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았습니다. 5번에 걸쳐 수고 많으셨어요^^ 1. 한국전쟁은 One sunny day suddenly가 아닌, 사전에 충분히 계산되고 숙성된 결과였고, 2. 이 전쟁은 물론 미국과 일본의 작품으로 봅니다. 맥아더는 일본에 필요 이상으로 바이어스 되었고, 반세기 정도의 조선을 지배한 구식민지 총독부와 만주를 경영하고 중일전쟁을 운영한 관동군과 대본영 등 일본정부가 제공하는 자료와 경험 및 충고와 주문을 충분히 따랐을 것은 불문가지. 애치슨라인 역시도 전면 남침을 유도한 것이라는, 스모킹건 級의 해제된 관련 비밀자료들에서 읽히고 있습니다. ★ 한국전쟁 직후, "제2의 에치슨라인"이 조지캐넌에 의하여 제기된 것을 아시는지요. 즉 "제2의 한국전쟁"이 심도 있게 논의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과 만주를 전쟁을 통하여 확보하는 것으로서 이것 역시 미일의 공동 작품. 이 영상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은 북한에 유입되는 소련의 신형 무기체계을 알면서도 한국군에게는 이에 대응하는 무기를 일부러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즉 북한의 남침을 고무 유도한 것이지요. 한국현대사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의 충고 "미국을 믿지 마라"가 이 5 부작을 보면서 떠올랐고, 다시 읽은 브커의 , 그리고 정경모 선생의 자서전인 과 장면 전 총리의 아들인 장순 박사가 쓴 , 중국 논픽션 작가 왕수쩡(王樹增)의 를 참고해 보았습니다. 미군정과 한국전쟁을 제대로 알아야, 한반도는 물론 일본과 미국이 제대로 보일 것입니다. 미국은 여전히 51번째 주인 일본을 보루로, 한국을 이용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저는 오래전부터 이상하게 세계에서 제일 나쁜 나라가 미국이라는 생각이 늘 들었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 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를 인정해주고 소통하는 길로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흡수통일이 아닌 자유롭게 소통하는 통일이요 덕분에 알지 못했던 내용들을 알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
1. 워커힐.. '월튼 워커' 이름 따서 지음.. 운산 장진호에서 미군이 참패하면서 미군(유엔군)은 서울을 내줬고 미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 핵무기가 아니면 전쟁을 이길 수 없다는 분위기가 높아졌다. 전쟁광 맥아더, 모사꾼 트루먼은 "한국전쟁에 핵무기 쓸 수 있다"는 말을 공공연했다. 전쟁초 낙동강 방어선을 지켰던 워커가 이 때, 양주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워커를 기리겠다고 조망 좋은 곳에 미군휴양시설 아방궁을 짓고 이름을 워커힐이라 함.. 2. 리지웨이 워커 후임 미8군사령관으로 1950년 크리스마스 이튿날 리지웨이가 온다. 리지웨이는 한국의 추위에 깜놀하고, '덫에 걸린 쥐'마냥 사기가 떨어진 미군꼴에 깜놀했다. 대량살상무기 가진 미군과 군인수가 많은 중공군을 객관적으로 비교한 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후 하늘로 군수품을 공수받으면 된다는 전략을 세워 이듬해 2월 지평리전투에서 승리한다. 미군 5천 사망, 중공군 5만 사망.. 중공군 상대로 한 첫 승리였다. 3. 전쟁광 맥아더 핵무기 안 쓰고 승리를 보이자, 맥아더의 무능이 드러난 꼴이 되고 말았고, "워싱턴정부가 지원을 적게 하고, 유화책을 쓴 탓에 어려운 전쟁이 됐다"고 생때를 썼다. 51년 3월 휴전을 준비하던 워싱턴정부를 막아서기 위해 중국을 모욕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이로써 휴전은 물건너간다. 이 와중에 전쟁광 맥아더가 핵사용 포함 한국전을 중국과의 전면적으로 키우겠다고 말한 게 들통나며 트루먼 눈밖에 나서 쫓겨나고 그 자리에 리지웨이가 앉는다. 한국에서 25만의 송별을 받고, 미국에서 7백만의 환영을 받으며 카퍼레이드까지 벌였지만 청문회에서 무능이 까발려지며 한때 대선후보까지 거론되던 맥아더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4. 전쟁광 똘기충만 살인마 이승만 남북의 한국 젊은이들 죽음을 담보로 한 무기장사가 2년이나 더 이어진 것은 꼴통 승만이 탓!! 전쟁전부터 '무력통일' 한 길만 외쳐댔던 그는 전쟁이 난 후 제일 먼저 토끼고 다리를 끊은 다음 대대적 백만학살을 단행하면서 권력의지를 되새겼다. 승만이는 남한 홀로라도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지랄발광하는 한편, 협상을 2년간이나 질질 끌게 했던 주요의제인 중국/북한 포로 2만7천명에 대해 본국에 보내지 않고 제맘대로 풀어버림으로써 협상파토를 노렸다. 그러나 이는 휴전협상에서 남한만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미-중-북 휴전협상 뒤 미국은 "협상 끝났다" 통보만 해 줬다.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의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우리 민족 내부 적대적 분열 투쟁. 하지만 외부적 요인 역시 존재했습니다. 서구제-동구제 이데올로기가 수입되면서 더 큰 내부 적대적 투쟁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또한 외부 요인이 단순히 우리가 이데올로기를 수입한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닌 + 한반도 분단의 가장 결정적 물리적 요소로 작용한 측면도 있습니다. ruclips.net/user/shorts4xYAzsdguHo --------------------------------------------> 1945년 8월, 처음 계획된 --------------------------------------------> 미영중소 연합 4개국에 의한 일본 분할 점령 계획안. --------------------------------------------> 일본만이 아닌 한반도 역시 미영중소 4개국이 분할 점령해 일본군 무장 해제 계획이었지만 결국 변경된. 미영중소 4개국의 한반도 분할 점령 계획안 검색해서 찾아보길. 소련 점령 예정지는 함경도 일대에 국한되고 한반도의 대부분은 미영중이 점령하는 형태. 