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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산골목사
Южная Корея
Добавлен 24 май 2020
산앙강의와 성경연구, 책을 통해 함께 믿음을 세워 나가는 홍근대목사입니다. 모든 좋은 것과 유익한 것을 나누는 채널입니다.
이 채널의 운영자는 산골짜기tv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함께 구독하시면 신앙에 많은 유익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저는 합동교단 진주노회 소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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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양식] 케네스해긴 365 327 그분의 목적 335
우리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일들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깨닫는 것들을 함께 나누는 채널입니다. 성경과 유익한 강의들 그리고 책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영상들이 업로드 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거리낌 없이 나누었던 사도바울 처럼 저도 좋은 것을 선별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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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양식] 케네스해긴 365 326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드리기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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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최우선으로 중요한 기도임이 분명하지만 우리는 색각이 복잡해집니다. 지도자는 항상 비판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비판과 기도가 함께 갈 수 있는지 우리는 그 길을 찾아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제가 공부하면서 깨닫는 것들을 함께 나누는 채널입니다. 성경과 유익한 강의들 그리고 책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영상들이 업로드 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거리낌 없이 나누었던 사도바울 처럼 저도 좋은 것을 선별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기쁨입니다 ^^ 자율구독료(농협 351-0559-4987-23 홍근대)
[믿음의양식] 케네스해긴 365 325 무엇보다 먼저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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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들을 위한 기도에서 중요한 원칙들이 빠져 있었던 것을 알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깨닫는 것들을 함께 나누는 채널입니다. 성경과 유익한 강의들 그리고 책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영상들이 업로드 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거리낌 없이 나누었던 사도바울 처럼 저도 좋은 것을 선별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기쁨입니다 ^^ 자율구독료(농협 351-0559-4987-23 홍근대)
신약비평학자들의 황당한 주장들을 반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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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양식] 케네스해긴 365 324 감사의 능력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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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할 때 비로소 믿음이 완성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믿음은 항상 같이 있습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깨닫는 것들을 함께 나누는 채널입니다. 성경과 유익한 강의들 그리고 책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영상들이 업로드 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거리낌 없이 나누었던 사도바울 처럼 저도 좋은 것을 선별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기쁨입니다 ^^ 자율구독료(농협 351-0559-4987-23 홍근대)
[믿음의양식] 케네스해긴 365 323 성장하기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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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신실하게 반응하고 연습하는 가운데 일어납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깨닫는 것들을 함께 나누는 채널입니다. 성경과 유익한 강의들 그리고 책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영상들이 업로드 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거리낌 없이 나누었던 사도바울 처럼 저도 좋은 것을 선별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기쁨입니다 ^^ 자율구독료(농협 351-0559-4987-23 홍근대)
[믿음의양식] 케네스해긴 365 322 말씀을 보내어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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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 말씀대로 믿고 기록된 말씀대로 행하면 그 말씀은 그대로 역사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깨닫는 것들을 함께 나누는 채널입니다. 성경과 유익한 강의들 그리고 책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영상들이 업로드 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거리낌 없이 나누었던 사도바울 처럼 저도 좋은 것을 선별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기쁨입니다 ^^ 자율구독료(농협 351-0559-4987-23 홍근대)
복음이란 무엇인가? 아는듯 하지만 정작 모르는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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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핵심을 짚어내기란 쉽지 않은 것이 또한 복음입니다. 이 영상은 복음에 대한 간단한 스케치입니다. 일단 복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새롭게 하는 기본 작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깨닫는 것들을 함께 나누는 채널입니다. 성경과 유익한 강의들 그리고 책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영상들이 업로드 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거리낌 없이 나누었던 사도바울 처럼 저도 좋은 것을 선별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기쁨입니다 ^^ 자율구독료(농협 351-0559-4987-23 홍근대)
[믿음의양식] 케네스해긴 365 321 다른 사람들을 위한 믿음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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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믿음에 대한 무지의 댓가는 생각보다 큽니다. 수많은 질병과 고통과 심지어 죽음까지도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있었더라면 막을 수 있었고 피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바르게 배우고 적용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깨닫는 것들을 함께 나누는 채널입니다. 성경과 유익한 강의들 그리고 책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영상들이 업로드 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거리낌 없이 나누었던 사도바울 처럼 저도 좋은 것을 선별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기쁨입니다 ^^ 자율구독료(농협 351-0559-4987-23 홍근대)
[믿음의양식] 케네스해긴 365 320 영적 갓난아기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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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양식] 케네스해긴 365 319 일차하여 기도할 때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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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심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합심입니다. 두 사람이 합심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깨닫는 것들을 함께 나누는 채널입니다. 성경과 유익한 강의들 그리고 책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영상들이 업로드 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거리낌 없이 나누었던 사도바울 처럼 저도 좋은 것을 선별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기쁨입니다 ^^ 자율구독료(농협 351-0559-4987-23 홍근대)
[믿음의양식] 케네스해긴 365 318 너희가 구하는 것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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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다 받습니다. 내가 그것을 믿고 구하는 것이 그 조건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매우 단순하고 강력한 진리입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깨닫는 것들을 함께 나누는 채널입니다. 성경과 유익한 강의들 그리고 책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영상들이 업로드 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거리낌 없이 나누었던 사도바울 처럼 저도 좋은 것을 선별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기쁨입니다 ^^ 자율구독료(농협 351-0559-4987-23 홍근대)
[믿음의양식] 케네스해긴 365 317 모든 분야에서 믿음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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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기 보다 사탄의 방해를 대적하는 것이 훨씬 올바른 것입니다. 믿음을 모든 영역에서 적용할 때 우리의 삶은 이전과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깨닫는 것들을 함께 나누는 채널입니다. 성경과 유익한 강의들 그리고 책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영상들이 업로드 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거리낌 없이 나누었던 사도바울 처럼 저도 좋은 것을 선별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기쁨입니다 ^^ 자율구독료(농협 351-0559-4987-23 홍근대)
[공부하는산골목사] 사도직은 사라지지 않았다/사라진 적이 없었다 #신사도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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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산골목사] 사도직은 사라지지 않았다/사라진 적이 없었다 #신사도반대
오순절 방언이 외국어가 아닌 성경적 이유들 #이지성 #정동수 #이건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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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방언이 외국어가 아닌 성경적 이유들 #이지성 #정동수 #이건중요
[짤강]고넬료의 방언이 외국어가 아니라면 오순절 방언은 어떻게 되나... #성령 #정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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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강]고넬료의 방언이 외국어가 아니라면 오순절 방언은 어떻게 되나... #성령 #정동수
[특강] 성경이 말하는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에 관한 성경적 논의들 #타나토스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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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성경이 말하는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에 관한 성경적 논의들 #타나토스 #아담
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우리의 온전하고 전인격적인 구원을 이루어주십니다! 할렐루야! 저도 평소에 혼과 영을 구분해서 영은 마치 온전한 것처럼 설명하는 것이 항상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히4:12에 따르면 혼과 영의 구별을 말씀하시지만, 말씀은 각각을 쪼개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이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런데 프쉬케스와 하르몬 뒤에 각각 나오는 te는 후치 접속사이기 때문에 te의 앞 단어들에서 의미 단락을 끊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psyches te kai pneumatos / harmon te kai muelon). 그리고 te...te는 "~뿐 아니라 ~도"의 구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1) 살았고 (2) 운동력이 있고 (3) 좌우의 날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기를 혼과 영 [각각]뿐만 아니라 관절과 골수 [각각도] 찔러 쪼개고 (4) 생각과 마음의 뜻을 감찰하신다." 이렇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이 육체에 관여하여 되는 것이 방언이라고 하셨는데 반대로 육체의 행동이 영에 관여하는 것도 가능한가요? 이를테면 세례나 성찬을 받을 때, 혹은 구레네 시몬이 의지를 거슬러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따라간 것 등이요.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선하신 하나님께 감사! 감사드립니다~
정동수 목사님 설교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지식과 비판만 가득하고 열매가 없습니다. 얼굴과 표정에 예수님의 사랑이 들어나지 않는다는거죠. 예수님의 사랑이 임하면 저렇게 설교를 하지 않는다는거죠. 공부하는 산골목사님의 심령에는 주님의 사랑이 느껴지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정동수 목사님 얼굴보면 고집과 날카로움이 느껴져서 영상을 보는 것도 쉽지 않더군요...
그럼목사님 육신의 정욕 일때 그게 사르크스 인건가요?
타락해서 변질된 사르크스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pastorhongtv공부하는목사 영상들 잘보고있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아멘❤
아멘❤
제가 고민하는 주제는 과연 신학이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인가...입니다.
