 하실려면 사람 말고 정확한 근거와 물증을 제시하시는게 좋을듯 ..
@@Cherry-wf1tl사실이면 전장군은 뭘 했지? 묘 하네...
더 씁쓸해지는 오늘 입니다ㅜㅜ
아무리 이런 좋은 영상 만들어도 저쪽 사람들은 듣지도 믿지도 않음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열정의 518이야기 진실을 알려주시는 모습에 감사합니다
황현필 선생님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황현필 님 은 대한민국의 영원한 애국자이시며 한 맷친 광주시민의 한 을풀어주시는 은인이십니다
자기 부모, 형제, 처, 자식들이 진압군에 죽임을 당하고도 북한군 개입설 같은 개떡 같은 소리을 할 지 궁금해 지네요~
@nunubull1000 4~5살짜리가 폭도라고 주장할정도면 정신병원 들어가야하지않겠냐?
@nunubull1000뭔 개소리?
무슨 폭도 멍충아ㅋㅋㅋㅋ@nunubull1000
@nunubull1000 버러지 ㅎㅇ요 사회에서 인간취급 못받아서 여기서 글을 배설하는거 보면 우리 사회에서 보듬어줘야 할 사람이 많은거 같아서 눈물이 다 나노 😭
@nunubull1000심지어 자추 누르는 귀여운 면까지 있노 😂
오늘도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해주고 계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늘 고맙고 응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피흘리신 광주 시민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시한번 역사를 잘알아야 겠다고 생각되네요..꼭 봐야할 영상!
역사적 사실을 침소봉대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거짓으로 변질 또는 축소하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건강한 사람의 인식과 사상을 비정상적 불구자로 만들거든요
말도 안되는 주장에 20가지나 반박하시다니 고생이 많으십니다. 요샌 말같지도 않은 주장이 안먹히니깐 유공자 명단공개하라고 하는데 법적으로 공개못한다니깐 법바꿔서 공개하라고 하는 생떼를 보니 그들의 수준을 알거같습니다ㅎㅎ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ㅠㅠ 황현필 선생님의 설명으로 역사에 대해 더욱 정확히 알게 되어 항상 감사합니다!
오늘 선생님의 말씀 잘듣고 누가 이런말을 한다면 잘반박하도록 하겠습니다
김경재씨가 김대중이 집권하던 시절인 새정치회의 국회의원 시절 김대중의 밀사 자격으로 1999년 12월 6일부터 14일까지 8박9일간 北京(베이징)을 거쳐 북한을 방문했을 때 자신을 안내한 조선노동당 간부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평양시 형제산 구역 신미동에 위치한 애국열사릉을 방문하였는데 노동당 간부들로 하여금 5.18 에 가담하였던 '北특수군묘역'이 가묘로 조성되어 있다는 설명과 함께 10개 내외(9~11개)의 묘비가 있었음을 목격하였다고 밝혔습니다. 김경재씨는 그동안 광주 5.18 사태에 대한 세간의 민감한 사안 때문에 가만히 지내다가 24년만에 목격사실을 처음으로 밝힌다고 하였습니다. 김경재씨는 당시 5.18 가담자 묘역 앞에서 소개한 노동당 간부 2명에게 이 묘역의 진위여부를 재차 물었으며 한결같이 "광주 5.18 때 참전한 인민군 용사들이 맞습니다" 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상호신-j2g당시 국민학생으로 아버지와 주민들이 격었던 일을 생각하면 가슴 아픕니다.
역사 왜곡을 믿는 당신도 지만원과 다를게 없는 사람입니다.~~
@@kimheegon7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북한군한테 뚫린 거면 청와대하고 미군은 뭐했음?
2. 상식적으로 처들어 올 거면 서울로 오지 뭐하러 광주까지 감?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거구만 무슨
광주사태 이야기 들을 때 마다 눈물이 납니다. ㅜ.ㅜ 당시 사망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강의 늘 잘 보고 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5.18때 저희 아버지가 전남대생 이 었습니다. 전방 에서 고생함서 3년 수색대로 국방 의무지키셨는데 북한어쩌고저쩌고 하는 놈들 보면 진짜. . 개소리하던말던 되려 담담하신 아버지가 대단해보입니다
북한 어쩌고 저쩌고 가 아니고 이게 역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실제 북한군 개입 하나도 없는데 일단 전뻐커가 시위 진압하고 어찌 수습 해야 하는데.. 그냥 죽였어 하기에는 말이 안되고 북한은 쿠데타야 ~~ 하나의 반란군이야 하다가
그냥 한 개 같은 소리죠 ... 북한군이 날 죽일려고 해서 그랬다,,,;; 그냥 지어 낸 거예요 왜 죽였냐고 물어 보니까,.. 할말 없으니..