만일 일본과 한반도의 4개국 분할 점령 계획대로 전후 처리가 실시되었다면, 동서독에서 서독이 훨씬 컸던 그 조건과 본질적으로 같아져, --------------------------------------------------------------> 함경도 귀퉁이 차지한 물리적 조건에서 한국전 발발은 사실상 힘들었을 것. --------------------------------------------------------------> 소련군 점령 예정지는 인구 측면에선 미영중 점령지에 비한다면 압도에 압도에 압도되는 수준. --------------------------------------------------------------> 또한 모택동 아닌 장개석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는 조건에서 중국 공산화 역시 조금은 더 힘들었을 것. ---------------------> 미국이 일본 전체 점령 욕심 부리면서, ---------------------> 그 반대급부로 한반도 38선 이북을 소련에게 떼어주는 선택을 한 것. ---------------------------------------------> 유럽에선 전범국 독일과 독일어 사용하는 오스트리아가 미영프소 4개국에 분할 점령되었지만, ---------------------------------------------> 태평양전쟁 종전 처리 과정에선, 미국의 주도적 역활로 전범국 일본 아닌 한반도가 유탄 맞은 것은 치명적 민족분단 원인. 지난 세기 초, 미국과 영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일본을 극동의 파트너로 선택 러시아-소련의 남하를 저지하는 역활 일본에 부여. 한반도의 일본 지배는 그렇게 사실상 최종 결정된 겁니다. ----------------------> 일본에 먹힌 한반도 때문에 태평양전쟁 종결 과정에서 38선이 태어난 것도 명백. 만일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없이 일본이 미영의 극동 지부 행동대장으로 만족하고 계속 미영의 편에 남았다면 21세기 현재도 한반도와 만주는 여전히 일본령 가능성 압도적. 미국에 대한 지나친 합리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은 이미 지난 세기 초 미국에게 제대로 뒤통수 쳐맞은 경험도 있었다는 점에서.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탬플, 외무장관으로서 1843년 하원 연설. " 국제관계엔 영원한 동맹도, 영구적인 적도 없다. 우리의 관심은 영원한 국익뿐이며, 국익추구는 우리의 의무. " "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 영국은 지난 수 백년간 세력균형 정책으로 유럽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프랑스가 쎄지면 프로이센(구독일)등 꼬드겨 프랑스 두들겨 패고, 독일이 강해지면 얼마 전까지 두들겨 패던 프랑스 달래서 함께 독일 몰매하는 과정의 무한 반복 루프, 당한 넘들이 바보. 한반도에는 그 보다 더한 바보들이 널렸죠. 프랑스나 독일은 깃발 날리고 유럽을 휩쓸기도 했지만, 한반도에선 바보들이 내부에서 외세 부추김 당하면서 내부 초토화를 스스로 가열차게 했으니. 미국은 과거 영국에 비하면 서툴지만, 그래도 꽤나 현란한 테크닉으로 세계를 요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는 미국과 영국에게 확실하게 당했던 역사가 있음을 명심해야. 지난 세기초 미국과 영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한반도를 일본에 넘겼습니다. 일본은 미국 영국의 동맹으로 선택되어 극동에서 러시아-소련의 남하는 막는 미영의 방패로 기능했습니다. 미영의 동맹이었기에 1차대전 연합국으로 참전. 반식민지 상태였던 중국의 독일 조차지와 중부태평양 독일령 마리아나 제도를 1차대전 이후 점령 또는 신탁통치령으로 획득해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발판 전진기지 획득했던 것.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은 이후에야 미영은 우리 독립운동을 지원. 생각해보길 진주만 이전 일본이 미영의 극동 행동대장 시절 미영이 우리 항일독립운동 지원할 수 있을지. (1898년 미-스페인 전쟁 승리로 쿠바와 필리핀 탈취. 스페인이 전쟁에 패배하자 그 틈에 필리핀은 독립선언 하고 제1공화정 선포. 승리한 미국은 무력 진압에 나서 약 60만의 인명 피해 발생. 명백히 미국은 국익을 위해 스페인과 전쟁. 필리핀인들의 자유, 민주주의, 민족자결 위해 전쟁했다면 왜 무력 진압했겠습니까?) 지난 세기 미국은 한반도에 병과 약을 모두 주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지원만 고마워해선 안되는.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38선 그리고 미 극동방어선 에치슨 라인에서 대한민국 배제. 카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한반도는 일본 지배 확정되었고, 미국의 미숙한 전후 처리 과정에서 38선 분단. 38선 분단 이후 애치슨 라인 배제로 남침 욕망을 극대화시켰던. 미국이 개입했던 외부 요인도 중요했던 지난 세기 한반도 암흑, 잊어선 안되는. 한국전 이후 혈맹으로 거듭났다지만 외세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일방적 믿음 역시 잠재 위협 요소입니다. 물론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의 가장 큰 책임은 우리 민족 내부에 있습니다. 남북간 극한 투쟁과 대한민국 내부의 적대적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미래 없습니다. (한 때 유럽 열강 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 2차대전 독일 패전 후 미영프소 연합국 4개국에 분할 점령 신탁통치 후 영세중립 선언. 저들의 좌우익은 민족 내부 투쟁 피했습니다. 우린 옳다는 확신과 불타는 적개심으로 서로 쳐죽여댔고.)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이가 했던 발언 무시무시한 겁니다. 저런 지도자 국가가 존재하는 지구촌에서, 넋빠진 이들이 영원한 혈맹 운운하며 공동체 내부 투쟁에 몰두하기에, 저런 국가들이 세계를 쥐락펴락 해왔고,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할 예정. (어디에 좌우 구분이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좌우 아닌 안밖의 투쟁이 결정적.)
2차대전 후 미국의 군사 개입, 사실 제대로된 승리가 없습니다. 2차대전 종전 후 미국이 왜 베트남에서 패배성 철군했고, 중동에서 수렁에 빠졌겠습니까? 대공황 경험한 2차대전 참전 세대와 달리 풍요로움의 함정에 빠져 나약해진 개개인의 정신 때문이겠습니까? 2차대전 후 미국이 대응에서 실패했던 중국 공산화, 최초로 승리하지 못한 한국전, 최초로 패배성 철군 당한 베트남 및 수렁에 빠진 중동 개입에 대해. 중국-베트남 --------> 저들의 반외세 투쟁은 왜 좌익의 최종 승리로 끝났을까요? ----------------------------> 저들 내부의 우익은 왜 좌익에게 패배당했거나, 아예 존재감 자체가 없었을까요? 중국-베트남 공산화 모두에서 서방측 책임은 치명적 결정적. 그에 비해 한반도의 반식민지 항일투쟁은 폭 넓은 좌우 스펙트럼, 왜? 중국-베트남, 특히 베트남과 한반도의 반식민 독립투쟁의 좌우 스펙트럼 차이 냉정하게 따져본다면, 2차대전 직후 미국이 압도적 국력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제대로 된 개입과 승리가 없었던 원인에 다가설 수도. 1. 중국 공산화 : 미국이 아무리 장개석 지원해도 막기 힘들었던. 아편전쟁 이후 반식민지 상태의 굴욕을 당한 중국인들 입장에선, 자신들에게 치욕을 안긴 주도 세력은 영국-미국-일본 등 우익 자본주의 국가들. 