목사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많은 교회 채널들이 댓글 사용 불가입니다^^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ㅜㅜ 😂 목사님께서도 상처 받지 않고 소신 있게 영상 올리시려면 댓글 사용 불가로 막아놓으시면 어떠실까요~~ 😂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저는 상처 받지 않고 어떤 댓글도 상관없습니다~^^
염안섭씨는 말부터고쳐야 팔이가뭔지.., 염안섭씨 신학했나요?
네 신학하고 목사 안수까지 받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ㅜ 선한목자 교회 24만 유투버가 그냥된것은 아니라고봅니다 염안섭 씨가 판단하실목사님은 아닌듯합니다
염원장은 오버를 많이 해요(
염원장 오버하는면 많아요 산골목사님 객관적으로 잘설명해 주시네요
이번 2024년 유기성목사는 로잔대회 준비위원장도 했네요.
저는 그냥 킹제임스가 좋은 이유는 다른거 없습니다. 읽기 편해서요. 기존 개역성경은 진짜 뭔말인지도 모르겠는 문장들이 너무나 많아요. 그걸 그저 내가 부족해서이다. 성령이 도와주셔야 이해할수있겠지 라고 넘어가는것들이 많습니다. 근데 킹제임스는 훨씬 읽기 편해서 좋습니다.
칠십 오세 된 인간 입니다. 우리때는 교회를 나가면. 약간의 지식층, 부유 층으로. 선입견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반대로 ....
동화책 낭독해주는 사람은 있어야제 ㅎㅎ
들어주니 고맙네요~
@@pastorhongtv공부하는목사 창조동화 많이믿으세요~
"사도행전 1: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서 반드시 'from whom'이 있어야 그 단어의 뜻이 완성됩니다. 예수님의 사도가 되는 기준은 명확합니다. '예수님이 부르신 자들이어야 하고, 함께 예수님을 목격해야 하고,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더불어 부활을 증언할 자'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아포스톨로스는 교회가 파송해도 아포스톨로스이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르치고 파송해도 아포스톨로스입니다. 서로 종류가 다릅니다. 사도는 12사도로 완성되는 것이고, 마지막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주님이 직접 부르신자로서, 나중된 자입니다. 그 외, 교회가 불러서 보낸 아포스톨로스나, 제자들이 불러 보낸 아포스톨로스는 '예수님의 사도'가 아니라, 그냥 교회의 보냄을 받은 자, 제자들에게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단어에 혼동되면 안 됩니다. 또한, 12사도로서 사도가 완성되어 사도는 없지만, 사도성은 있습니다. 즉 사도의 핵심은 '복음 전파'인데요, 그런 사도적 성격, 사도적 직무, 사도성은 현재에도 교회에 있는 겁니다. 다만, '나도 사도다' 이렇게 하면 곤란하구요. 그러면 그 사람의 말은 '성경'이 되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사도의 말씀은 성경적 권위가 있습니다. 벧후 3:15-16을 보세요. 그러므로 함부로 '사도다' 이러면 큰 일 나요. 자기가 한 말이 성경이 됩니다. 이단이죠.
제 영상을 듣지 않으신 듯하네요. 댓글의 내용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 들어 보시고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2사도와의 구별은 저도 영상에 얘기한 부분입니다. 바울이 사도이면 바나바도 사도임을 사도행전 14장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그리고 사도라고 다 성경을 기록한 것도 아니고 사도가 아니라고 성경을 기록하지 않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성경과 사도를 관련지을 수는 있어도 사도면 그 말이 성경이 된다는 주장은 지나친 것입니다. 저도 현재 누가 사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후서 3장 15~16절 말씀은 사도성과는 크게 관련이 없습니다. 해석에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영상을 꼭 안보고 쓰시는 분들이 있네요 ..
불의와 타협하지 말라 하시고 영적 분별력을 중요시 여기셨던 주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핵심적인 질문을 드립니다. 1. 은사의 분명한 목적은 "타인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고전12:7) 은사의 기본인 사랑의 형태중 하나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전13:5) 은사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존재합니다. (고전14:12) 그렇다면, 사람에게 말하지 않고(고전14:2), 자기 유익만 세우는(고전14:4) 알지 못한 언어, (무지)방언기도는 은사입니까? 2. 고전14:21에서 인용하는 이사야28장에서, 방언으로 심판받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불순종한 것입니까?
좋은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1. 은사의 목적이 교회를 세우는 것임은 분명하고 또 서로 은사를 사용함으로 세워지는 것은 성령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 때 방언은 자기를 세울 수 있는 유일한 은사로 보입니다. 이 또한 전체.은사의 목적과 부합합니다. 첫째는 나 자신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세운다는 것은 곧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를 건강하게 세움으로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이기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다른 은사들은 잘 사용하면 자기도 동반성장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2. 이사야 28장이 말하는 방언의 일차적인 의미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므로 이스라엘을 시기케하여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으로 이해됩니다. 고린도 교회에 적용한다면 이방인의 교회인 고린도교회가 성령의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풍성하고 방언도 말함으로 이중적인 성취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수준미달인 고린도교회에 성령의 은사가 풍성한 것에 대해서 바울이 보기에도 저런 성령의 은사를 이스라엘이 받았더라면... 하는 마음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pastorhongtv공부하는목사 말씀하시는 답변들을 계속해서 들어보니, 이미 답을 정해 놓으시고 그 틀 안에서만 답변하시네요. 1. 또 본문이 가지고 있는 문맥과 전혀 맞지 않은 엉뚱한 주장을 하십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안에서 분명하게 '나를 세우는 것'과 '교회를 세우는 것'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이기적인 고린도교회 은사주의자들에게 쓰는 교정서신입니다. 또한 사족으로, 주장하시는 내용은 성경의 핵심과도 맞지 않습니다. 나를 세우고 회복해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내가 나를 세운다는 것은 성경과 반대되는 주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너를 회복하고 세워주셨으니, 너는 그것을 힘입어 다른 사람을 이웃을 교회를 세워가라는 것이 성경과 예수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2. 말씀하신 답변은 이사야28장을 모르시거나, 읽으신게 아닌 답변 같습니다. 너무 말이 안되서 좀 말문이 막히네요.... 이사야28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조롱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으로 심판하겠다는 선고 내용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너희에게 알지 못할 언어가 나타나는 것은 거역하고 조롱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불순종한 증거라는 주장입니다. 즉,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증거니까 하지 말라는 문맥이지요
염안섭 원장님에게 비판받을땐😮😮 돌아오기를 바라며 회개하라고 하지 송사해서 삥뜯으려는 걸 본적없는데 😂😂 열매를 보면 알수있잖아요 😢😢 그게 사과나무인지 배나무인지요 그 대상자들이 말이죠😢😢 그들이 신사도 등 예전에 한 때 지나간 과거의 기억도 안나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전향했다면 회개의 표현후 다시는 그러지 않아야는데 그렇지 않아요 차씨 도 그렇고 모텔남도 그렇고 아이고 퇴직금 그런일 있으면 몰수 당해도 싼데 말이죠 결국 그들을 참된 목자일까요? 수많은 사람들을 실족케 했다면 연자맷돌에 달아 죽는게 낫다고 하신 말씀 기억하면 천국에서 함께 할수있을지 염원장님은 협박과 위협을 대놓고 받는거고 그들은 대놓고 삯꾼의 길로 가는거 아닌가요? 아무튼 염원장님 화이팅이고요 산골목사님이야말로😢😢 분별이 좀 .. 왜요 신천지 등 발담구다가 전향표시없이 간 사람에게 과거지사 말한다고 비판말라는건 좀 옹호하셔야 하는건.. 좀 차라리 신천지랑 mou맺는 교회나 아작내주시면서 비판하시는걸로 마무리하시죠 😂😂😂 유기성 목사님 선한목자교회에서 장소제공 예전단 한것도 아이합 소개도 많이 했고 쓴뿌리책 홍보하는것도 불건전 으로 분류되는 이들도 예전단 강사로 이*희, 김*의 설교자로 서는거도 장소제공해주고 돌이켜보니 청정치는 못했던 거 같아요 😂😂
저도 염원장님 응원합니다. 다만 염려되는 점을 말씀드린거지요.
아멘!!!
