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중국의 역사다. 만주어를 사용하던 고구려는 속말말갈이라 불리우던 말갈족 즉 여진족이엇다. 왕부터가 만주족. 반면 한국어를 사용하는 신라족은 신라가 백제와 신라까지만 2국통일하고 고려때와 조선때 땅을 넓혀서 지금의 한반도가 된다. 분명히 말하는데 백제와 신라 2국통일이엇다. 고구려 - 발해 - 여진 - 금 - 후금 - 청나라. 신라가 통일후 영원히 빵셔틀 국가로 전락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ㅋㅋㅋㅋㅋㅋ 우린 신라족일뿐이다
그 이유는 가야가 중앙집권국가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해서를 큰 이유로 꼽힙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역시 가야와 같은 정치체계를 유지하다 중앙집권국가로 탈바꿈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왕이 어떤 정책을 취함에 따라 국가가 그에 영향을 받는데, 가야는 연합왕국단계에 멈춘데다 앞서 말한이유로 이러한 체계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것이 아닌지라 가야의 정치체계가 덜 발달하였다 라는 판단하에 가야를 중시하지 않는 겁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본래 영토는 중국, 만주에 걸쳐 있었고 우리가 아는 고구려, 백제, 신라 영토는 마한,변한,진한 입니다. 동이족의 영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중공의 동북공정 목표는 우리 스스로 영토를 부정하는 것 입니다. 중공이 고구려를 그들의 역사로 편입시키고 가야사도 조작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가야국은 잊혀지기엔 너무나도 안타까운 문화가 많습니다 엄청난 영토에 동북공정으로 잊으면 안되는 고구려, 예술 문화가 굉장히 뛰어났던 걸로 알려진 백제, 최후의 승자 신라 때문에 잊혀졌다는게 아쉬웠는데 덕분에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었네요 축하합니다 +제가 공부했던 기억엔 삼국시대로 칭한 이유는 가야가 중앙집권국이 아닌 연합국가체재(부족국가라고 하죠?)라서 사국시대가 아닌 삼국시대로 칭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잊혀진게 아닐지…
현 초5입니다. 사회 역사 시간에 신라,고구려,백제의 전성기만 배웠는데 가야의 엄청난 기술,문화도 있어서 참 놀랐습니다. 저에게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구독하고 가요 마지막으로 고맙습니다.퍄퍄킴 역사님 많이 찾아볼게요. 구독 까지 하고 갑니다 사랑합니다!!!!
원래 고구려나 백제 신라도 여러 부족 연맹 체제에서 중앙집권화 이행이 되어서 고대 국가로 성장한겁니다 중앙집권의 기틀이 확립 되어도 유력 가문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가야는 단지 그 순서를 따라가지 못하고 소국연립체제에서 멈췄던거기에 국가적인 위기에서도 같은 보조로 대응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스의 폴리스가 페르시아의 대군을 막아 낸 일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문명이 서로 다르고 군대의 질이 다르고 홈 어웨이라는 지형적 이점도 있었을 것이지만 한반도 내에서라면 그런 차이점은 있지 않았다고 봅니다
@@AlaaRalara-f4j가야가 연맹체제를 갖췄다는거 자체가 불확실한 사실이고 학설 중 하나일 뿐임. 그나마도 요즘엔 연맹을 형성했단게 아니라 그냥 한반도 남부 소국들을 총칭하여 가야라고 불렀다는게 주요 학설임. 애초에 따져보면 가야 소국들이 외세 침입에 다같이 대항한 적도 없고 따로 뭐 통일된 행적을 보인 적도 없음. 그냥 여러 소국들이 각자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했다는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씨인 김해 김씨가 가야계죠. 가야가 망하고 가야 유민들에게 전부 왕족 성씨인 김씨를 줘서 오늘날처럼 많은 성씨가 되었습니다. 가야는 또 한반도에서 가장 철기 문명이 발전한 고대 국가로 오늘날에 남아 있는 철기 유물 역시 그 시대에 만들었다는게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세련됐습니다
사실 부여도 굉장히 늦게까지 존속했던 나라죠. 가야 멸망하기 70여년 전에 멸망했습니다. 부여는 한반도에 영역이 미치지 않은 국가였기에 학술적 연구도 쉽지않아 더더욱 무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탐라 역시 삼국시대 때는 독립국에 가까웠습니다. 즉, 5국 또는 6국시대로 굉장히 오랫동안 유지되었는데, 삼국시대 막판 100년 전에 사라졌다고 삼국시대로 분류되버리죠.
고대 역사엔 하나의 통치자와 강력한 중앙정부의 형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러개의 주주가 평등한 권력을 가진 형태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연방정부를 뺀 모양이라 더 신기하네요. 미국은 탄생할 때 연방정부의 권한을 가지고 길게 다투었는데 가야는 아예 연방정부의 개념 없이 500년동안 (신라의 침공이 없었으면 아마 훨씬 더 오래 갔을) 강대국의 면모를 보인 것도 정말 진기합니다. 좋은 비디오 가마사빈다.
그리고 이 영상에서는 가야가 강대국인것 마냥 표현이 나오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한반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이 백제 전성기에는 고구려를 압박해서 한성 이북까지 진출하였고 고구려 전성기에는 한성부근을 탈취하고 신라를 도와 가야 왜를 토벌함 그리고 신라 전성기에는 백제를 뒤통수쳐서 한성지역을 먹고 중국 대륙과 직접 루트를 개척하는데 가야는 이런 정세 변화에 있어서 주도적으로 나선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가야 외 고구려 백제 신라도 강력한 중앙정부라고 보기에는 어렵죠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했다고는 하나 좀 억측스러운 면이 있지요 그 강력했다는 고구려만 봐도 5부족 체제로 돌아갔고 백제도 국가 대소사 땐 정사암회의로 결정했고 신라도 화백회의가 있죠 이런 회의는 우리 머릿속에 있는 조선 때 왕이 주관하는 회의라기 보단 지방 귀족들의 입김과 파워가 훨씬 강했던 연맹회의 정도로 보는게 맞죠 고려 초기까지 지방 호족들 때문에(왕건이 호족과 결혼하여 낳은 자식들) 왕위다툼이 심했죠
가야 연구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이 기록의 부족이 아닐까 합니다 발해하고는 다르게 유물 자체는 그래도 많이 발견 되고는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짐작해보자면 신라가 가야를 멸망시킬 때도 기득권층을 흡수 하는 형식이었는데(김유신 등의 사례를 보자면) 그런 방식에 있어서 가야 출신 진골들이 그들의 역사를 계승시키지 못한게 기록의 부족으로 이어지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한이 변한 진한이 원시인이라닠ㅋㅋ 외국인도 와서 살았구만 조선의 유목민들임 그들도.. 조선은 동이족 즉 구이족이라 해서 9부족이 모여서 살았음 그전엔 12부족이였지 이스라엘 12지파처럼 12족장처럼 근데 변한 마한 보면 12소국을 이루고 각 지역마다 제사법은 달라도 하늘에 제사지내고 그랬음 그 소국중 이서국ㅇ 제사장의 자식이 김수로,이진아시인데 이서국의 제사장 정견모주는 고조선의 후예라 했음
그게 통일신라가 오래 지속되면서 가야도 신라야 한부분으로 퉁치는 영향이 있는듯.. 실제로 큐슈의 가야계 가문들은 일본에서 보면 나중에 신라계로 분류함. 원래 일본 천왕가는 백제계 세력이 강했는데 내부 붕쟁과정에서 큐슈의 신라계 가문들이 천왕가를 옹호하면서 이때분터 신라계가 천왕가와 꽤 깊게 연관됨. 그와 관련한건 신라명신이라는 신사와도 관련되어있음. 이 시기는 장보고가 해상세력을 제패한 이후이기 때문에 그냥 백제계 고려계가 아니면 다 신라계로 통칭한거 같음
연맹왕국 수준으로 보면 가야가 포함되지만, 고대국가 수준으로 보면 가야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처럼 불교수용, 골품제, 율령반포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강력한 군사력으로 패권을 추구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불교수용은 '왕이 곧 부처다 ' 라는 왕즉불 사상으로 모든 신하와 백성이 왕을 믿고 따르는데 필요합니다. 골품제는 각 지역의 소규모 왕들을 한 국가의 귀족으로 편입시켜 왕의 등급별 신하로 만드는데 필요하구요... 율령반포는 하나의 법체계로 모든 백성을 하나의 국민으로 통합하는데 필요합니다. 따라서 가야는 이것에 실패했기에 각 연맹왕국들이 따로 놀았고 대가야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침공당할 때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령가야, 금관가야 입장에선 대가야가 지들과 상관없는 별개의 왕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였으면 왕이 타국 군대에게 쥐어터지고 있는데 다른 지역이 놀고 구경만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죠. 부여 또한 가야와 함께 마한, 진한, 변한, 동예, 옥저같은 부족국가와 달리 연맹왕국 수준까진 성공했으나 고대국가 수준까지 성장한 것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유일합니다. 이 세 나라가 통합된 국민을 가지고 패권다툼을 400년 가까이 하는 것이죠.