국공 내전 당시 미국-영국 지원받는 장개석 아닌 미영일 모두의 적인 소련의 지원받는 모택동에 민심 쏠린. 즉 중국 공산화는 아편전쟁 이후 서방 주도의 중국 반식민화 침략에 대한 중국의 저항으로 해석할 수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의로운 미국이 장개석 정부 지원했지만, 부패한 장개석을 파고든 교활한 모택동 무리들에게 어리석은 중국인들이 현혹된 공산화라고 여기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2. 베트남 민족주의는 왜 좌익-공산주의 일색이었나? 베트남의 반프 독립투쟁, 프랑스의 동맹이자 식민지를 보유했던 미영은 지원할 수 없음. 베트남의 반프 독립운동이 지원받을 유일한 곳은 미영프 모두의 적인 공산주의 소련 밖에 없었던 상황. 즉 베트남 민족주의는 공산주의가 좋아서가 아닌, 국제정세 제약 조건으로 좌익-공산주의를 반식민지 투쟁의 유일한 도구 선택 몰려버린. (철수하는 프랑스 대타로 개입한 미국, 민심을 얻지 못했기에 패배성 휴전, 휴전 후 철군, 철군 후 공산화.) 베트남 공산화 이후 얼마 뒤, 바로 미국과 수교하고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편입된 것으로 명백. 3. 왜 한반도의 항일투쟁은 좌우익의 폭 넓은 스펙트럼이었나? 한국전 --------------> 2차대전 후 처음 터진 대규모 국지전 아닌 국지전. 미국 이외의 모든 강대국들이 초토화된 상태에서, 미국은 단독도 아닌 유엔군과 함께 하고도, 거기다 소련의 직접 개입 없는 상태에서, 49년 막 공산화 직후 아직 내부 혼란 상태였던 중공 상대로도, 미국은 비겼습니다. 대한민국 내부의 수 많은 미국 우호 세력이 없었다면 그 마저도 힘들었을 수. (한국전에서 초라했던 중공 상대로도 승리하지 못한 미국이, 21세기 G2로 변해버린 중국 상대로 동북아의 전면전에서 승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베트남과 한반도, 어떤 차이점이 있었겠습니까? 지난 세기 초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러시아-소련 남하 막는 미영의 방패로 선택된 일본. 하지만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은 이후 미영은 비로서 우리 항일독립 투쟁 지원 시작. 만일 진주만으로 일본이 미영의 적이 되지 않았다면 미영은 우리 항일투쟁에 그 어떤 지원도 없었을 것. 즉 진주만 기습 이후 미영이 일본의 적이 된 조건 하에 우리 우익 독립투쟁이 미영의 지원을 받은 것. 대한민국엔 천만다행으로 미국의 항일 독립투쟁 지원으로, 해방 후 38선 남에서 대한민국 우익이 미국 지원을 정당화할 명분을 획득. 그런 상태에서 한국전쟁이 터져 미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할 수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있었기에 비기기 정도로 마감된 것. 만일 한국전쟁이 베트남과 유사하게 철수하는 일본 대타로 미국이 개입하는 형식이었다면,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과 대한민국에 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은 베트남 처럼 한반도 공산화로 마감 가능성. 그런 상황에선 한반도의 민심은 미국에게 향할 수 없기 때문. 모든 인간은 시대 조건이라는 제약에 예속됩니다. 4. 중동의 반미 반영 반서방 정서 걸프전-이라크전-아프칸전, 겉보기엔 엄청난 대승. 하지만 최근 아프칸 사태에서 보듯 사상누각-임시방편 수준 승리에 지나지 않는. 아프칸에서 미군과 미국인 철수 완료되기도 전에, 수도 카불이 함락당할 정도로 황당 사태. 이라크 역시 미국 철수 즉시 원위치 될 가능성 큰. 십자군 부터 21세기 현재 까지 서방측의 무력 개입이 잦았던. 투르크 시절 발칸반도와 스페인 일부 점령한 시기를 제외하면 서방측의 중동 개입이 주였던. 그러한 역사적 배경에 2차대전 후 철수하는 영국 대타로 개입한 미국이었기에 민심을 얻을 수 없는. 근본적 해결책은 미영을 필두로 한 서방측이 무력에 기반한 중동에서의 이권 유지를 포기하는 것. 아프칸에 1,000조 투입했는데도 부패한 정권과 군 때문에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이 복귀했다는 오판에서 벗어나야 하는. 미국이 퍼부은 1,000조 중 아프칸의 헐벗은 주민들에게 지원된 비중은 아마 극히 일부이고, 거의 대부분은 미군수업체-국방부-미민간군사업체 쪽으로 투입되었을 것. 미국은 중동인들의 마음을 얻는 곳에 별 투자하지 않았기에 미군과 미국인 철수 완료되기도 전에 수도 카불이 함락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인. 현재 미국이 어떤 깃발을 내걸고 중동에서 군사개입 하건, 명백한 것은 21세기 현 시점에서 미국은 중동인들에게 불청객임을 부인하기 힘든. 중동에서 미군이나 영국군 1명 전사할 때, 그 상대편은 아마도 수 십배 비율로 죽어나갈 겁니다. 저런 식으로 중동인들 마음이 열릴 수는 없기에, 저런 식의 중동 개입은 벗어날 수 없는 수렁이 되는. 이런 관점에서 2차대전과 그 후 미국의 군사개입을 바라본다면, 2차대전은 미국이 마땅히 수행해야 했고 반드시 승리해야만 했던 전쟁이었지만, 2차대전 이후 잦았던 미국의 군사개입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던 성격이라 초래된 차이 아닐까 합니다. 2차대전과 종전 후 미군의 정신력과 태도 차이. 대공황-풍요 경험 차이라기 보다는, 왜 전쟁 군사개입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정당성과 국민적 합의 여부. 그리고 미국의 군사개입을 바라보는 개입 대상 지역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태도 차이. 2차대전 때 미군은 어디서건 환영받았지만, 2차대전 후 미군은 자신들을 배척하는 이들도 만나게 되는. 1차대전 윌슨 민족자결주의에서 벗어나 프랑스 대타로 개입하는 등의 미국의 변화가 초래한. 그리고 사실 미국은 아직 독일, 영국 수준의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은 단독으로는 특정 시점 최강 적성국과 붙어본 적도 없는 지극 취약함도. 1. 미국이 독일 수준의 경험을 하려면, 미국을 제외한 사실상 전세계인 중-러-유럽연합과 동시에 투쟁해 저들을 그로기로 몰아야. 그것도 2번 연속을. 미군과 미국 민간인 수 백만이 희생되면서, 적들에게 수 천만의 인명피해를 강요하는 전쟁을 수행해야만. 하지만 미국이란 공동체는 한국전이나 베트남전 수준의 인명 피해 에도 즉시 휴전이나 철군 여론 빗발침을 고려한다면 미국에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2. 미국이 영국 수준이 되려면, 앞으로 수 백년 매 시기 가장 강력한 적성국을 상대로, 단독이건 동맹과 함께건 투쟁해서 최강의 적을 모두 패배시키고 승리해야만. 그러나 이미 한국전-베트남전 비기기-패배성철군으로 불가능해졌고, 그 기초 단계를 성공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미국은 영국 레벨이 될 수 없습니다. 영국은 패권을 잃을 때 조차도 적대세력의 패권 장악을 저지하며, 같은 언어-문화-가치관을 가진 미국이라는 대체 세력 자체도 파생시키면서 패권을 평화적으로 잃었기에.