답글 기다리다가 또 반론 드립니다. 13장의 주요 내용은 은사는 개인의 능력이나 유익이 아닌 '다른사람을 향한 <사랑>'임을 강조하는 본문입니다. 이점을 삭제해버리니까 영상같은 왜곡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1-3절은 초자연적 현상이나 능력조차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님을 4-7절은 사랑의 형태들을 설명합니다. 8절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 결국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앞선 내용의 반복으로, 표면적인 능력이나 행위들이 사랑보다 낮은 것들임을 비교하고있지요. 사랑 그 자체인 하나님과 예수는 영원이기 때문입니다. 9-10절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 바울도 편지를 쓰는 당시 부분적으로 알고 예언한다고 말합니다. 온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 합니다. 사도들이 파편적으로 예수를 예언하고 방언 말하며 지식을 알고있지만, 직접 오신다면 이러한 것들은 당연히 끝나지요 11-12절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 11절은 비유입니다. "어린아이"는 "지금 우리(바울 포함)"를 "장성한 사람"은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그때"와 대치입니다. 즉, 편지를 쓰고있는 바울도 부분적으로 알고 온전히 모르는 어린아이입니다. 온전한 것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은사중지론자들의 주장은 오류입니다. 온전한 것은 "예수"이며 바울이 말하는 예언도 방언도 지식도 예수를 가리키는 도구들입니다. 따라서 그 예수가 온전히 오시는 날엔 그것들은 필요가 없어집니다. 따라서 13장이 설명하는 은사 방언은 예수를 말하는 언어능력인 것입니다. 기도가 아닙니다.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이 일관된 주장으로 14장이 이어지게 됩니다.
좋은 반론에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댓글을 쓰실 때에는 저의 글에 붙여서 쓰지 마시고 새로 댓글을 써주시면 제가 보는 관리창에 뜹니다. 밑에 붙여서 쓰시면 일부러 찾아들어가지 않으면 놓치게 됩니다. 우선 온전한 것은 성경이 아니라는 부분에는 공감이 되었네요. 성경과 재림 두 가지가 현재까지 이 본문에 대한 유력한 해석이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는 재림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문맥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제가 은사를 활용하면서 느낀 것이 시간이 갈수록 의존도가 낮아지는 것을 보았지요. 저의 경험과 본문을 비추어 보았을 때에 문맥상으로는 온전하다는 것이 장성한 자라는 의미라면 훨씬 자연스럽다는 점을 발견하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장성한 자라는 뜻은 아닙니다. 1. 장성한 분량과 완전함은 성경에서 성도의 성장할 분량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엡4:13 마5:48 2. 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을 온전히 이룬 자라고 하였습니다. 빌3:15 3.물론 이것은 성화의 과정에서 어느성장 수준을 일컫는 것으로 보아야합니다. 요한사도가 아이와 청년과 아비로 구분하듯이 성장단계에서 청년이면 아이와는 다르게 완전한 성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4. 14장에서도 품위와 질서를 강조하고 은사를 사용함에 있어서 지켜야할 기본기를 가르쳐준다고 봅니다. 5. 예수님이 우리의 의가 되시고 완전함이 되신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본 문맥에서 바울이 예수님을 의미한 것이라면 비인칭 대명사를 사용할 이유도 없을 것같고, 직접적으로 주님이라고 언급하지 않을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6.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온전히 알게된다는 말씀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야한다는 말씀에 잘 부합합니다. 7. 장성한 자가 되면 은사를 의지하지 않게 되는 원리는 은사를 사용하는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고 유익한 가르침이라고 사료됩니다. 은사는 성숙함의 표지가 아니며 성숙을 위한 도구임을 알아야 하고 은사를 잘 활용함으로 성숙해질 때 자연스럽게 폐하여 지는 것이 좋습니다. 8. 예를들면 병고치는 은사는 현대에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습니다. 이전처럼 교회에서 치유받을 일이 적을 뿐더러 교회에서 치유받게 하는 것은 법적책임을 져야하는 사태도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불치병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또 불치병이라도 치유받은 다음에는 치유은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은사는 쓰고나서 용도가 다하면 멈추거나 폐하여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9. 지식의 은사나 예언의 은사는 예배에 활용될 정도로 유익하지만 성도가 성숙하면 지혜로 대체됩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는 말씀처럼 성숙함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장성한 분량이 이릅니다. 10. 그러므로 바울은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마디 하는 것이 일만마디 방언보다 낫다고 한 것입니다. 깨달음은 지혜의 영역이고 지혜가 충만하면 예언이나 지식의 은사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11. 바울이 어린아이라고 하신 것은 동의가 안되네요. 그도 인간이라는 약점이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흔치 않은 아비가 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12. 14장은 예언과 방언을 비교하면서 예배 모임에서 유익한 것은 방언이 아니라 예언이며 이 방언은 통역하여 예언처럼 쓰라는 것입니다. 13. 당시 교회는 성경도 없고 지도자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 상황에서 예배 시에 은사들로 서로 섬기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자라도록 의도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지혜가 부족하다고 바울이 꾸짖는 대목도 있는데 깨달은 마음으로 교회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지면 예언이나 방언통역도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14. 사랑은 은사를 사용하는 길로 제시되었고 은사가 사라져도 계속 항상 있는 것이므로 사랑이 제일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pastorhongtv공부하는목사 1. 계속해서 다른 신약들의 구절을 파편적으로 붙이시는데, 제가 드리고자 하는 주요내용은 본문 안에서의 문맥과 이해에 관하여 입니다. 언젠가 로마서 구절인용을 사족이라고 말씀드렸듯이, 파편 구절이 갖고있는 문맥과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현재 본문에 갖다붙이는건 위험성이 너무 높기 때문에 딱히 추천하지 않습니다. 2. 편지를 쓰고있는 바울은, 자신을 분명하게 어린아이의 때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11절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 본문은 영적인 성장이나 성화와는 관련이 없는 내용입니다. 앞선 9,10절과 다음 12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비유예시 이지요 다시말해 어렸을 때와 장성한 때를, 온전한 것이 오기 전과 온 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서술한 것입니다. 9-10절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2절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 어렸을 때 -->> 지금 우리 => 희미하게 봄 장성한 사람 -->> 그 때(온전한 것이 올 때) =>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봄 어렸을 때 -->> 내가(바울 본인) => 부분적으로 암 장성한 사람 -->> 그 때 (온전한 것이 올 때) => 내가 (바울 본인) 온전히 주님을 알게 됨 주장하시는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문맥입니다. 3. 병 고치는 은사는 주님 오실 때까지 유효합니다. 전문 의학을 배워 타인의 병을 고칠 것입니다. 은사를 자꾸 초자연적인 것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말씀하신(8번)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천주교의 유래 우드워즈저 정동수 역 우선 이책을 먼저 보고서 신학을 말해요 이단이라기 보다는 순수성경의 진리를 말한 다고 생각됩니다
훌륭한 작은 교회 목사님들 교회를 큰 교회가 얼마나 많이 잡아 먹었읍니까 교회가 그렇게 문을 닫고 있는데 큰 교회가 하는 영향력은 뭡니까 돈입니까? 당신은 큰 교회 큰 교회 그렇게 얘기하는데 지금 세상이 변하고 있어요. 어떻게 이런 생각으로 이런 영상을 올립니까?
대표이고 영향력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겸손하게 나 귀를 타셨는데 수백 명 사람들이 박수를 받고 그렇게 대접을 받고 그게 목사 입니까 의문스럽습니다. 아직도 한국 교회는 큰 거 큰거 찾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천을 듣고 만을 쫓는 사람이 중요하지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왜 모르세요 ... 큰 교회 합니까? 작은 교회라고 막말을 해도 참 이 분도 이상한 생각 갖고 있네요
한 사람도 숫자입니다. 제가 말하는 영향이란 그 한사람을 실족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영향력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알려진 사람에 대해서 조금더 신중하자는 취지입니다. 특별대우를 하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댓글은 감사합니다만 자신의 이름이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저에게 쉽게 얘기하시는 분이 나귀 타신 예수님을 운운하는게 맞는지는 의문스럽네요.
