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철수와 안동교 폭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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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12 дек 2024
- 영상 설명
1950년 7월 29일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워커중장은
낙동강 방어선 아래로 철수를 명령합니다.
7월 31 - 8월 1 새벽까지 안동교 후방으로
안동 철수 명령이 하달됩니다.
7월 31일 미군은 고립된 일부 부대를 제외하고
주력부대는 안동교 철수 작전을 완료합니다.
국군은 수도사단, 8사단이 철수 순서 문제로 대립하다
8월 1일 새벽이 되었어야 하급 부대로 철수 명령이 전달됩니다.
뒤늦게 철수 명령이 하달되었으나
이미 북한군이 안동으로 진입한 후였습니다.
21연대가 안동교 부근에 도착할 무렵
북한군의 공격이 시작되자 지휘부는 곧바로 안동교를 폭파합니다.
안동교가 폭파되자 10개 대대는 고립되었고 북한군의 집중 공격을 받습니다.
원본영상 화질이 좋지 못합니다.
다음 편부터는 최대한 고화질 업로드 계획입니다.
영상 업로드 기간을 단축하겠습니다.
시청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국군. 유엔군 모두들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때 내동생셋이 하나는 서울기계공고 하나는 육이오직전에 입대 하나는 1952년에 입대해서 그중에 둘이죽음. 나중에 입대한 동생은 결혼해서 애도둘있었는데 조카들 지아버지얼굴도 한번못봄.
6.25발발후 충청,전라 다 먹고 부산을 향해 동진하던 인민군 최정예부대 6사단을 저지한 워커장군님이군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같이 싸운 백선엽장군도 있음
당시 하필여름장마때 처들어간거슬 일성군이 땅을치고 후회했다함 다음번엔 틀림읍씨 겨울에 처내려올것임. 그때 야당인사들이 인공기들고 환영할것임.
안동에 살면서 이런 영상을 보니 격세 지감을 느끼네요. 현재와 625당시는 엄청난 변화가 있네요
귀한 영상 잘 봤습니다
저도 고향이 안동이라 어릴때 어른들 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소도 끌고 가고 닭도 잡아 갔다고 하는 얘기
5:46초에 저 집은 나의 고향인 안동시 수상동의 집입니다.
이렇게 보니까 새롭네요!
지금은 영주와 봉화에서 의성으로 통하는 경북대로가 통하고 있지만 625당시에는 영주와 봉화에서 안동시내를 거쳐서 의성으로 통하던 5번국도가 바로 옆에 위치를 해있던 곳이지요!
제가 1974년생인데 내가 10살때까지 살았던 집이라서 기억을 합니다.
아 뭊주무가 고향이시군요! 76년경 저의 중학교 은사님이 말슴하시기를 안동교 인근에서 수도사단과 함께 강물을 건너는데 영남산과 서악사 정상에서 인민군들이 중기관총을 걸어 놓고 발사하는데 수많은 수도사단 군인들이 피덩어리가 되어서 떠내려 갔다고 하셨습니다. 저의 선생님은 지금의 영호루 인근에서 잠시 휴식을 하면서 안동을 바라보니 미군 무스탕이 나타나서 중앙국민학교(안동초등)와 안동중학교에 집결해 있던 인민군들에게 폭탄을 투하하여 불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의 선생님은 보급대(지개부대)의 일원으로 주막밥을 지개에 지고 군인들에게 배달을 다녔다고 하셨는데 무주무를 지나서 무릉으로 후퇴 하셨다 하였는데 화면속에 보이는 무주무 인근의 지개부대를 보니 그 사람들 가운데 저의 선생님도 있었을듯 합니다.
이런영상이 있다니... 정말 잘보았습니다
당시 사셨던 분들 정말 말못할 고생을 하셨네요..
전쟁이 주는 유익이
무엇인지 세삼 느껴지는
영상입니다~
귀하디 귀한 시청각자료
공유해주심,고맙습니다
소중한영상 감사합니다
백년전tv님...
소중한자료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편은 최대한 고화질로 업로드하겠 습니다!
국군장병들이 안쓰럽다.
철모도 없이...
항상 고맙습니다.
김씨조선에서 살지 않게 해주셔서.
반면 아직도 김씨조선 동경하는 작자들 많이 있죠.
@@jhha9223니망상속에나 존재해.쇠뇌당한무리듀
이글을 이재명님께서 혐오하십니다 글내려주효 잘못하다간 님도 성남정신병원입원당할껍니다 김사랑작가가 말한겁네다 ㅋㅋㅋㅋ
고맙습니다^^*
백년전님, 수고많으세요
올려주신 영상, 감사히 잘 볼게요.^^
늘 건강조심 하시고, 편안한 밤되세요~😊👍👍
미군
🇰🇷🇺🇲🇰🇷🇺🇲🇰🇷🇺🇲
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
내고향 안동의 전쟁모습이구나. 당시 나라 살리겠다고 전쟁터에 뛰어드신 용사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저기 안동교 생각납니다.