가야라는 국명 자체가 당시 사람글은 전혀 몰랐던... 후대에 의해 붙은거죠. 고령은 고자미동국, 밀양은 미리미동국, 함안은 안라국, 김해는 가락국 등 각각의 소규모 국가고 서로간 이해득실을 따지고 붙었다 싸웠다 했습니다. 이는 산으로 둘러쌓인 지리적 요인이 매우 컸기도 했습니다. 연합을 맺었지만 그때문에 각개격파 당해 사라져버렸죠. 다른 삼국처럼 하나의 국가로 성장했다면 역사가 더욱 재밌었을지도 몰랐을 것 같습니다.
가야도 나름 의미있는 국가긴 하나 문젠 거긴 남아있는 기록도 많이 없고 3국과 달리 하나로 통일되서 중앙집권이 된게 아니라 지방국가로 나뉘어 져가고 시기도 비슷한 시기에 나당연합군에게 멸망당해서 대개편이 되기보단 이미 100년전에 멸망해가지고 다른 국가와 달리 사국시대가 아닌 3국시대로 표기하는듯
가야는 연방이라 부를 수는 없고 그냥 소국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연합하기도 했던 연맹왕국형태임 연방국가는 통일된 정부가 있지만 가야는 그런 정부가 없음 그래서 국가발전단계에서 성읍국가 다음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중앙집권국가가 됨 독일이나 미국이나 연방제국가랑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음
현대에 삼권분립을 통해 독재정치를 견재하는 점이나, 기업간의 경쟁으로 더 빠른 발전을 이루어내는 모습들을 보면 수평적인 정치구조가 마냥 뒤떨어지기만 한 체제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내부에서 평등한 입장으로 벌이는 경쟁과 교류가 저 작은 나라에서 빠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지도. 다만 통신기술이 미약했던 당시에, 절대적인 통수권자도 없으니 군의 집결과 통솔, 중요사안의 빠른 결정 등에는 취약했을 거라는 단점도 있었을 거고… 이게 고구려와 신라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하는 결과가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은 하게 되네요
김해박물관 얼마 전에 리모델링해서 재개관했어요~ 김해박물관, 대성동고분군, 봉황동유적, 수로왕릉, 수로왕비릉 모두 서로 가깝고 산책하기 좋아요. 역사에 관심없어도 지금 수로왕릉에 능소화랑 배롱나무 꽃이 활짝 펴서 사진찍기도 좋아요. 수로왕릉 앞에 왕릉뷰 카페도 있구요, 봉황동에 맛집 많아요. 놀러 많이 오세요!!
가야문화가 이스라엘 문화였음. 그 이유가. 고조선이 멸망후 그후 그 연합부족들이 나누어졌는데 한쪽은 중국으로 한쪽은 한반도 아래 삼한으로 이루어서 살았음 이스라엘 12부족 그리도 족장처럼 삼한은 여러 족장과 부족이 있었는데 변한 마한 12소국으로 이루어서 다스렸음. 하늘에 제사지내는 문화도 강했음. 각자 다른 소국에서 나왔을뿐 주몽도 박혁거세도 김수로,이진아시(일본에 이자나기)도 다 고조선의 후예이자 단군의 후예임.. 고조선은 이스라엘처럼 제사장 통치가 강했는데 같은 민족이라 봐야함. 셈족의 제사장과 단군과 모습이 거의 흡사함.
생각해보면 고구려 대 백제 대 신라가 워낙 치열하게 전쟁하던 시대라 삼국시대라고 불렸지만, 사실상 철의제국 가야도 존재했기 때문에 사국시대가 정확한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구려 대 백제 대 신라 대 가야가 전쟁하던 기간이 가장 길고, 고구려, 백제, 신라만 전쟁하던 기간은 채 100년밖에 안되는걸 보면 가야가 신라에게 정복당한건 정말 얼마되지 않는듯 ㄷㄷ 가야가 철의제국인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철제 무기나 철제 검, 철제 갑옷 등을 잘만들었다니 가야의 기술력이 진짜 대단한듯. 게다가 한반도에선 신라만이 로마로 진출했는줄알았는데 가야도 로마까지 진출했다는 사학계의 주장이 있는걸보면 군사강국 고구려나 해상강국 백제, 그리고 황금의 국가 신라에 비해 군사력이나 외교력, 영향력 등이 약해서 그렇지 가야도 꽤 강한 국가인건 사실인가봅니다. 그나저나 '가야고분군'이 2023년 9월 한국의 16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그 동안 가야는 중앙 집권 체제가 아니라서 사국시대롤 인정 받지 못했습니다 가야를 제외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는 중앙 집권 국가였으니까요 그리고 가야의 철기 문화는 그 지역에 우주로부터 떨어진 운석의 영향이 큽니다 분명 50년 뒤엔 가야가 한반도의 새로운 컨텐츠로 주목 받을겁니다 기다려 보시죠
@@djcjfisjsq님말이 맞음 그나마 고려가 중앙집권에 가깝지만 초기만 해도 왕이 각 지방 호족딸들과 결혼동맹 맺어야할정도로 왕권이 약했고 조선왕조가서야 삼강오륜이니 경국대전이니 제대로된 법전이나 도덕윤리도 사회에 정착함 근데 한국은 산이 많고 자연스레 산을 경계로 쌓은 산성들이 장벽역할을 해서 중앙집권이나 상업 발달이 중국이나 유럽에 비해 늦게 출현할수밖에 없었음 오죽하면 고구려초까진 바퀴수레나 말이끄는 전차수레가 자주 쓰이다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면 가마 문화로 다 바뀜 산이 많아서 바퀴쓰기도 어렵고 무역도 어려웠음 해안가에는 소수만살고 양반은 안살았음 그래서 부가 자연스럽게 산성안쪽에서만 돌고 순환이 잘 안됨 한국이 이렇게 발전할수있던이유는 부산항 개발과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컸음
일부사람들이 간혹 사국시대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사국시대는 무리한 주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가야는 지도에 칠해져 있는 것처럼 "가야" 하나의 국가로 이뤄진게 아니라 수많은 나라들이 느슨한 연합체로 구성되어 있던거고 그중엔 가야라는 이름조차 아닌 다른 국명을 쓰던 나라들도 존재합니다. 만약 가야도 포함시켜 시대를 불러야 한다면 그건 사국시대가 아니라 "이십삼국시대" 쯤 됩니다.
