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매우 왜소해 이 멍청한 유튜버야 ㅋㅋㅋㅋㅋㅋ 당시 유럽 기사들의 유골과 몽골군의 유골을 맞대본 결과 몽골인의 덩치가 크면 더 컸지, 결코 작진 않았을 거란게 정론인데. 환경상 육식만을 하는게 몽골인인데 피지컬이 십중팔구 다른 민족의 웬만한 사람들보다 안좋을 수가 있나? 게다가 당시 몽골 전사가 한명당 일생에 목숨걸고 싸우는 횟수가 족히 최소 70-80회는 넘어서 피지컬이나 전투경험이나 모든게 병사 한명당 일개 병사가 아닌 장군급으로 우세한데, 거기에 더불어 말도 잘타고 활까지 잘쏘니 전세계를 쌈싸먹었던 겁니다 ㅋㅋㅋ 뭔 단순히 말과 활덕분인줄 아나; 진짜 이런 모자란 애들도 영상을 이딴식으로 만들어서 사람들 선동하게 둬도 되는 거임?
카타나는 강도가 타 국가에비해 강하진않습니다. 철제기술 자체가 낙후된 국가였기에 아마 그당시는 지금 카타나로 나온것보다 더 사양이 떨어졌을거로 사료되요. 그래서 사무라이들도 실제로 검으로 직접 일기토를 하는 방식보단 창이나 대도를 들고 싸우는 경우가 많았고요.. 아마 그당시 철제기술만 따지면 중국,한국,일본순 ...마상전투를 많이하게되는 한국, 중국은 묵직함으로 때려베는 형태로 발전한다면 마상전투가 거의 없던 일본은 얇고 절삭력이 좋은 형태로 발전한걸로 생각하는게 좋아요.. 즉 강도만따지면 묵직하게 베기위해 두께를 넓힌쪽이 강도가 더 높고, 카타나처럼 얇은검은 조금만 사용해도 부러지거나 휘게됩니다..서양의 경우만 보더라도 판금갑옷 기사의 시대이기에 롱소드,바스타드소드 같은 대검으로 때려죽이는쫏으로 발전하고, 중국 한국도 판금까지는 아니지만 철제갑옷을 입었기에 단단하개 직조됩니다.. 카타나처럼 얇은 검을 쓴다는건 그만큼 갑옷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소리고, 그말은 철기기술이 수준이 낮은걸로 생각해야해요..
쿠빌라이 칸은 13세기 후반에 일본을 정복하려는 시도를 두 번 했습니다. 그는 원나라(몽골 제국)를 통치할 때 일본에 조공을 요구했으나, 일본이 이를 거부하자 군사적 침략을 감행했습니다. 이 전쟁은 "몽골의 일본 침공" 또는 "원나라의 일본 원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첫 번째 침공 (1274년): 쿠빌라이 칸은 한반도의 고려와 연합하여 일본을 침략했으나, 태풍과 일본의 저항으로 인해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 침공 (1281년): 쿠빌라이 칸은 더 큰 병력을 동원해 일본을 다시 침공했으나, 이때도 일본 해안 근처에서 "가미카제(神風, 신의 바람)"라고 불리는 태풍이 몽골 함대를 강타하면서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 두 번의 침공 실패로 쿠빌라이 칸의 일본 정복은 좌절되었고, 이는 일본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모르시면 챗GPT에 물어보세요...;;; 고려도 사실 칭기스칸에 정복된 상태였음. 근데 약조한 조공을 바치지 않아서... 여러번 뚜드려 맞음...
신우야 힘들었겠다😢😢
지금도 집값 거품입니다
왜 사망 시켰는지 이해가 안돼네요😅
기상학자들에 따르면 같은 시기에 조선 뿐만 아니라 유럽과 남미 등 지구촌 전체가 냉해 피해를 입었다고 함. 그래서 이 시기가 소빙하기 시기였다고 추정함.
