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TV / 史와 懲毖
인문과학 TV / 史와 懲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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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승려가 본 정유재란의 참상: 조선일일기(朝鮮日日記)
음악: Experience, 김성원, 공유마당
영상에서 언급되는 조선일일기의 번역본은 「케이넨, 1997 『임진왜란 종군기』, 경서원」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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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공주는 성골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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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Equality - ruclips.net/video/VfImFoOi5EU/видео.html #천명공주 #성골 #신라
바보 온달이 고구려의 장군이 되기까지 【온달로 보는 고구려 말 군사 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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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최일례, 2015, 평원왕대 정국 운영의 특징과 그 함의, 고구려발해협회 金顯吉, 1999, 溫達에 관한 硏究 - 阿旦城과 阿且城(峨嵯城)을 중심으로,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윤성환, 2011, 6세기 말∼7세기 고구려 지배세력의 대외인식과 대외정책, 한국고전번역원 이정빈, 2016, 「천남생 묘지」에 보이는 將軍과 7세기 고구려의 군사 운용, 한국고대사탐구학회 BGM: Death of Kings 2 - Kevin MacLeod Awkward Meeting - Supernatural Haunting - Kevin MacLeod #온달​ #평강공주​ #달이뜨는강
신라에는 7명의 왕이 동시에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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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노중국, 2010, 금석문목간 자료를 활용한 한국고대사 연구 과제와 몇 가지 재해석, 한국고대사학회 윤진석, 2019, 「포항냉수리신라비」의 ‘七王等’ 재론 - 部體制 이행의 근거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탐구학회 양자랑, 2019, 6세기 신라 大等성격에 대한 검토 - 진흥왕대 비문 분석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宣石悅, 2002, 신라 금석문을 통해 본 葛文王,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BGM: Forgotten Kingdom(잊혀진 왕국) by 이충헌, 공유마당, CC BY #신라 #포항냉수리신라비 #지증왕
순원왕후는 철종의 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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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임혜련, 2012, 「철종대 정국과 권력 집중 양상 임술민란 배경과 관련하여」, 고려사학회 박주, 2017, 「조선 후기 순원왕후와 안동 김문의 관계에 대한 재조명」, 한국사상문화학회 이기대, 2009, 「한글편지에 나타난 순원왕후의 일상과 가족」, 한국고전여성문학회 이기대, 2009, 「한글편지에 나타난 순원왕후의 수렴청정과 정치적 지향」, 국제어문학회 #철종 #순원왕후 #철인왕후
중국 사극에서 묘사된 안시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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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 #안시성 #고구려
철인왕후의 중전 간택기 【삼간택의 이면에 숨겨진 Behind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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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임혜련, 2014, 「19세기 國婚과 安東 金門 家勢」, 고려사학회 김세은, 2008, 「19세기 전반기 국왕의 가례(嘉禮)와 그 특징」, 조선시대사학회 #철인왕후 #순원왕후 #철종
왜의 침략을 불러온 신라 대장군의 막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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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일본서기(日本書紀)』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 #왜
고구려 멸망에 대한 3번의 예언 【고구려 최후의 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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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 #유화부인 #고구려
삼국유사에 기록된 선덕여왕의 남편은? 【근친혼을 불러온 골품제의 폐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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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金昌謙, 2015,「 新羅 善德女王의 王位繼承에 대한 論議」,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이동윤, 2020, 「新羅 上代 왕실의 재생산 인식과 女性의 즉위 배경」,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김다정, 2017, 「신라 善德王代 왕실세력 규합과 그 의미」, 부산대학교  『三國史記』 『三國遺事』 #선덕여왕 #신라 #화백회의 #근친혼

Комментарии

  • @바람이머무는곳-h9v
    @바람이머무는곳-h9v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연개 소문이 고구려를 망하게 한건 사실 존재 하지 말앗어야 하는 존재 고구려의 가장 패악의 악마