의성쪽에서 안동으로 들어오는 입구 낙동강 건너는 다리인데 제가 중학생 쯤인가 다리가 새로 지어졌던 곳입니다
한국사람 정말 고생 많았지만, 상관도 없는 외국인들 참,...
이유야 어찌되었든... 얼어죽은 중공인들도,
누구 좋으라고,
숭고한 (선침)님 들이 계셨기에 지금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있읍니다,//!@
..묵념
우리가 정말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 어떠한 고마움도 감사함도 보낸 적이 없다. 그들은 전선까지 탄약과 식량을 날라줬던 한국인 노무자들이다. 저 영상에서도 잠깐 나온다. 이른바 KSC 근무단. .... 안타깝다. 폭탄에 맞아서 죽으면.. 보상도...그렇다고 국립묘지로 가는 것이 아닌 그들... 돈 받고 일하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 거릴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절대로.....
어린시절 안동저수봉에서 놀때 곳곳에 오래되어 푸른이끼가 잔뜩낀 참호와 녹슨 철조망 그리고 굳은 철문 뚜껑이 있는 지하벙커 그곳에 온갖걸레들이 득실거렸었는데
학교선생님이 학교뒷산에 최대격전지였고 저수봉에서 수많은 국군들이 돌아가셨다고 하셨음
이런 㐎(말씀)이 살아있는 歷史인데...
올려주신 동영상:고맙습니다.
무편집본은 어디서 볼수있을가용..
저렇게 멋진군인들을 전쟁터에 내모는일은 두번다시 없게해야한다.
외갓집이 안동이라 보게 됩니다, 서후면 금계동
잘 봤습니다. 이런 영상자료는 어디서 구하셨나요?
보고 또보고 하였지만 제 고향이 함락되는 모습이라 가슴이 아프네요
M-1철모 다목적으로 사용
세수대야 및 급할때는음식도담고 앉는의자등.... 지금은상상도...
1980년대 제가 군생활 할때도 썼습니다.
편집 안된 원본 볼수 없나요?
리얼한부분을 보기위해 기대합니다 편집하지말고 올려주심 안될까요?
@@양이와쿠키 저도아쉽게 생각합니다.영상 정지됩니다.
@@user-1ww100 아 네~~ 그렇군요 감사해요^^
지게꾼부대 보국대라고표현
제 선친께서 안동철교 부근에서 방어전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에...무의식적으로 도망치게 될 까봐 칡넝쿨로 몸을 소나무에 묶고 전투를 했었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처절하였다고 하셨지요!!
예전에 울산에서 강릉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안동철교를 지날때면, 항상 그때가 생각난다고 말씀을 하셨었지요...
더불당의 군미필자들이 좀 보도록 국회상영을!
국짐은 전부 미필
@@ljg4080 300인 모두가 오십보 백보지요 NESARA/GESARA가 시행되면..
반대로 지껄이네 공부부터 좀
@@골골딸랑이 국짐당이나 민주당이나 모두 똑 같아요
이거 정말 전쟁당시 필름인가요???
1800명 희생 장병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 나라의 국력은 강화되어야 한다.
M1 캐런드 소총으로 전투
정 말. 말👅이 안나온다
6.25 한국전쟹 참전군인분듣
이$제 몇명이나 살아계실ㄲ가
編輯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放映하는 것이 당시의 慘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防禦하느라 고생한 國軍과 美軍들의 모습에 고마움과 安保觀을 더 굳건하게 다질 수 있습니다.
서로 먼저 철수 하려다가 1400명의 장병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참 어이가 없다
그런데 중국참전용사들한테는 왜 보상과 사죄가 없나요 이건 차별이오
인민군 먼저 해 주고 다음에 보상 해줄꺼라 카든데요 이광수 선생님
북한에서는 김일성도 중공군 무덤 파묘했던 마당에 뭘 보상타령임?
몽둥이로 쳐 맞지 않은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춘원 이광수야 그것동 모르냐 모택동이가 중국공산당참전용사 능지처참 숙청시켰단다
철수못한 국군 1개연대는 어찌되었나요. 고립된 저 미군들도 궁금하네요. 가능한 한 편집하지말고 방영해주면 좋겠습니다.
지개꾼부대의 위치는 안동시 무주무지역이고 현재 안동병원 남쪽 산비탈 구 대구통로 입니다 이곳을 지나서 의성으로 후퇴하였다고 지개꾼 부대의 일원 이였던 저의 중학교 은사님이 알려주셨는데 그 시절이 1976년 경 이였으니 선생님도 이제는 돌아 가셨을것 같아요
美육군장성 맥아더, 워커, 리지웨이 세 분은 대한민국 역사상 크나 큰 은인들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