해방후 미국의 한반도 분단의 책임은 분명하죠 그렇다면 일본을 가르고 한반도를 놔뒀다면 어떤 통일 한국으로 남았을까요 남한만의 단독 친미 반공정권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그게 육이오같은 전면전은 비록 아닐지라도 내전이던 아니면 당시 대중적으로 지지받던 남로당등에 의한 내부로부터의 적화던 공산화 될 확률이 매우 높았겠죠 공산주의자들은 선동과 선전 선거로 이기지 못하면 분명 숙청 테러 내전등 폭력적 혁명 수단을 사용합니다. 하물며 이미 퍼진 공산 이데올로기와 공산주의자들 속에 한반도가 선거로 자유민주이념으로 통일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38선 반으로 나라가 갈렸는데도 남측은 남로당이 활동했고 폭력과 테러로 혼란스러웠습니다.그 대표적인게 남로당군이 주도한 제주 여수 순천 사건이죠 애치슨 미국의 전쟁유도설을 부인하는 말씀을 선생꼐서 대신 해주고 있습니다. 소련이 유엔 상임위에 나오지 않은 이유는 의도적으로 유엔의 개입을 유도했다고 하셨죠. 그게 사실이라면 소련은 애치슨 선언에도 미군과 유엔이 개입할거 알았단 것이고. 애치슨 선언 전부터 스탈린의 전쟁 허락을 받으러 간 김일성도 애치슨 라인이 미군의 개입을 부정하는 선이든 아니든 이미 남침을 결단하고 준비한걸 증명하죠. 한편 소련이 애치슨 선언에도 미국의 개입을 알고 있단것은 동의하지만. 회의에 불참한것은 소련이 남침에 동의사실을 감추고 참전의지를 부정하고 싶어서 입니다. 참석해서 찬성을 할수 는 없으니 반대표 던지는 것보다는 기권이 위 의도를 감추기에 유리하기 떄문입니다. 끝으로 애치슨이 냉전체제를 만들어 국방예산을 증액시키려는 의도로 애치슨 선언을 하였다는 것은 전형적인 결과론입니다 애치슨은 저 대실언으로 전쟁을 야기했다고 보수와 진보 모든편에서 욕을 먹어 왔는데 도대체 얻은게 무엇인가요? 아무리 외세에 의한 대리전으로 육이오 남침을 구성하고 싶어도 미중소 어느 나라도 그게 대리전쟁이던 아니던 핵3차대전으로의 확산을 두려워했습니다. 육이오 그 비극의 원인은 김일성이었습니다. 한국전이 대리전쟁이어야 했다며 미중소가 김일성의 남침을 부추기고 유도했어야 했지만 그건 객관적 사실들로 부정되고 있습니다.
분단이 남북주민 삶을 억누르는 체제로 작용했다고 하셨는데.. 분단으로 인해 남북 주민에게 어느정도 억누름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억누름의 정도를 남한이나 북의 정부를 동일시하시는 것에 대해서는저는 반대를 합니다. 적어도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조선인민주의공화국의 정부가 그들의 주민에게 하는 것 처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현재 한반도분단의 책임은 소련과 김일성에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un 공동선거를 거부했었죠. 그래서 당시 남한만 단독 선거를 하게 된 것이고요. 그리고 김일성은 소련의 재가를 받아서 남침을 벌인 것이고요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을 결정적으로 막은 것은 중공군이었습니다. 중공군만 없었다면 한반도는 통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한반도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지금보다 더 번영했을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설명을 잘하고 있는듯 하지만 ... "미국이 마치 한국전쟁을 기다렸다, 한반도 한국전쟁이 미-소 대리전이었다.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대표적인 좌편향적 논리인데 ... 이를 통찰력으로 본다" 이런 분석과 평가는 아주 편향된 시각이어서 동의할 수가 없네요. ㅠ 왜 북한 김일성의 도발에 대한 지적은 없나요?
저는 중국 전공자로 중국에서도 10년 넘게 산적이 있고.. 또 종교적 원인으로 미국인들과의 교류도 나름 있는데요.. 그들과 교류하고 또 학교나 독서를 통해 느끼는 건.. 미국사람들 사고방식 엄청 단순하다는 거... 에요 ~~ 중국은?? 제 아는 중국 무한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던 친구가 전에 제게 그런적 있죠.. 중국 대학원생 정도면 미국 대통령을 할 수 있다구요...ㅎㅎ
귀한 책소개와 함께 전장을 실상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작가 장삼열 드림
고맙습니다. 늘 애청하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게으른 저에게 큰 희망의 대신 독서입니다. 고맙습니다.
결론에 공감합니다
선생님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책도 기대되네요.
50년 넘게 살면서 오늘 특히 느낀바가 크내요.
이 시간에 듣습니다
감사해요
너무 감사드립니다~~👍
너무 잘 들었습니다.
봉사에게 눈을 뜨게 해주는 방송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나 대중들이 6.25전쟁에 대해 너무 모르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번 5부작은 반공 60대 이상 노인들에게 더 필요하다 생각되네요.
1년이 지난 현재 우연히 알게되었습니다 좋은 책 간접적으로 알게되었고 일깨워 주셔서 대단히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보현 작가 ❤
이런걸 공영방송에서 해야합니다..
역사현실을 국민대다수가 오해하고 왜곡되게 보고 있기에 안타깝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공산주의자다! " 라며 국민의 힘당에서 결사 반대할 가능성 100%.
선생님,
감사합니다.
북한사람들 싹 밀어버립시다! 라고 하면 여전히 확고한 지지율 얻으니간 -_-.....
보현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뭏든 어려운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전쟁은 승리는 없고, 패배일 뿐이며. 영웅은 없고 살인자일 뿐 입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 보다 어려우니 만큼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유익한 리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름이 돋는 리뷰였습니다
625전쟁에 대해서 저를 포함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선생님!
애쓰셨습니다
새로운 사실들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었지만 잘 듣고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맥아더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려서
이미 이겼다 생각했는데
중국의 참전을 하지 않는다라고 속단했는데
그때 보급도 거부하고 승리에 완전 도취되잇엇음
인천상륙작전으로 과대평가된 맥아더
훌륭한 지휘관은 아니었음
너무 좋은 북리뷰였습니다.
다른시각으로 6.25전쟁을 생각하게 하네요 누가더 이득인가 손해인가
뒤통수를 쇠몽둥이로 맞은듯한 엄청난 충격 이네요~@@
좋은책 리뷰 너무 감사드려요~~
장장 5부에 걸쳐 큰책을 자세히 리뷰하며 한국전쟁에 관하여 그간 몰랐던 내용과 함께 여려 분석적 시각을 제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향후 백낙청 선생님의 분단 체제론을 소개해 주신다하니 기대가 큽니다.
빨갱이를 선생님으로 생각하는 좌빨 한마리 요깄구나
미국의 안보세력, 남북한의 민족주의, 중국, 소련의 지정학적 이해관계,
우크라이나 전쟁과도 맥이 닿는 것 같습니다.
2차대전 이후의 낡은 세계질서가 돌고 돌아서 여전히 작동하는 것 같네요.
잘 보았습니다. 5번에 걸쳐 수고 많으셨어요^^
1. 한국전쟁은 One sunny day suddenly가 아닌, 사전에 충분히 계산되고 숙성된 결과였고,
2. 이 전쟁은 물론 미국과 일본의 작품으로 봅니다.
맥아더는 일본에 필요 이상으로 바이어스 되었고, 반세기 정도의 조선을 지배한 구식민지 총독부와 만주를 경영하고 중일전쟁을 운영한 관동군과 대본영 등 일본정부가 제공하는 자료와 경험 및 충고와 주문을 충분히 따랐을 것은 불문가지.