  • @Ronaldo-x1p5w
    @Ronaldo-x1p5w Год назад

    ㅋㅋㅋㅋㅋ 산골짝 집안시에 처박혀있던 한족이 바다건너 한반도로?말도. 안되는 역사날조 고구려는 현 북경지역에 있었던게 분명함

    • @배철현-g6l
      @배철현-g6l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북경에는 고려영이라는 고려 진영을 뜻하는 지역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때 서경이 그 북경입니다 우리는 본래 중국 동부 지역까지가 우리 영토가 맞습니다

  • @JKJ0509
    @JKJ0509 Год назад

    고조선의 강역은 중국의 동부 지역, 내몽골 지역, 발해만 지역, 만주 지역, 한반도를 포괄했다. 고조선의 유물인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의 분포 범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만주 지역과 내몽골, 발해만 지역을, 백제가 중국의 동부지역과 남부지역, 한반도의 서쪽 지역, 일본을 장악했다.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본기] 2년(49) <장수를 보내어 후한의 북평(현재의 북경), 어양, 상곡, 태원을 습격하였다. 이에 후한의 요동태수 ‘채융’이 은혜와 신의로써 화친을 청해와 화친하였다.> [후한서] [광무제 본기] 25년(49) <요동 변방의 맥인(고구려)이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침략하였다.> [후한서] [동이열전] <구려(고구려)와 선비가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침략하였다.> [삼국사기] [고구려 태조왕 본기] 3년(55) <요수 서쪽에 10개의 성을 쌓아 후한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고구려 1대 태왕 추모왕(주몽)의 연호는 ‘다물’이다. 다물은 옛 땅을 되찾는것을 뜻하는 ‘다시 무르다, 되물리다’이다. 즉 고구려는 고조선의 땅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서쪽을 공략했다. 모본왕때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한 지역은 북경을 포함한 화북 지역이다. 그런데 요동태수가 화친을 청했다는 것은 후한이 전쟁에서 지고 항복한 것을 뜻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동태수이다. 고구려가 후한의 화북 지역을 공격했을때 고구려의 맞상대가 요동태수였다는 것은 그 지역이 요동지역이라는 것을 뜻한다. 즉 고대의 요동은 북경 인근 지역이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요동은 요나라때부터 굳어진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모본왕때 후한의 요동을 공격해서 요서 지역까지 차지했고, 태조왕때 요서에 10개의 성을 쌓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구려는 요동 지역을 두고 중국과 1진 1퇴를 반복하다가 광개토태왕때 요동을 완전히 장악한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이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할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간다.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이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진다. 북경 근처에 요동과 요서지역이 있었던 것이다.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 <동해 밖에 삼국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마한•변한•진한인데 마한은 고구려요,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입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기에 강병이 100만 명이어서 남으로는 오•월을 침공하고, 북으로는 유•연•제•노 등 지역을 흔들어서 중국의 큰 두통거리가 되었으며 수나라 황제가 세력을 잃은 것은 저 요동 정벌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삼국사기] [백제 동성왕 본기] 10년(488) <위나라(북위)에서 군사를 보내 침공했는데 우리에게 패했다.> [자치통감] 영명 6년(488) <위병(북위병)이 백제를 침략했으나 백제에게 패했다.> [남제서] <백제가 위나라(북위) 기병 수십만과 싸웠다.