고조선 B.C 2333~B.C 108 (2225년) 신라 B.C 57~935 (992년) 고구려 B.C 37~668 (705년) 백제 B.C 18~660 (678년) 가야 42~562 (520년) 발해 698~926 (228년) 고려 918~1392 (474년) 조선 1392~1910 (518년) 대한민국 1948~현재
김유신이 가야 왕족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질 만큼 삼국시대의 중요 지역이었으나, 하필이면 일제의 임나일본부 설에 엮이는 바람에 한국 내부의 연구 역량이 성숙해질 때까지 크게 언급되지 않았던 불운의 왕조... 좀 더 많은 발굴과 연구로 제대로 된 모습이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4국시대가 어불성설인 까닭, 부여도 5세기 후반까지 있었습니다. 그럼 가야와 부여는 왜 3국시대에 넣지 않는가? 중앙집권화가 안 되어서, 그리고 3~4세기까지는 동예,옥저,삼한 등도 잇었죠. 이들 모두가 6세기까지 3국으로 모아져서 됩니다. 그럼 부여,가야,동예 등이 함께 있던 시기는? 로 보면 됩니다.
김해지역 사는 사람으로써 괜히 뽕 차고 막... 그런느낌... 사실 저도 이번 영상보고 몰랐던 게 절반이였어요 ㅋㅋ 연합국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정치체제가 생각보다 더 독특했단 걸 처음 알았네요. 세계사 할 때도 우두머리가 많으면 얼마 안가서 망하는 나라들이 대다수였거든요. 그런데 통치자가 여럿이면서 그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했단 점이 인상깊네요. 그 작은 반도에서 땅을 넓히기보단 교역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그 안의 문화를 키워나갔단 것도... 여러 부분에서 인정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데 사람들은 막상 잘 모른다는 것이 아쉬워요.
엄밀히 말하면 가야는 금관가야안 진짜 가야고, 후기에 대가야가 가야란 명칭을 사용함. 각각의 나라마다 모두 왕이 있었고, 연맹체가 아닌 단순 연합체제여서 국가로 치기에는 무리가 있음, 김부식과 일연이 괜히 삼국사기, 삼국유사라고 지은게 아님. 그렇게 친다면 5세기 이후에나 완전히 백제 영토로 들어온 마한의 잔존 세력들도 국가로 봐야됨
한반도역사에 연방국가형태로 존재하는 나라가 있었다는정도로 의의를 둘수 있다고 봅니다. 비옥한 땅에서 나름 오랫동안 융성했구요. 건국신화도 존재하고 현재 대한민국 인구 성씨 1위도 가야시조인 김수로왕의 김해김씨죠. 유물유적또한 삼국시대 그 어떤 국가보다 경남 곳곳에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금관가야 유적인 대성동 고분군이 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staylala25소백산맥은 경북 서북부에 위치한 산맥이고, 태백산맥은 강원도 남부에 위치한 산맥인데 가야는 그당시 낙동강 중•하류 유역을 중심으로 세운 연맹국가입니다. 님께선 혹시 지리산 오른쪽부터 낙동강 하구 서쪽까지를 경계로 한 가야의 영토를 말씀하신건가요?
가야국은 잊혀지면 안되죠 가야국도 문화재나 문명으로서 나름대로 훌륭한 국가인데 가장 먼저 없어진 나라
가진 기술과 자원은 뛰어났으나 정치적으로 낙후되어 강해질 수가 없었지
하늘에서 알을 6개나 보내줘서 망함
@@지모노-i2x 중앙집권체제를 가지지 못한건 지정학적으로 신라,백제에 끼어져 있어서 친백제,신라 귀족들을 견제하지 못했다 라고 생각합니다.
가야는 연맹왕국에서 멈춰버려서 국가라고 하기가 힘들어서 그럴지도
아 한강유역 한번도 못따먹어본 나라는 안쳐준다고 ㅋㅋ
학교수업에선 초기엔 금관가야가 강성했고 후기엔 대가야가 강성했다. 철기 수출국이었다라고만 배우고 말죠. 좀 아쉬운 부분이었는데 재조명되어 깊게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저도 가야 하면 그냥 우리 삼국시대떄 있던 조금한나라? 정도로 기억했는데 오늘영상을 보니깐 가야가 우리 역사에 중요함이 다시 느껴지네요
@@스위-s3u조금한이 아니라 조그만 아니에요? 가야가 우리 역사에 중요함이 느껴지네요 라는 말도 되게 어색하네요. 혹시 외국인 이신가요?
사료나 기록이 남아있는게 없어서 깊게 배울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가야에 아는 게 없음
재조명 하고는 싶은데 유물은 그래도 발견 되나 사료가 매우 부족..
백제도 사료 부족한 편인데 가야는 더 한거지
사료가 없죠.
어릴때 삼국시대 역사 보면서 가야가 소외되는게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요즘 발굴되는거 같아서 보기 좋네요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다. 만주어를 사용하던 고구려는 속말말갈이라 불리우던 말갈족 즉 여진족이엇다. 왕부터가 만주족. 반면 한국어를 사용하는 신라족은 신라가 백제와 신라까지만 2국통일하고 고려때와 조선때 땅을 넓혀서 지금의 한반도가 된다. 분명히 말하는데 백제와 신라 2국통일이엇다. 고구려 - 발해 - 여진 - 금 - 후금 - 청나라. 신라가 통일후 영원히 빵셔틀 국가로 전락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ㅋㅋㅋㅋㅋㅋ 우린 신라족일뿐이다
그 이유는 가야가 중앙집권국가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해서를 큰 이유로 꼽힙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역시 가야와 같은 정치체계를 유지하다 중앙집권국가로 탈바꿈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왕이 어떤 정책을 취함에 따라 국가가 그에 영향을 받는데, 가야는 연합왕국단계에 멈춘데다 앞서 말한이유로 이러한 체계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것이 아닌지라 가야의 정치체계가 덜 발달하였다 라는 판단하에 가야를 중시하지 않는 겁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본래 영토는 중국, 만주에 걸쳐 있었고 우리가 아는 고구려, 백제, 신라 영토는 마한,변한,진한 입니다. 동이족의 영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중공의 동북공정 목표는 우리 스스로 영토를 부정하는 것 입니다. 중공이 고구려를 그들의 역사로 편입시키고 가야사도 조작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가야가 수나라이고 당나라입니다.
@@오리고기-d1h 이 뭔 댕댕이 같은 소리임?
김해시민입니다 드디어 대성동고분이 유네스코 등재된게 기쁘기만 할뿐입니다. 이런영상으로 가야라는 존재를 많이 알아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 한반도의 철기 관련 연구로 학위를 딴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교수는 특히 가야의 철기문명에 대해 자주 언급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가야 지역에 우주 운석이 떨어진 영향으로 철기문화가 발달 했습니다
이것도 훗날 재조명 될겁니다
@@ashijin2002참내
@@ashijin2002
음.. 뭔가 재야사학의 냄새가..
가칸다 포에바@@팝송용계정-d4g
@@ashijin2002 운철 그거 얼마나 된다고😅 누가 그리 알려줬답니까?
