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농자 천하지 대본이라고 해서 농과대학이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지 75년 전 내 친구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면장이라 일본 와세다대학 농과대학을 나와 농대 선생이라고 했다 그때 시골에 비단잉어 거위 닭은 뉴 햄프셔 라고 해서 엄청 큰 닭이 있었고 토끼는 눈이 빨간 앙골라 토종보다 큰 친질라 온갓 동식물이 있었다
첫 말씀 들으며 눈물을 왈칵 쏟았습니다. 저는 종손으로 태어나 78년 세상을 떠난 증조모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왕성한 호기심으로 옛날 증조모님이 젊었을 때 이야기를 졸라서 듣곤 했습니다. 머슴이 3명이나 있었던 우리 집이었죠. "내 젊었을 때는 배추도 주먹만 했고, 보리수확도 낫으로 할 정도가 못돼, 듬성듬성 달린 이삭을 손으로 땄다 (따비 사용). 배도 제삿상에 올리는 큰 배는 없었고, 작은 돌배 밖에 없었다......." 증조모님의 기억을 통해 일제시대 그 이전의 우리 삶의 수준을 어렴풋이 알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국민학교 2학년때 인가, 제 고향 진주 너우니(판문동)에서 우장춘박사가 만든 씨없는 수박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졌다. 저는 우리가 씨 없는 수박을 제일 먼저 사먹자고 졸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씨없는 수박은 시판되지 못했고, 우장춘박사가 배추 무우 벼 등 다양한 종자개량을 통해 한국인의 삶의 질을 높인 분이란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제 외가와 친가가 있는 경남 의령은 6.25때 전장터였던 (낙동강전투) 관계로 상당히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양파(다마네기)를 대규모로 재배하면서 우리가 가난의 때를 벗었다"는 어른들 말씀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아마도 가까운 김해농업시험소에서 일하셨던 우장춘박사의 직접 혹은 간접적 영향이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오늘 육종을 통해 식생활을 개선하여 한국인의 삶을 바꾼 위대한 육종학자 우장춘박사의 생애를 소상히 알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혹시나 젊은이에게 도움이 될까해서 써보았습니다. 저는 1960년생입니다.
@@심형구-w1y 너무 공감합니다. 고종과 여흥민씨 민비. 민비일가 때문에 우범선은 조선에. 갑신정변의 고균 김옥균 중국 상해에서 방심하다(당시 BC3세기경 법가 한비자가 썼던 책을보다 민비가 보낸 자객인 프랑스 유학파 홍종우에게 잔인하게 중국 상해돌아가시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죠. 말씀처럼 우범선 영웅이시죠.
지금 우리의 발전과 선진국 진입에 일본의 역할이 이렇게 크다는 것은 새삼 느낍니다ㆍ 우장춘박사의 개인사도 위대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여러가지 인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ㆍ박정희도 그렇고 ㆍ 오늘날 민주당놈들이 입만벌리면 친일파 어쩌고 발광들을 하는데 일본서 교육받은 지도자들때 감동적인 스토리를 ㆍ이땅에서 나고자란 놈들은 왜 하나같이 바보천치 범죄자들만 우글거리는지 알 수가 없 습니다
* 강혜영 강사님 강연 몰아보기 : bit.ly/3cTBekj
목아프셨겠어요. 뜨거운물말고 따뜻한 물을 자주드시면 목이 좋아지실겁니다.
강혜영 선생님 강의를듣고 우장춘 박사님의행적을 알게되었읍니다 강 의감사합니다
이글감동임니다이고마움을국민모두알앗으면좋겠음니다ㅡ어릴때씨업는수박정도알앗지ㅣ지금에식양난농업ㅇ큰공으로식양걱정없이살게해준것은처음알았음니다이고마음을더널리아리여주었음함니다
좋은 강의 귀기우려 감사히 잘들었습니다. 우장춘 박사님은훌룽한 일본인 어머니와 부인을 잘 만났기 때문에 청사에 길이 남는 애국으로 선친 몫까지 해냈습니다.
강혜경선생님의 강의를 듣다보면 역사를 통해 현실을 통찰해 볼수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좋은 강의 내용 감사히 잘들었습니다
강혜영 선생님& 일상 인문학님👍 감기조심하시고. 건강잘챙기십시요. 제가 좋아하는 육종학자. 종의 합성하신 고 우장춘 박사님이군요.
그때는 농자 천하지 대본이라고 해서 농과대학이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지 75년 전 내 친구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면장이라 일본 와세다대학 농과대학을 나와 농대 선생이라고 했다
그때 시골에 비단잉어 거위 닭은 뉴 햄프셔 라고 해서 엄청 큰 닭이 있었고 토끼는 눈이 빨간 앙골라 토종보다 큰 친질라
온갓 동식물이 있었다
김옥균이 급진개화사상 면이 있지만 그들을 개화사상은 시대의 진실이었습니다 우장춘의 어머니가 훌륭하시네요
우 박사님 60년 전 배우고, 오랫만에 듣네요 감사합니다
첫 말씀 들으며 눈물을 왈칵 쏟았습니다. 저는 종손으로 태어나 78년 세상을 떠난 증조모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왕성한 호기심으로 옛날 증조모님이 젊었을 때 이야기를 졸라서 듣곤 했습니다. 머슴이 3명이나 있었던 우리 집이었죠.