> 현재 한국의 강단 식민사학자들은 북위가 배를 타고 충청도 지역에 와서 전쟁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남제서]에는 북위가 기병 수십만을 이끌고 백제와 전쟁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 당시에는 군선 1척에 말 10마리를 싣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기병 수십만이 배를 타려면 배를 수만척이나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백제의 영토가 대륙에도 있었기 때문에 북위의 기병 수십만과 전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백제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동성왕이 장군들을 왕이나 후로 봉하는데 그 지역이 다 중국 땅이다. 이것만 봐도 전쟁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는 자명한 것이다. 그리고 동성왕이 장군들을 왕이나 후로 봉했다는 것은 백제 왕이 황제라는 것을 뜻한다. [남제서] [백제전] 동성왕이 위나라(북위) 군사를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백제 장수들에게 관직을 수여하고 이를 남제에 통보한 국서가 나온다. 그 중 한 구절은 <삭녕장군 면중왕 저근은 대대로 시무를 잘 도왔고, 무공도 뛰어났으므로 지금 가행관군장군•도장군 도한왕으로 삼았다.>라는 것이다. 면중왕에서 도한왕으로 승진시켰다는 것으로 백제 황제 수하에 서열에 따른 여러 왕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팔중후 여고를 아착왕, 건위장군 여력을 매로왕, 광무장군 여고를 불사후>로 승진시켰다고 [남제서]는 말하고 있다. [송서] [백제전]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 1000리에 있었다. 그 후 고구려가 요동을 점거하자 백제는 요서를 공략해 점령하였다. 백제가 다스리는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 [송서]에는 백제 개로왕 여경이 송나라에 <행관군장군 우현왕 여기를 관중장군으로 삼고, 행정로장군 좌현왕 여곤과 행정로장군 여훈을 모두 정로장군으로 삼아달라>라고 요청했다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 요청했다는 것은 윤색이고, 사실은 통보한 것이다. 흉노는 황제인 대칸이 중앙을 다스리고, 우현왕과 좌현왕이 좌우 강역을 다스렸는데, 대륙과 반도와 해양에 걸친 대제국 백제도 넓은 강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백제 임금 아래 우현왕과 좌현왕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중국에도 알려져 있어서 [양서] [백제 열전]에 <백제에 22담로가 있었는데 모두 임금의 자제, 종족들이 나누어 다스린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구당서] [백제전]에는 <백제왕이 거주하는 곳은 동서 두 성이다.>라고 해서 백제왕이 거주하는 왕성이 둘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동왕성은 한반도, 서왕성은 대륙에 있었을 것이다. 백제는 요서와 일본은 물론 각지에 담로(후국)를 갖고 있던 황제국이었다. [통전] [백제전] <백제가 요서•진평 두 군에 거처했다.> 요서군과 진평군이 오늘날의 유성, 북평(북경) 사이라고 위치까지 표시해 놓음 [양서] [백제전] <백제는 원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에 있었는데 진나라때 고구려는 이미 요동을 공략하여 소유하였고, 백제는 요서•진평 두 군의 땅을 점거하고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고구려에게 격파되어 쇠약해진지 여러해 되더니 남한으로 도읍을 옮겼다.>여기에서 백제가 도읍을 대륙에서 반도로 옮긴 것인지는 연구가 필요해 보임 [북사] [백제전]에는 <백제는 진나라 때부터 송나라, 남제, 양나라 때까지 장강(양자강) 좌우에 있다.>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백제는 진나라 때부터 송나라, 남제, 양나라 때까지 장강(양자강) 왼쪽에 있다. 후위(북위) 때 중원에 터를 잡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수서]에는 <백제에는 신라, 고구려, 왜인들이 나라 안에 섞여 있으며 중국인도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백제촌, 백제향, 백제허>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백제향>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백제향> 안에는 <백제허>가 있다. <허>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백제향, 백제허>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백제허>를 <빠이쥐쉬>가 아니라 <대백제, 대박제>로 발음한다. 즉 백제는 고조선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고구려에는 다물(담울=담으로 친 울타리, 즉 고구려 성을 뜻함)정신이 있었다면, 백제에는 담로가 있었던 것이다.