가야국은 잊혀지기엔 너무나도 안타까운 문화가 많습니다 엄청난 영토에 동북공정으로 잊으면 안되는 고구려, 예술 문화가 굉장히 뛰어났던 걸로 알려진 백제, 최후의 승자 신라 때문에 잊혀졌다는게 아쉬웠는데
덕분에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었네요 축하합니다
+제가 공부했던 기억엔 삼국시대로 칭한 이유는 가야가 중앙집권국이 아닌 연합국가체재(부족국가라고 하죠?)라서 사국시대가 아닌 삼국시대로 칭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잊혀진게 아닐지…
경남지방에 가야고분이 엄청 많았는데 일제강점기때 일본이 다 쓸어갔음
일단 가야가 1개의 나라가 아니다보니 사국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긴하죠
작고 연맹 국가라도 그만큼 영향력을 주고 받고하여 나름, 강성했고 멸망 이후에도 가야계 출신들이 큰 활약을 하여 신라가 삼국통일하여 한반도 주인으로 만든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문화도 나름, 괜찮았고 가야의 갑옷을 보면 엄청, 멋있고 훌륭했습니다.
삼국통일전쟁과 나당전쟁을 이끈 김유신 장군이 가야계라고 하죠?
@@레이오트가야왕족이에요
@@레이오트네 맞습니다
양산쪽에 자석 갖다대면 바로붙는 돌이 있는 철광석이 나오는 유명한 동네도 있습니다
심지어 가야가 일본을 만든 원조국이기도 하구요...
@@saturncool3753가야가 일본을 만든거는 역 임나일본부설입니까 ㅋㅋㅋ
@@AlaaRalara-f4jㅇㅇ
현 초5입니다. 사회 역사 시간에 신라,고구려,백제의 전성기만 배웠는데 가야의 엄청난 기술,문화도 있어서 참 놀랐습니다. 저에게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구독하고 가요 마지막으로 고맙습니다.퍄퍄킴 역사님 많이 찾아볼게요. 구독 까지 하고 갑니다 사랑합니다!!!!
와. 초5. 작문센스가 대단하시네요. 우리 교과서는 헛점이 굉장히 많아요. 역사의 진실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주세욧❤
초등학교6학년이겠네.이제제일선배인만큼띄어쓰기좀제대로배우고와라.
그쵸. 10여년도 전에 역사시간에 가야문명에 대헤서는 몇문장 기껏해야 몇 페이지만 언급됐었는데 10년 후인 지금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참 아깝네요.
근데 가야도 진짜 대단한 게 저 시대에 주변에 신라, 백제 정도라고 하지만 중앙집권적 왕국이 아닌 연합왕국 형식으로 500년이나 유지되었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흥미로운 것 같음
헐 가야고분군 축하드려요! 퍄퍄님도 영상으로 유익한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난 개인적으로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가 너무 근현대사에만 초점이 맞춰져있는게 아쉬움. 상고시대 우리 선조들의 찬란함을 배웠으면 좋겠음. 맨날 중국한테 당하고 일본한테 당한 역사 말고
가야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처럼 평소에는 각각의 도시국가로 있으면서 외세의 침입은 같이 대응하는 방식으로 문명을 유지 했나보군요
오리나라에 이런 방식의 국가형태가 유지했다니 정말 신기합니다 😊
원래 고구려나 백제 신라도 여러 부족 연맹 체제에서 중앙집권화 이행이 되어서 고대 국가로 성장한겁니다
중앙집권의 기틀이 확립 되어도 유력 가문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가야는 단지 그 순서를 따라가지 못하고 소국연립체제에서 멈췄던거기에 국가적인 위기에서도 같은 보조로 대응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스의 폴리스가 페르시아의 대군을 막아 낸 일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문명이 서로 다르고 군대의 질이 다르고 홈 어웨이라는 지형적 이점도 있었을 것이지만 한반도 내에서라면 그런 차이점은 있지 않았다고 봅니다
오리나라 닭나라 소나라 돼지나라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리탕 땡기네 오리무중하구만..
@@AlaaRalara-f4j가야가 연맹체제를 갖췄다는거 자체가 불확실한 사실이고 학설 중 하나일 뿐임. 그나마도 요즘엔 연맹을 형성했단게 아니라 그냥 한반도 남부 소국들을 총칭하여 가야라고 불렀다는게 주요 학설임.
애초에 따져보면 가야 소국들이 외세 침입에 다같이 대항한 적도 없고 따로 뭐 통일된 행적을 보인 적도 없음. 그냥 여러 소국들이 각자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했다는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거
마가 저가 우가 구가 - 말나라 돼지나라 소나라 개나라
내가 학생때 이 채널이 있었어야 되는데…
사회시간:날먹 나이스
1:20 저런 통치방식이 가야의 멸망을 불러왔죠….
@@이동연-c6d 왜여??
@@내가니아미다왕 하나가 독자적으로 밀고 나가야하는데 왕이 여러명이라 의견 수립이 쉽지도 않고 가야끼리도 견제하는 세력이 많아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씨인 김해 김씨가 가야계죠. 가야가 망하고 가야 유민들에게 전부 왕족 성씨인 김씨를 줘서 오늘날처럼 많은 성씨가 되었습니다. 가야는 또 한반도에서 가장 철기 문명이 발전한 고대 국가로 오늘날에 남아 있는 철기 유물 역시 그 시대에 만들었다는게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세련됐습니다
사실 부여도 굉장히 늦게까지 존속했던 나라죠.
가야 멸망하기 70여년 전에 멸망했습니다.
부여는 한반도에 영역이 미치지 않은 국가였기에 학술적 연구도 쉽지않아 더더욱 무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탐라 역시 삼국시대 때는 독립국에 가까웠습니다.
즉, 5국 또는 6국시대로 굉장히 오랫동안 유지되었는데,
삼국시대 막판 100년 전에 사라졌다고 삼국시대로 분류되버리죠.
삼국시대 막판 100년 가지고 삼국이라고 하는게 아니라
김부식 등의 삼한일통론에 근거해서 그들이 그렇게 명명된거 때문에 이어져 온거입니다
@@AlaaRalara-f4j김부각
심지어 가야 탐라 부여는 마땅한 전성기도 없었고 삼국에 비해 영향력이 미미하기에 더욱 그렇죠 그나마 가야는 철이 좋기로 유명하고 조금이라도 나온다지만..
따지고보면 가야, 탐라(제주), 우산(울릉도) 3국이 아직 존재했을 떄임
중앙집권국가로 성장해서 삼국시대지 마지막 100년만 보고 그런게 아닌데요... 부여랑 가야는 연맹국가로 끝나서 그렇지 그리고 이건 초등학교때 배우는건데;;
이 채널은 진짜 재밌다
고대 역사엔 하나의 통치자와 강력한 중앙정부의 형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러개의 주주가 평등한 권력을 가진 형태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연방정부를 뺀 모양이라 더 신기하네요. 미국은 탄생할 때 연방정부의 권한을 가지고 길게 다투었는데 가야는 아예 연방정부의 개념 없이 500년동안 (신라의 침공이 없었으면 아마 훨씬 더 오래 갔을) 강대국의 면모를 보인 것도 정말 진기합니다. 좋은 비디오 가마사빈다.
뭔가를 착각하고 계신데 부족 연맹이 발전한 다음에 중앙집권식 고대국가가 형성되는 겁니다.. 미국이랑 비교하는 건 당연히 상관 없는 얘기구요 가야는 중앙 집권화가 안되었을 뿐입니다
현대의 연방제랑 비교하면 매우 골룸합니다....
