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의 후계자 오고타이 | 몽골제국 최고의 영웅 [역사 쇼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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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3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2

  • @studentlee
    @studentlee Месяц назад +1

    오고타이가 된 이유가 조치는 일찍 죽고 차가타이는 무능한 애라서 그런걸로 아는데 그리고 서하 원정 중 사망한 칭기스칸을 뒤로 툴루이가 원래 임시로 했었고 원로들도 툴루이를 대칸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툴루이가 형인 오고타이를 추대하게 되어서 오고타이가 대칸이 된걸로 알고 있음

    • @sugarwings
      @sugarwings  Месяц назад

      안녕하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 오고타이 대칸 추대
      1. 조치와 차가타이:
      칭기즈 칸의 큰아들 조치는 그의 정통성 문제 때문에 몽골 내에서 다소 논란이 있었고, 일찍 사망했습니다(1227년 칭기즈 칸보다 먼저 사망). 차가타이는 무능하다고 평가받기보다는 다소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워서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평가되었습니다. 특히, 조치와 차가타이 사이의 불화는 후계 구도에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2. 툴루이와 오고타이:
      툴루이는 칭기즈 칸의 넷째 아들이자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몽골 제국을 잠시 통치했습니다. 칭기즈 칸이 서하 원정 도중에 사망한 후, 툴루이가 잠시 제국을 관리했습니다. 툴루이 본인도 칸이 될 자격이 충분했지만, 툴루이는 오히려 형인 오고타이를 대칸으로 추대했습니다. 이는 툴루이의 겸손과 형제 간의 결속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3. 오고타이 대칸 추대:
      칭기즈 칸이 사망한 후, 몽골 제국의 원로들은 툴루이를 대칸으로 추대하려 했지만, 툴루이는 자신의 형인 오고타이를 지지했습니다. 결국 1229년, 쿠릴타이(몽골 제국의 대회의)에서 오고타이가 공식적으로 대칸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오고타이는 칭기즈 칸의 둘째 아들이었으며, 그의 통치 아래 몽골 제국은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 칭기즈 칸이 생전에 오고타이를 후계자로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원로들이 툴루이를 대칸으로 추대하려 한 이유
      1. 툴루이의 군사적 역량:
      툴루이는 칭기즈 칸의 넷째 아들이자 몽골 제국의 가장 강력한 군 지휘관 중 한 명이었습니다. 칭기즈 칸이 사망한 후 툴루이는 제국의 중심지에서 군사적, 정치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툴루이는 많은 군사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능력자로, 그 때문에 원로들이 그를 강력한 지도자로 고려한 것입니다.
      2. 임시 통치자의 역할:
      칭기즈 칸이 사망한 후 툴루이가 잠시 제국을 통치했습니다. 이 시기 동안 툴루이는 안정적인 통치를 유지했고, 이는 그의 지도력에 대한 신뢰를 높였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원로들은 툴루이가 대칸으로서 적합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3. 혈통과 전통:
      몽골 사회에서 장남이 아닌 다른 아들이 후계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툴루이는 혈통적으로나 지위적으로 강력한 후보였기 때문에 원로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았습니다. 당시 몽골의 전통은 왕권 승계를 확실하게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로들의 의견과 정치적 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4. 정치적 안정과 균형:
      원로들은 툴루이가 대칸이 된다면, 제국의 군사적 안정성이 더 확고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몽골 제국은 계속 확장하는 과정에 있었고, 군사적 리더십이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툴루이가 가진 군사적 영향력과 그가 제국을 잘 통제할 수 있다는 신뢰는 원로들이 그를 지지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5. 형제 간의 결속:
      툴루이는 칭기즈 칸의 명령을 존중했고, 형 오고타이를 대칸으로 지지했습니다. 이는 형제 간의 결속을 강조하는 몽골 전통과 가족 내의 균형을 고려한 결정이었을 수 있습니다. 결국 툴루이는 자신의 지위를 양보하고 오고타이를 대칸으로 지지했는데, 이는 몽골 제국 내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