  • @sangnamja313
    @sangnamja313 Год назад

    반란군ㅋㅋㅋㅋㅋ 요동과 만주를 한번에 한족이 지배했던 역사가 한번이라도 있냐ㅋㅋㅋㅋ 이민족한테 중원 뺏기고 그들이 다스린적이 있었지 명나라도 요동이나 가졌지 여진땅에 들어간적도 없었다 반면 고조선,고구려,발해는 요동과 만주를 지배했던 우리의 역사였다 지금은 한반도가 분열되어 잠시 한족들이 점거하고 있는것이지 머지않아 되찾을것이다.

  • @bonoss894
    @bonoss894 Год назад

    흠… 옛날에 환빠랑 싸울때 존나 깟는데 환빠가 마지막에 이말하더라… 중국이나 일본은 신화도 역사로 칭하는데 우리나라는 환을 역사라고 못하냐 하면서 가버리더라 마지막말은 나도 다시 생각하게 하도라…..

  • @BADACOKIRI
    @BADACOKIRI Год назад

    지들 입장에선 민간인 학살하며 승리한게 기쁘겠지… 우리가 월남전에 민간인 학살한 것처럼…

  • @윤주현-h1f
    @윤주현-h1f Год назад

    새영상 언제나와요??

  • @블랙맘바-p9s
    @블랙맘바-p9s Год назад

    이미 중국인들은 날조역사가 너무많아서 그 근거로 드라마를 제작하기에는 다소.. 그러니 중국이 발전이 없는거... 역사적 사실을 기반과 교훈을 얻어 반성을해야 독일처럼 강국이 되고 후대 자손들이 옳은 생각을 가지며 살아가는데 그것을 안가르치니 아직도 인정을 할줄을 모르는거임...

  • @LeeYYAL0316
    @LeeYYAL0316 Год назад

    갑주 고증 개떡같이 한건 저기도 마찬가지네 ㄷ

  • @yhjang2804
    @yhjang2804 Год назад

    오천년역사중 유일하게 중국왕조들한테 주먹질한게 바로 고구려죠 얼마나 자존심이 상햇으면 백만대군을 동원해서 쳐들어왓을까요~?

  • @김제하-f9g
    @김제하-f9g 2 года назад

    중국 드라마가 이 정도면 뭐 그나마 매우 정상적인 드라마인듯ㅎㅎ 당이 고구려를 북방 반란군이라고 묘사한 거는 감독이 일부러 넣은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 당 조정에서도 고구려를 일개 반란군 취급했을 거 같음..

  • @황인철-t6r
    @황인철-t6r 2 года назад

    석도현이 말한게 사실같음 고구려 멸망후 고구려계 유민들 다수와 왕족이 일본 본토에 상륙하여 마을을 이루고 살은걸로 압니다..아직도 고구려성을 쓰는 일본인이 있음..

  • @헤만-h9z
    @헤만-h9z 2 года назад

    저것들은 씨를 말려야 한다. 두고보자.

  • @떡신자
    @떡신자 2 года назад

    이세민 눈팅이화살맛고 3년후 죽었죠 다시는 고구려을 침략하지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남의땅 강도짓거리하명서 뭇슨 정당화한다는건지..

  • @hirohiro6311
    @hirohiro6311 2 года назад

    지구 역사상 가장 잔인한 일본 , 단 한번도 과거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음 임진왜란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정유재란을 일으킴. 지금의 일본은 다르다고? 불과 100년전에 국권 침탈을 함 지금도 지속적으로 영토 야욕을 드러내고 있음 이런 나라와 국방의 연합이니 뭐니 하고 있는 괴상한 짐승이 대통령이 된 상황

  • @startofaday7049
    @startofaday7049 2 года назад

    신라에는 왕들이 많았다는 기록도 이란에서 나옴

  • @doulk2476
    @doulk2476 2 года назад

    당나라는 발해에 져서 동모산 뺏기고 무주는 고구려의 걸걸씨가 대씨로 성을 바꾸고 태씨 발해가 무왕때 당나라 또이김.

  • @대막리지-연개소문
    @대막리지-연개소문 2 года назад

    저딴 내용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서토놈들은 잘 들어라. 우리 고구려가 대체 왜 북방 '반란군'이냐? 본국보다 역사가 긴 반란군 세력도 있냐? 건국한 지 고작 30몇 년 밖에 안 된 당나라가 건국한 지 700년이 다 돼 가는 고구려보고 뭐? 북방 반란군?그리고 우리 고구려나 발해,그리고 고조선이 북방 반란군이면 너네 서토는 상나라 때부터 명나라 건국 이전까지는 쭉 통일 못한 거네? 그냥 우긴다고 다 너네 주장이 맞는 게 아니란다.이 서토 놈들아.말이면 다 말인 줄 아냐? 뭐 논리가 하나라도 맞아야 말이지.

  • @GuNdAmWiThYoU
    @GuNdAmWiThYoU 2 года назад

    중국이 언제는 왜곡과 동북공정은 안했냐마는...