그리고 이 영상에서는 가야가 강대국인것 마냥 표현이 나오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한반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이
백제 전성기에는 고구려를 압박해서 한성 이북까지 진출하였고 고구려 전성기에는 한성부근을 탈취하고 신라를 도와 가야 왜를 토벌함 그리고 신라 전성기에는 백제를 뒤통수쳐서 한성지역을 먹고 중국 대륙과 직접 루트를 개척하는데 가야는 이런 정세 변화에 있어서 주도적으로 나선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고조선이 연방국이었습니다.중앙집권은 종교와 연관이 깊지 싶네요
가야 외 고구려 백제 신라도 강력한 중앙정부라고 보기에는 어렵죠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했다고는 하나 좀 억측스러운 면이 있지요 그 강력했다는 고구려만 봐도 5부족 체제로 돌아갔고
백제도 국가 대소사 땐 정사암회의로 결정했고 신라도 화백회의가 있죠 이런 회의는 우리 머릿속에 있는 조선 때 왕이 주관하는 회의라기 보단 지방 귀족들의 입김과 파워가 훨씬 강했던 연맹회의 정도로 보는게 맞죠 고려 초기까지 지방 호족들 때문에(왕건이 호족과 결혼하여 낳은 자식들) 왕위다툼이 심했죠
잊으면 안되는게 김유신이 바로 이 나라 출신.
김유신의 아버지쪽이 가야계인거지 김유신은 가야 멸망 33년 후에 태어남
영화 황산벌 장면에서 김품일(관창 아버지)이 김흠순(김유신 동생)과 다투면서 나는 진골 정통 뼈다구라 하고 흠순이는 가야출신 뼈다구 라고 놀림
친가가 김해김씨 외가는 경주김씨임
어쩌라고
김서현과 망명공주죠
현의노래 읽으면서 관심있던 나라였는데 한참 잊고있다가 이번 영상으로 더 자세히 알게되니까 좋네요 ㅎㅎ
연맹왕국이라지만 가야가 오래 존속했기때문에 삼국시대라는 표현이 틀렸다는 말은 옛날부터 들어왔습니다.
근데 왜 용어를 안고치고 있을까요? 통일신라는 발해때문에 남북국시대로 점차 바뀌어가는 것 같습니다만
고구려, 백제, 신라랑 다르게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인 거 같네요
사실 가야를 빼고 삼국이라 불린 이유는 가야의 특성이 중앙집권에 실패해서라고 들었던 것 같아요. 9가야로 나뉘었고, 가야자체가 연합국가라서 애매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던 것 같아요.
연합국가(X) 걍 변한지역에 세워진 국가를 가야라고 부름
지금 가야국에서 비행기 땅크 배를 만들고 있답니다....
사천하고 거제는 알겠는디 땅크는 어디더라...?
@@잔비리탱크는 경남 창원시 입니다.
엌ㅋㅋㅋㅋㅋㅋ
@@당나라-i1n 정보 ㄱㅅ
북한에게 감시 안당할려고 하는거 아님? 남동임해공업지역
김수로왕말고는 딱히 기억에 남은게 없는 가야인데 저시대답게 파란만장한 국가군요.
안냐세요 김수로왕의 후손인 김해 허가 중 한명입니다. 가야가 더 많이 알려지길 예전부터 바라왔는데 이런 영상이 더 많이 생기고, 가야를 알려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스면 좋겠습니다❤
가야 연구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이 기록의 부족이 아닐까 합니다
발해하고는 다르게 유물 자체는 그래도 많이 발견 되고는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짐작해보자면 신라가 가야를 멸망시킬 때도 기득권층을 흡수 하는 형식이었는데(김유신 등의 사례를 보자면)
그런 방식에 있어서 가야 출신 진골들이 그들의 역사를 계승시키지 못한게 기록의 부족으로 이어지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야나 마한같이 기존에 삼국에 비해서 주목받지 못하던 나라들이 주목받는 것 같아서 좋네요. 더많은 발굴조사가 성과를 거두길....
마한은 애초에 삼국 성립 이전에 있던 나라에 글자도 없고 유물도 전혀 없는 거의 원시인에 가까워서 주목을 할래야 할수가 없는 시대입니다....
마한은 국가가 아니니깐
@@호두구속원시인에 가깝다고 하기에는 백제 건국 이후에도 3세기까지는 투닥거리던 사이인걸로 알고 있는데;;; 백제는 원시인 하고 투닥거렸나..
온조대왕 27년 서기 9년 마한을 복속시킴.
마한이 변한 진한이 원시인이라닠ㅋㅋ 외국인도 와서 살았구만 조선의 유목민들임 그들도.. 조선은 동이족 즉 구이족이라 해서 9부족이 모여서 살았음 그전엔 12부족이였지 이스라엘 12지파처럼 12족장처럼 근데 변한 마한 보면 12소국을 이루고 각 지역마다 제사법은 달라도 하늘에 제사지내고 그랬음 그 소국중 이서국ㅇ 제사장의 자식이 김수로,이진아시인데 이서국의 제사장 정견모주는 고조선의 후예라 했음
중앙집권을 못했으니까 중요하게 생각을 안한거죠
중앙 집권의 기틀이 마련되지 못하고(삼국사기나 실록같은 국가의 역사를 기록한 국가 기록물을 제작하려면 강력한 중앙 집권이 필요합니다.) 백제, 고구려보다 먼저 망해버린 탓인지 역사 기록이 매우 빈약하다는 아쉬움이 있지요...
그게 통일신라가 오래 지속되면서 가야도 신라야 한부분으로 퉁치는 영향이 있는듯.. 실제로 큐슈의 가야계 가문들은 일본에서 보면 나중에 신라계로 분류함. 원래 일본 천왕가는 백제계 세력이 강했는데 내부 붕쟁과정에서 큐슈의 신라계 가문들이 천왕가를 옹호하면서 이때분터 신라계가 천왕가와 꽤 깊게 연관됨. 그와 관련한건 신라명신이라는 신사와도 관련되어있음. 이 시기는 장보고가 해상세력을 제패한 이후이기 때문에 그냥 백제계 고려계가 아니면 다 신라계로 통칭한거 같음
발해와 함께 중요성에 비해 많이 잊혀진 나라죠
아....아니 이게 무슨!....
가야는 중앙집권화 된 고대국가를 형성하지도 못했고 일반 대중 대상 역사 컨텐츠에서 우선순위가 낮을 수밖에 없으니 잊혀지는 겁니다
발해는 남의 땅에 있고 사료도 다른 국가에 비해서 부족하기에 연구 난이도가 다른 것에 비해 수직상승하는겁니다
발해는 중국 역사죠 고구려와 관계가 적음
@@chan7055적다고 볼수 없음
고구려 민족 출신이 세운 나라임
고구려 출신 유민들이 귀족층을 이루기도 했고
연맹왕국 수준으로 보면 가야가 포함되지만, 고대국가 수준으로 보면 가야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처럼 불교수용, 골품제, 율령반포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강력한 군사력으로 패권을 추구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불교수용은 '왕이 곧 부처다 ' 라는 왕즉불 사상으로 모든 신하와 백성이 왕을 믿고 따르는데 필요합니다. 골품제는 각 지역의 소규모 왕들을 한 국가의 귀족으로 편입시켜 왕의 등급별 신하로 만드는데 필요하구요... 율령반포는 하나의 법체계로 모든 백성을 하나의 국민으로 통합하는데 필요합니다. 따라서 가야는 이것에 실패했기에 각 연맹왕국들이 따로 놀았고 대가야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침공당할 때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령가야, 금관가야 입장에선 대가야가 지들과 상관없는 별개의 왕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였으면 왕이 타국 군대에게 쥐어터지고 있는데 다른 지역이 놀고 구경만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죠. 부여 또한 가야와 함께 마한, 진한, 변한, 동예, 옥저같은 부족국가와 달리 연맹왕국 수준까진 성공했으나 고대국가 수준까지 성장한 것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유일합니다. 이 세 나라가 통합된 국민을 가지고 패권다툼을 400년 가까이 하는 것이죠.
