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장군이 될려면 어떤 덕목을 가지고 그 자리에 서야할까 장군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을까...??? 하지만 진급에 대한 욕심 정치에 대한 욕망들이 남을 희생 시키면서 채운다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책임지는 사람은 군이나 사회나 하나도 없고 명예도 없습니다. 여러가지 사건 사고 중에서도 채상병 사건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분노하고 자식을 군에 보내는 부모들의 심정이야 말로 안타까움이 더 했을꺼라 생각합니다. 과거 일이지만 군 생활을 기억하면서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 전 rotc30기로 임관을 하였습니다 21사단 백두산 부대로 65연대 3대대 10중대로 소대장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92년도 7월에 부대에 갔는데 전방 부대이고 험악한 산악 지역이었습니다 나름 초임 소대장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근무를 했습니다 병력들을 통솔하는 데에는 많은 애로 점도 있었지만 원칙과 솔선수범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계급이 깡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라를 지키고 적을 지키는 최후의 보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젊고 열정도 넘쳤습니다 항상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약 전쟁이나서 고지 싸움을 하는데 부하들을 이끌고 나간다면 빗발치는 총탄이 오더라도 돌격 앞으로 목소리만 크게 내는게 아니라 먼저 고지를 향해서 나야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물론 지휘자는 올바른 판단을 해서 해야겠죠 판단을 잘못해서 희생을 시킨다면 잘못된 지위관이겠죠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때 스스로의 목숨도 누구 보다도 앞서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사실 군 복무를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에 특전사를 지원했었습니다 그런데 유례가 없던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동기중에 참모총장 아들이 있어서 나중에 들었지만 그 아들이 혹시라도 뽑힐 수 있어서 저희 중대 뿐 아니라 상무대 6,7,8 중대는 한명도 착출되어 가지 못했습니다 선배들도 후배들도 한번도 없었던 일이었으니 원망도 많이 했었습니다 오죽하면 구대장에게 지원을 하고나서 장난스럽게 뺨을 맞았는데 넌 임마 체육 성적도 좋고 체력도 좋은데 지원 않해도 뽑아가는데 지원까지 하냐고 했으니까요~~~ 전 그렇게 백두산 부대를 갔지만 항상 마음속에 최전방에세 근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6,25 때 억울하게 돌아가신 큰 아버님 생각에 왜 같은 민족끼리 총 뿌리를 겨누고 분단된 현실을 보내야 하는가 직접 최 근거리에서 보고 싶고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최 전방이라 하면 수색중대에서 맞고 있는 GP를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연대에서 맞고 있는 전방부대를 가기위해 92년 10월에 연대 작전과장을 만나 의사를 밝혔습니다 어찌보면 최전방이라 사고도 많이나고 부대원들을 잘 통솔 하려면 뛰어난 소대장이 필요했지만 당시 대대에서 한명씩 착출하는 상황에서 대대장들은 뛰어난 소대장 착출을 꺼려했었습니다 골치가 아펐던 연대장님이나 작전과장도 이런 상황에서 지원을 하겠다고 저에게 반겨워 했고 93년2월에 전임자들과 임무교대를 하는 날까지는 비밀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대 12중대에서 12월에 군기를 잡는다고 후임병 구타를 하는 도중에 한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휴가를 앞두고 3일간 당직사관 근무를 3일째 하는 날이라 몸도 지쳐 있었던 상황에서 믿기지 않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부대는 발칵 뒤집어졌고 5부 합동 수사를 받으면서 힘든 나날을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었지만 더욱 부대 분위기상 수색중대 지원에 대한 말을 꺼내 보지도 못했고 검열에 모든 정신이 혼미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전재영중대장님은 소대에가서 앞으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게 소대의 구타나 문제점들을 보고를 받으라고 하였고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겠끔 하기 위한 조치이니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을테니 소대원들에게 구타 사실이 있는지 밝히라고 하였습니다 전 소대원에게 처벌을 하지 않는다고 솔찍하게 적으라고 하였고 소대원들도 그 말을 믿고 적어 냈었는데 실은 대대장님과 상의 끝에 본보기로 