  • @류관호-o3q
    @류관호-o3q 2 года назад

    신라의 최초 여왕이자 한민족 역사의 최초 여왕인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딸로써 황자가 없던 신라에서 유일하게 황녀로써 여자의 몸으로 권력자가 된 한민족 최초의 여성 지도자입니다. 처음으로 선덕여왕은 백제를 공격하여 군대를 쓰러트리고 영토를 확보한 최초의 여성 정복자가 됩니다. 그 후 고구려로 간 선덕여왕은 고구려 최고 권력자인 연개소문을 만나서 동맹을 권유하게 되고 오랫동안 협상을 하게 되지만 결국 고구려 최고 권력자인 연개소문이 여성인 선덕여왕의 권유를 무시하고 고구려와 신라는 동맹을 못하게 되자 당나라로 가서 황제인 태종을 만나서 동맹을 권유한 선덕여왕은 태종이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면서 동맹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나당동맹이 완성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하지만 여성 권력자인 선덕여왕의 집권에 불만을 품은 최고 관직인 상대등이자 당시 여성의 몸으로 권력을 차지한 라이벌인 미실의 아들인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자 선덕여왕은 김춘추와 김유신을 비롯한 신하들에게 군대을 동원하라는 명령을 하게 되고 군대를 모은 선덕여왕은 비담의 군대랑 대결을 하게 되고 치열한 싸움 끝에 선덕여왕은 김춘추와 김유신 등이 이끌던 군대를 동원하여 결국 승리하게 되면서 비담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비담의 반란을 진압한 선덕여왕은 평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선덕여왕은 몸이 아파오자 쓰러지게 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 선덕여왕은 사촌 여동생이자 신라의 두번째 여왕으로 등극한 진덕여왕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게 되고 쓸쓸하게 권좌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그리하여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은 파란만장한 여왕의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사촌 동생이자 진골 출신의 황제인 태종 무열왕은 신라를 강한 나라로 만듭니다!

  • @batisttwota3223
    @batisttwota3223 2 года назад

    당나라와 중국인 즉 한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니깐...당나라는 수나라,북위 5호16국때 5호처럼 선비족이고 우리는 선비족과 싸웠지 당시 선비족의 노예였던 한족과 싸우지 않았다니깐...고당전쟁 당시 한족들은 맨앞에서 화살받이,노새처럼 군수품나르고 쫄병으로 육탄전 이런거나 했어. 당나라 황제,지도부,상류층은 대부분 선비족이었고 극히 일부만 선비족 치하에서 똥꼬빠는 한족이 있었을 뿐이다.당시만해도 남방한족과 북방유목민,지배층 선비족은 엄격하게 구분했고 한족은 대개 사회 중하층,농민,빈민,도적 이런거였다니깐...고당전쟁에 최고사령관으로온 우문씨도 다 선비족이었잖아

  • @aaaa-bb5qe
    @aaaa-bb5qe 2 года назад

    구구려가 북방 반란군이면 고구려랑 전쟁하다가 망한 수나라는 뭐냐?

  • @ejnfkflelerk3357
    @ejnfkflelerk3357 2 года назад

    당태종 투구는 처음보는 스타일인데 멋있네

  • @North-Jo-Sun
    @North-Jo-Sun 2 года назад

    그런관점도 있더라구요 고구려가 좀만 더 버티면 당나라에서 딜하고 사이좋게 지내자

  • @일형조-n5p
    @일형조-n5p 2 года назад

    중국측 고려역사에서는 요동에 고려 철령위가 있었다고 하며 중국사극드라마에는 심양을 중심으로 고려역사 드라마 제작한다고 합니다

    • @배철현-s6c
      @배철현-s6c 4 дня назад

      요동성의 위치는 지금 단 한군데 입니다 당나라가 함락 시킨 후 요주라 명명한 그곳이 옛 요동성 입니다 그 요동성은 중극 사극 드라마 포청천에도 언급 돼 나옵니다 요주!! 포청천 시대배경이 바로 북송 시대인데 그때 우리가 고려 였죠 그 시대 때 요주 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당나라가 이름 지은 그대로 존속했던 겁니다 지금도 그 지명 인 곳이 요동입니다

  • @longkim7994
    @longkim7994 3 года назад

    당태종 눈알 맞아 죽는건 억지아니냐 야사에 나온걸말이라고 ㅎㅎ

  • @창조-p5i
    @창조-p5i 3 года назад

    창녕 조씨 시조 曺繼龍께서 진평왕 사위라는 기록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군. 진평왕 따님이 3분이었고 선화공주와 천명공주는 다른 인연이 있었으니 남는 분은 덕만공주 뿐. 음갈문왕 함자가 김인평이라는 기록도 있다는데 이 기록과 조繼龍 사위 기록과의 관계도 규명해야지. 매우 어설픈 분석이랄 밖에.