전남대 좋나요?
@@붕붕이네-n1p 61 무기고 동시탈취 부터 탐구해보길. 사전의 무장단체가 조직되어있지 않는한 완전히 불가능한 사태.
이런 병신들은 왜 대댓글에 판치는걸까
존경합니다. 황선생님.
정말 펙트로 비교 분석이 너무나 훌륭하십니다..계속다음강이 가대합니다
저희집에 무등산은 알고있다 라는 책이있는데 그 책을보면 5.18 왜곡을 어떻게할수있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당시 사망한 분들의 시체시신까지 나옵니다... 어떻게그럴수있는지 진짜 너무 힘듭니다...
오~~ 그 책자 저 어렸을때 봤습니다. 넘 끔찍하죠. 진실규명 제대로 해야하고, 억측 주장과 왜곡된 사실 유포자는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주동자 지만원, 추종자 안정권
이 악질 선동자들이 이 새태를 만든 원흉이죠
돈이면 나라의 역사도 팔아막는 쓰레기들입니다.
감사합니다
올바른 역사관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끔 좋은 내용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듣겠습니다
구독을 안 할 수가 없네요~ 항상 역사적 진실을 위해 노력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만원 옹호했던 김진태가 지금 강원도지사로 있어요. 역사왜곡죄를 통과시켜야합니다.
참 통탄할일입니다. 그쪽 사람들은 뭔생각인지
강원도민으로서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런 인간이 도지사라니..
일을 잘하는것도 아님 레고랜드 사태 하나만으로도 정치판 떠야 할인간임
역사왜곡도서 출판을 주최했던 진짜 어이없는 인간..
친일파 후손의 비서실장...
역사왜곡을 지지하는 도지사..
진짜 대단하다...
고 멍청한 애새끼가 도지사라고? 허긴 고뇸이나 고뇸이나..
올바른 역사이야기만 해주시는 쌤..감사합니다! 5.18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내 나이 20살 서울에 살 때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44년만에
처음으로 지난 11일 국립 5.18 민주 묘역을 참배하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현장에 가보니까 저절로 눈물이 나고 44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제서야
가본게 그때 희생당하신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숙연해졌습니다
5.18항쟁이 끝나고 서울 사직공원에서 5.18항쟁 사진전이 있었습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사진들도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ㅜ
서울태생인 전 96년도에 518묘지를 가본적 있습니다
그당시는 정부가 인정해 주지 않을 때라서
묘지가 진짜 을시년 스럽운 민둥산에 묘들만 쭉 있는 그 앞에 사진이랑만 있는데 무십기도 했고
어렸던 그분들이 안스럽기도 했었습니다
518은 모래시계로 알고 있었고요
시원하게 정리하셨네요
제가 5년전에 교회에서 5.18 광주에 북한군이 계입했다는
60대 후반의 목사사모님 이야기를 듣고서
아니다라고 했다가 목사사모님과 말로서 싸운 적이 있습니다
철석 같이 믿는 5.18 광주에 북한군이 계입을 믿음을
어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선생님 항상 응원합니다!
518에 대해 되도않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법으로 엄중처벌해야 한다
전두한 살인마를 추종하는 세력은
시대적으로 매장되어 마땅하다
특히 일베는 더욱더...
ㅋㅋㅋ 그런데 왜 ?????????
518유공자 공개안하지 ??????
광주는 폭동임
@@정담-y7e 님같으면 선관위 같은데 공개하겠음???온갖 구린내가 풀풀나는데 ㅋㅋㅋ
@
그렇죠 !!
최대한 꽁꽁 숨기겠죠!!