영창을 보낼려고 계획하고 했었던 상황이었단걸 알았습니다 중대장님은 무조건 저희 소대에서 2명은 영창을 보내야 한다고 했는데 전 그럴 수 없다고 지시를 따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소대원들과 약속이었기 때문에 제가 영창을 가면 가지 그럴 수 없다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너희 소대원들 탈의를하고 중대막사 앞에 대기하라는 명령에 전 소대원들과 함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그 추운 1월 겨울에 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 소대원들과 꼼짝하지 않고 발가벗고 서 있었고 중대 간부 회의를 하던 중대장은 2시간이 지나서 나와서 소대장도 소대원도 모두 발가벗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래서 3소대장 빨리 옷입어 고함을 쳤지만 전 소대원들 영창 보내는걸 취소하지 않으면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여서 결국은 중대장님의 약속을 받고 입실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중대장도 대대장님께 보고 하였고 군화로 발길질을 당하셨다고 했지만 대대장님도 그 뜻을 굽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 대대장님이 절 참 믿음직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부대가 조금 안정이 되는 시점에서 작전과장은 대대장에게 수색중대 지원을 하였다는 소식을 전했고 절 방으로 불러서 여러가지 회유를 하였습니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근무하게 해 줄테니 지원을 철회하라고 하였고 전 그럴 수 없습니다 몇번을 이야기 했지만 결국 군화로 절 차면서까지 굴복 시킬려고 했지만 결국 고집을 꺽을수가 없다고 생각 했던지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전 수색중대 1소대 전임자와 인수 인계도 받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투입전 측정이라는 준비를 하여야 했고 수색중대에 간지 보름만에 탄약고에서 염청호라는 중대원이 수류탄을 터트려 자살을 하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정말 암담했습니다 어찌 이런 사고가 다시 나는지 괴롭고 힘이들었습니다 탄약고에서 두발은 불발탄이나고 세번째 터졌는데 온 몸은 다 날라가고 그 많은 탄약고가 연쇄폭발이 되지 않았던게 더 많은 인명 피해는 피할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조차도 없이 처참한 일이었고 또 그 모든 것을 수습하고 부대 검열은 많은걸 지치고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 누구 보다도 군 생활에 장기복무 권유를 받았지만 전 좌절과 실망 뿐이었습니다 무능한 지휘관 때문에 유능한 부하를 잃었다던지 무능한 부하 때문에 유능한 지위관이 하루 아침에 보직해임 당하는걸 보면서 장기복무의 꿈은 접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염청호의 가족들은 오열을 했고 자식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시신을 인수하지 않았고 결국 가매장을 하였습니다 어디에 묻혔는지 알수도 없었는데 우연히 작전 임무에 나갔다가 매장 한 곳을 발견하고 어렵게 술을 구해서 따라주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외 많은 사건 사고들을 보면서 그 렇게 생을 마감했던 분들도 다 소중한 자식이고 국가의 부름을 받고 왔지만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힝상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남일 같지 않고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발생하지 않아야 할 사건들을 보면은 과연 누가 책임을 지여야 하는가 의문이 많이 갑니다...??? 그럼 나라는 누가 지켜야 하는지~~ v.daum.net/v/20241105133949177 안전한 군대 사회가 되길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봅니다.
왜인진 모르겠음. 평소에 하나도 안웃기다가도 저기서 한명이 웃으면 같이 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있음. 그때부터 사람들의 모든 행동과 말투가 개그나 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고, 그렇게 현실이 붕괴되기 시작하는데, 거기서 정신을 못차리고 웃으면 1분 이상 뇌가 마비된 채 박장대소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음.
웃는다고 ? 많이다르긴다르네
해병대 순검은 산천초목도 떨고간다.. 동영상 잘 보고 갑니다
아 ㅈㄴ 끔직하다
0:11 소대장 목소리 뒤지네ㄷㄷㄷㄷ
웃는 놈들 잇네 카메라가 살렷다
전역한지 60여년 지나 보니...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지들이 특별한지 아는게 ㄹㅈㄷㅋㅋ;;;
신곡 - 얼쑤인대파열 드가자
보이넥스트도어..? 낙낙 후스데얼 더 보이넥스트도어 !
칠포 DZ 한동대를 바라봐 ~!~!~!~!