  • @한도경-n2i
    @한도경-n2i 3 года назад

    이세민이 중국 최고의군주 인식하지만 한반도에서는 연개소문한테 털린 바보군주로 인식함

    • @longkim7994
      @longkim7994 3 года назад

      야사를 많이 봐서 머리가 돌았네

    • @hangug1230
      @hangug1230 2 года назад

      @@longkim7994 연개소문한테 털린거 맞음 ㅋㅋㅋ

    • @대막리지-연개소문
      @대막리지-연개소문 2 года назад

      뭐......세민이가 바보군주까진 아니었지만......

    • @anthonykim666
      @anthonykim666 Год назад

      바보는 아닙니다. 한족 황제 중에서는 드물게 다민족 규합에 힘쓴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설인귀는 정말 10세기에 한번 나올 병법 천재라고 하죠.

  • @유승호-o7h
    @유승호-o7h 3 года назад

    역사왜곡이 천추태후급인듯

  • @최우진-w3y
    @최우진-w3y 3 года назад

    마한 소국들을 병합하면서 그들에게 자치권을 주고 금관가야 역시 신라에 귀속하였지만 여전히 자치권을 인정받아 왕이 존재했던 것은 아닌지 이들은 각 민족의 수장 왕으로써 존재했고 훗날 금관가야 왕족들이 세력을 키워 신라를 장악했던 이유로 충분합니다 마한 소국과 가야의 왕은 각 지역에 수장 임과 동시에 신라의 신하였다

  • @merryjulia6254
    @merryjulia6254 3 года назад

    2:04 이문이 여기서도 등장하네ㅋㅋㅋ

    • @대막리지-연개소문
      @대막리지-연개소문 2 года назад

      이문의 희생으로 주인공이 목숨을 건지고 설인귀의 반격으로 당군이 승리한다....라.......역시 이문은 서토에서도 이문이글스 취급을 피할 수 없나 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 @김제하-f9g
      @김제하-f9g 2 года назад

      대조영 드라마에서 설인귀 쫒아댕기던 이문이랑 같은 사람임??

  • @됏쿄
    @됏쿄 3 года назад

    고구려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 @됏쿄
    @됏쿄 3 года назад

    고구려는 자주적인 대제국이었고 중국의 지방정권이 절대 아니었다

  • @spiritjeood
    @spiritjeood 3 года назад

    개중국의 개논리

  • @parkboriiii
    @parkboriiii 3 года назад

    👍👍👍👍

  • @샤인에어컨.충전.청소
    @샤인에어컨.충전.청소 3 года назад

    저런 오랑우탄 땡중놈이 잇어서 우리의 조상들이 무슨 일을 당햇는지 알게 됫으니 고맙지. 일본놈들을 전부 잡아 ㅈ이지 못하면 우리 후손 또한 개쇅귀들일 뿐이다.

  • @МытаджикиМыносителикорон-м5ж

    Что за фильм пожалуйста скажите?

  • @윤주현-h1f
    @윤주현-h1f 3 года назад

    갈수록 발전하시는 모습 너무 보기 좋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윤주현-h1f
    @윤주현-h1f 3 года назад

    정말 재밌게 잘봤습니다.

  • @rkfjfjdnxnzjajk
    @rkfjfjdnxnzjajk 3 года назад

    쓰레기 드라마노

  • @gondor1018
    @gondor1018 3 года назад

    0:12 안재모?