개입했다면 당시 계엄군을 처벌해야 한다. 북한군 600명이 광주까지 올 동안 잡지 못했다면 당시 치안담당을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북한군이 개입했다어쨌다도 전혀 보고도 못받고 몰랐었다잖소 ㅋㅋ 모르면 직무유기에 무능이고 ㅋㅋㅋ
11공수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원사 이상의 간부들에게서 5.18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철저히 그들의 시선과 입장에서 종종 들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당시 교육을 받았던 그 사고방식으로 "광주사태", "폭도진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단 한번도 북한과 관련된 언급은 들은적이 없습니다
그들도 산 증인인데 만약 북한군이 침투했다면 그들은 그 북한군과 대치하고 싸웠다는 무용담을 떠들기 더 좋지 않았을까요? 2011년 군번이며 11공수에서 복무했는데 당시 간부들에게서 1980년 5월의 광주이야기를 들을때 북한에 ㅂ자도 언급이 된바 없습니다
특부197기 출신이시네요!
그때 실제로 다른부대 였으면 실제 광주에 투입 됬을수도 었을지도..
꼭 필요한 영상!!!
10대 20대들이 많이봤으면 하는 영상이네요.... 일부 청소년과 청년들이 북한군 개입설에 현혹되고있다고 하다라구요 참 슬픈현실입니다 ㅠ
그 친구들이 이대남이라고 불리우는 2찍이들...
그래서 이상한 모지리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고, 그 결과 우리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있음...
벌레만도 못한 1베들 때문이죠
@@eugenehwang808 그렇지 않은 이대남도 많았을꺼예요 ㅠ
정말 쉽지않은 대한민국 역사왜곡 기가막히네요
나도 5,18 목격자다 이 극우들아 ᆢ
역사왜곡을해야 자기들이 살길이닌까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한민족말살정책 그리고 해방후 사학진흥재단에서 왜곡교과서 셋트가 완성됨
@@davidjeong7675중국 일본 극우들은 지네나라에 도움되는 일을 한단 명분이라도 있지 우리나라 2찍 홍위병집단은 백해무익..
@@davidjeong7675
60년 2,28 민주시민 항쟁
시작이 대구이거늘 그건
속 빼고 왜곡들하니 정말 웃기고 자빠집니다
광주 북한 맞음
@@존못-b9u ㅋㅋㅋㅋㅋㅋㅋ어르신 유튜브 그만보시고 침대랑 단일화좀
잘보겠습니다.
황현필 역사강의 바로알려 주시어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 재학중인 학생으로서 이런 영상 너무 감사합니다!
100만 돌파 축하드립니다....
수년째 올바르지 않은 역사관을 끊임없이 바로잡는 선생님의 모습을 늘 존경합니다!!
오늘같은 뜻깊은날 명강의 잘들었습니다 선생님!
역사교육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일성이도 절대 전쟁 할 생각이 없었다는게 드러나네요. 당연하죠 전쟁나면 권력 잃는건 확정이니까. 쟤들에게 중요한건 조국의 통일? 아니야 민족의 독립도 아니고 오직 자기의 권력임.
80년대 학번인 저는 한때 해마다 5월에 광주 금남로에 가고 임동성당 가서 추모 미사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이 훌쩍 흘러 엊그제 홍대 오픈콘서트-기억록 에서 뵐수 있어 너무 좋았어요. 공연중 임펙트한 강의가 역시나 최고였고 공연전 응해주신 사진도 넘 감사드려요. 덕분에 학창시절 이후 가장 뜻깊은 5월을 보낼수 있었습니다
역사를 가장 역사답게!
황현필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제 광주항쟁도 40년이 지났는데도 그들은 아직도 600명의 북한군이 침투했다고 아직도 우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렇게 믿을겁니다. 아니 계속 그런식으로 왜곡하겠지요. 참 오월은 진짜 잔인한 계절인거 같아요!
그 원흉이 지만원 입니다. 전두환 조차도 당시에 처음 들었다고 하니..
황현필이새끼 박정희전두환 대통령비난 몇살처먹었나 그당시상황아느냐 이새끼 역적아가리 518 희생자는 애도하나 역사외곡 할필요가있나 ? 이자식아 경부고속도로 광주청주사이 회덕분기점 북괴몰살군 미리침투된 430명 몰살시신 비님봉지관에 매장된 포크레아 인부7명발언 아파트공사중암매장발견 청주시민들 대모한것모르나 그시신 아시안게임북간부내려와북소시킴 왜북하군을 은폐하나 자식한심하네ㅡ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국가를.지킨 사람들... 북한군 좋아 하네
전쟁나면 호남사람들이.제일.잘 싸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으따 그런 겨~~~??