"내 젊었을 때는 배추도 주먹만 했고, 보리수확도 낫으로 할 정도가 못돼, 듬성듬성 달린 이삭을 손으로 땄다 (따비 사용). 배도 제삿상에 올리는 큰 배는 없었고, 작은 돌배 밖에 없었다......."
증조모님의 기억을 통해 일제시대 그 이전의 우리 삶의 수준을 어렴풋이 알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국민학교 2학년때 인가, 제 고향 진주 너우니(판문동)에서 우장춘박사가 만든 씨없는 수박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졌다. 저는 우리가 씨 없는 수박을 제일 먼저 사먹자고 졸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씨없는 수박은 시판되지 못했고, 우장춘박사가 배추 무우 벼 등 다양한 종자개량을 통해 한국인의 삶의 질을 높인 분이란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제 외가와 친가가 있는 경남 의령은 6.25때 전장터였던 (낙동강전투) 관계로 상당히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양파(다마네기)를 대규모로 재배하면서 우리가 가난의 때를 벗었다"는 어른들 말씀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아마도 가까운 김해농업시험소에서 일하셨던 우장춘박사의 직접 혹은 간접적 영향이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오늘 육종을 통해 식생활을 개선하여 한국인의 삶을 바꾼 위대한 육종학자 우장춘박사의 생애를 소상히 알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혹시나 젊은이에게 도움이 될까해서 써보았습니다. 저는 1960년생입니다.
우장춘박사와 나비박사 석주영박사 위인이십니다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조직 부장 하던 김철수! 반일ㆍ항일정신이 뼈에 사무치도록 투쟁하던 독립운동가!
지금의 무ㆍ배추ㆍ고추를 만든 분! 어릴때는 우린 왜 무ㆍ배추는 종자를 꼭 종자회사에서 사와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의문이였는데 ㅎ
인문학 강의에 광복을 해방이라고 부르는것 자체가 넌센스다
간신의피는양잿물에도
녹지않습니다현재정부의
나쁜놈들도~~~
바이션?당신은어느땅조각에서
살며늙어가고있나요
아침에침뱉은우물물
저녁에먹게되죠?
인격과지능을쉽게노출?
고종과 민비가 조선멸망의 원흉이다 우범선의 합리적 건의를 곤장으로 대신한 민영익은 천하 악질의 해악을 행하고 온갖만행을 자행한 민비일가 아닌가 우범선은 다른 시각으로 보면 영웅이다
@@심형구-w1y 너무 공감합니다. 고종과 여흥민씨 민비. 민비일가 때문에 우범선은 조선에. 갑신정변의 고균 김옥균 중국 상해에서 방심하다(당시 BC3세기경 법가 한비자가 썼던 책을보다 민비가 보낸 자객인 프랑스 유학파 홍종우에게 잔인하게 중국 상해돌아가시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죠. 말씀처럼 우범선 영웅이시죠.
😮😮 2:28 😮😮😮😮@@Osca_J
민비를임오군란때
죽였어야
조선아근대화를
아루었는데
부강했는데
원통하다
그렇습니다. 그런 인간들이 있기때문에 일본에게 먹히고 일본처럼 진즉 선진국이 못된 것입니다.
@@Osca_J 그런씩으로보면,도산은 테러범이죠? 하기야 요즘은 워낙에 다양성의시대니까,허나 역사는 역사니까,시대흐름에따라 바뀔 수도있음.그러나 역사는 개인관점이아니라,보편 타당해야한다.
지금 우리의 발전과 선진국 진입에 일본의 역할이 이렇게 크다는 것은 새삼 느낍니다ㆍ 우장춘박사의 개인사도 위대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여러가지 인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ㆍ박정희도 그렇고 ㆍ 오늘날 민주당놈들이 입만벌리면 친일파 어쩌고 발광들을 하는데 일본서 교육받은 지도자들때 감동적인 스토리를 ㆍ이땅에서 나고자란 놈들은 왜 하나같이 바보천치 범죄자들만 우글거리는지 알 수가 없 습니다
여성국가방위제제안합니다
조상 욕하지 마랏 !!
우범선이 민비를 불태웠다, 고 알고있다.
그말은 의친왕 아들이라고 하는자가 (이름이 생각이 이 않남) 10년전에 종편에 출연서 우장춘 부친이 민자영을 살해한 앞잡이 라고 떠들던 것을 시청한 적 저도 들은 적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