필승
복지카드 해운대구청장 육군사관학교 자택 근무 사업자 개설 전체 아들 딸 이전 복지카드 해운대구청장 송다겸(인)
자택 근무로 인한 인원수 제한 무
해병이 언제부터 신병사썼냐? 왕자식당 왕자목욕탕모르지?
모두 존경스럽고 고맙습니다~~아들 군대 보내 놓으니 모두 다 내 아들 같네요
해병대는 ㅈㄴ 멋지고 다 좋은데 전역하고 깝치는 애들이 문제임 ㅋㅋㅋ
웃는얼굴에 침뱉는곳
훈련이 힘든게 아니다 웃참은 진쯔 힘든것... 처음 가면 모르겠는데 학교 입학할때 가입교, 생활교육강조기간 이런거 실컷 겪다가 1학년 겨울 학군단 가입교... 무서운것도 없고 다아니까 쫄리지도 않는데 빡센척 하는게 너무 힘들었고 동기새끼들 웃긴거 존나 많아서 뒤질뻔
산천초목이 떤다는 순검시간에 웃어?하긴 동기들끼리 있으니 그나마..자대가면 알거다.. 아..전역했지..ㅎ ㅎㅎ
이거 보니까 군대 가기 싫어 지네.. 암기 자신 없는디…
동기가 개웃기네 ㅎ ㅎ 그러니 못참지 ㅋ
03:54 오? 했는데 모르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저기 있엇으면 피식했을거 같은데
나는 점호할 때 고라니가 끼에에엑 울어서 웃음 터졌었는데 ㅋㅋㅋ
군대다녀오고 느낀것중하나가 웃음에 이유가없음ㅋㅋㅋㅋ 육군나와서 순검은 안해봤지만 훈련소나 자대가서 점호때 걍웃김 이유가 없음 내가 왜 웃는지를 모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쓰다가 또 쳐웃고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거지,............
우서 ?
군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장군이 될려면 어떤 덕목을 가지고 그 자리에 서야할까 장군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을까...??? 하지만 진급에 대한 욕심 정치에 대한 욕망들이 남을 희생 시키면서 채운다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책임지는 사람은 군이나 사회나 하나도 없고 명예도 없습니다. 여러가지 사건 사고 중에서도 채상병 사건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분노하고 자식을 군에 보내는 부모들의 심정이야 말로 안타까움이 더 했을꺼라 생각합니다. 과거 일이지만 군 생활을 기억하면서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 전 rotc30기로 임관을 하였습니다 21사단 백두산 부대로 65연대 3대대 10중대로 소대장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92년도 7월에 부대에 갔는데 전방 부대이고 험악한 산악 지역이었습니다 나름 초임 소대장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근무를 했습니다 병력들을 통솔하는 데에는 많은 애로 점도 있었지만 원칙과 솔선수범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계급이 깡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라를 지키고 적을 지키는 최후의 보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젊고 열정도 넘쳤습니다 항상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약 전쟁이나서 고지 싸움을 하는데 부하들을 이끌고 나간다면 빗발치는 총탄이 오더라도 돌격 앞으로 목소리만 크게 내는게 아니라 먼저 고지를 향해서 나야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물론 지휘자는 올바른 판단을 해서 해야겠죠 판단을 잘못해서 희생을 시킨다면 잘못된 지위관이겠죠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때 스스로의 목숨도 누구 보다도 앞서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사실 군 복무를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에 특전사를 지원했었습니다 그런데 유례가 없던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동기중에 참모총장 아들이 있어서 나중에 들었지만 그 아들이 혹시라도 뽑힐 수 있어서 저희 중대 뿐 아니라 상무대 6,7,8 중대는 한명도 착출되어 가지 못했습니다 선배들도 후배들도 한번도 없었던 일이었으니 원망도 많이 했었습니다 오죽하면 구대장에게 지원을 하고나서 장난스럽게 뺨을 맞았는데 넌 임마 체육 성적도 좋고 체력도 좋은데 지원 않해도 뽑아가는데 지원까지 하냐고 했으니까요~~~ 전 그렇게 백두산 부대를 갔지만 항상 마음속에 최전방에세 근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6,25 때 억울하게 돌아가신 큰 아버님 생각에 왜 같은 민족끼리 총 뿌리를 겨누고 분단된 현실을 보내야 하는가 직접 최 근거리에서 보고 싶고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최 전방이라 하면 수색중대에서 맞고 있는 GP를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연대에서 맞고 있는 전방부대를 가기위해 92년 10월에 연대 작전과장을 만나 의사를 밝혔습니다 어찌보면 최전방이라 사고도 많이나고 부대원들을 잘 통솔 하려면 뛰어난 소대장이 필요했지만 당시 대대에서 한명씩 착출하는 상황에서 대대장들은 뛰어난 소대장 착출을 꺼려했었습니다 골치가 아펐던 연대장님이나 작전과장도 이런 상황에서 지원을 하겠다고 저에게 반겨워 했고 93년2월에 전임자들과 임무교대를 하는 날까지는 비밀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대 12중대에서 12월에 군기를 잡는다고 후임병 구타를 하는 