예수님을 놋뱀으로 매칭하는게 이상하다고 여겨졌던 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아..그렇구나 감탄이 나옵니다 참으로 성경은 깊고 깊은듯합니다
* 모인 사람들은 자기 나라 말이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인가? = 그렇지 않다. 유대인으로서 히브리어, 공용어인 아람어로 알아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 공용어나 아람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면 되지 않는가? = 본문의 의도는, 눈으로 표적을 보아야만 하는 어리석은 유대인을 위해 유창한 외국어를 모르는 갈릴리 촌놈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하는것에 놀랐다는 것이다. 초자연적 표적을 통해 유대인들을 집중시켰다. *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들을 술 취했다고 조롱할 이유가 있었는가? = 패역한 유대인들이 표적을 보고도 거부한 내용은 항상 등장한다. 예수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자 이건 하나님이 아닌 바알의 능력을 빌렸다고 거부해버렸다. * 그 방언이 전도였다면 왜 즉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베드로가 설교를 하였는가? = 방언 자체는 전도가 아니었다. 마가복음 16장14-20절의 완성이다. * 모든 민족이라면 왜 당시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말만 하게 되었을까? 모든 언어가 나와야 하지 않는가? =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디아스포라2세들을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 왜 지금까지 선교를 하면서 이 외국어 방언이 나타나지 않고 있을까? 선교를 위한 은사라면 마땅히 선교할 때에 나타나야 하지 않는가? = 표적방언은 유대인을 위한 표적이기 때문에 없고, 은사방언은 초자연적 언어가 아닌 그냥 언어능력을 말하기 때문이다. * 성경을 기록하기 위한 외국어 방언이라면 성경의 선교현장에서 왜 외국어 방언을 했다는 기록이 없는가? (혹은 교회사의 사도들의 선교에서) = 처음 들어본 주장인데, 구지 답변을 하자면 바울은 여러 지방에 선교여정을 다녔다. 다국어에 능통했다 ^^ *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하는 그런 목적을 위해 주신 은사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 중복답변으로, 표적방언은 선교를 위해 주어진게 아니었다. * 한 예로 고넬료와 그 집에 모였던 사람들의 방언은 외국어일 필요가 없지 않는가? = 오순절 때 / 120명이 / 여러 지방 언어들을 말했고 / 알아듣는 디아스포라2세들이 들었다. 후에 / 고넬료가정이 / 히브리어를 말했고 / 베드로와 유대인들이 알아들었다. 오순절 때와 같았다는 베드로의 진술에 모순이 없다. * 그렇다면 그 때에 그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네 말로 들을 수 있었는가? = 자기네 언어를 말했기 때문이다. * 만약 그들이 성령님의 특별한 역사로 알아듣게 되었다면 성령님께서 불신자(그시각 기준)에게도 은사를 주실 수 있는가? 그렇다면 바벨의 반역을 되돌리시는 성령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가? = 본문 문맥과 관련 없는 질문이다. * 보통 외국인이 우리나라 말을 잘하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 오! * 간혹 발음이 너무 좋아서 진짜 우리말처럼 들리는 것에 놀랄 수도 있지만 오순절은 그런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 나라 말을 잘하는지 신기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 신기해 한다. 7절)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13절)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 당시 상황에서 외국어로 말하는게 뭐가 그리 신기하고 놀라울까? = 갈릴리 촌놈들이 유창한 외국어를 말하기 때문이다. 7절)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 만약 제자들이 유창한 언어를 말했다면 그들은 이 사람들이 우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냐고 물었어야 하지 않나? = 갈릴리 사람들인 것을 알고 있었다. 7절)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 갈릴리 사람들이라는 것은 옷차침으로 구분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어로써 구분했다고 보아야하는데 그들이 갈릴리 사람들이라고 한 것은 그 언어를 머리로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 만약 그랬다면, 이 사람들은 어느 지역 사람인지 조차 몰랐어야 한다. 갈릴리 사람인지를 어떻게 구별했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팩트는 그들은 알아봤다는 것 뿐이다. * 당시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알아들을 수 있었을까? = 그렇다. 공용어이든지 최소한 모든 히브리인들은 히브리어를 모어로 습득한다. * 방언이 외국어 였다면 왜 베드로는 방언으로 설교하지 않았나? = 표적방언은 유대인들의 이목을 끌기위한 수단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 베드로의 설교는 어떤 언어였을까? = 중복답변으로 공용어이든지 히브리어가 있다. * 만약에 히브리어나 아람어 혹은 당시 공용어 중에 모두 알아듣는 언어가 있었다면 외국어 방언이 구태여 필요했단 이유가 무엇인가? = 복음, 즉 예수를 모르고 거부한 유대인을 위한 표적이었다. 고린도전서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 베드로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말하는 이것을 부어 주셨다"고 하는 것이 적당한가? = 불의 혀와 여러 지역언어를 보고 듣는다. 글을 쉽게 읽었으면 한다. 33절)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그렇다면, "보는" 능력의 은사도 있다고 주장해야 하는가? * 방언이 외국어라면 그 나라 말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이 바른 용도이다. 그러나 14장에서 방언을 예배시에 사용하도록 한다. 그리고 통역을 하도록 한다. (중략) 방언이 외국어라면 오직 외국인이 있는 상황에서만 필요하지 않겠는가? = 고린도전서를 완전히 오역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정확하게 말해서 바울은 다른사람들이 이해하는 언어를 사용할 것을 권면한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다른사람이 알아듣지 못할 언어를 은사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등장했고 따라서 바울은 통역하여 다른사람에게 말하기를 권면한다. 논리적 모순이 없다. * 외국어만 방언이라면 통역의 은사를 구하는 것은 아무런 필요가 없다. 그 나라 말을 알아 듣는 사람을 위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 은사 방언을 말한다는 가정하에 그렇지 않다. 내가 일본 방언 은사가 있는데, 미국에 가서 일본 방언을 한들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때 영어 방언 은사가 있는 일본인이 통역을 해준다면 문제가 없다. * 방언기도라는 말에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께 말하는"것이 기도가 아니면 무엇인가? = 기도로 해석 가능하다. 문맥상 정확히는 하나님께 외치는 것이랄까? 단지 그것은 은사가 아니라는 구절이다. * 알아듣는 자가 없기 때문에 방언이 방언이 무용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알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주신 성령님은 알아들으신다. = 바울은 12장 부터 꾸준하게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것을 은사라고 정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 하지 않는 (무지)방언을 은사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에서 말하는 방언이 오순절의 방언과 다르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구분한 것 같지 않다. = 전혀 그렇지 않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 심지어 고린도 교회의 방언은 신전의 창기들이 이교에서 쓰던 방언을 교회에서 했기 때문에 금지시켰다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도 있다. = 물론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이교 신전에서 방언기도를 했다는 기록은 분명하고 14장 후반부에 (무지)방언을 하는 여자들을 꾸짖는 내용이 있다. ** 또한 이교도나 무당들도 방언을 하기 때문에 요즘 교회에서 하는 방언은 성경의 방언이 아니라는 말까지한다. = 이건 나도 동의하지 않는다. ** 앞에서 살표 보았듯이 오순절에 120문도들의 방언도 외국어가 아닐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 작은 말장난으로 가능성을 시사했을 뿐이지, 문맥이나 핵심은 뒤집지 못한다. ** 방언은 처음부터 다양한 종류가 있었으며 그 중에 하나가 외국어를 말하는 방언이 있을 뿐이다. 소위 표적 방언이다. = 성경적 근거가 없다. 요약정리 대다수의 은사주의 진영에서 조차 오순절 표적방언은 120 제자들이 새 방언, 지역언어 말했음을 인정한다. 방언은 기도가 아니다.
먼저 성실한 비판에 감사드립니다. 흥미롭고 유익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1. 방언에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것은 고전12:10;28에 "각종 방언" 이라고 되어 있으니 최소한 두종류 이상의 방언이 있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2. 바울이 알아듣는 말로 하라고 한 것은 교회 모임에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당시 교회는 건물과는 상관없고 모임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하는 말은 당연히 알아듣는 말이어야 합니다. 그 외에 방언 활용에 대해서는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고전14:28)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와 하나님께 외국어를 말해야할 이유는 없겠지요. 표적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3. 오순절 방언은 단지 주의를 끄는 수단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주관적 해석의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회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맞춘 해석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은 후회(취소)하심이 없습니다(롬11:29). 4.디아스포라 2세들을 위한 표적이라면 그들은 유창한 외국어에는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을 듯합니다. 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봅니다. 다들 하는 외국어니까요... 나머지는 시간관계 상 조금 후에 적어 보겠습니다.