통수나 치겠지
임진왜란때 의병과 의병장이 제일
많았던곳이 호남이다
특수부대 600명이면 그건 전쟁입니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데
강릉침투 당시에도 십 수명 잡으려고 몇 개 사단과 공수부대가 투입이 되었는지 알고들 있는지
휴전선 가까운 서울을 뒤로하고 광주로 간다는것도 말도 안돼고
96년...ㅋㅋ 포상휴가날 공비들와서 환복하고 개 욕햇던 기엇남. 불사조 부대 화이팅!
황현필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가 어렸을적엔 광주 사태라고 하였고, 저도 어렸을적에는 저리 배웠었지요.
역사는 항상 승리자의 몫입니다.
그래서 확실한 역사 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
선생님.. 항상 좋은 역사의식 남겨주세요..
20:20 왠만한 중.고등학교 창고에는 칼빈소총 무기고가 전국의 학교에 다 비치되어있었어요...
지금이야 없지만.7~80년대...하물며 82년대까지는 모형 총 무기로 수업했었지요 나중에는 교련 폐지되면서 모두 회수폐기되었죠...
아무튼 창고가면 칼빈소총 한무더기가있었지요
교련 왜 폐지 했을까요???..... 저보다 나이가 많은 형 누나들은 다 배웠다 그러더라구요..;
@@붕붕이네-n1p 저당시 학업.학원.수업등 장난 아니었어요. 일종에 엄마부대 수십명씩 학교 몰려가서 장난 아니던 때에요...체육도 폐지될뻔했죠.
가정실습도 가부장제도에 어쩌고 하면서 사라지고...그때는 그러던때죠...
지금의 금쪽이가 있었다면 그 반대로 보시면 될듯요.
@@붕붕이네-n1p 교련할 시간에 자율학습 하자는 학부모 여론이 컷음.
광주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면 전대갈은 북한군을 막지않는 이유로 날라갔을탠데 오래살다가 ☠️로 간것도 북한군개입 없었다는 증거아닌가 싶은데.
지만원이 아니라 지일원 짜리네
역사왜곡이 너무 심해요
역사왜곡죄는 강한 처벌이 필요해요
지영원으로 추천합니다 ㅎ 뻔뻔한 인간...
지만원 아깝고 지만엔이죠
정확히는 지빵원...
지거짓말쟁이...
왜곡은 전교조 이완용 화이팅
전남대 2 학년( 1980년) 때 광주 현장에 있었습니다. 살아있기에 갖는 죄책감과 결코 우리는 폭도가 아니기에 모두 한 뜻으로 하나가 되어 폭동 조건(1. 은행,주유소,상점 약탈 2. 강도, 강간, 절도 3. 방화, 살인)을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사적 사실과 증거 자료로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해 주셔서 마음이 시원합니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황현필 선생님 존경합니다.
제 아버지도 당시 23살 이셨고, 당시 금남로에 지인부모님 금은방 지킨다고 5명이서 보초서다가
군인들한태 걸려서 총기개머리판이랑 곤봉으로 맞으셨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제가 성인되고 대학교 들어갈떄 하신말씀이.. 데모하지말어라 셨음..
( 험한것들을 많이 보셨다고. 근처에도 가지도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와... 실제 역사의 현장에 .... 진짜 전뻐커야 전뻐커~
가슴이 아픕니다... 아직도 정치적 이유 때문에 또는 지역감정 때문에 고인들의 명예가 짖밟히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역사적 증거로 논리 있게 오목조목 설명을 해줘도 아직도 인정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이해가 안돼요. 흥분 참아내며 강의하신다고 수고 하셨어요.. 저도 선생님처럼 가슴이 답답했습니다.ㅠ
그때 판사가 재판하면서 5.18 사건 왜 발포 했냐고 물어보니까.. 둘러 대다가 걍 북한 소행이다고... 북한 애들이 폭동 일으켜서 그랬다고 ...그럼 광주 시민이 괴뢰군 이라는 거란거 밖에는 ..ㅠㅠ..;; 전두환이 실제 재판 과정에서 저리 말함..
