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삼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에서 굴복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생각합니다. 명나라 태자의 존재가 조정의 부흥을 비록 상징하는 끈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를 도와줄 어떤 영향력 있는 세력이 주위에 없었기에 가족과 첩실이 당해도 어쩔수 없는 항복의 로를 따라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삶에 있어서 고립무원의 때가 있습니다. 역사는 교훈 합니다.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은 같이 도모할 동료와 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청나라의 남하에는 결과적으로 누르하치를 강성하게 만들어준 조선의 정치적 행보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함경북도 위쪽의 여진족들이 외교적 방치로 세종 이후 조선과의 공존에서 금이 가고 대립하기 시작했고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두만 강북 토벌에서 조선의 상황이 심각하고 자신들을 제어할 능력이 없다 인식하여 강남으로 내려와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이후 조선 조정은 반격 토벌을 시작해서 누르하치 반대 동맹에 편입하려던 계열의 여진을 누르하치가 쉽게 합병하도록 한 외교적 책임이 있었습니다.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는 여전히 조선을 형님의 나라 형제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으나 방계혈족도 시간이 지나면 타인이 되어 버리니 오래지 않아 조선을 서서히 압박하는 모양새로 바뀌는 것입니다. 자기 도생을 위해 난전만 하면 결국 주변의 이리들에게 고기만 던져주니 역사의 지혜로 시대의 실수를 줄여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오삼계가 청에 황복한 것은 잘못했죠. 이민족에게 항복할 수는 없는 거죠. 차라리 오삼계 스스로 북경으로 쳐들어가 이자성군을 정벌하고 황제가 되었으면 더 좋았겠네요. 그런데 오삼계는 황제를 꿈꾸지 못했으니. 오삼계의 군사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그러니 역사가가 평하길 "사람은 다 자기 운명이 있다"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정말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명이. 망한것은. 황제가. 간신배에게. 휘들려져기. 때문이다.
오늘도 사료
감사합니다
조선이 청에게 항복하지 않은 이유를 오삼계가 강유와 같다고 하셨는데, 조선이 망한건 1640년이고, 이자성이 황제가 된것은 1644년이라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역사가 완전히 뒤죽박죽이네요!
오삼계가 항복할 당시 청태종은 이미 사망하였습니다.
산해관을 넘은 청나라의 실질 지배자는 청태종의
이복동생 도르곤입니다. 즉, 순치제 원년 청나라는
오삼계의 항복으로 산해관을 무혈입성하게 됩니다.
오삼계는 청이 건국되었을 때 산해관(山海關)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1644년 농민군을 이끌고 명을 멸망시킨 순나라(大順)의 고영상 틈뫙의 후 틈왕 이자성(李自成)이 북경을 점령할 때 홍타이지(皇太極)의 동생 도르곤(多爾袞)에게 투항하였다.
오삼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에서 굴복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생각합니다.
명나라 태자의 존재가 조정의 부흥을 비록 상징하는 끈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를 도와줄 어떤 영향력 있는 세력이 주위에 없었기에 가족과 첩실이 당해도 어쩔수 없는 항복의 로를 따라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삶에 있어서 고립무원의 때가 있습니다.
역사는 교훈 합니다.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은 같이 도모할 동료와 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청나라의 남하에는 결과적으로 누르하치를 강성하게 만들어준 조선의 정치적 행보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함경북도 위쪽의 여진족들이 외교적 방치로 세종 이후 조선과의 공존에서 금이 가고 대립하기 시작했고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두만 강북 토벌에서 조선의 상황이 심각하고 자신들을 제어할 능력이 없다 인식하여 강남으로 내려와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이후 조선 조정은 반격 토벌을 시작해서 누르하치 반대 동맹에 편입하려던 계열의 여진을 누르하치가 쉽게 합병하도록 한 외교적 책임이 있었습니다.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는 여전히 조선을 형님의 나라 형제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으나 방계혈족도 시간이 지나면 타인이 되어 버리니 오래지 않아 조선을 서서히 압박하는 모양새로 바뀌는 것입니다.
자기 도생을 위해 난전만 하면 결국 주변의 이리들에게 고기만 던져주니 역사의 지혜로 시대의 실수를 줄여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오삼계가 청에 황복한 것은 잘못했죠. 이민족에게 항복할 수는 없는 거죠. 차라리 오삼계 스스로 북경으로 쳐들어가 이자성군을 정벌하고 황제가 되었으면 더 좋았겠네요. 그런데 오삼계는 황제를 꿈꾸지 못했으니. 오삼계의 군사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그러니 역사가가 평하길 "사람은 다 자기 운명이 있다"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