@@pastorhongtv공부하는목사 1) 네 맞습니다. 고린도전서12장에 등장하는 은사방언은 각 지역, 지방, 나라 언어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두종류 이상의 각종 방언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2) 정리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할 언어를 은사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등장했습니다. 바울은 그건 은사가 아니라고 교정합니다. 때문에 통역까지 언급이 되지요. 즉, 알아듣지 못할 언어는 은사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개인의 기도라 할지라도 마음의 열매가 없음을 지적합니다. (고전14:14) 3) 오순절 표적방언에 또 은사를 붙이시는건 오류입니다. 사도행전은 은사를 말한적 없습니다. - 유대인은 표적을 보아야 믿는 민족이라는 설명은 성경 전반에 걸쳐 꾸준히 언급됩니다. - 마가복음 16장에 예수님은 제자(사도)들이 표적으로 복음을 전할 것을 예언하십니다. - 2장, 10-11장 모두 표적으로서 복음을 온전히 모르는 유대인이 등장하는 것은 팩트입니다. = 모든 정황과 문맥을 살폈을 때, 표적은 단회적이 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사족으로 언급하신 로마서의 내용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율법에서 자유한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을 차별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붙이실 구절이 아닙니다. 4) 5절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절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절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이 문맥을 보고,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는 결론을 도출하기란 참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말씀 잘 듣고 주님께 고백도 드리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믿음의 양식(10월8일) 🍎 영광 받으시는 아버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 14:13) 이 얼마나 엄청난 약속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날 때, 새로운 탄생으로 인하여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권세와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 이름에 부여된 모든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려는것 입니다. 그 아들은 이 땅에서 버림 받았습니다. 그는 세상 앞에서 벌거벗은 채로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수치가 선포되는 곳마다 인류에게는 축복을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며 예수 이름의 힘과 능력과 명예도 늘 따라갔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이 땅에서 예수님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위에 계실 때 행하신 모든 것들은 이제는 믿는 자 누구나 동일하게 행할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이름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것,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 예수님의 존재 그 자체, 예수님의 앞으로의 모습, 이 모두가 지금 그 이름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때, 우리는 갈보리에서 그분께서 온전히 다 이루신 그 모습을 불러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살아계신 그리스도, 치유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입니다! 🍒 고백 나는 말씀에서 지시하는 대로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겠습니다. 아멘!
성령을 기다리고 받은 제자들 표적을 본 유대인들 베드로의 설교 3000명의 회심 이 맥락에서 자신의 오류를 어떻게든 버리지 못하니까 왜곡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먼저 아직도 사도행전의 표적을 은사라고 지칭하시는 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사도행전의 표적방언에 대해서는 이전영상에 충분히 답변 드렸습니다만 이해를 못하시는 것인지 인정을 안하시는 것인지요 아주 만약에 '들리는 능력'이라는 것이 있다면, 왜 바울은 통역은사를 언급합니까? 그냥 들리는 은사를 구하라 는 것이 더 논리적입니다. 퇴근하고 고린도전서 오류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충분히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를 오류라고 할만큼 증명이 되는 것도 아니고 저의 견해를 반박하시기 보다는 의견을 밝히는 수준에서 마무리 하시면 좋겠네요. 이런 문제는 시간을 두고 좀 더 연구하다보면 점점더 분명해지는 면들이 생깁니다. 당장 내 말 들으라는 식으로는 해결이 안될 거라고 봅니다.
@@pastorhongtv공부하는목사 이전 영상들을 모두 들어본 사람으로서 명백한 오류들이 있기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잘못된 점은 서로 반박하여 옳은 것을 찾아가는게 옳지 않을까요 1. 성경은 사도행전의 표적방언도 고린도전서의 은사방언도 다른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것에 관심이 있지, 타인이 알아듣지 못할 말소리엔 관심이 없습니다. 2. 사도행전 그 어디에도 방언을 은사의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3. 고넬료 사건을 설명드렸지만 그 어떤 코멘트도 없으십니다.
큰교회목사는 함부로 건드리면 안된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ㅎ ㅎ
그럴리가요 ㅎㅎ
아멘
그러게요 성경근거도 못 제시 못하면서 희미한 자기 생각을 은근히 갖다 붙이면서 방언을 방언기도로 둔갑 시키고 비진리를 퍼트리니 답답하죠
성경 근거는 다른 영상도 참고해 주세요. 조롱하는 투로 계속 댓글달면 차단합니다. 방언이 기도가 아니라고 하는건 문자주의적인 관점입니다.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기도가 아니면 뭔가요? 오순절 이후의 방언은 인정하지 않으려니 기도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요.
@@pastorhongtv공부하는목사 제가 인정하고 안하고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오순절에 각나라 언어가 아니고 다른 기도하는 방언이라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왜? 주신거죠? 그것이 그렇게 좋은것이라면 누구에게는 주고 누구에게는 안주시겠냐구요 하나님이 사람도 아니고 차별하실 필요가 없죠 방언기도 안하는 사람은 그럼 뭐예요? 저는 이해가 안되는게 어찌 사람의 생각을 하나님도 그렇게 하실거라 믿으신지요? 좋은것을 주기 원하시고 예수님의 생명까지도 주셨는데 방언을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아까워서 안준다는게 말이 되냐는거죠 하나님이 그러실 이유가 전혀 없자나요~ 방언기도가 그렇게 유익하다면 모든 성도에게 무조건 다 줘서 기도 많이 하게끔 하셔야죠 성도들중에 90프로 이상이 방언기도 안하자나요 그럼 누구 말이 더 설득력 있겠어요? 하는 사람만 특별은총을 받은거예요? 한번도 마귀가 표적이나 체험 그런거 좋아하는 성도들을 상대로 장난한다고는 연구는 안해보셨습니까? 말씀을 모르니까 그런거에 관심이 있으니 속는거 아닙니까? 방언기도하면 무아지경속에서 오래 하면 뭔가 들릿듯 보일듯 하니까 더 오래 더 오래 하려고 하는거죠 그런 체험이 없음 누가 그렇게 5시간씩 하고 있겠어요? 5시간씩 하고 나면 오래 기도했다는 자기 만족 아닙니까? 그런기도해서 무엇을 얻었는데요? 천국을 봤어요? 주님의 음성 비슷한 소리를 들었어요? 그런것도 마귀가 다 들려주고 보여주고 할수 있습니다 마귀역사지 어디 성령의 역사라고 방언기도 하라고 것짓된 것을 진리인양 가르치십니까? 그게 성령의 역사예요? 자기혼자 5시간씩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데 그것이 성령의 역사예요? 어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십니까? 혼자 떠드는것이지 하나님과 대화가 아니자나요 목나님 자녀가 아빠랑 대화한다고 자리 깔고 혼자 알수 없는 소리로 5시간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답답하지 않으세요? 왜 하나님이 그런것을 기도로 듣고 계신다고 이해를 하시나요? 열매도 없는것이니 하지 말라고 하자나요 고전 14장은 알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성경이니까 예의상 좋은 말로 쓴거죠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이 말씀을 잘못 독해 하시면 안됩니다 방언을 사람에게 해야지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반대로 하나님께 하느냐? 