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양요 , 신미양요 같은 여러차례 외국세력에 침탈 당하면서 인명피해 , 경제적 피해 발생하니 조선조정도 혈전보다 평화적인 관계로 개선방식을 바꾼거죠. 그리고 당시 국제수교외교 자체에 무지한 조선조정이였기 때문에 불평등 조약임에도 평화를 빙자해 체결한거죠 . 근대개혁개화가 늦고 국제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조선입장에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고 일본 입장에서는 운이 좋은 사건이죠.
안배운거야 못배운거야? 무슨 조약을 안받으면그만임 이러네 ㅋㅋ강화도 조약 배경이 이미 우리가 잘못한 쪽으로 배경이쫙 깔려있었고 체결 안하면 우리나라 그냥 일본한테 운요호 사건 처럼 보복당할텐데 무슨 일본국력이 압도적인것도 아니고 이러네 ㅋㅋ 조선은 그때당시 개항을 안해서 발전 그수준 거의 원시 부족수준으로 싸움 못했음 그리고 강화도 조약 자체가 불평등 조약임 제발 알고 댓글 다세요 이 무개념한놈아 강화도 조약 체결할 당시 그 주변에 일본군이 기관총도 갖고있어 위헙당시로 했음
압도적인거 맞는데요 ㅋㅋ 배수량 250톤짜리 운요호 한척한테 처참하게 쳐발리고 강화도 조약 맺은 등싄같은 나라입니다 ㅋㅋ 참고로 임진왜란때 판옥선이 대략 200톤 정도 했고, 운요호와 비슷한 시기에는 5000~7000톤급 전함들도 등장합니다. 당시에도 초계함 정도나 할까말까한 250톤짜리 배 한척에 굴복했는데, 국력?? ㅋㅋㅋㅋㅋ 당시 조선군은 16~17세기에서 멈춰버린 수준이었습니다. 산업 기반이 전무해서 신미양요때 나포된 무기들 (나포라고 하기도 뭐함. 미국도 나포한 무기들의 수준을 보고 놀라서 갖다 버려버림)을 복구하지도 못했죠. 당시 일본은 이미 아시아의 초강대국이었습니다. 역사를 다시 배우셔야 할듯 ㅋㅋ
@@wjjung226 역사는 당신이 다시 배워야 할 듯... 페리제독의 흑선이 3000톤 정도였다는데 5000톤은 무리인 듯... 아시아가 전부 처발린 시기였으므로 아시아 초강대국이니 머니가 말이 안되고.... 아마 러일전쟁이후에는 초강대국 소리들어도 될 듯... 논점은 강화도조약이 착한 조선이 악한 일본에게 불평등조약을 당했다는 교과서 속 역사에 대해 한마디 한 것인데, 조선이 멍청하다는 얘기한 것임..
@@brianahn8608 @brian ahn 운요호 1869년 취역, 배수량 9200톤 영국 워리어급 1861년 취역, 배수량 8900톤급 독일 제국 카이저급 1875년 취역 ㅋㅋㅋ 3000톤같은 소리하고있노ㅋㅋㅋ 당시에도 이미 1000~2000톤급은 흔했음. 초강대국x 강대국o 이건 인정함. 근데 당시 조선과 일본의 국력 차이는 압도적인 정도가 아니라 비문명국과 문명국 정도의 차이였음. 라이플과 근대식 대포로 무장한 군대 vs 임진왜란때 쓰던 화승총과 활로 무장한 군대ㅋㅋ 일본이 작정하고 군대 끌고 쳐들어왔으면 한반도 역사는 거기서 끝났음.
@@wjjung226 말같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구먼... 일반적인 얘기를 해야지... 1840년대 아편전쟁시 영국군 주력 네머시스호가 660톤 신미양요 제너럴 셔먼호가 80톤 일본을 개항시킨 쿠르호네호 4척이 3000톤급 내외구먼, 당시가 범선에서 증기선으로 넘어가는 시점인데 증기선이 돼야 철갑선이 동력을 쓸수 있게 되고 총 톤수가 증가하기 마련임... 1905년의 러일전쟁시 전함간 대결에서는 10000톤 정도의 전함이 등장하긴 하는데 1860년대는 아니지...ㅎㅎㅎ 조선이 병신같아서 국내역사학자들이 강화도조약을 불평등조약이니 머니 쉘드치는 꼴이 보기싫어서 모든 조약에 불평등조약은 없고, 실력차이일뿐이라는 것을 말하려 했지만, 팩트는 제대로 써야지.... 안 그러냐 낄낄낄
근데 진짜 톤이 일정하시다 . . . . . 전형적인 교수님톤
그당시 일본군 얼마인지 아시는분?
댓글 보니까 지금이 아직 일제강점기네~~ㅋㅋ
운요호 스펙 240톤짜리 화물증기선을 전함으로 개조한건데 포 2개 박아놓고 꼴에 전함이라고 조선을 협박함.. 거기다 안에는 60여명의 군인들이 있었음.. 이런 군함에 조선이 항복한것임...