전두환이 너무 편하게 죽었습니다... 역사왜곡은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80년대 영화관에 가면 홍보영상 중에 형제복지원이라는 곳이 있고, 사람들을 많이 학대하고, 많이 죽였다는 영상을 보고 많이 아팠습니다. 전두환은... 화가 납니다.
반드시 죄값을 받아야 합니다.
남은 자손들을 조져야 합니다.
현 대통령의 데자뷰인가 싶네요... 평화의땜,차도.인도 신호등사업,광주=대구 고속도로...
전두환은 편안하게 갔어도 그 부역자들은 많이 살아있죠 그 인간들을 처단하고 사형을 처할수 있는 정치인에게 앞으로 한표 던지겠습니다
@@generalko449근데 전두환보다 더 최악은 문재인인듯 ㅠ 나라를 돌이킬수없게 망쳐버렸어요
북한군이 들어왔음 미국이 가만히 있었겠나?? 그리고 당시 전대갈이 군 책임자였는데..북한이 들어왔었음 전대갈은 그 책임으로 바로 사형이야
그러니까요.
중무장도 하지않고 민간인처럼 넘어왔는데?
@@jimmypage5120 대가리는 장식이니? 민간인처럼 넘어오면 책임이 없어지니? 이찍이들은 하나같이.... ㅉㅉ
국내 내륙지역에 600명이나 침투할 정도로 군 경계태세가 허술했다는 거고, 게다가 계엄령 상태 중이었다면서?
그 정도의 실책이면, 군법으로 사형에 처해야한다. 다시 관에서 꺼내 참수 해야 한다.
중무장이든 경무장이든
북괴가 쳐들어 왔는데
국방을 책임진 자들 중 단 한명도 책임지고 전역한 자도 처벌 받은 자도 없다는 건
전두환이 북한에 지령이라도 받았다는 말인가?
정리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많으세요
03:45 ㅋㅋㅋㅋㅋㅋ 외계인 입니까? ㅋㅋㅋ😂😂😂😂😂😂😂😂😂😂😂😂😂 ㄹㅇ 하늘에서 떨어졌나 ㅋㅋ
75년 생인 저제가 5살 때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 났었죠. 뭘 알았겠습니까.
하지만 기억 나는거 3가지가 있습니다.
1. 당시 주월동 무등시장 근처에살았던 저는 평상시와 같이 친하게 지냈던 앞집에 놀러 갔습니다.(아마 3형제인 저희 형제들을 케어 하시느라 어머니께서 마당에서 놀겠지 하는 마음으로 저를 잠깐 못보셨나 봅니다) 그런데 평상시 반기는 아주머니 모습이 아니라 저를 혼내면서 왜 돌아다니냐고 큰일 날라고 그런다고하시며 저의 손목을 잡고 집으로 끌다시피 데려 가셧던 기억.
2. 저녁에 잠을 자다 잠깐 깼는데 아버지 어머니께서 겨울 솜이불을 꺼내서 유리창을 막고 계셨던 기억(t사실 저는 총소리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두살 터울의 저희 형님은 총소리를 들었다고 하네요)
3. 아마도 시민군이 도청을 사수하러 나가는 날이었나 봅니다. 어머니께서 플라스틱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서 바가지와 함께 큰길가로 나가시는데 따라 갔습니다 . (주월동 신우아파트 앞 큰길) 당시 아스팔트가 깔려져 있는 큰길가로 가니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길가에 많은 사람이 나와 있더군요. 그런데 아스팔트 길로 군용차량(흔히 60 트럭이라 불리는)차들이 농성동 로터리 방향에서 백운 로터리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플라스틱 바가지로 떠온 물을 차 위로 올려주니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서로 돌려 마시고 차 밖으로 던져주고, 어머니는 그차츷 쫒아가다가 떨어져 흙먼지가 묻은 바가지를 주어 멀로 행구거 다시 다음 차에 올려주고... 몇번을 반복하였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
또한 다른 분들은 김밥도 올려 주는걸 보았고. 당시 환타(갈색 병이었지요)를 누군가 올려주니 어떤 분께서 트력 옆에 돌려 쳐서 병목을 깨서 돌려 먹던걸 봤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때 트럭 안에서 전투경찰 헬멧을 쓰고 총을 들고 계셨던 삼천뻘 아저씨와 눈이 마주 챴는데...