란 뜻입니다 하나님께 하라는 뜻이 아니구요 성경을 독해를 바르게 하셔야죠 대부분 사람들이 봐라 방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것이다 라고 이해를 하시는데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나니..하란 뜻이 아니예요 잘 읽어보세요 그리고 기도가 아니라 말을 하라고 하자나요 기도는 기도라고 말씀하자나요 쉬지말고 기도하라 쉬지말고 말하라 그랬어요? 기도하라고 하자나요 분명 그것이 기도라고 하자나요 그 말씀이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죠 어디 날마다 밤새서 방언기도 하라는 말씀이 있나 찾아보세요 없자나요 그렇다면 고전 방언에 대한 말씀을 목사님이 잘못 알고 이해하고 있는거죠~ 기분 나빠하실 일이 아니라 성경을 가르치신 목사님이라면 더욱 바르게 아셔야죠 바울이 방언을 많이 하므로 감사하다고 했는데 또 미쳤다는 소리 들으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은 그럼 뭡니까?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욕하는 꼴이되는건데 방언기도 하라는 뜻이 아니고 바울은 16개 언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방언으로 복음을 전할수 있는것에 감사한거예요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세요 하라고 하는것인지 하지 말라고 하는것인지 그정도는 분명히 알아야 되는거 아닌가요? 그런것도 혼돈하시면 어떡합니까? 제가 욕먹는거 상관없어요 기분도 안 바빠요 저는 바른 진리가 전해지길 바랄뿐입니다 비진리 앞에서만 까칠할 뿐이죠
@@pastorhongtv공부하는목사 그리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봐야죠 맘대로 자기들 입맛에 맞게 영적 해석을 하면 안되죠 자녀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못 이해 되게끔 비유나 상징으로 쓰겠어요? 기륵된 성경 말씀 그대로 읽으셔야죠 상징은 상징인줄 누구나 다 알게 써있고 비유는 비유라고 써 있어요 그리고 그런뜻으로 쓰였다는 용례도 있지요 그외에는 기록된 그대로 성경을 읽고 믿는것이지 어디 맘대로 영적 해석을 하시려고 합니까? 문자로 안보기 때문에 신천지 같은 이단이 생겨난거죠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니 이만희가 약속의목자가 된거 아닙니까? 누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 안된다고 하던가요?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못 이해되게 못 알아듣게 꼭 꼭 감추어 놓으셨어요? 누구나 읽고 믿게 하시려고 쉽게 써 놨자나요 계시록도 상징은 상징 다 알아요 그 외에는 다 기록된 문자로 그대로 읽어도 다 이해되는데 계시록도 다 상징이예요? 상징 아닙니다 그 말씀이 이해가 안되고 또 안 믿어지니까 그럴일이 설마 진짜겠어? 그러니 상징으로 풀어버리는 거예요 문자 그대로 읽어도 다 이해됩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안된다는 그 말은 정말 무서운 말입니다 성경을 변궤시키는 꼴이죠
목사님 본인도 방언에 대해 맞다고 확신이 없이 그럴것이다? 라는 표현을 쓰시는데 성경을 그렇게 두리뭉실 애매모호 긴가민가 혼돈하게 말씀 하시면 안되죠 영상을 올리시려면 본인 스스로 확실한 증거와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하셔야지요 자기도 확실하게 못 믿는 그런 애매모호한 주제를 가지고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올리면 안되죠 방언기도가 은사인줄 알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돈벌이 수단으로 쓰려고 올리신것인지요? 그런것이 아니라면 바른 진리를 올리셔요
성경해석에 있어서 경계해야할 사람은 저처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해석이 확실하다는 사람입니다. 성경이 진리라는 것과 사람이 해석하는 것은 별개로 생각하셔야합니다. 앞으로 확신에 찬 사람을 경계하시라고 부탁드리고 싶네요
@@pastorhongtv공부하는목사 제 생각을 지금 말하고 있는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죠 제가 말한것과 목사님이 말한것 둘중에 하나는 가짜겠죠? 하나만 진짜겠죠? 그런데 진짜를 가진 사람은 당당하거든요 자신 있거든요 진짜라고 확신에 차있죠 그것이 성경을 근거로 확신에 차 있는것이지 내 개인적인 주장을 하는것이 아니자나요 목사님 말씀이 맞다고 하고 싶으시면 제 질문에 막힘이 없이 답변을 주실 정도는 되야죠 시원한 답이 안나오는데 애매모호 한 답을 해주는데 어떻게 믿을수 있죠? 주님도 나를 믿어라 그러면 영생을 얻을것이다 라고 확실하게 말씀하셨으니 믿고 따르는거죠 나를 믿으면 아마도 천국에 올 수도 못 올수도... 있을거야 이렇게 말했다면 저는 주님 안믿죠 ~~목사님 말씀도 마찬가지죠 방언에 대해 분명하게 자신있게 말씀을 못하시면서 옳다고 확신있게 말하는 사람을 오히려 경계하라고 하면 목사님 말씀을 누가 믿으려고 하겠어요? 따라가다가도 뒤돌아 서겠네요 진짜 명품을 가진사람은 자신있게 말 할수 있는것처럼요~ 바울도 나를 따르라 했자나요 우리 이방인의 교사 아닙니까? 선생이 그정도 확신은 있어야 제자들이 따르죠
@@ejs4354성경을 말할 때 더욱 그래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본인이 믿고 있는 것이 성경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라고 믿는 것 같으신데요... 굉장히 위험해 보입니다. 그리고 확실히 자기가 맞다고 하며 다른 사람들 무시하는 사람들 중에 이단들도 있습니다. 저는 확실하다며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틀린 것을 수도 없이 봅니다. 저를 따르라고 이 영상을 올린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함께 찾아가자는 것이지요.
@@ejs4354 성령을 받아야 구원을 얻습니다 성령을 받았나요? 성령이 내주하심과 함께 각양 은사를 주시는데 오순절에서 보듯 그 시작은 방언이었습니다 물론 방언을 못해도 성령을 못받은건 아니지만 기본적인것을 부인한다면 말씀에 명확하게 사도행전의 중심 가치인데 그걸 왜 부인하는거죠?
@@newharvy77 자꾸 답답한 말만 하시는데 ....방언이 성령 받은 증거예요? 그런 무식한 말을 하다니요 그런말은 누가 했어요? 성령님이 방언 받은것이 곧 성령받은것이다 라고 하셨냐구요? 님들이 은사 받았다고 하는 랄라라 따따따는 뜻이 없는 소리 즉 알수 없는 소리라서 헛소리 라고 하는거예요 친구가 말도 안되는 말을 하면 야 ~~너 헛소리 하지마 라고 하죠? 님들이 하는 그 헛소리는 성경이 말하는 방언이 아닙니다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는지 모르지만 가짜들 한테 속으면 가짜를 붙잡고 가는거예요 오히려 마귀가 정상적으로 기도 못하게 하려고 넣어주는 알사탕입니다 그거 시작하면 5시간도 하고 있자나요? 구원 받은 성도가 뭐가 그리 부족한게 많아서 5시간씩 기도를 하고 있죠? 참 답답한 사람들이네 주님을 껍데기만 붙잡고 있나요? 모든게 다 감사한데 뭘 그렇게 기도할게 많죠? 은혜로 구원 받았으면 열심히 복음전하며 살면 되는것이지 무슨 할말이 그리 많아요? 그리 오래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주시는거예요? 정말 바보들이라고 하고 싶네요 말씀을 모르고 안 믿어지니까 어제 했던기도 오늘도 하고 도대체 반복되는 중언부언을 언제까지 할건데요? 그게 정상적인 기도예요? 차라리 그 시간에 복음을 전하셔요
목사님은 참 이상하게 성경을 연구하셨네요? 오순절에 방언이 외국어가 아니라면 ..각나라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시렵니까? 그때 그럼 랄라라 따따따 같은 그런 헛소리를 기도라고 하고있는 그런 방언기도가 터졌다고 말하고 싶으신가요? 그리고 방언을 언제 듣는 은사로 주셨습니까?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말을 할수있는 은사자나요 어디 듣는 은사를 주셨습니까? 그럼 지금도 랄라라 따따따를 하면 누구나 다 알아 들어야겠네요? 저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겠던데요? 자기들도 못알아 들으니 통변의 은사를 받고 싶다고 하던데 그게 무슨 앞뒤 안맞는 말입니까? 고전14장22절에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함이요 라는 이 말씀은 무슨 뜻이지요? 방언을 언제 믿는 자들에게 기도하라는 수단으로 주셨습니까?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함이 아니요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함이라고 써 있자나요 그리고 외국어라면 지금도 그런일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구요? 어찌 단회성으로 그때 한번만 주시고 지금은 외국어를 못하냐구요? 참 답답한 말씀 하시네요 그때는 성경이 쓰여지고 있는 과도기 입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겠어요? 표적이 있어야 믿을거 아닙니까? 그래서 믿게끔 하시려고 그런 은사 즉 표적을 주신거예요 갈릴리 사람들이 무식한 어부들인데 어? 저 사람이 어떻게 우리말을 저렇게 잘 하지? 이건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구나...이렇게 표적들을 보여 주고 믿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주신것이지 언제 믿는 성도들에게 기도하는 수단으로 쓰라고 주셨습니까? 이런 질문에 답 주실 수 있으신지요?