일본이 가야를 계속 임나의 흔적이라고 거짓말치는데 온전히 우리역사로 인정되어 기쁩니다
이과라서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역사를
10년 가까이 멀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딱 보자마자
기억난 그 이름 가야
이제와서 봐도 가야는 진짜 goat였다
9척장신묘사 진짜 웃겼음ㅋㅋㅋ센스 굿ㅋㅋㅋ
정말 유익한 채널이군요^^
발음도 알아듣기 편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체에 설명도 자세하고 알아듣기 쉽게 잘하시고^^
바로 구독 박습니다~
좋은 영상 많이많이 부탁드립니다^^ ㅎㅎ
재밌는 사실.
고조선부터 대한민국에 이르는 현재까지 가장 많은 후손을 배출 한 왕족은
신라,고려,조선도 아닌
무려 '가야'이다. (김해김씨) 😂
물론 진짜 전부 가야의 후손들이라고 하기에는 수가 지나치게 많은편이라 아마 진짜 후손들은 수가 적을것이다.
경주김씨
+금관가야의 초대왕 김수로의 아내 허황옥은 인도에서 왔다는데 나라 이름은 야유타로
타이의 고대 국가의 이름(야유타야 제국)을 가지고 있어 현재까지도 타이 출신인지 인도 출신인지 의견이 갈리고 있죠!
가야라는 국명 자체가 당시 사람글은 전혀 몰랐던...
후대에 의해 붙은거죠. 고령은 고자미동국, 밀양은 미리미동국, 함안은 안라국, 김해는 가락국 등 각각의 소규모 국가고 서로간 이해득실을 따지고 붙었다 싸웠다 했습니다. 이는 산으로 둘러쌓인 지리적 요인이 매우 컸기도 했습니다. 연합을 맺었지만 그때문에 각개격파 당해 사라져버렸죠.
다른 삼국처럼 하나의 국가로 성장했다면 역사가 더욱
재밌었을지도 몰랐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오국시대가 더 정확합니다. 부여가 사라진게 494년인데 이게 가야 멸망 70여년전 일이라서요. 부여도 고조선 있을 때부터 존재했으니 3세기 후반 이후 겨우 명맥만 유지했다해도 존속기간이 가야 못지 않게 만만치 않고요.
탐라국, 우산국도 넣어주세요 ㅎ
중앙집권이 된 국가들로만 삼국시대입니다
4국시대도 좋고, 그 전에 있다가 사라진 작은 나라들도 좋아요.ㅋㅋ
유물들 많이 발견되서 자신들이 존재했던 모습들 많이 보여주면 좋겠습니다.ㅋㅋ
가야도 나름 의미있는 국가긴 하나
문젠 거긴 남아있는 기록도 많이 없고 3국과 달리 하나로 통일되서 중앙집권이 된게 아니라 지방국가로 나뉘어 져가고 시기도 비슷한 시기에 나당연합군에게 멸망당해서 대개편이 되기보단 이미 100년전에 멸망해가지고 다른 국가와 달리 사국시대가 아닌 3국시대로 표기하는듯
대부분 중앙 집권이 연방체제보다 우월하고 발전된 형태였다 식으로 배웠는데 가야의 역사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쩌면 가야를 통해 정말로 중앙집권이 연방보다 우월한 체제였는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군요.
우월한 체제할게 별 있진 않지요.
환경과 인민의 요구에 따라 최적의 방법이 있는 것이지
가야는 연방이라 부를 수는 없고 그냥 소국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연합하기도 했던 연맹왕국형태임
연방국가는 통일된 정부가 있지만 가야는 그런 정부가 없음
그래서 국가발전단계에서 성읍국가 다음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중앙집권국가가 됨
독일이나 미국이나 연방제국가랑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음
현대에 삼권분립을 통해 독재정치를 견재하는 점이나, 기업간의 경쟁으로 더 빠른 발전을 이루어내는 모습들을 보면 수평적인 정치구조가 마냥 뒤떨어지기만 한 체제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내부에서 평등한 입장으로 벌이는 경쟁과 교류가 저 작은 나라에서 빠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지도.
다만 통신기술이 미약했던 당시에, 절대적인 통수권자도 없으니 군의 집결과 통솔, 중요사안의 빠른 결정 등에는 취약했을 거라는 단점도 있었을 거고… 이게 고구려와 신라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하는 결과가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은 하게 되네요
서로의 방식이 가치가 동등한데 왜 가장 작았고 심지어 멸망했나요?
연방제라고 해도 외교, 국방 등은 하나의 체제로 하는 국가가 대부분이죠... 외부와의 경쟁에서 아무래도 불리하니
김해박물관 얼마 전에 리모델링해서 재개관했어요~ 김해박물관, 대성동고분군, 봉황동유적, 수로왕릉, 수로왕비릉 모두 서로 가깝고 산책하기 좋아요. 역사에 관심없어도 지금 수로왕릉에 능소화랑 배롱나무 꽃이 활짝 펴서 사진찍기도 좋아요. 수로왕릉 앞에 왕릉뷰 카페도 있구요, 봉황동에 맛집 많아요. 놀러 많이 오세요!!
섬진강과 낙동강 두 강 사이에서 철기를 사용하며 독립적인 문화로 주위 타국에 영향을 미쳤다라.. 동양의 소(小) 메소포타미아 였잖아. 이걸 이제야 깨닫네..
가야문화가 이스라엘 문화였음. 그 이유가. 고조선이 멸망후 그후 그 연합부족들이 나누어졌는데 한쪽은 중국으로 한쪽은 한반도 아래 삼한으로 이루어서 살았음 이스라엘 12부족 그리도 족장처럼 삼한은 여러 족장과 부족이 있었는데 변한 마한 12소국으로 이루어서 다스렸음. 하늘에 제사지내는 문화도 강했음. 각자 다른 소국에서 나왔을뿐 주몽도 박혁거세도 김수로,이진아시(일본에 이자나기)도 다 고조선의 후예이자 단군의 후예임.. 고조선은 이스라엘처럼 제사장 통치가 강했는데 같은 민족이라 봐야함. 셈족의 제사장과 단군과 모습이 거의 흡사함.
2:29에 오타가 있습니다.
백제와 일본을 이어 (그 중간에서 중개수수료를 취하는) 중개무역을 했다
라는 의미라서 중'개'로 적어야 하는데 오타가 있네요.
ㅋㅋㅋㅋㅋ퍄퍄킴 9명이 자라는거 왤케 웃기냨ㅋㅋㅋㅋㅋ
와우~! 이 정도면 사국시대라고 불러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해보면 고구려 대 백제 대 신라가 워낙 치열하게 전쟁하던 시대라 삼국시대라고 불렸지만, 사실상 철의제국 가야도 존재했기 때문에 사국시대가 정확한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구려 대 백제 대 신라 대 가야가 전쟁하던 기간이 가장 길고, 고구려, 백제, 신라만 전쟁하던 기간은 채 100년밖에 안되는걸 보면 가야가 신라에게 정복당한건 정말 얼마되지 않는듯 ㄷㄷ
가야가 철의제국인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철제 무기나 철제 검, 철제 갑옷 등을 잘만들었다니 가야의 기술력이 진짜 대단한듯.
게다가 한반도에선 신라만이 로마로 진출했는줄알았는데 가야도 로마까지 진출했다는 사학계의 주장이 있는걸보면 군사강국 고구려나 해상강국 백제, 그리고 황금의 국가 신라에 비해 군사력이나 외교력, 영향력 등이 약해서 그렇지 가야도 꽤 강한 국가인건 사실인가봅니다.