아직도 그분의 멍하다고 할까 모든것을 잃어버린 듯한 서글픈 눈 빛은 지금도 정확히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그분은 당시 돌아가셨을 지도 모르지요.
추가 : 중학교 1학년 때 대학 다니는 형이 있는 친구가 당시 사망하셨던 분들의 사망 사진을 칼라판으로 가져와서 본적이 있습니다.
군화발에 짖밟혀서 총에 맞아서 개머리판으로 맞아서 얼굴 형태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일그러진 사진들도 다수 있더군요. 그때의 충격이란...
그 때까지도 수시하던 터라 518에 대한 언급을 쉬쉬하던 때.
87년 중2 때 6월항쟁 때 노태우의 629 선언을 보고 처음으로 정치라는게 머리로 각인 되었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노태우 좋은 사람으로 생각 했었답니다.
87년 대선 때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진실을 알았지만요.
5.18 광주 민주화운동 44주년.
비록 서울에 살고 있어서 직접 나의 고향 광주 방문은 힘들지만 멀리서나마 묵념을 올렸고.. 황현필 선생님의 강의에 다시한번 폄훼 세력의 장난질에 분노를 느낍니다.
국짐에서 어제부터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지만 그놈들은 또 돌아서면 헛소리 하는 놈들이기에 흘려 듣습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화이팅
고맙습니다
강릉 생활중인데 레고사태겪고도 강릉이 또 권..동이 당선되는거 보고 포기했습니다
그 목적이 정치적이건 경제적이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속이는 사기꾼들에게 이 사회는 지나치게 관대합니다.
처음으로 1등 감사 표하고 시청합니다 😊
이젠 지겹다못해 짜증나네요 그놈의 북한군 개입설
얼마나 짜증 나겠어요... 전두환이 5.18 왜그랬나고 그러니까.. 판사에게 할 말 없으니 북한 놈들 처치 할려고 했다.. 이 발언 때문에 그냥 지금까지 그렇게 알려 져서 북한이 죽인걸로..;; 군인이 죽인게 아니고..
명쾌한 정리입니다. 역사를 잊으면 안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휴...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라도 잘못한건 지적할 줄 알아야지..
저런걸 주장해오고 믿는건 도대체 어떤근거로 저러는거죠?? 북한군이 굳이 먼 광주까지 와서 ??
근거는 갯불. 돈이 벌리니까 그 짓 하는 거지. 쉐엑끼 겨우 2년형이라?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실을 왜곡한 저런 뇸은 20년도 부족한데...
주장이 아니라 판사가 왜 5.18 왜 그랬나고 물어보니가까. 재판할때. 북한의 소행이야~~ .... 전빡빡이가...;;; 나는 북한놈을 처리 했어.. 이래버림 .. 근거는 그냥 벌금하고 추징금 징역 이런거 피하고 싶으니까..;;;
김경재씨가 김대중이 집권하던 시절인 새정치회의 국회의원 시절 김대중의 밀사 자격으로 1999년 12월 6일부터 14일까지 8박9일간 北京(베이징)을 거쳐 북한을 방문했을 때 자신을 안내한 조선노동당 간부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평양시 형제산 구역 신미동에 위치한 애국열사릉을 방문하였는데 노동당 간부들로 하여금 5.18 에 가담하였던 '北특수군묘역'이 가묘로 조성되어 있다는 설명과 함께 10개 내외(9~11개)의 묘비가 있었음을 목격하였다고 밝혔습니다. 김경재씨는 그동안 광주 5.18 사태에 대한 세간의 민감한 사안 때문에 가만히 지내다가 24년만에 목격사실을 처음으로 밝힌다고 하였습니다. 김경재씨는 당시 5.18 가담자 묘역 앞에서 소개한 노동당 간부 2명에게 이 묘역의 진위여부를 재차 물었으며 한결같이 "광주 5.18 때 참전한 인민군 용사들이 맞습니다" 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상호신-j2g 그럼 우리나라에서 사살한 시체를 넘긴건가요? 명단공개된거잇어요??