  • @빡-r5n
    @빡-r5n 3 года назад

    예측은 함부로 하는게 아니죠

  • @김석봉-l4q
    @김석봉-l4q 3 года назад

    여자 최수종 김소현 코등 봐라 ㅋㅋ

  • @운성-x8s
    @운성-x8s 3 года назад

    교차검증할 유물이나 사료의 발견이 절실하겠죠

  • @khankorea3938
    @khankorea3938 3 года назад

    여러분!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립니다.우리안에 동북공정세력이 어마어마한 실체를 알립니다. 우리안에 숨어있는 적이 진정한 적이란 사실을 다 아시리가 생각합니다.즉, 우리역사가 왜곡,조작된건 사실인데 그 주체(주범이)바로,국외에 있는 중국,일본이 아니라,우리안에 있는 중국인들이란 충격적인 사실,실체입니다..즉, 99%조작,축소되어있는 현재 우리국사를 바로잡으려면,단순히 고구려나 발해 고조선등 조선왕조 이전의 국외적 사안보다,.현재 지금, 국내에서 중국과 조선을 우리역사의 중심으로 호도,획책하는 엄청난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그를 바로 볼수있어야 한다는 점 입니다. 바로 국내최대 외국계로 중국계로, 650만의 토착중국인 실체로써,바로 조선왕손(중국전주이씨/시조 이자춘/고려말 난민-망명후,자식대 위화도쿠데타로 조선왕족-오백년 급번식)들의 실체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서는 절대로 우리역사를 제대로 알수도 바로 잡을수도없다는 명백한 사실입니다.보세요~ 이들은 현재, 겉모습도 우리와 비슷하고 같은 한국말,한글쓰고 있기에 겉으로 단순히봐서는 아무도 모릅니다.때문에 이들은 현재 韓국사 쓰고, 심지어 국사교육도 강단,재야 사학계 모두를 지배하고있습니다.이로인해 본래 고려인인 우리역사를 중국과 조선왕조 중심으로 왜곡,조작하면서 무조건 일본욕,탓 심지어 중국 동북공정까지 거론하며 이조선왕조 찬양과 이세종 이순신 신사임당(오만원권)찬양질을 주도하고있다는 충격적 사실을 깨우쳐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등잔불 밑이 어둡다/역사 간첩세력/국내최대 외국계=중국계/현재650만/국내최대성씨 금박씨다음으로 3위세력/현재 강릉,전주,양평등 지명은 본래 중국지명으로 오입,개명된상태/혀냊,전국민 중국식 석자이름 개명된 상태입니다. 이로인해, 현재 전국민 무의식적으로 중국인(뇌,지식)상태로 뇌해킹 된 현실입니다...펌:참

  • @foreverlove925
    @foreverlove925 3 года назад

    연개소문도 멸망에 한몫했죠 전그래서 연개소문 그렇게 좋게보지 않음

    • @dms6325
      @dms6325 3 года назад

      자식농사가 ㄹㅇ...

    • @yhjang2804
      @yhjang2804 Год назад

      아들을 잘못둔 탓이 크죠 죽리의 말을 듣고 즌작에 죽여버렷어야햇는데

  • @뭐시기-f5z
    @뭐시기-f5z 3 года назад

    주몽X

  • @고대경-b6d
    @고대경-b6d 3 года назад

    고구려는 후한ㆍ위촉오 삼국ㆍ오호십육국ㆍ위진남북조 ㆍ수ㆍ당이 존재한 것을 보면 중국 지방정권ㆍ정부가 아니죠. 산해관 동쪽 만리장성 밖에 있었다는 점을 봐도요.

  • @오감자-p2d
    @오감자-p2d 3 года назад

    한쪽은 거대한 땅에서 나오는 거의 무한적인 인적자원과 물자가 쏟아져나오는데 반해 고구려는 계속 방어만 하는 입장이었고 한정된 영토에서 청야전술로 자원을 갉아먹으니 이게 결정적으로 쇠락해져가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됩니다. 국토가 계속 침범당하고 초토화되는 마당인데 어떻게 나라살림이 제대로 될수가 있을런지..더구나 계속 강성해져가는 신라의 공격도 만만치않았고

    • @dms6325
      @dms6325 3 года назад

      광개토대왕 때 후환을 없앴어야...

