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트라우마는 연산군보다 정조가 더 심했겠다.. 자기 아빠를 할아버지가 정식적으로 사형도 아니고 뒤주에 산채로 가둬죽였고.. 게다가 아빠는 죽기전에 미쳐날뛴 광인이였고.. 사도세자가 죽게된게 신하들의 세력싸움에 희생됐다고 보는시각도 있었고.. 후대평가는 좋게 받았지만 그 당시 행했던 정책들은 반대 오지게 받고...요절하는게 당연하다.
영조는 이미 효장세자를 앞세워 보냈고 그나마 겨우 얻은 아들인 사도세자 마저 죽으니 더 이상 아들이 없었어요 나이도 60대였으니 후사를 보기도 어려웠고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태어난 의소세손도 사망하고 다음 왕위 계승자는 정조였던 거죠 물론 사도세자와 후궁들 사이에서 본 은언군, 은전군, 은신군도 있었지만 세자빈이었던 혜경궁의 소생이 더 계승서열이 높았기에 정조를 선택한거예요
심리적 트라우마는 연산군보다 정조가 더 심했겠다.. 자기 아빠를 할아버지가 정식적으로 사형도 아니고 뒤주에 산채로 가둬죽였고.. 게다가 아빠는 죽기전에 미쳐날뛴 광인이였고.. 사도세자가 죽게된게 신하들의 세력싸움에 희생됐다고 보는시각도 있었고.. 후대평가는 좋게 받았지만 그 당시 행했던 정책들은 반대 오지게 받고...요절하는게 당연하다.
ㅠㅠ
사도는 감정기복이 심하고 삐뚤어지게 자라서 왕위에 오르면 제2의 연산군일 확률이 높습니다
요절했다기엔 그래도 살만큼 살았지 재위기간이 25년인데 이정도면 결코 짧은 재위기간이 아님
조선시대 왕이 40대 후반까지 살았으면 적게산건 아님 ㅋㅋㅋㅋ 일반백성들 평균수명이 30언저리였던 시절인데
아들이 왕 되길 기다린거지 대단
마음은 아팠겠지만 아들을 위해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던거 같다.
영조가 만든 역사의 서글픈 사건💦
프랑스를 앞선 정조의 시장주의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만 사료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료도 많은데 꼭 한중록위주로 사도세자와 정조를 바라봐야만 하나?
그렇게 해서 아들을 왕위로 올렸고 성군이 되었지만 요절.. 참으로 기구하다..
정조 48에 사망이라 요절은 아니죠 세종도 54에 죽엇고...30 이전에 죽은 왕들도 많으니 ㅋ
순조가 장성할때까지 살았으면...
@@escore1731 그렇죠 십년만 더 살앗어도 조선말기가 그리 허무하게 무너지진 않앗을텐데요 안타까운일이네요
그것도 그렇고~ 김조순을 믿은게 컸다고 봅니다~ 믿고 맡겼는데 이 새리가 부패해버렸네;;;;
애연가에 책벌레에 일중독에 요즘 세상에서도 저렇게 살면 단명할듯. 오래 사신거죠 저정도면
갑신처분은 1740년이 아니라 1764년 아닌가요?
1740년은 경신년으로 나오는데요
황제는 생사여탈권이 없으면
황제가 아니다
개인보단 나라를 선택한 영조
혜경궁홍씨도 서인 사도세자죽는데앞장섬
서인은 이때 이미 노론 소론으로 나뉘어 엎어진 당파입니다 노론이 정확한 표현이죠
혜경궁홍씨 저 분 아나운서 아닌가요?
사극 제목 아시나요?
@@안강현-u2e 저건 사극이 아니라 저 방송을 위해 찍은걸로 보입니다
@@sanmicheal6754 그래요? 아나운서분 연기가 능숙하시네요.
@@안강현-u2e kbs 이선영 아나운서인거 같습니다. 약 13년전 같네요
빼어난미모의 아나운스 김선영
혜경궁은 사도세자에겐 사건의 가해자죠 와이프 잘못만나서 목숨잃은 케이스. 역사적인 평가는 하되 가해자 옹호는 하지 않았으면 함
사도세자의 만행은 모르냐
사람 죽인 모가지 따서 부인한테 보여주고 쟁반에 올려두고 보란듯이 들고 다니니.. 오죽하면 고발해 영조가 영특한 손자를 예뻐하니 자기 아들(정조)까지 위협하는데
일단 척분들이 나대는 걸 본인이 나서서 원칙대로 막아낸 몇 왕후들에 비해 척족이 권력을 얻는것을 지지하고 홍씨들의 전횡을 막지 않은 것만해도 혜경궁이 사도세자에겐 가해자였다는 거 인정. 결국 자기 아들 정조까지 힘들게 할 줄 모르고
@@dreamemory4388 사도세자의 만행전에 영조의 만행이 있었지
지랄을한다 역사를 발로배웠냐
왜 계속 눈물이 나오냐?홍가라 그런가ㅜㅜ
나는 해경궁 홍씨님을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마음이 정말 아팠겠다.혜경궁 홍씨는 저의 우리의 조상..남양홍씨의 조상 입니다.
아프긴 개뿔!
풍산 홍씨입니다
혜경궁 홍씨의 본관은 남양홍씨가 아니라 풍
산홍씨입니다. 바로 혜경궁 조상이 홍주원과
선조의 딸 정명공주 입니다
정조 빼고 영조의 선택이 없었나봐요
영도는 누구
영조는 이미 효장세자를 앞세워 보냈고 그나마 겨우 얻은 아들인 사도세자 마저 죽으니 더 이상 아들이 없었어요 나이도 60대였으니 후사를 보기도 어려웠고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태어난 의소세손도 사망하고 다음 왕위 계승자는 정조였던 거죠 물론 사도세자와 후궁들 사이에서 본 은언군, 은전군, 은신군도 있었지만 세자빈이었던 혜경궁의 소생이 더 계승서열이 높았기에 정조를 선택한거예요
저기 다 좌파인들..
쯧쯧 태극기부대야 저리가
@@dreamemory4388 쯧쯧 태극기부대야 저리가
@@usa6949 댓글 알바인가보네
@@dreamemory4388 댓글 알바인가보네
@@usa6949 성조기 걸고 부끄러운줄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