지만원 박사님 존경합니다
지씨는 고생 좀 할것 같고 조현병(調絃病)에 노구(老軀)에 요즘 너무 힘들겠지만, 어떡하나, 워낙 싸질러 놓은 것들이 많아서:
(1) 2017년 6월 서울역 앞 집회에서 '광주교도소는 북한 특수군이 공격했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고, 인터넷 매체에 같은 취지의 사설을 게재했다가 2017년 12월 10일에 불구속 기소. 다행스럽게 실형임에도 고령이며 성실히 조사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법정구속시키지 않았고.
(2) 2015년 7~9월부터 뉴스타운을 통해 '특종 1980년 5·18 광주에 황장엽 왔다. 충격 5·18광주 침투 北 군·관·민 구성 600명 남한 접수 원정대'라는 제목의 호외를 발행, 결국 뉴스타운과 지만원에게 모두 8,2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에서도 상고 기각
(3) 2021년 2월, 법원은 지만원의 저서 '북조선 5·18 아리랑 무등산의 진달래 475송이'에 대해 법원의 결정을 어기고 해당 도서를 출판, 발행, 인쇄, 복제, 판매, 배포, 광고하여 단체 대표자와 관련자 등 9명에게 1회당 200만 원씩 지급해야 한다.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
(4) 지씨가 71광수(노동당비서, 황장엽) 지목한 박(남선)씨는 2017년 지만원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걸어 1심과 2심에서 승소
(5)지씨가 광수로 지목한 43번, 44번, 139번, 184번 이들은 지씨에 '법적대응, 검찰은 ‘5.18 북한 특수군 광수’ 주장 지만원에 징역 4년형 구형.
(6) ‘73광수 (인민군 대장, 오극렬) 지목한 지(용)씨는 지난해 6월4일 지만원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7)1980년 광주에 파견된 북한 특수부대원으로 지목된 일명 ‘탈북 광수’ 11명은 (2019년 1월) 16일 지씨를 명예훼손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
사식(私食)이나 넣어 주던지, 아니면 중국에 산다는 "노숙자 담요"와 함께 쓴 창작소설 책이나 팔아주삼~
이 영상이 널리 펴져서 아직도 북한개입설을 믿는 무지한 시민이 없어지길 바랍니다.
독립유공자 외 유공자 명단은 개인정보보호법으로 비공개 원칙 아닌가요?
5.18 특혜 받는 사람 추려내려고 유공자 명단 까라는건
다른 유공자도 가짓 유공자 있을 수 있고 형평성 어긋나는거 아닌가…
물론 가짜 유공자 있을 수 있겠지만 다른 유공자도 가짜 유공자 없으리란 법 없고 5.18만 왜 비공개냐고 하는건 참…
일단 5.18만 비공개라는건 명백한 오류입니다
공개하면 기레기와 뉴라이트 극우들이 찾아와서 난리치지.
차라리 북한군 개입하길, 했길 바라는 마음일 수도, 그럼 지들 행위에 명분이 생겨 오히려 좋았을 테니...그런 행위를 한 당사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해서 그럴까요? 차라리 못 배운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싶네요
중국, 일본자본의 인터넷 및 언론사들은 내분을 부추기고, 일부 기득권은 잘못 된 역사인식으로 갈라치기를 한다 !!!