도중에 한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휴가를 앞두고 3일간 당직사관 근무를 3일째 하는 날이라 몸도 지쳐 있었던 상황에서 믿기지 않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부대는 발칵 뒤집어졌고 5부 합동 수사를 받으면서 힘든 나날을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었지만 더욱 부대 분위기상 수색중대 지원에 대한 말을 꺼내 보지도 못했고 검열에 모든 정신이 혼미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전재영중대장님은 소대에가서 앞으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게 소대의 구타나 문제점들을 보고를 받으라고 하였고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겠끔 하기 위한 조치이니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을테니 소대원들에게 구타 사실이 있는지 밝히라고 하였습니다 전 소대원에게 처벌을 하지 않는다고 솔찍하게 적으라고 하였고 소대원들도 그 말을 믿고 적어 냈었는데 실은 대대장님과 상의 끝에 본보기로 영창을 보낼려고 계획하고 했었던 상황이었단걸 알았습니다 중대장님은 무조건 저희 소대에서 2명은 영창을 보내야 한다고 했는데 전 그럴 수 없다고 지시를 따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소대원들과 약속이었기 때문에 제가 영창을 가면 가지 그럴 수 없다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너희 소대원들 탈의를하고 중대막사 앞에 대기하라는 명령에 전 소대원들과 함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그 추운 1월 겨울에 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 소대원들과 꼼짝하지 않고 발가벗고 서 있었고 중대 간부 회의를 하던 중대장은 2시간이 지나서 나와서 소대장도 소대원도 모두 발가벗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래서 3소대장 빨리 옷입어 고함을 쳤지만 전 소대원들 영창 보내는걸 취소하지 않으면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여서 결국은 중대장님의 약속을 받고 입실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중대장도 대대장님께 보고 하였고 군화로 발길질을 당하셨다고 했지만 대대장님도 그 뜻을 굽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 대대장님이 절 참 믿음직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부대가 조금 안정이 되는 시점에서 작전과장은 대대장에게 수색중대 지원을 하였다는 소식을 전했고 절 방으로 불러서 여러가지 회유를 하였습니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근무하게 해 줄테니 지원을 철회하라고 하였고 전 그럴 수 없습니다 몇번을 이야기 했지만 결국 군화로 절 차면서까지 굴복 시킬려고 했지만 결국 고집을 꺽을수가 없다고 생각 했던지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전 수색중대 1소대 전임자와 인수 인계도 받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투입전 측정이라는 준비를 하여야 했고 수색중대에 간지 보름만에 탄약고에서 염청호라는 중대원이 수류탄을 터트려 자살을 하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정말 암담했습니다 어찌 이런 사고가 다시 나는지 괴롭고 힘이들었습니다 탄약고에서 두발은 불발탄이나고 세번째 터졌는데 온 몸은 다 날라가고 그 많은 탄약고가 연쇄폭발이 되지 않았던게 더 많은 인명 피해는 피할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조차도 없이 처참한 일이었고 또 그 모든 것을 수습하고 부대 검열은 많은걸 지치고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 누구 보다도 군 생활에 장기복무 권유를 받았지만 전 좌절과 실망 뿐이었습니다 무능한 지휘관 때문에 유능한 부하를 잃었다던지 무능한 부하 때문에 유능한 지위관이 하루 아침에 보직해임 당하는걸 보면서 장기복무의 꿈은 접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염청호의 가족들은 오열을 했고 자식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시신을 인수하지 않았고 결국 가매장을 하였습니다 어디에 묻혔는지 알수도 없었는데 우연히 작전 임무에 나갔다가 매장 한 곳을 발견하고 어렵게 술을 구해서 따라주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외 많은 사건 사고들을 보면서 그 렇게 생을 마감했던 분들도 다 소중한 자식이고 국가의 부름을 받고 왔지만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힝상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남일 같지 않고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발생하지 않아야 할 사건들을 보면은 과연 누가 책임을 지여야 하는가 의문이 많이 갑니다...??? 그럼 나라는 누가 지켜야 하는지~~ v.daum.net/v/20241105133949177 안전한 군대 사회가 되길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봅니다.