애치슨라인 역시도 전면 남침을 유도한 것이라는, 스모킹건 級의 해제된 관련 비밀자료들에서 읽히고 있습니다.
★ 한국전쟁 직후, "제2의 에치슨라인"이 조지캐넌에 의하여 제기된 것을 아시는지요. 즉 "제2의 한국전쟁"이 심도 있게 논의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과 만주를 전쟁을 통하여 확보하는 것으로서 이것 역시 미일의 공동 작품.
이 영상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은 북한에 유입되는 소련의 신형 무기체계을 알면서도 한국군에게는 이에 대응하는 무기를 일부러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즉 북한의 남침을 고무 유도한 것이지요.
한국현대사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의 충고 "미국을 믿지 마라"가 이 5 부작을 보면서 떠올랐고, 다시 읽은 브커의 , 그리고 정경모 선생의 자서전인 과 장면 전 총리의 아들인 장순 박사가 쓴 , 중국 논픽션 작가 왕수쩡(王樹增)의 를 참고해 보았습니다.
미군정과 한국전쟁을 제대로 알아야, 한반도는 물론 일본과 미국이 제대로 보일 것입니다.
미국은 여전히 51번째 주인 일본을 보루로, 한국을 이용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모든님들의 의견글
감사드립니다.
아직 숨어계신분들이 나오실만한 환경을 만들어놓는것이 우리들의 역할이겠지요!~^^~
한국전이 미국과 일본의 작품이라니? 미친거 아닌가? 김일성과 소련의 작품이 아니고?
@@llllllilllllll 아이큐 두자리는 가라.
@@llllllilllllll 통킹만 사건은 아는가?
기세가 대단하던 일본이 원폭두방에 나가리 된지 십년도 안되었는데 미국의 에치슨 라인에 한반도가 있었다면 덤벼올수 있었을까 싶다
3.8선 일본이 그었다 ㅡ
시사저널 2005.4.25 기사가 있네요
독일이 분단되는 것을 본 일본이
치밀한 계획으로 조선을 분단 상황으로 만들었다고 일본 논문 소개
에치슨라인도 뒤에
일본의 로비같은것이 있지않을까?
한반도를 가르고 아직도 전쟁중인 나라로 만든게 몇명의 정치인 이란걸 잊으면 않됩니다.
한민족의 고통과 머리에 핵을 이게된게 단순히 미친 독재자만 탓할 일인지?
어찌 그리 이야기를 잘하십니까 ‥감사합니다 선생님 ‥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 이시대 앞으로 우리 애들세대 ㅠ 잘되야 될건데 잘되겟지요 ‥고맙씀니다^^
저는 맥아더 그리고 이천상륙작전 그다지 찬서하지 않습니다
지평리전투도 맥아더의 직할대 아몬드장군에서 릿지워이 장군 편제로 되엇기에. 승리의 발판이 되엇고 만약 아몬드가 지훵에 지평리전투가 패했으면 서울은 고립도고 다른 양상의 전재미 전개될수돚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이상하게 세계에서 제일 나쁜 나라가 미국이라는 생각이 늘 들었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 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를 인정해주고 소통하는 길로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흡수통일이 아닌 자유롭게 소통하는 통일이요
덕분에 알지 못했던 내용들을 알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
미국의 세계 전략은 그렇다 치더라도 김일성 스탈린 모택동의 악의 축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지요!
역사적으로 국가가 힘이없으면 외세에 휘둘리게 됩니다. 스스로 강해져 누구도 넘보지못할 나라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전쟁에 있어서 승자는 없습니다. 전쟁억제력을 높여야할거같아요.
일은 권력자들이 저질러놓고 애꿎은 국민만 피해를 있으니까요.
미친 권력 욕심에 의한 전쟁과 전쟁터 제공. 그리고 아무 죄없는 죽음.
고구려.백제. 신라중 누가 통일하면 좋은가?
정말 1년이면 끝날 전쟁인데 무능한 맥아더 때문에 2년을 더 끌고
맥아더의허울이 벗겨져야 하는데
미국대통령이 화장실간사이에 비서가 일본인줄알고 한국을 반갈랐다
1. 워커힐.. '월튼 워커' 이름 따서 지음..
운산 장진호에서 미군이 참패하면서 미군(유엔군)은 서울을 내줬고 미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 핵무기가 아니면 전쟁을 이길 수 없다는 분위기가 높아졌다. 전쟁광 맥아더, 모사꾼 트루먼은 "한국전쟁에 핵무기 쓸 수 있다"는 말을 공공연했다.
전쟁초 낙동강 방어선을 지켰던 워커가 이 때, 양주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워커를 기리겠다고 조망 좋은 곳에 미군휴양시설 아방궁을 짓고 이름을 워커힐이라 함..
2. 리지웨이
워커 후임 미8군사령관으로 1950년 크리스마스 이튿날 리지웨이가 온다. 리지웨이는 한국의 추위에 깜놀하고, '덫에 걸린 쥐'마냥 사기가 떨어진 미군꼴에 깜놀했다. 대량살상무기 가진 미군과 군인수가 많은 중공군을 객관적으로 비교한 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후 하늘로 군수품을 공수받으면 된다는 전략을 세워 이듬해 2월 지평리전투에서 승리한다. 미군 5천 사망, 중공군 5만 사망.. 중공군 상대로 한 첫 승리였다.
3. 전쟁광 맥아더
핵무기 안 쓰고 승리를 보이자, 맥아더의 무능이 드러난 꼴이 되고 말았고, "워싱턴정부가 지원을 적게 하고, 유화책을 쓴 탓에 어려운 전쟁이 됐다"고 생때를 썼다. 51년 3월 휴전을 준비하던 워싱턴정부를 막아서기 위해 중국을 모욕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이로써 휴전은 물건너간다.
이 와중에 전쟁광 맥아더가 핵사용 포함 한국전을 중국과의 전면적으로 키우겠다고 말한 게 들통나며 트루먼 눈밖에 나서 쫓겨나고 그 자리에 리지웨이가 앉는다.
한국에서 25만의 송별을 받고, 미국에서 7백만의 환영을 받으며 카퍼레이드까지 벌였지만 청문회에서 무능이 까발려지며 한때 대선후보까지 거론되던 맥아더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4. 전쟁광 똘기충만 살인마 이승만
남북의 한국 젊은이들 죽음을 담보로 한 무기장사가 2년이나 더 이어진 것은 꼴통 승만이 탓!! 전쟁전부터 '무력통일' 한 길만 외쳐댔던 그는 전쟁이 난 후 제일 먼저 토끼고 다리를 끊은 다음 대대적 백만학살을 단행하면서 권력의지를 되새겼다. 승만이는 남한 홀로라도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지랄발광하는 한편, 협상을 2년간이나 질질 끌게 했던 주요의제인 중국/북한 포로 2만7천명에 대해 본국에 보내지 않고 제맘대로 풀어버림으로써 협상파토를 노렸다.
그러나 이는 휴전협상에서 남한만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미-중-북 휴전협상 뒤 미국은 "협상 끝났다" 통보만 해 줬다.
한국전 원인을 우리 탓으로 돌려야지 누구탓으로 돌리나?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의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우리 민족 내부 적대적 분열 투쟁.