    • @줄리앙-o3i
      @줄리앙-o3i 3 года назад

      을지문덕장군이랑 강이식장군이 수나라가 도망칠때 서토로 진격해서 그 잔당세력들을 다 멸망시키고 이세민의 혁명세력들마저 싹을잘라버렷다면..이야기는 크게달라졋겟죠.. 물론 서토로나아갓을때는 고건무저하가 희생이되엇어야겟지만요..

    • @TV-sv6tv
      @TV-sv6tv 3 года назад

      청야전술을 주요전략으로 채택한 고구려에서 끊임없는 국지전은 큰 타격이었지요.

  • @풍류신-n8o
    @풍류신-n8o 3 года назад

    사대, 우리가 남이가 .... 먼저 찌르는 것이 혁명이다 1. 21세기, 신의 도가 뭔지는 몰라도 2. 인간의 도는 공생의 도라 이것은 자유이며 공정과 책임으로 이루어 진다. 3. 자유란 무엇으로도 누구도 강제하거나 억압되지 않는 것을 말하며 4. 공정이란 실력만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하고 5. 책임이란 가진만큼 모두의 실력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을 말한다. 6. 자유, 공정, 책임을 파하거나 피하는 것은 반동이고 무능이며 죄다. 7. 우리의 혁명이란 반드시 그래서 그것을 먼저 찌르는 것이다. 8. 등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 평등이고 9. 종이 주인을 선택하는 것을 소위 민주주의라고 하나 10. 우리에게 있어 정치란 공정과 책임으로 자유를 달성하기위한 것이다. 11. 가자 우리가 남이가 12. 신나고 신이 나면 풍류가되고 ...... 신이 될까? 모른다 사대라 이유가 뭐지 사대란 주체성이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에 붙좇아 자기의 존립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되어 있네 간단하네 한심하고 쯥 .............한데 이상한게 주체성은 없어도 나라를 한번 세우면 1000년 2000년 아니면 최소 500년은 존재했네 그리고 흥하고 망한 것도 통일이나 내부 분열이지 누구에게 정복을 당해서 없어진 것은 아니라니 중국 본토에 있던 것들은 길어야 300년도 안되고 그것도 계속 정복당하거나 흡수되어 없어 졌는데 강한 주체성이 본래 더 빨리 정복되고 흡수되는 것인가 중국 본토에 세워진 거의 모든 나라는 우리 종족과 거의 동족스런 정복왕조가 세운 나라였고 그래도 우리 선조들은 결국 그들을 사대를 해 주었네 주체성도 없이 사대가 전략이었나 그리고 중국 본토까지 점령한 그들이 우리랑은 결국 사대를 받고서는 그냥 공생했네 왜일까 정복한다 해도 주체성이 없는게 아니라 반대로 너무 강해서 복종도 안되고 돈도 안되는 일이라고 판단했서 그냥 사대나 하라고 했나 전에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조선부터 스스로 소중화라 하며 사대했다 그럼 중화는 무엇일까 나라인가 훈민정음에서 말하는 중국과 거의 같은 말인 것도 같고 동 시대에는 그런 나라가 없었으니 상나라 기자 유교 이런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상나라라면 당시 중심에 위치했고 또 중화는 그당시 기자로 대표되는 정신이나 사상일지도 어찌되었던 오늘날 인류의 보편 진리인 자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중심으로 부터 항상 어떠한 질서가 유지 되어야만 그 질서 속에서 모두가 공생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 그 질서가 사대라면 그것은 오늘날 인간 공생의 필수 조건인 자유의 다른 말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을 인정 안하는 무식한 놈은 그냥 중국 본토로 쳐들어가서 점령하고 지배하다 또 다른 힘센 놈에게 정복 당하고 흡수되어 없어졌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체성 없는 우리를 5000년이나 정복하거나 흡수하지 못했으니 오히려 주체성 없는 것은 그들이 아니였을까 홍익과 사대가 현재의 자유와 그 범위가 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공생을 뜻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말의 후손이며 우리의 정신은 우리말 속에 당연히 남아 있어이라 본다면 그 옛날 신은 신나고 신이 나는 사람이고 모두를 신나게 하는 사람이라면 일당은 백이니 신들린 기병 일만이 칼춤을 춘다면 백만이라도 겁나지 않았을까 그래서 너는 나는 신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