20년후 을병 대기근이 벌어 짐니다. 경신은 2년 이지만 이땐 5년 이었고 사망자는 경신대기근 보다 많아 140만(경신은 100만정도) 정도지만 경신때 구휼에 실패한 걸 교훈삼아 식량을 비축해 놔서 기간이 더 길었음에도 기간에 비해 사망자가 그리 많지 않았죠.
포도청은 지금으로 말하면 견찰?ㅋㅋㅋ
수장은 대사헌, 성균관 짱은 대사성 ㅎ
대사헌...
오타) 사원부 -> 사헌부 입니다^^ / 대사원 -> 대사헌 입니다^^
사헌부
임진왜란 조선중기아닌가
미국이 제일 잔인한거같아. 평화한다면서. 핵폭탄도 미국이썼고.
이따구로 온갖 나쁜짓거리들을하니 지금 벌받는거지 지진에 핵에 계속해서 죽어나가다가 지도에서도 아예없어지겠지
지금도 일을 시켜보면 힘이 한국인 노가다꾼 2배지
귀무덤 코무덤 합사 된 조선인 10만명. ㅜㅜ 이순신 장군 이 총통 과 화포로 격침 시켜서 바다에 수정시켜 버린 일본군 수 11만명😡
영국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린탄..이라구 한국말로 해요 뭔 네이팜
뭐가 매우 왜소해 이 멍청한 유튜버야 ㅋㅋㅋㅋㅋㅋ 당시 유럽 기사들의 유골과 몽골군의 유골을 맞대본 결과 몽골인의 덩치가 크면 더 컸지, 결코 작진 않았을 거란게 정론인데. 환경상 육식만을 하는게 몽골인인데 피지컬이 십중팔구 다른 민족의 웬만한 사람들보다 안좋을 수가 있나? 게다가 당시 몽골 전사가 한명당 일생에 목숨걸고 싸우는 횟수가 족히 최소 70-80회는 넘어서 피지컬이나 전투경험이나 모든게 병사 한명당 일개 병사가 아닌 장군급으로 우세한데, 거기에 더불어 말도 잘타고 활까지 잘쏘니 전세계를 쌈싸먹었던 겁니다 ㅋㅋㅋ 뭔 단순히 말과 활덕분인줄 아나; 진짜 이런 모자란 애들도 영상을 이딴식으로 만들어서 사람들 선동하게 둬도 되는 거임?
고엽제도 문제가 많았지 우리 파병 군인들중 아직도 고엽제 때문에 휴유증 앓고 있는분들 있다
카타나는 강도가 타 국가에비해 강하진않습니다. 철제기술 자체가 낙후된 국가였기에 아마 그당시는 지금 카타나로 나온것보다 더 사양이 떨어졌을거로 사료되요. 그래서 사무라이들도 실제로 검으로 직접 일기토를 하는 방식보단 창이나 대도를 들고 싸우는 경우가 많았고요.. 아마 그당시 철제기술만 따지면 중국,한국,일본순 ...마상전투를 많이하게되는 한국, 중국은 묵직함으로 때려베는 형태로 발전한다면 마상전투가 거의 없던 일본은 얇고 절삭력이 좋은 형태로 발전한걸로 생각하는게 좋아요.. 즉 강도만따지면 묵직하게 베기위해 두께를 넓힌쪽이 강도가 더 높고, 카타나처럼 얇은검은 조금만 사용해도 부러지거나 휘게됩니다..서양의 경우만 보더라도 판금갑옷 기사의 시대이기에 롱소드,바스타드소드 같은 대검으로 때려죽이는쫏으로 발전하고, 중국 한국도 판금까지는 아니지만 철제갑옷을 입었기에 단단하개 직조됩니다.. 카타나처럼 얇은 검을 쓴다는건 그만큼 갑옷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소리고, 그말은 철기기술이 수준이 낮은걸로 생각해야해요..
카타나가 강도가 강해요?