하지만 외부적 요인 역시 존재했습니다. 서구제-동구제 이데올로기가 수입되면서 더 큰 내부 적대적 투쟁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또한 외부 요인이 단순히 우리가 이데올로기를 수입한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닌 + 한반도 분단의 가장 결정적 물리적 요소로 작용한 측면도 있습니다.
ruclips.net/user/shorts4xYAzsdguHo
--------------------------------------------> 1945년 8월, 처음 계획된
--------------------------------------------> 미영중소 연합 4개국에 의한 일본 분할 점령 계획안.
--------------------------------------------> 일본만이 아닌 한반도 역시 미영중소 4개국이 분할 점령해 일본군 무장 해제 계획이었지만 결국 변경된.
미영중소 4개국의 한반도 분할 점령 계획안 검색해서 찾아보길.
소련 점령 예정지는 함경도 일대에 국한되고 한반도의 대부분은 미영중이 점령하는 형태.
만일 일본과 한반도의 4개국 분할 점령 계획대로 전후 처리가 실시되었다면, 동서독에서 서독이 훨씬 컸던 그 조건과 본질적으로 같아져,
--------------------------------------------------------------> 함경도 귀퉁이 차지한 물리적 조건에서 한국전 발발은 사실상 힘들었을 것.
--------------------------------------------------------------> 소련군 점령 예정지는 인구 측면에선 미영중 점령지에 비한다면 압도에 압도에 압도되는 수준.
--------------------------------------------------------------> 또한 모택동 아닌 장개석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는 조건에서 중국 공산화 역시 조금은 더 힘들었을 것.
---------------------> 미국이 일본 전체 점령 욕심 부리면서,
---------------------> 그 반대급부로 한반도 38선 이북을 소련에게 떼어주는 선택을 한 것.
---------------------------------------------> 유럽에선 전범국 독일과 독일어 사용하는 오스트리아가 미영프소 4개국에 분할 점령되었지만,
---------------------------------------------> 태평양전쟁 종전 처리 과정에선, 미국의 주도적 역활로 전범국 일본 아닌 한반도가 유탄 맞은 것은 치명적 민족분단 원인.
지난 세기 초, 미국과 영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일본을 극동의 파트너로 선택 러시아-소련의 남하를 저지하는 역활 일본에 부여.
한반도의 일본 지배는 그렇게 사실상 최종 결정된 겁니다. ----------------------> 일본에 먹힌 한반도 때문에 태평양전쟁 종결 과정에서 38선이 태어난 것도 명백.
만일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없이
일본이 미영의 극동 지부 행동대장으로 만족하고 계속 미영의 편에 남았다면 21세기 현재도 한반도와 만주는 여전히 일본령 가능성 압도적.
미국에 대한 지나친 합리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은 이미 지난 세기 초 미국에게 제대로 뒤통수 쳐맞은 경험도 있었다는 점에서.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탬플, 외무장관으로서 1843년 하원 연설.
" 국제관계엔 영원한 동맹도, 영구적인 적도 없다. 우리의 관심은 영원한 국익뿐이며, 국익추구는 우리의 의무. "
"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
영국은 지난 수 백년간 세력균형 정책으로 유럽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프랑스가 쎄지면 프로이센(구독일)등 꼬드겨 프랑스 두들겨 패고, 독일이 강해지면
얼마 전까지 두들겨 패던 프랑스 달래서 함께 독일 몰매하는 과정의 무한 반복 루프, 당한 넘들이 바보.
한반도에는 그 보다 더한 바보들이 널렸죠. 프랑스나 독일은 깃발 날리고 유럽을 휩쓸기도 했지만,
한반도에선 바보들이 내부에서 외세 부추김 당하면서 내부 초토화를 스스로 가열차게 했으니.
미국은 과거 영국에 비하면 서툴지만,
그래도 꽤나 현란한 테크닉으로 세계를 요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는 미국과 영국에게 확실하게 당했던 역사가 있음을 명심해야.
지난 세기초 미국과 영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한반도를 일본에 넘겼습니다.
일본은 미국 영국의 동맹으로 선택되어 극동에서 러시아-소련의 남하는 막는 미영의 방패로 기능했습니다.
미영의 동맹이었기에 1차대전 연합국으로 참전.
반식민지 상태였던 중국의 독일 조차지와 중부태평양 독일령 마리아나 제도를
1차대전 이후 점령 또는 신탁통치령으로 획득해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발판 전진기지 획득했던 것.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은 이후에야 미영은 우리 독립운동을 지원.
생각해보길 진주만 이전 일본이 미영의 극동 행동대장 시절 미영이 우리 항일독립운동 지원할 수 있을지.
(1898년 미-스페인 전쟁 승리로 쿠바와 필리핀 탈취.
스페인이 전쟁에 패배하자 그 틈에 필리핀은 독립선언 하고 제1공화정 선포.
승리한 미국은 무력 진압에 나서 약 60만의 인명 피해 발생. 명백히 미국은 국익을 위해 스페인과 전쟁.
필리핀인들의 자유, 민주주의, 민족자결 위해 전쟁했다면 왜 무력 진압했겠습니까?)
지난 세기 미국은 한반도에 병과 약을 모두 주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지원만 고마워해선 안되는.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38선 그리고 미 극동방어선 에치슨 라인에서 대한민국 배제.
카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한반도는 일본 지배 확정되었고, 미국의 미숙한 전후 처리 과정에서 38선 분단.
38선 분단 이후 애치슨 라인 배제로 남침 욕망을 극대화시켰던.
미국이 개입했던 외부 요인도 중요했던 지난 세기 한반도 암흑, 잊어선 안되는.
한국전 이후 혈맹으로 거듭났다지만 외세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일방적 믿음 역시 잠재 위협 요소입니다.
물론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의 가장 큰 책임은 우리 민족 내부에 있습니다.
남북간 극한 투쟁과 대한민국 내부의 적대적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미래 없습니다.
(한 때 유럽 열강 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
2차대전 독일 패전 후 미영프소 연합국 4개국에 분할 점령 신탁통치 후 영세중립 선언.
저들의 좌우익은 민족 내부 투쟁 피했습니다. 우린 옳다는 확신과 불타는 적개심으로 서로 쳐죽여댔고.)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이가 했던 발언 무시무시한 겁니다.
저런 지도자 국가가 존재하는 지구촌에서, 넋빠진 이들이 영원한 혈맹 운운하며
공동체 내부 투쟁에 몰두하기에, 저런 국가들이 세계를 쥐락펴락 해왔고,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할 예정.
(어디에 좌우 구분이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좌우 아닌 안밖의 투쟁이 결정적.)
2차대전 후 미국의 군사 개입, 사실 제대로된 승리가 없습니다.
2차대전 종전 후 미국이 왜 베트남에서 패배성 철군했고, 중동에서 수렁에 빠졌겠습니까?
대공황 경험한 2차대전 참전 세대와 달리 풍요로움의 함정에 빠져 나약해진 개개인의 정신 때문이겠습니까?
2차대전 후 미국이 대응에서 실패했던 중국 공산화, 최초로 승리하지 못한 한국전, 최초로 패배성 철군 당한
베트남 및 수렁에 빠진 중동 개입에 대해.