그나저나 '가야고분군'이 2023년 9월 한국의 16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그 동안 가야는 중앙 집권 체제가 아니라서 사국시대롤 인정 받지 못했습니다
가야를 제외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는 중앙 집권 국가였으니까요
그리고 가야의 철기 문화는 그 지역에 우주로부터 떨어진 운석의 영향이 큽니다
분명 50년 뒤엔 가야가 한반도의 새로운 컨텐츠로 주목 받을겁니다
기다려 보시죠
@@ashijin2002그 포상팔국의 난같은게 되려나? ㅋㅋㅋ
가야가 부족 체계 국가라 중앙집권 하기 전에 망해버렸으니 정통성에서 빈약했다는 점이 안타까웠죠
이게 맞음. 삼국이라 칭하던 이유는 한반도에서 그나마 중앙집권의 기틀을 마련한게 단 세 국가뿐임. 가야는 연맹단계에서 끝나버린 나라라서 그런것
하지만 가야의 왕족과 호족들이 신라로 넘어가 열일해서 진골과 가족이 되어부러스..
그리고 가야계인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완성했죠
@@djcjfisjsq왕 1인의 절대권력은 완성되지 못했겠지만 가야처럼 독립적인 국가들의 연합느낌까지는 아니었으니까요
@@djcjfisjsq님말이 맞음
그나마 고려가 중앙집권에 가깝지만 초기만 해도 왕이 각 지방 호족딸들과 결혼동맹 맺어야할정도로 왕권이 약했고 조선왕조가서야 삼강오륜이니 경국대전이니 제대로된 법전이나 도덕윤리도 사회에 정착함 근데 한국은 산이 많고 자연스레 산을 경계로 쌓은 산성들이 장벽역할을 해서 중앙집권이나 상업 발달이 중국이나 유럽에 비해 늦게 출현할수밖에 없었음
오죽하면 고구려초까진 바퀴수레나 말이끄는 전차수레가 자주 쓰이다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면 가마 문화로 다 바뀜 산이 많아서 바퀴쓰기도 어렵고 무역도 어려웠음 해안가에는 소수만살고 양반은 안살았음 그래서 부가 자연스럽게 산성안쪽에서만 돌고 순환이 잘 안됨
한국이 이렇게 발전할수있던이유는 부산항 개발과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컸음
대가야의 수도 고령에 가서 가야의 왕관과 왕릉을 본 기억이 나네요 비록 역사 기록이 적지만 한국사에서는 중요한 나라 같습니다
영상 너무 재밌어요! 혹시…언젠가 한번은…세도정치 다뤄주실수 있을까요…?
0:38 그래서 이 설화의 장소는 지금의 경남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구지봉입니다 우스갯 소리지만 금관가야의 본거지 김해시에는 가야초, 가야중, 가야고는 물론 심지어 가야대까지 있습니다 ㅋㅋㅋ
경북 안동에도 가면 가야의 고분군이 엄청 많음. 하지만 유교성리학의 고향답게 자신들의 땅이니 그 고분군을 개발 못하게 함.
중앙집권적 수직적 형태의 삼국과는 달리 수평적인 정치 체제로 성장했다는 의의가 잇네요 다른방식의 또 다른 형태로 발전해온 나라니까요😊
갠적으로 삼국시대하면 고구려, 신라 얘기가 많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가야, 백제를 더 좋아하는지라 좀 더 가야, 백제에 대한 연구가 많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ㅎㅎ
가야를 자세히 안배우는 이유는 기록이 없다시피함
일부사람들이 간혹 사국시대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사국시대는 무리한 주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가야는 지도에 칠해져 있는 것처럼 "가야" 하나의 국가로 이뤄진게 아니라 수많은 나라들이 느슨한 연합체로 구성되어 있던거고 그중엔 가야라는 이름조차 아닌 다른 국명을 쓰던 나라들도 존재합니다. 만약 가야도 포함시켜 시대를 불러야 한다면 그건 사국시대가 아니라 "이십삼국시대" 쯤 됩니다.
물론 퍄퍄킴님은 진지하게 말씀하셨다기보단 가야를 설명하시려고 농담하신거에 가까우니 퍄퍄킴님께 뭐라한건 아닙니다 ㅎㅎ
@@jin.24. 부여,옥저,동예 등 다른 나라도 있죠~
@@jin.24.3호 23국 시대는 어떠신가요
@@무얏호123 고구려 백제 신라 어쩌다 오랑캐가 되었누..
그 가야가 지금 대한민국의 무기산업을 주도하고 있지요. 창원,사천.
김해출신이자 함안에 살고있는 사람인데 가야뽕이 차는 영상입니데이
그림체 너무 귀여워 ㅠㅠ
나 학창시절엔 가야는 국가가아닌 그냥 단순 부족집단(연맹왕국)으로배웠음 국가성립기중에못미친다고국가가 아닌 부족집단으로 부여옥저도 국가가아닌 연맹왕국
캐릭터가 귀여워요 ㅎㅎ
가끔 남쪽 놀러가는데 저 콩알만한 지역에 몇 개의 나라가 있었다니, 거의 이웃동네 정도잖아요ㅋ.... 귀엽
@@나른해-o3h 그땐 교통이 안좋있으니까요 ㅋㅋ
오,약간 아쉽긴 하지만 실크로드를 통해 로마제국과도 교역을 했다니,제가 몰랐던 가야의 역사를 알려줘서 감사해요^^왠지 제 생각에는 삼국시대를 사국시대랑 삼국시대로 나누는 것도 괞찮을 것 같아요^^
고조선 B.C 2333~B.C 108 (2225년)
신라 B.C 57~935 (992년)
고구려 B.C 37~668 (705년)
백제 B.C 18~660 (678년)
가야 42~562 (520년)
발해 698~926 (228년)
고려 918~1392 (474년)
조선 1392~1910 (518년)
대한민국 1948~현재
김유신이 가야 왕족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질 만큼 삼국시대의 중요 지역이었으나, 하필이면 일제의 임나일본부 설에 엮이는 바람에 한국 내부의 연구 역량이 성숙해질 때까지 크게 언급되지 않았던 불운의 왕조... 좀 더 많은 발굴과 연구로 제대로 된 모습이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그놈의 일제ㅋㅋ 좌파평균 ㅋㅋㅋ
사료 자체가 없습니다
경남지방에 가야고분이 엄청 많았는데 일제강점기때 일본이 다 쓸어갔음
4국시대가 어불성설인 까닭, 부여도 5세기 후반까지 있었습니다.
그럼 가야와 부여는 왜 3국시대에 넣지 않는가? 중앙집권화가 안 되어서,
그리고 3~4세기까지는 동예,옥저,삼한 등도 잇었죠.
이들 모두가 6세기까지 3국으로 모아져서 됩니다.
그럼 부여,가야,동예 등이 함께 있던 시기는? 로 보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해주셨군요,,,, 등재 너무힘들었습니다 ㅜ
안그래도 작업하면서 팀원들이랑 연관이 있으시지 않을까..? 했네요ㅋㅋㅋ
감사합니다 ㅋㅋ 최애 유튜버가 해주시니 젤 보람차네요 ㅎㅎ@@퍄퍄킴
저멀리 극동 아시아지역에 그리스처럼 도시국가연합같은 형태의 연합국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외국인들에게도 흥미를 유발할만한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표면적으로 알고있던가야를 핵심요약으로 정리해주셔서 잘봤습니다
김해에 사는 사람으로써 가야의 역사를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고백신에 가야,탐라,우산, 부여, 두막루를 생각해보면 7국시대나 8국시대, 아니면 전국시대가 더 맞긴 한거 같아요
고대 국가로서 연맹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 이 지방의 강철 병기들은 되게 뛰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다큐멘터리 진행자가 레플리카를 입었는데도 별 문제없이 진행하더군요.