조선 진짜 개 좆병신 저능아 국가 ㅋㅋㅋ
병인양요 , 신미양요 같은 여러차례 외국세력에 침탈 당하면서 인명피해 , 경제적 피해 발생하니 조선조정도 혈전보다 평화적인 관계로 개선방식을 바꾼거죠. 그리고 당시 국제수교외교 자체에 무지한 조선조정이였기 때문에 불평등 조약임에도 평화를 빙자해 체결한거죠 . 근대개혁개화가 늦고 국제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조선입장에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고 일본 입장에서는 운이 좋은 사건이죠.
응 당시 조선수군 수준 : 임진왜란때랑 동일한 판옥선 천자총통 이거 알고 하는말?
반일은 과거
지금은 반중을 해야 장기매매를 면한다
옳소 중국민족한테 시달린 기간만 2천 년이 넘소
일제강점기? 조선 평민과 노비들에게는 축복이었다던데 사실?
응 근데 순신이형한테 처참하게 발렸쥬
저때 이순신 장군님이 계셨냐? ㅋㅋㅋ
강화도 조약은 불평등 조약이 아님.. 불평등하면 조약을 안 받으면 그만임... 더구나 당시 일본의 국력이 압도적인 것도 아니고......
안배운거야 못배운거야? 무슨 조약을 안받으면그만임 이러네 ㅋㅋ강화도 조약 배경이 이미 우리가 잘못한 쪽으로 배경이쫙 깔려있었고 체결 안하면 우리나라 그냥 일본한테 운요호 사건 처럼 보복당할텐데 무슨 일본국력이 압도적인것도 아니고 이러네 ㅋㅋ
조선은 그때당시 개항을 안해서 발전 그수준 거의 원시 부족수준으로 싸움 못했음 그리고 강화도 조약 자체가 불평등 조약임 제발 알고 댓글 다세요 이 무개념한놈아 강화도 조약 체결할 당시 그 주변에 일본군이 기관총도 갖고있어 위헙당시로 했음
압도적인거 맞는데요 ㅋㅋ 배수량 250톤짜리 운요호 한척한테 처참하게 쳐발리고 강화도 조약 맺은 등싄같은 나라입니다 ㅋㅋ
참고로 임진왜란때 판옥선이 대략 200톤 정도 했고, 운요호와 비슷한 시기에는 5000~7000톤급 전함들도 등장합니다. 당시에도 초계함 정도나 할까말까한 250톤짜리 배 한척에 굴복했는데, 국력?? ㅋㅋㅋㅋㅋ 당시 조선군은 16~17세기에서 멈춰버린 수준이었습니다. 산업 기반이 전무해서 신미양요때 나포된 무기들
(나포라고 하기도 뭐함. 미국도 나포한 무기들의 수준을 보고 놀라서 갖다 버려버림)을 복구하지도 못했죠. 당시 일본은 이미 아시아의 초강대국이었습니다.
역사를 다시 배우셔야 할듯 ㅋㅋ
@@wjjung226 역사는 당신이 다시 배워야 할 듯... 페리제독의 흑선이 3000톤 정도였다는데 5000톤은 무리인 듯...
아시아가 전부 처발린 시기였으므로 아시아 초강대국이니 머니가 말이 안되고.... 아마 러일전쟁이후에는 초강대국 소리들어도 될 듯...
논점은 강화도조약이 착한 조선이 악한 일본에게 불평등조약을 당했다는 교과서 속 역사에 대해 한마디 한 것인데,
조선이 멍청하다는 얘기한 것임..
@@brianahn8608 @brian ahn 운요호 1869년 취역, 배수량 9200톤 영국 워리어급 1861년 취역, 배수량 8900톤급 독일 제국 카이저급 1875년 취역 ㅋㅋㅋ 3000톤같은 소리하고있노ㅋㅋㅋ 당시에도 이미 1000~2000톤급은 흔했음. 초강대국x 강대국o 이건 인정함. 근데 당시 조선과 일본의 국력 차이는 압도적인 정도가 아니라
비문명국과 문명국 정도의 차이였음. 라이플과 근대식 대포로 무장한 군대 vs 임진왜란때 쓰던 화승총과 활로 무장한 군대ㅋㅋ 일본이 작정하고 군대 끌고 쳐들어왔으면 한반도 역사는 거기서 끝났음.
@@wjjung226 말같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구먼... 일반적인 얘기를 해야지...
1840년대 아편전쟁시 영국군 주력 네머시스호가 660톤 신미양요 제너럴 셔먼호가 80톤 일본을 개항시킨 쿠르호네호 4척이 3000톤급 내외구먼,
당시가 범선에서 증기선으로 넘어가는 시점인데 증기선이 돼야 철갑선이 동력을 쓸수 있게 되고 총 톤수가 증가하기 마련임...
1905년의 러일전쟁시 전함간 대결에서는 10000톤 정도의 전함이 등장하긴 하는데 1860년대는 아니지...ㅎㅎㅎ
조선이 병신같아서 국내역사학자들이 강화도조약을 불평등조약이니 머니 쉘드치는 꼴이 보기싫어서 모든 조약에 불평등조약은 없고, 실력차이일뿐이라는 것을
말하려 했지만, 팩트는 제대로 써야지.... 안 그러냐 낄낄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