중국-베트남 --------> 저들의 반외세 투쟁은 왜 좌익의 최종 승리로 끝났을까요?
----------------------------> 저들 내부의 우익은 왜 좌익에게 패배당했거나, 아예 존재감 자체가 없었을까요?
중국-베트남 공산화 모두에서 서방측 책임은 치명적 결정적.
그에 비해 한반도의 반식민지 항일투쟁은 폭 넓은 좌우 스펙트럼, 왜?
중국-베트남, 특히 베트남과 한반도의 반식민 독립투쟁의 좌우 스펙트럼 차이 냉정하게 따져본다면,
2차대전 직후 미국이 압도적 국력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제대로 된 개입과 승리가 없었던 원인에 다가설 수도.
1. 중국 공산화 : 미국이 아무리 장개석 지원해도 막기 힘들었던.
아편전쟁 이후 반식민지 상태의 굴욕을 당한 중국인들 입장에선,
자신들에게 치욕을 안긴 주도 세력은 영국-미국-일본 등 우익 자본주의 국가들.
국공 내전 당시 미국-영국 지원받는 장개석 아닌 미영일 모두의 적인 소련의 지원받는 모택동에 민심 쏠린.
즉 중국 공산화는 아편전쟁 이후 서방 주도의 중국 반식민화 침략에 대한 중국의 저항으로 해석할 수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의로운 미국이 장개석 정부 지원했지만, 부패한 장개석을 파고든 교활한
모택동 무리들에게 어리석은 중국인들이 현혹된 공산화라고 여기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2. 베트남 민족주의는 왜 좌익-공산주의 일색이었나?
베트남의 반프 독립투쟁, 프랑스의 동맹이자 식민지를 보유했던 미영은 지원할 수 없음.
베트남의 반프 독립운동이 지원받을 유일한 곳은 미영프 모두의 적인 공산주의 소련 밖에 없었던 상황.
즉 베트남 민족주의는 공산주의가 좋아서가 아닌,
국제정세 제약 조건으로 좌익-공산주의를 반식민지 투쟁의 유일한 도구 선택 몰려버린.
(철수하는 프랑스 대타로 개입한 미국, 민심을 얻지 못했기에 패배성 휴전, 휴전 후 철군, 철군 후 공산화.)
베트남 공산화 이후 얼마 뒤, 바로 미국과 수교하고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편입된 것으로 명백.
3. 왜 한반도의 항일투쟁은 좌우익의 폭 넓은 스펙트럼이었나?
한국전 --------------> 2차대전 후 처음 터진 대규모 국지전 아닌 국지전.
미국 이외의 모든 강대국들이 초토화된 상태에서, 미국은 단독도 아닌 유엔군과 함께 하고도,
거기다 소련의 직접 개입 없는 상태에서, 49년 막 공산화 직후 아직 내부 혼란 상태였던 중공 상대로도,
미국은 비겼습니다. 대한민국 내부의 수 많은 미국 우호 세력이 없었다면 그 마저도 힘들었을 수.
(한국전에서 초라했던 중공 상대로도 승리하지 못한 미국이,
21세기 G2로 변해버린 중국 상대로 동북아의 전면전에서 승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베트남과 한반도, 어떤 차이점이 있었겠습니까?
지난 세기 초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러시아-소련 남하 막는 미영의 방패로 선택된 일본.
하지만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은 이후 미영은 비로서 우리 항일독립 투쟁 지원 시작.
만일 진주만으로 일본이 미영의 적이 되지 않았다면 미영은 우리 항일투쟁에 그 어떤 지원도 없었을 것.
즉 진주만 기습 이후 미영이 일본의 적이 된 조건 하에 우리 우익 독립투쟁이 미영의 지원을 받은 것.
대한민국엔 천만다행으로 미국의 항일 독립투쟁 지원으로,
해방 후 38선 남에서 대한민국 우익이 미국 지원을 정당화할 명분을 획득.
그런 상태에서 한국전쟁이 터져 미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할 수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있었기에 비기기 정도로 마감된 것.
만일 한국전쟁이 베트남과 유사하게
철수하는 일본 대타로 미국이 개입하는 형식이었다면,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과 대한민국에 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은 베트남 처럼 한반도 공산화로 마감 가능성.
그런 상황에선 한반도의 민심은 미국에게 향할 수 없기 때문.
모든 인간은 시대 조건이라는 제약에 예속됩니다.
4. 중동의 반미 반영 반서방 정서
걸프전-이라크전-아프칸전, 겉보기엔 엄청난 대승. 하지만
최근 아프칸 사태에서 보듯 사상누각-임시방편 수준 승리에 지나지 않는.
아프칸에서 미군과 미국인 철수 완료되기도 전에, 수도 카불이 함락당할 정도로 황당 사태.
이라크 역시 미국 철수 즉시 원위치 될 가능성 큰.
십자군 부터 21세기 현재 까지 서방측의 무력 개입이 잦았던.
투르크 시절 발칸반도와 스페인 일부 점령한 시기를 제외하면 서방측의 중동 개입이 주였던.
그러한 역사적 배경에 2차대전 후 철수하는 영국 대타로 개입한 미국이었기에 민심을 얻을 수 없는.
근본적 해결책은 미영을 필두로 한 서방측이 무력에 기반한 중동에서의 이권 유지를 포기하는 것.
아프칸에 1,000조 투입했는데도 부패한 정권과 군 때문에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이 복귀했다는
오판에서 벗어나야 하는. 미국이 퍼부은 1,000조 중 아프칸의 헐벗은 주민들에게 지원된 비중은 아마
극히 일부이고, 거의 대부분은 미군수업체-국방부-미민간군사업체 쪽으로 투입되었을 것. 미국은 중동인들의
마음을 얻는 곳에 별 투자하지 않았기에 미군과 미국인 철수 완료되기도 전에 수도 카불이 함락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인.
현재 미국이 어떤 깃발을 내걸고 중동에서 군사개입 하건,
명백한 것은 21세기 현 시점에서 미국은 중동인들에게 불청객임을 부인하기 힘든.
중동에서 미군이나 영국군 1명 전사할 때, 그 상대편은 아마도 수 십배 비율로 죽어나갈 겁니다.
저런 식으로 중동인들 마음이 열릴 수는 없기에, 저런 식의 중동 개입은 벗어날 수 없는 수렁이 되는.
이런 관점에서 2차대전과 그 후 미국의 군사개입을 바라본다면,
2차대전은 미국이 마땅히 수행해야 했고 반드시 승리해야만 했던 전쟁이었지만,
2차대전 이후 잦았던 미국의 군사개입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던 성격이라 초래된 차이 아닐까 합니다.
2차대전과 종전 후 미군의 정신력과 태도 차이.
대공황-풍요 경험 차이라기 보다는,
왜 전쟁 군사개입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정당성과 국민적 합의 여부.
그리고 미국의 군사개입을 바라보는 개입 대상 지역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태도 차이.
2차대전 때 미군은 어디서건 환영받았지만, 2차대전 후 미군은 자신들을 배척하는 이들도 만나게 되는.