더 큰 문제는 반복되면 믿게되고, 그 잘못 됨을 믿는자가 신념으로 요직에서 많은 이들에게 다시금 전파한다 !!! 우리는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
오늘도 좋은 영상 고맙습니다~👍
광주분들 감사드립니다 잊지않고 기억하겠습니다 🙏
이건 조회수 1000만 나와야 한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을 봤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장갑차 이야기 나오니까 한 말씀 드립니다 지금도 과음하시면 그 날의 충격을 이야기하시는 한 분이 계십니다 예전 아버지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시던 조수셨는데 군 복무 당시 장갑차 운전병이셨습니다 당시 친구분이랑 장갑차 끌고 다니시다가 위에 있던 친구분께서 스나이퍼에게 총 맞고 돌아가셨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머리가 아예 없어지고 사방에 피가 낭자 했었다는군요 친구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리 된 것에 대한 분노등등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시면서 여러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십니다 당시 아버지께서 근무하셨던 회사(당시 저유소였슴 지금은 철거됨)와 기아자동차(과거 아시아자동차 - 군수차량 생산했으며 지금도 생산중!!!!!)는 바로 옆이었습니다 바로 가서 가져오시기가 수월하셨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증언과 기록들은 50대 이상 분들에게 생생하게 들으실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인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2004년도쯤 국사 선생님이 광주 분이셨고 518교육하는데 비디오들고
눈물글썽이며 비장한 모습으로 교육하셨습니다 평소 재미있으신 분이셨는데
그날 유독 오바 한다 생각했고 영상보면서도 그저 한국근현대사 에 나오는 시위중
한개 정도? 느낌 이었구요 06년 에 특전사에 입대 했으며
제기억으론 화려한 휴가 영화가2007년 즘 개봉한거 같은데 영화보지않았다
불온영화 ,픽션이 가득한 영화 라고 외박나갈때도 신신당부하더군요 보지말라구요
몇일 지나니 대대급을 연병장 쪽 계단에 집합해서 대대장이 정신교육 한다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조00 원사에게 그때현장분위기 와 화려한 휴가 가 왜 불온영화이고
거짓된 픽션영화 인지 설명해 줬습니다 이틀? 정도 평화로운 시위였다
그런데 점점 과격해지다가 군경쪽에서 희생자가 나왔다(부상인지 사망인지 확실치않음)
너희같으면 옆에 전우가 당했는데 가만있을수 있는 사람 있냐
영화보면 도청에서 애국가 울리는걸 신호로 군인이 총을 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픽션이다 그런적없다
뭐 이런내용 교육이고 근20년 전일이라 기억나는 정도로 적었는데
뭐랄까 그 조00원사 말들어보면 진압과 관련하여 우린정당했다
영화 의 픽션으로 왜곡된게 많다 등.. 이제와 돌이켜보면 나는 광주사람도 아니고 그당시518 이 정확히 뭔지
도 모르고 화려한휴가 영화도 안봤던 지라 그 원사의 당당함과 논리정연한말에
'영화는 픽션이고 진압은 정당했다 '가 내결론 이었고 교육이끝나고 대대 막사로 복귀하려
계단을다 올라갈무렵 157기 한ㅅㅊ 하사 가 나에게 '00아 넌 저말을믿냐?' 라고 물어봤고
나는 '그래도 현장에 계셨던분인데 맞지않겠습니까?' 라고하자 '아니다 저거 전부 거짓이다'
라며 말했고 그 말에도 그하사의 말이 와닿지 않았다 그이후 전역하고 광주에서 터를잡고 살게되었는데
애기가 아파 광주기독병원 에 진료보러갔다가 518당시 사진들 을보았다
7년전 내가 들었던 것과 그사진들을보며 사고회로를 돌리는데 어..어.. 이게아닌데 내가 아는 모습이 아닌데.. 그때 머리가 띵 하더라 그냥 사고가 몇초간 정지 되었다 눈시울은 붉어지고
`00아 넌 저말을믿냐` 라는 물음에 그렇게 대답했던 내자신이 창피햏고 어느정도 진실을 알고있으면서도
그자리에서 조00 원사의 교육내용에 속으로 아닌데.. 아닌데 하며 속으로 오열했을 그 157기 한ㅅㅊ
하사 가 갑자기 생각나서 몇자적어봤습니다.
선생님 고생 많으 십니다…존경 합니다
아직도 광주 이야기를 해야한다는게 어처구니가 없는 일
역사를 잊지말아야 할것을 쯧쯧!!
실제 그랬다고 병신아...전뻐커가... 한국현대사에 있어서는 안될 인물이야 ㅉㅉ... 착하게 살아야지..;;
항상 응원합니다 ! 선생님 사랑해요~
무엇을 들고 싸웠냐가 쟁점이 아님
누구와 싸웠냐가 쟁점임
국가를 반란으로 찬탈한 반란군들과 싸웠기 때문에 정당한 시민권 저항권임
저번에 영상이 올라왔다 내려가서 걱정이 되었는데
이번 영상은 필히 자주 시청하여 널리 알려야 하겠습니다
지만원은 지옥캅니다.
가서 대머리 만나겠네요
빡빡이 전돤
살인독자재한테 뒷돈 퍼준 개대중은 이미 지옥 유황불에서 요들레휘호랑 타고있을듯
그들도 알면서도 그렇게 믿고 싶은거죠
이걸 아직까지 설해야하는 것이 비극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