유익하네요
37톤?37,만톤아니고
말 많네
근데 왜 졌데
명분
섬뜩하네~~~
미쿡 좋다고 허구헌날 빨아재끼는 인간들 저런 악마 짓도 좋아할라나 개념없는 쓰레기들
그러고 보면 조선은 뒷간이 있었으니까 저기보단 깨끗했을듯
조옷도 모르는 소리만하네
고기를 주식의로 먹는 동물과인간들은 힘이세고 잔인하다
비료로 안써?
아하 그래서 향수를 만들었나보군요
중세 초중기 까지는 로마가 남긴 문물도 있고, 나름 씻었는데 (+ 창녀촌도 목용탕하고 같이 운용해서 성당에서 나쁘게 봄) 흑사병 이후로 존나 조짐. 흑사병으로 죽어 나간 뒤, 씻는게 나쁘다며 안씻기 시작하면서 끔직해짐.
몽골 주류 유전자는 하플롭C형으로 우리나라 사람중 12.3%가 가지고 있다. 강호동는 아마 몽골유전자 이지 싶다.
알고보면 더러운 넘들 우리의 푸세식은 위생적이었다니
저게바로 중국 문화지. 세계 과거 똥문화는 중국거임. 아직도 전통을 지키고 널리 알리고있지...
중국까기는 일본놈들이 만든거임😮
@@user-ub1yz3du7w아녀 일본아니라도 까
그래서 100, 200년마다 페스트가 쓸어버렸지요.
공산당중국 아직 진화못한민족 길에서똥싸는걸보면 중국은 미계인 뇌는 똥오줌 못가리는 미숙아
인간이 진화한다는건 진실이다
몽골인은 야만인인가 지가 타던 말을 먹게
몽골의1,2차일본침공태풍으로몰살한 려.몽연합군의대부분의병력은,해전과는거리가먼몽골군아니라,통탄하게도고려군이었다. 지금은선진한국을흠모하는저몽골초원의문화가없는침공유모민의처량한후예들.
태풍없는 계절에 쳐들어갔어야지 두번이나 실수하냐
고려가 다 만든건 아니구요. 대부분은 중국에서 만들었습니다. 고려는 고려 병력 이동할 배를 만든거구요.
거리에는 똥으로가득차서 하이힐을 신고똥을 피해다녔죠.
2층에서 창밖에 내쏟는 요강을 피하기 위해 양산이 필요했음.
겨울에 많이 추웠겠네 변기가 난방도 안되고. 환기는 잘되겠네.
저 천연비료로 농사 지었던 시절이 그립다.
저 때 들어가서 싹 ~ 밀어 버렸어야 했다 ...
무쿠리 고쿠리 온다~
에휴.. 1차 2차 원정까지 필요했던 함선을 고려가 죽어라 만들었죠 그 수가 2천척에 달합니다
뭔소리야.. 막부 색히들이 다 발렸는데..
쿠빌라이 칸은 13세기 후반에 일본을 정복하려는 시도를 두 번 했습니다. 그는 원나라(몽골 제국)를 통치할 때 일본에 조공을 요구했으나, 일본이 이를 거부하자 군사적 침략을 감행했습니다. 이 전쟁은 "몽골의 일본 침공" 또는 "원나라의 일본 원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첫 번째 침공 (1274년): 쿠빌라이 칸은 한반도의 고려와 연합하여 일본을 침략했으나, 태풍과 일본의 저항으로 인해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 침공 (1281년): 쿠빌라이 칸은 더 큰 병력을 동원해 일본을 다시 침공했으나, 이때도 일본 해안 근처에서 "가미카제(神風, 신의 바람)"라고 불리는 태풍이 몽골 함대를 강타하면서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 두 번의 침공 실패로 쿠빌라이 칸의 일본 정복은 좌절되었고, 이는 일본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모르시면 챗GPT에 물어보세요...;;; 고려도 사실 칭기스칸에 정복된 상태였음. 근데 약조한 조공을 바치지 않아서... 여러번 뚜드려 맞음...
그때 쓸어버렸어야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