사도행전2:4에서 그들이 말한 것은 각 나라 언어를 말했다는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헤테로스 글롯사 입니다. ἕτερος는 다른, 질적으로 다른 것을 뜻합니다. 외국어로 번역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단어죠. 저는 성경에 없는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해석은 해석자의 신학과 편견이 들어갑니다. 우리는 그동안 오순절 방언이 외국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를 조롱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성경과도기? 그런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성경이 기록되는 시기에만 맛보기로 뭔가를 하신다는 생각이야말로 터무니 없는 것입니다. 댓글에 그외의 질문들은 제 영상을 신중히 들으시면 어느정도 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고린도전서 14장에 언급된 방언은 종류가 여러가지 있습니다. 고전12:10에 "각종 방언"이라고 하신 것처럼 방언은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pastorhongtv공부하는목사 각종 방언이 각 나라 언어입니다 무슨 대신방언 대인 대물 방언 이라고 하고 싶은것 같은데 성경에 나온 방언을 기도라고 기도를 붙여서 방언기도로 둔갑을 시키면 안되죠 각 나라 언어들로 말하기를 ~말하기를~ 말하기를 말을 한거예요 방언으로 기도하기를 시작한것이 아니자나요 어찌 방언에 기도를 살짝 붙이십니까? 마귀가 살짝 붙이듯이 맘대로 기도를 붙이면 안되죠 그러니 방언기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거 아닙니까? 입에서 갑자기 랄라라 따따따가 나오면 방언의 은사를 받은거예요? 무슨 이유로 하나님이 괴상한 소리를 은사라고 그것도 어느 특정인에게만 주시냐구요? 왜 그런것에는 그렇게 좋은 시각으로 보십니까? 사탄의 속임수라고는 발견 못하시겠는지요? 도대체 이해가 됩니까? 그런기도가 누구를 위함이죠? 하나님? 자기자신? 이웃? 아무에게도 유익이 없자나요 모두에게 유익이 안되면 그건 은사아닙니다 님들이 몇시간씩 랄라라 따따따를 하고 있는데 누구에게 유익이 되죠? 오히려 욕먹고 비난받고 시끄럽기만 하지 무슨 유익이 있는지요? 미쳤다는 소리도 들을수 있으니까 바울도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데 반대로 해석해서 은사라고 많이 하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목사님들은 성경을 깊이 연구해서 성도들을 바르게 잡아주셔야 되는데 오히려 반대로 가르치니 문제죠 성경인물 중에서 방언기도 한 사람 누구 있었나요? 있으면 저좀 알려주세요 알고 계셔요? 찾으셨어요? 없던데~ 눈 비비고 찾아도 없던데요 ~그런데 지금까지 없던것이 1980년대부터 느닷없이 갑자기 그것도 순복음 교단에서 생겨났죠? 근본도 없는데 갑자기 툭 튀어나온것이 은사겠어요? 이상하죠? 그때 주신 방언이 은사라면 지금까지 끓어지지 않고 믿음의 선배들이 해 왔어야 정상이죠 아무도 한 사람이 없는데 어느날 갑자기 누구집에 불나듯 거기에 불씨가 떨어진거예요? 말도 안되는 주장을 그리 애매모호 하게 하십니까? 목사님도 제 질문에 답글 시원하게 주실수 있으시겠어요? 여기 와서 댓글 다시는 분들이 다 공감되도록 자신있게 말씀을 올려주셔요 저는 확실하게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습니다 방언기도 그런건 성경에 없다고 은사랑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 할 수 있어요
@@pastorhongtv공부하는목사 성경이 쓰여지고 있는기간이 과도기 입니다 주후30년부터 거의 100년정도 걸쳐 성경이 완성된거죠 사도행전 그 시기에는 당연히 성경이 없으니 사도들에게만 그런 표적을 행하도록 권능을 주신것이죠 사도들만 할 수 있도록 권능을 주셨어요 아무한테나 그런 권능을 주신것이 아닙니다 은사랑 또 다릅니다 방언도 엄민히 말하면 표적사건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6장에 5가지 표적들을 사도들이 할수 있었던거죠 지금 그런 표적을 할수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자나요 그런걸 봐서 성경이 완성된 후론 그런 표적이 없다는걸 연구해서 아는거죠 5가지표적들은 사라지고 없는데 방언만 어찌 혼자 살아 남아 있다는게 말이 되는지요? 있으려면 다 있어야되고 없음 다 없어야 진리죠 그리고 방언이 그칠날이 올거자나요 언제 그치는지 아세요? 바벨탑 사건으로 흩어진 언어가 다시 한 언어로 하나가 될 날이 올거예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통치하실 천년왕국
@@ejs4354사도가 아닌 빌립이나 스데반도 기적을 행하였고 120이 모두 방언을 받았는데 그들이 모두 사도라고 주장하시네요. 성경을 스스로 연구하지 않았으면서 왜 연구했다고 합니까? 위의 글은 그냥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앵무새처럼 읊는 것에 불과합니다. 성경을 보면서 얘기하십시오. 120명이 모두 방언을 했지요? 고넬료도 방언을 했고 함께 있던 사람들도 방언을 했습니다. 스데반과 빌립은 집사가 아니던가요? 사도들에게만 기적을 행하도록 했다는건 어느 성경에 있는 주장입니까?
@@ejs4354 성경에 방언이 폐한다는 말은 나와있죠 그때가 언제인가요 얼굴과 얼굴이 마주할때입니다 그때 천국에서 방언이 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아니죠 성령이 오신 목적이 은사를 각사람에게 분량대로 나눠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근데 언제 그게 종료되었다는건지 그걸 없엔자들은 카톨릭이고 말씀도 없엤고 치유도 없엤습니다 그걸 개혁한게 종교개혁이죠 그리고 그건 완전한 개혁이 아닌 개혁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에서도 방언을 했고 원종수목사님은 방언을 통해 지혜와 지식이 임했다는 간증을 합니다 서울대에 수석으로 들어갔고 지금도 미전도종족 선교를 갈때 현지어로 사역을 합니다 말그대로 외국어와 각종 방언 두가지를 다하는분들도 많습니다
성경을 다시 공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당연히 그래야지요~~
성경공부를 같이 하실래요
@@newharvy77그냥 혼자 하고 싶네요~
네 동의합니다 은사와 성령이 사라진건 성경이 다 쓰여진 후 콘스탄티누스의 카톨릭이 만들어지고 공의회에서 일어난 일로 알고 있습니다 카톨릭은 태양신교를 기반으로한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고 교황이나 사제 수녀나 신부가 그당시에 쓰여진 명칭입니다 공의회에서 회의를 통해 결정했는데 성경속 가치들 하나하나를 없에기 시작했고 말씀을 사제만 읽을 수 있게 한것이나 유대인들을 배제한일 그리고 성령은 초대교회로 끝났다는것이었습니다 이게 회복된게 1907년 평양부흥과 웨일즈 인도와 아주사의 부흥이었고 성경속 성령이 여전히 있지 않을까라고 의문을 하면서 기도하는 그룹을 통해 대그룹이 방언을 받으면서 지금의 방언에 대한 논쟁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한사람은 1700년동안 없었으니 없는거다라고 하는데 이스라엘도 역사속에 없었다가 최근에 생겨났습니다 이걸 성경안에서 찾아서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체적으로 동의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은 성경에 이미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니까요...
성도님은 참 답답하십니다 성경이 완성된 후로는 표적 사건은 다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단회성이라고 하는거예요 한가지 확실하게 성경으로 찾아드릴께요 마가복음 16장에 5가지 사도들의 표적들이 나오죠? 거기에 하나도 방언으로 말한다고 나와있죠? 그런데 방언 말고 4가지 표적들은 지금 살아졌습니까? 지금도 있습니까? 마귀를 쫓아내고 독극물 마셔도 안죽고 손만 얹어도 병이 낫고 뱀을 짚다 물려도 안죽고 이 4가지 지금도 다 할수 있는 사람 있냐고 묻고 싶네요? 못하죠? 아무도 이거 못하죠? 왜 못할까요? 그 이유 아세요? 그런데 웃기는건 4가지 표적은 사라지고 없는데 한가지 표적인 방언은 살아서 여기 저기 사람들 입에 돌아다닌다구요? 정말 어이없는 주장입니다 어찌 방언 한 놈만 용케 사라지지 않고 그것도 어느 특정 사람들 입에만 떠돌아 다니고 있냐는거죠? 아주 웃긴 논리 아닙니까? 성경을 연구 하셨다면 답변좀 시원하게 올려봐 주세요 참 궁금합니다 고전 방언도 그치고...이 말씀은 또 무슨 뜻인지 아세요? 그 좋은것이 왜 그칠날이 온다는것인지요? 그 뜻은 혹시 아세요? 답변 듣고 싶네요
@@ejs4354 한국 교회 초기엔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수많은 병이 치유되었으며 어둠의 일들이 끝났죠 근데 이게 불법인것처럼 된 때가 있었고 그때는 2012년 나꼼수와 에스더운동본부와의 법정다툼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별게 다 이단시 되었는데 방언까지 포함되었다고 봐도 되죠 이 교리는 삼자교회에서 나온 교리로 중국은 이 그룹 방언하고 기도하고 치유하는 그룹으로 인해 나라가 변하는 경험을 하고 교회를 불태우며 막아섰고 그 일환으로 한국에 와서 댓글로 한국의 불을 끄려고 합니다 你是中國人吧
@@ejs4354방언이 그치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다른 영상에 올린 내용이 있습니다. 은사는 어린아이의 일이라는 내용이 요지입니다. 그리고 성겅이 기록된 후로 은사나 기적이 사라졌다는 논리는 전혀 타당성이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뱀을 집거나 독에 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상황이 되면 말씀대로 하실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당연히 하는 것이구요.