4:21 여긴 안 웃고 있는데? 4:33 왜 웃은거지? 4:46 2번째에 있는애가 입벌리고 웃음참고 있어서 웃었나??
그 날 분위기 안좋아서 점호때 ㅈㄴ긴장하고 있었는데 맡은편 동기가 갑자기 방구껴서 진짜 악으로 깡으로 웃음참았었던ㅋㅋㅋㅋㅋ 1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생각남ㅋㅋㅋ
니 아니잖아 잼민이가 왜 지랄이람
4:33 훈련병: ☺️ 교관: 엎드려. 훈련병: 😞 악.
돈 한 푼 안주면서 착취할거면 잠은 좀 편하게 자게 해줘라 ㅈ같은 개병대들아 저 ㅈㄹ해서 군인다운 군인이 된다면 빤스런 사건은 왜 남? 개 주접 떠는거지
처음 영상 저 교관님 기억납니다. 너무 반갑네요. 선배님들은 4월 중순 어느 날 저 영상에 담기셨겠습니다. 혹시나 아는 얼굴 나오나 몇 번 더 봤습니다. 잘 봤습니다.
4:35 😊 ➡️ 😞
지금이야 웃는거지 저기 남자들은 뭔죄 지었다고 끌려가냐
조선은 이딴 젖같은 악습땜에 사건사고가 더나지..군대뿐이 아니고 사회에서도.
일본에서 배워온거노
교관님들 움직이는 게 신기하네요. 이게 제식인가
이게 갑자기 왜뜨노;
촬영 아니었으면 쪼인트&원상폭격이다. 평지 푸쉬업 20회가 어디 있니?? 관물대 위에 다리 올리고 푸쉬업 해야지...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ㅠ
귓대기 한대 쳐맞기 전인가. 실실 쪼개네
이걸 웃참 ㅋㅋㅋㅋㅋㅌㅋㅋㅌ
앞 쪽에 개그맨처럼 생긴 동기 때문에 훈련소 점호 매일 지옥이였음. 나중엔 일부러 대놓고 웃길려는 새끼인데 훈련소는 워낙 동기가 많아서 티가 안 났지만 식사타임에는 소규모라 같은 줄에서 마주 보며 복창 할 때도 웃참 하다 걸려서 얼차려도 자주 받음 😂😂😂
3:45 제일 왼쪽에 더블비 박민규 등장
닮은 사람 입니다 ..~
꼭 웃는 새끼들이 하나씩 있어서 ㅈ같은데 내일은 그게 나임 ㅋㅋㅋㅋㅋㅋ
4:30 맞은편에서도 웃어서 웃었을확률 높음ㅋㅋ
족같은표정짓고잇는경우있음 ㅋ
교관 이경백 이신가
면도날에 베였다는 한마디 듣고 바로 세면백 얘기하는 교관님 세심함 좆되네
왜인진 모르겠음. 평소에 하나도 안웃기다가도 저기서 한명이 웃으면 같이 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있음. 그때부터 사람들의 모든 행동과 말투가 개그나 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고, 그렇게 현실이 붕괴되기 시작하는데, 거기서 정신을 못차리고 웃으면 1분 이상 뇌가 마비된 채 박장대소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음.
저분들 지금 40살 가량 됨 ㅋㅋㅋㅋ
가오를 지배한 몸놀림
몰입 뒤진다 ㅋㅋㅋ
평소에 저렇게 진을 다빼놓으면 전쟁때 힘딸려서 뭐하겟노 쓸데없는 기합 기타 등등 드릅게 비효율적인 군대…
6:05 12사단 여중대장 보고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