1차대전 윌슨 민족자결주의에서 벗어나 프랑스 대타로 개입하는 등의 미국의 변화가 초래한.
그리고 사실 미국은 아직 독일, 영국 수준의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은 단독으로는 특정 시점 최강 적성국과 붙어본 적도 없는 지극 취약함도.
1. 미국이 독일 수준의 경험을 하려면,
미국을 제외한 사실상 전세계인 중-러-유럽연합과 동시에 투쟁해 저들을 그로기로 몰아야.
그것도 2번 연속을. 미군과 미국 민간인 수 백만이 희생되면서, 적들에게 수 천만의 인명피해를
강요하는 전쟁을 수행해야만. 하지만 미국이란 공동체는 한국전이나 베트남전 수준의 인명 피해
에도 즉시 휴전이나 철군 여론 빗발침을 고려한다면 미국에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2. 미국이 영국 수준이 되려면,
앞으로 수 백년 매 시기 가장 강력한 적성국을 상대로,
단독이건 동맹과 함께건 투쟁해서 최강의 적을 모두 패배시키고 승리해야만.
그러나 이미 한국전-베트남전 비기기-패배성철군으로 불가능해졌고, 그 기초 단계를
성공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미국은 영국 레벨이 될 수 없습니다. 영국은 패권을 잃을 때 조차도 적대세력의
패권 장악을 저지하며, 같은 언어-문화-가치관을 가진 미국이라는 대체 세력 자체도 파생시키면서 패권을 평화적으로 잃었기에.
해방후
미국의 한반도 분단의 책임은 분명하죠 그렇다면 일본을 가르고 한반도를 놔뒀다면 어떤 통일 한국으로 남았을까요
남한만의 단독 친미 반공정권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그게 육이오같은 전면전은 비록 아닐지라도 내전이던 아니면 당시 대중적으로 지지받던 남로당등에 의한 내부로부터의 적화던
공산화 될 확률이 매우 높았겠죠
공산주의자들은 선동과 선전 선거로 이기지 못하면 분명 숙청 테러 내전등 폭력적 혁명 수단을 사용합니다.
하물며 이미 퍼진 공산 이데올로기와 공산주의자들 속에 한반도가 선거로 자유민주이념으로 통일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38선 반으로 나라가 갈렸는데도 남측은 남로당이 활동했고 폭력과 테러로 혼란스러웠습니다.그 대표적인게 남로당군이 주도한 제주 여수 순천 사건이죠
애치슨 미국의 전쟁유도설을 부인하는 말씀을 선생꼐서 대신 해주고 있습니다.
소련이 유엔 상임위에 나오지 않은 이유는 의도적으로 유엔의 개입을 유도했다고 하셨죠. 그게 사실이라면 소련은 애치슨 선언에도 미군과 유엔이 개입할거 알았단 것이고. 애치슨 선언 전부터 스탈린의 전쟁 허락을 받으러 간 김일성도 애치슨 라인이 미군의 개입을 부정하는 선이든 아니든 이미 남침을 결단하고 준비한걸 증명하죠.
한편 소련이 애치슨 선언에도 미국의 개입을 알고 있단것은 동의하지만. 회의에 불참한것은 소련이 남침에 동의사실을 감추고 참전의지를 부정하고 싶어서 입니다.
참석해서 찬성을 할수 는 없으니 반대표 던지는 것보다는 기권이 위 의도를 감추기에 유리하기 떄문입니다.
끝으로 애치슨이 냉전체제를 만들어 국방예산을 증액시키려는 의도로 애치슨 선언을 하였다는 것은 전형적인 결과론입니다
애치슨은 저 대실언으로 전쟁을 야기했다고 보수와 진보 모든편에서 욕을 먹어 왔는데 도대체 얻은게 무엇인가요?
아무리 외세에 의한 대리전으로 육이오 남침을 구성하고 싶어도
미중소 어느 나라도 그게 대리전쟁이던 아니던 핵3차대전으로의 확산을 두려워했습니다.
육이오 그 비극의 원인은 김일성이었습니다.
한국전이 대리전쟁이어야 했다며 미중소가 김일성의 남침을 부추기고 유도했어야 했지만
그건 객관적 사실들로 부정되고 있습니다.
시끄럽네
분단이 남북주민 삶을 억누르는 체제로 작용했다고 하셨는데.. 분단으로 인해 남북 주민에게 어느정도 억누름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억누름의 정도를 남한이나 북의 정부를 동일시하시는 것에 대해서는저는 반대를 합니다. 적어도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조선인민주의공화국의 정부가 그들의 주민에게 하는 것 처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현재 한반도분단의 책임은 소련과 김일성에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un 공동선거를 거부했었죠. 그래서 당시 남한만 단독 선거를 하게 된 것이고요. 그리고 김일성은 소련의 재가를 받아서 남침을 벌인 것이고요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을 결정적으로 막은 것은 중공군이었습니다. 중공군만 없었다면 한반도는 통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한반도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지금보다 더 번영했을 것입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
대한민국이 소멸을 이야기하고 이미 다문화시대에 들어선 지가 한참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민족타령인가?
책임을 외부에 돌리고 시대에 뒤떨어진 논리를 지금에 적용함에 한심함을 느낀다
에치슨라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것은 미군산복합체의 고의적인 행위라는 것
왜 미국이 애치슨라인에 포함해야 하는겁니까?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에요?
전반적으로 설명을 잘하고 있는듯 하지만 ... "미국이 마치 한국전쟁을 기다렸다, 한반도 한국전쟁이 미-소 대리전이었다.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대표적인 좌편향적 논리인데 ... 이를 통찰력으로 본다" 이런 분석과 평가는 아주 편향된 시각이어서 동의할 수가 없네요. ㅠ
왜 북한 김일성의 도발에 대한 지적은 없나요?
저는 중국 전공자로 중국에서도 10년 넘게 산적이 있고.. 또 종교적 원인으로 미국인들과의 교류도 나름 있는데요.. 그들과 교류하고 또 학교나 독서를 통해 느끼는 건.. 미국사람들 사고방식 엄청 단순하다는 거... 에요 ~~ 중국은?? 제 아는 중국 무한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던 친구가 전에 제게 그런적 있죠.. 중국 대학원생 정도면 미국 대통령을 할 수 있다구요...ㅎㅎ
한국전쟁 일어난것도 미국잘못이있다
당시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였습니까?
@@2jaemyungE 무기지원.에치슨라인
@@kdwni03 뭔 개소릴하노? 니들은 언제나 미군철수 자주국방떠들더니 왜저때는 미국이 한국을 식민지양 보호를 해줘야한다고 하는건데? 무기지원을 해주라고? 애치슨라인에 한국을 포함시켜주라고? 아니 미국이 왜??? 한국이 미국식민지야???
@@2jaemyungE 식민지가아니라 보호하라는거아니야? 그럼우리는 어떻게 적을막아내라고?
@@kdwni03 뭔 소리야? 미국이 왜 한국을 보호하라마라야? 독립도 미국덕에 했으면 염치가 있어야지. 당시 한국은 미국과 동맹도 아니였는데? 미국이 한국에 빚을 졌냐??? 한국은 왜 우크라이나 보호안함?
재고떨이 기획전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