@@ejs4354기적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방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은 꼭 필요할 때에 하나님께서 하게 하십니다. 방언이 그치는 것에 관해서도 재림의 시기 혹은 성경의 완성이라고 하는 두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둘다 아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문맥을 보면 온전한 것은 성도의 성숙함을 말합니다. 성도가 성숙하면 방언도 지식도 예언도 그칩니다. 그것들의 도움이 필요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제 말을 반박하기 전에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어보시고 다시 말해주십시오.
아멘~
일이백번 만나는걸로 불륜은 걸리지않습니다 ㅡㅡㅡㅡ 그냥 살림 차릴때 걸리죠
1. 이탈리아 사람 고넬료에게 방언이 나타난 '목적' = 이방인에게 구원은 없을것이라는 복음을 온전히 몰랐던 유대인들을 위함입니다 사도행전 10장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사도행전 11장 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3.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4.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있었던 일을 설명---) 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오순절을 지낸 베드로조차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꿈으로 두번이나 듣고 반신반의로 나갔습니다. 표적의 목적은 온전한 복음을 모르는 유대인들을 위함입니다. 당연하게도 오순절때에 이 표적이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됩니다. 2. 표적방언의 방식 어떻게든 표적방언이 알아듣는 언어가 아니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종종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누가가 사도행전 2장을 통해서 말하고자하는 주요 골자는 120명에게 성령이 임했고 자신들은 모르는 새언어를 말했습니다. 디아스포라 2세들이 들어보니 자신들이 사는 곳의 언어였고 내용은 "하나님의 큰일"이었습니다. '들었다'에 중점을 둔다한들 변하지 않는 핵심은 타인이 이해하는 언어였습니다.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못알아 들었다면 그것을 표적으로 인정하고, 베드로의 설교가 통했을까요? 그저 미친 사람들 취급을 하는게 정상입니다. 그러나 알아듣고 갈릴리 촌놈들이 유창한 지역방언을 하는것을 놀랍게 여겼다는것이 누가가 말하고자하는 핵심입니다. 핵심을 외면하고 어떻게든 다른것을 찾아보려 특히 13절을 가지고 반박하지만 13절의 문맥은 '갈릴리 촌놈들이 이렇게 지방언어들을 유창하게 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저들은 술에 취해 얻어 걸린것이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표적을 보고도 거절했던 유대인들을 묘사합니다. 계속해서 베드로가 어떻게 15개 지역 언어를 동시에 말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는데 지난번에도 설명드렸듯 베드로는 히브리인이고 디아스포라들도 히브리인입니다 히브리어를 말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돌아와서 고넬료의 방언 방식은 무엇이었느냐? 찾아온 유대인들에게 유창한 히브리어를 말했다면 모순이 없습니다. 오순절과 같은 방언이 됩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표적방언은 타인이 알아듣는 언어였습니다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모르는 유대인을 위함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의 은사방언 또한 타인이 알아듣는 언어를 설명합니다.
좋은 반박글에 감사합니다. 1. 방언이 기도라고 하는 것에 반박을 하시는 것같은데요. 기도로서의 방언은 하나님께 말하는 언어로서의 방언이 있습니다. 그 외에 방언은 여러 종류가 있음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방언은 통역하면 예언이 되는 종류도 있습니다. 2. 고넬료가 히브리어 방언을 했다면 그것은 표적방언으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첫째 그들은 이미 믿는 신자들이고 고넬료에게 복음을 들어야할 입장이 아닙니다. 표적방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외국어라고 하지 않았나요? 고넬료가 왜 거기서 히브리어를 말해야하는지 납득이 안됩니다. 고넬료가 성령을 받기 전에도 베드로와 인사하고 대화까지 다 한 것으로 보아서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3. 만일 오순절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히브리어로 복음을 전해도 된다면 구태여 그들에게 표적방언이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부터 히브리어로 말했으면 되는거 아닐까요? 4. 갈릴리 사람들이 유창하게 외국어를 말했다면 그들이 술취했다고 조롱받을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오순절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인 사람들에게는 자기네 말로 들렸다. 즉 머리로는 모르는 언어인데 성령께서 그들에게 들리도록 역사하신 사건이라는 것이 주요골자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난곳 방언으로 들리는 것에 놀라고 신기했다는 것입니다. 듣는다는 것에 강조를 두면 성령의 은사가 양방향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제자들에게는 말하는 은사로서의 방언을, 모인 사람들에게(전부는 아니고)는 자기 말로 들리는 은사로 역사하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pastorhongtv공부하는목사 음... 답변주신 내용들은 제가 반박 드렸던 내용에 다 포함이 되는 것인데 일단 한번 더 답변 드려보겠습니다. 1. 알 수 없는 언어로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혹은 기도하라는 내용은 성경에 없습니다. 혹시나 고린도전서 12-14장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추후에 논박하구요. 2. '표적'의 가치는 복음을 <정확하게> 모르는 유대인을 위함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는 물론이고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지만 고넬료를 찾아간 베드로와 할례자들은 여전히 이방인에게 구원은 없다는 반쪽짜리 복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고넬료도 구원 받았음을 증거하는 초자연적 표적으로 방언을 나타내셨고 히브리어를 모르는 고넬료가 히브리어를 유창하게 한 것을 보고 베드로와 유대인들이 그제서야 놀라고 믿습니다. 3. 마찬가지로, 예수를 못 밖는데 당연시 여겼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알리기 위해 초자연적 표적으로서 방언이 나타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초자연적 표적을 보고서야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촌놈들의 유창한 언어를 듣고 놀라서 베드로의 설교를 주목하고 회심하여 믿게 되는 맥락을 나타내지요 처음부터 히브리어로 예수그리스도가 구원자라고한들, 예수님께서 구원자이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조차 믿지 않았던 유대인들이 과연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을까요? 4. 말씀드렸던대로 표적현상을 부정하기 위하여 조롱하는 것입니다. 5. 이게 참 애처로운게, a) 말하는 자들은 자신이 모르는 언어를 말했다. (4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b) 듣는 자들은 자기 사는 지역의 언어로 들었다. (6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이 문단을 읽고 말하는 자들의 언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라고 유추하는건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얘기해야 하지 않나요? 비판의 뜻을 알면 이분이 지금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없겠죠
염원장님이 맞는 말을 하지만 위험함을 느낍니다. 유기성 목사님은 안타깝습니다.
네 저도 조금 걱정이 됩니다...
염원장님 사랑입니다!!! 제발 멈추시고 사랑을 실천 하셨으면 합니다 비판 ㆍ정죄 멈추세요
비판 정죄.. 한 내용 아닙니다~
죽음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소리를 조금 높여서 녹화해주시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3dB정도만이라도요...ㅎ
감사합니다 애들이 옆에서 자고 있어서 좀 작게 녹음이 되었습니다. 담번엔 좀더 크게 해보겠습니다.
귀한 말씀 정말로 감사합니다. 최근 고전 15장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은혜로 세워가시는 주하나님께 감사드려요. 늘 성령충만하심으로 겅건하시길 기도하며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들어주시니 격려가 됩니다~~^^
목사님.....너무 슬퍼요...총회장이 불륜이라니요......더 놀라운건 영등포노회 임원목사님들의 태도 입니다..과연 이분들에게 성령님이 계신건가??? 이들이 정말 참 목자이신가요???
네... 참 그렇습니다...
옳지 못한 무리한 비판은 문제가 될수 있지만 확연히 잘못됐거나 충분한 판단이 서는 비판은 유효하다 사료 됩니다 산골 목사님께서도 그러한 이유로 정동수 목사를 비판한다면 그에 대한 구체적인 재 비판의 근거를 제시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비판이 공적으로 공익을 위한 것이고 마땅한 비판의 동기가 성립 된다면 목사님께서도 재비판이 아닌 긍정적 수용을 하셔야 하는것 아닌가 사료 됩니다 어떤 주제로 비판을 하길래 뭐가 잘못된 비판이라는걸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실수 있으신가요? ~~;
네 좋은 지적이십니다. 정목사님의 인격과는 상관없이 그의 주장들에는 비판할 요소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에 매우 유해한 요소들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때가 되면 영상으로 올려보겠습니다.
동물은 인간이 이용하라고 창조했다는것에 뜨헉했습니다 동물도 생명윤리 똑같다 생각합니다 모두 목숨 하나죠 똑같이 소중합니다
소중하다는 것은 동의할 수 있지만 똑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고기도 먹으면 안되겠죠...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는것을 너희가 살아 생전 볼거라고 분명히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이천년이 지나도 재림이 없는데 그 말에 뭔 의미가 있을까...
영상에 설명이 있으니 관심이 있으시면 들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