대한민국의 역사 교과서를 다시 편찬해야지요.
국사 공부하면서 가야 내용이 너무 적으니까
오히려 가야가 어떤 나라일까 궁금했었네요
영상 고맙습니다
사국 시대가 아닌 이유 : 중앙집권체제를 이루지 못 했음.
김해지역 사는 사람으로써 괜히 뽕 차고 막... 그런느낌... 사실 저도 이번 영상보고 몰랐던 게 절반이였어요 ㅋㅋ 연합국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정치체제가 생각보다 더 독특했단 걸 처음 알았네요. 세계사 할 때도 우두머리가 많으면 얼마 안가서 망하는 나라들이 대다수였거든요. 그런데 통치자가 여럿이면서 그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했단 점이 인상깊네요. 그 작은 반도에서 땅을 넓히기보단 교역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그 안의 문화를 키워나갔단 것도... 여러 부분에서 인정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데 사람들은 막상 잘 모른다는 것이 아쉬워요.
가야와 함께 우리나라 고대국가들 중 잊혀진 나라....부여도 있어요...
부여 말고도 동예,옥저도 있죠...
@@dezaes부여는 고구려 덕분에 비중이 있는데, 동예랑 옥저는 고구려 덕분에 비중은 1 만큼 증가했지만 대신 일찍이 멸망 당하여 (사실 꽤 버티긴 했지만 기록이.. ) 없어졌죠
진국도 있어요
@@dezaes교과서에선 둘다 고구려한테 과하마, 반어피 삥뜯기는 나라로 밖에 안나오죠 ㅋㅋㅋㅋ
@@youdieee 옥저는 기원후 200년경에 이미 고구려에 합병됐고...
동예의 경우에는 광개토대왕릉비의 비문에 호태왕이 졸하고 한인(韓人)과 예인(穢人)을 데려다가 호태왕릉을 지키게 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여기서 예인(穢人)이 동예사람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삼국시대 명칭도 애매한게 삼한이 완전히 없어진게 4~5세기쯤이라 7세기에 삼국이 통일되니 사실상 삼국만 존재한건 200년 정도 밖에 안됨
그 전 400년 정도는 여러 국가가 공존한 시대
이야 똑같은 고양이로 만들어내는 캐릭터가 엄청 다양하네여 ㅋㅋㅋㅋㅋㅋ
엄밀히 말하면 가야는 금관가야안 진짜 가야고, 후기에 대가야가 가야란 명칭을 사용함. 각각의 나라마다 모두 왕이 있었고, 연맹체가 아닌 단순 연합체제여서 국가로 치기에는 무리가 있음, 김부식과 일연이 괜히 삼국사기, 삼국유사라고 지은게 아님. 그렇게 친다면 5세기 이후에나 완전히 백제 영토로 들어온 마한의 잔존 세력들도 국가로 봐야됨
가야는 작지만 강한 연방국가였군요!
한반도역사에 연방국가형태로 존재하는 나라가 있었다는정도로 의의를 둘수 있다고 봅니다. 비옥한 땅에서 나름 오랫동안 융성했구요. 건국신화도 존재하고 현재 대한민국 인구 성씨 1위도 가야시조인 김수로왕의 김해김씨죠. 유물유적또한 삼국시대 그 어떤 국가보다 경남 곳곳에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금관가야 유적인 대성동 고분군이 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가야에 대해서 더 많은 드라마, 영화, 건축물, 박물관이 생기면 좋겠어요. 가야에 관련된 작품이 크게 생각나질 않네요....
낮에 뜨는 달 추천 드립니다!
김해 함안 고령 세군데 가야박물관 가봤습니다 방문해보시길
경남지방에 가야고분이 엄청 많았는데 일제강점기때 일본이 다 쓸어갔음
현대에 와서 보면 가장 나라 같았던 나라긴 한데 고대 기준으로 보면 확실한 왕이 다스리는게 나라 라고 봤으니..
어렸을때 가야고분 위에서 썰매타본 경상도민이면 개추ㅋㅋ
1:40 지도에서 한가지 짚자면 가야가 있던 당시는 지금보다 해수면이 높아서 을숙도가 있는 자리는 모두 바다였습니다.
김해가 있는 지역은 바다에 직접적으로 닿아 있었기 때문에 무역하기에 매우 용이했죠.
김품일 : 마, 장군이라고 다 같은 장군 아니야. 내는 진골! 신라 정통 빽다구!
김흠순 : 내는?
김품일 : 족보도 없는 가야출신 개빽다구!
- 영화 황산벌 -
근데 여기서 반전은 실제 김품일도 가야 출신 개뼉다구였다는(...) 극중에선 신라 정통이라지만 실제로는 그 역시 가야 출신(...)
가야 수로왕의 딸이 일본으로 넘어가
야마타이국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부정하죠
자신들의 역사 기원이 한반도가 될테니요
강한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맞음 제일 약했던 신라가 당나라 형님 빽으로 최후의 승자가 되었으니 우리도 더욱 더 미국에 붙어 먹어야 됨 주한미군 철수 주장하는 인간들은 역적죄로 다스리고
@@4885-i5rㄹㅇ
@@4885-i5r애초에 그런 주장하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하물며 정의당조차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를 요구하지 철수 요구까지는 않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역시 역사는 승자의 입맛에 맞춰 기록되네요
가야도 발해도 우리나라 역사입니다!잊지맙시다!
하지만 삼국시대에도 연맹국가라는건.. 발전의 한계였음. 다른나라는 초기철기시대때 정치인 구식으로 중앙집권국가에 밀린거죠.
교과서에 이런 훌륭한 역사가 있었다는걸 표기 해야하는데.. 언급만되고 끝난다는게 아쉽네요 ㅠ
사료가 부족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료가 부족한데 그 부족한걸 카더라로 메꿀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가야가 저시대 때 의상도 예쁘더라구요 😊
부산 일부와 울산을 제외한 현 경남 일대 거의 전체가 가야의 영역과 일치한다는걸 알고 꽤 신기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아마 소백산맥이랑 태백산맥으로 경계가 나뉜거 아닐까요?
@@staylala25소백산맥은 경북 서북부에 위치한 산맥이고, 태백산맥은 강원도 남부에 위치한 산맥인데 가야는 그당시 낙동강 중•하류 유역을 중심으로 세운 연맹국가입니다. 님께선 혹시 지리산 오른쪽부터 낙동강 하구 서쪽까지를 경계로 한 가야의 영토를 말씀하신건가요?
@@Otto_von_Bismarck_2002 태백의 경우 낙동강의 동쪽으로 쭉내려와서 부산까지 내려 오고 소백은 금강의 동쪽으로 내려와서
그 사이에 가야가 위치 한것으로 알고 있어요..
제가 정식으로 배운건 아니라 그런것 아닐까 하는 추측입니다
@@staylala25 아하. 그렇다면 정현우님께서 하신 말씀이 옳게 되네요! 답변 감사합니다 😊
우리집 바로 옆에 복천동 고분군 있어요
가야 사람들 착함 친절하고 정많음
신라의 삼국 통일 주역들 중 하나인 김유신 장군이 금관가야 왕족 출신이었고 설총, 최치원과 더불어 신라 3대 문장가로 불린 강수도 가야 출신
우륵:가야출신
잘봤어요 한국고대에서 삼국인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에다가 가야와 부여를 합한 5국시대가 있었다고도 하네요 그리고, 가야는 처음에는 금관가야가 중심이었다가 후기로 오면서 대가야로 중심이 이동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