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물치지格物致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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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9 фев 2025
  • 격물치지(格物致知)
    공자(孔子)의 ‘대학(大學)’에 보면, “사물의 이치가 궁구한 후에 앎에 이르며, 앎을 이른 후에 뜻이 성실하며, 뜻이 성실한 후에 마음이 바르며, 마음이 바른 후에 몸을 다스리며, 몸을 다스린 후에 집안이 가지런해지며, 집안이 가지런해진 후에 나라를 다스리며, 나라를 다스린 후에 천하가 태평하다.”라는 격물치지는 조선시대 창업의 근간이다.
    이는 고종 32년 1895년 2월에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강령으로 덕양(德養)은 오륜행실을 닦아서 인간 세상의 질서유지와 풍속기강을 세우고, 체양(體養)은 근면과 건강을 유지하며, 지양(智壤)은 격물치지(格物致知)와 궁리진성(窮理盡性)으로 시시비비와 장단점을 연구하여 공중의 이익을 도모하는 교육의 이념을 수립했다.
    이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육강령으로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여 신민의 학식으로 국가의 중흥에 이바지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덕(德), 체(體), 지(智)를 기르는 신민의 교육에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뿌리를 둔 조선의 교육강령은 학식을 통한 부강한 나라는 근본적으로 왕실의 안녕을 위한 지배체제의 목적을 지향했다.
    이러한 조선의 전통적인 향학(鄕學)은 조선 말기 열강세력의 개화 시기에 1868년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를 강행하고, 1894년 근대화 농민전쟁의 민중봉기로 유교의 기득권이 와해하면서 갑오개혁으로 근대적 변화를 혁신하면서 서양의 실용적인 학문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1895년 4월에 한성사범학교를 설립하여 본과 속성 두 과를 두어서 교관을 양성했다.
    5월에 일본어, 중국어, 영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외국 어학을 가르쳤다.
    7월에 서울 밖에 소학교에 심상(尋常)과 고등(高等)의 두 과를 두어 아동을 가르쳤다.
    정부에서 설립한 관립학교와 부와 군에서 설립한 공립학교, 개인이 설립한 사립학교로 구분하였다.
    1899년 2월에 의학교를 설립하여 내외 각종 의술을 가르쳤다.
    이해 중학교를 설립하여 심상(尋常)과 고등(高等) 두 과를 두어서 보통학을 가르쳤다.
    5월에 상공학교를 설립하여 예과와 본과를 두고 농업, 상업, 공업을 가르쳤다.
    1990년 8월에 광무학교를 설립하여 광학실업을 가르쳤다.
    이러한 교육제도는 누구나 소질과 적성에 맞는 학문을 수련하여 자아성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조선시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궁극적인 교육 이념은 오륜행실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강조한 점에서 소수의 기득권층이 향유한 학문은 근대에 신분제가 붕괴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침체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 ‘증보문헌비고 학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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