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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교회
Южная Корея
Добавлен 31 янв 2014
흐르는교회는 서울시 강동구 상일동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에 소속된 건강하고 복음적인 교회로
2011년에 세워진 은혜가 넘치는 교회입니다.
화려한 예배당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흩어져 거룩한 가정교회를 이루며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교회입니다.
담임목사 : 문백수목사(장신대 신대원졸업)
협력목사 : 윤규택목사(어린이 청소년 교회, 굿프렌즈교회 담임)
선 교 사 : 이도항(김소영)선교사, 김충희(김성은)선교사
서울 강동구 상일로12길 95 2층 02-3013-9004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에 소속된 건강하고 복음적인 교회로
2011년에 세워진 은혜가 넘치는 교회입니다.
화려한 예배당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흩어져 거룩한 가정교회를 이루며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교회입니다.
담임목사 : 문백수목사(장신대 신대원졸업)
협력목사 : 윤규택목사(어린이 청소년 교회, 굿프렌즈교회 담임)
선 교 사 : 이도항(김소영)선교사, 김충희(김성은)선교사
서울 강동구 상일로12길 95 2층 02-3013-9004
미밍!!
아몐~주님만 사랑해 😊
아멘 🙏 믿습니다
문목사님, 감사합니다. 영국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베풀어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문목사님과 흐르는 교회에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주시길 기도드리며 예배를 통해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는 연말이 모두에게 되길 바랍니다. 멀리 있지만 늘 잊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흐르는 교회가 하나님 기뻐 하시는 교회임을 믿습니다. 끝까지 인내와 믿음으로 견디며 마지막때인 이시대에 믿지 않는자를 구원하는 구조선의 역할을 잘 감당하길 기도합니다.
ruclips.net/video/SMVVfWi8WnI/видео.html 성경의 비운한 황태자, 요나단 이야기
최일영
최하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님이 내마음에 함께하셔서 그 사랑으로 타인을 살리고 사랑하게 하소서..
문목사님 은혜받고 월요일 시작합니다~^^
▣ 대림절 제19일 (12월 16일/목) 제목/ '하나님의 사랑 고백, 성탄절‘ 묵상말씀/ 요일 4:14-19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14-16)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표현이 바로 예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낮아지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시고 죽음에 까지 내려가시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 끝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생을 선물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랑에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주셔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에게 상처를 줘도 괜찮겠지요? 내가 약속을 어겨도 괜찮겠지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그릇된 사랑입니다. 성경은 믿음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으로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망치지 않으면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것이 부족해도 문제지만 과해도 우리를 망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경험하도록 허락하십니다. 이러한 고통은 불순종에 대한 대가로 훈련시키는 것일 수도 있고, 성숙을 위한 고난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이는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사실로 인하여 발생하는 인간관계에 의한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신의 규칙을 강요하십니다. 주님은 무엇이 옳은 일인지 가르치시고, 우리가 잘못하였을 때 바로잡으시며, 자녀들을 스스로 의를 선택하는 자기 훈련된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열심을 내십니다. 이는 우리의 죄를 없이하시고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본받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변화는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확신하고 사랑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도 마음이 흔들릴 때면, 예수님의 성육신 하심과 십자가의 죽으심 그래서 원수였던 우리와 화해하시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끝까지 견인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 대림절 제17일 (12월 14일/화) 제목/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기쁨‘ 묵상말씀/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우리는 성탄절 인사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합니다. 기쁜 성탄이라는 뜻이죠. 또는 ‘해피 크리스마스’ ‘행복한 성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쁨과 행복의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기쁨은 “뿌리 깊은 환희의 감정으로 이는 너무나 커서 그 강렬함은 거의 고통에 가까운 것”으로 정의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일차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에 의존적인 것으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이 잘 될 때 우리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기쁨은 환경을 뛰어넘어, 환경이 어려울 때조차도 우리의 마음이 느끼게 되는 감정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4:11)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기쁨은 그들 안에 있는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그들 주변의 행복한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에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선물을 받고 즐기면서 자신의 문제를 잊고 행복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러한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일 년 내내 매일 기쁨을 경험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이러한 기쁨은 우리의 삶 가운데 스며들게 되고 우리는 기븜 가운데 믿음과 소망을 가질 수 있으며, 일상 생활 가운데 기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기뻐할지어다(평안할지어다)”(눅1:28)하며 문안을 했습니다. 마리아는 이 세상에 약속된 메시아 오시는 통로로 사용됨으로서 그녀에게는 분명히 내면으로부터 넘쳐나는 기쁨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함였음은”(눅1:46)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들으면서 그 말씀에 복종하면서, 주님의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상황을 뛰어넘어서 말씀안에서 기쁨이 넘쳐나는 크리스마스가 됩시다.
▣ 대림절 제16일 (12월 13일/월) 제목/ '무고한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서‘ 묵상말씀/ 마태 2:13-18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마2:16) 교회력에 12월 28일은 헤롯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건을 기리는 무고한 자의 학살을 추모하는 날입니다. 헤롯은 새로 탄생한 왕이 있는 위치를 밝혀내기 위해 동방박사를 이용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동방박사들에게 헤롯에게 가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직 두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만 1살 이하)을 학살합니다. 즐겁고 기쁜 축하의 성탄에 이 이야기는 찬물을 끼얹고 슬픔과 분노에 차게 만듭니다. 그 때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끔찍할 것입니다. 마태는 베들레헴에서 느꼈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마2:18) 위로받기를 거절하는 슬픔입니다. 우리는 대림절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즐거워하며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환상을 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의 슬픔과 문제의 칼날을 세우는 때입니다. 베들레헴은 성육신의 신비의 장소이지만 인간의 잔학성이 드러난 장소입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 때문에 이 어린 아이들이 죽어야 합니까? 하나님은 왜 그들을 보호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 왜 이렇게 그 부모들에게 잔혹한 고난을 주십니까? 질문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해해야 할까요? 오늘날도 크리스마스의 기쁨과 축하 잔치를 벌이지만 우리 곁에는 고통에 짓눌려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코로나에 걸려 아픈 사람, 경제적 고통의 사람, 우크라이나와 같이 전쟁의 위협에 있는 나라 등 첫째 우리는 악의 실체를 깨달아야 합니다. 헤롯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잔혹하게 악을 자행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악은 사탄은 우리를 잔혹하게 해를 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악에 대항해서 싸워야 합니다. 둘째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영광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셋째 우리는 라헬의 울음처럼 신음하는 자들을 찾아가서 위로해야 합니다. 넷째 예수님의 성탄은 바로 갈보리 십자가 죽음으로 이어서 봐야 합니다. 예수님도 아무런 죄도 없이 폭력앞에 무고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스스로 선택한 대속의 죽음입니다. 도리어 부활하심을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에 동참하십니다. 사63: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그 환난의 자리에 동참하시며 함께 고난받으십니다.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결국에는 부활승리하게 하십니다. 이런 무고한 자의 죽음은 논리적 사고와 훌륭한 신학체계로 설명되는게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계신 하나님과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신 주님과 함께 이 고통을 신음하며 위로하며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그 끝에는 반드시 부활 승리가 있습니다.
▣ 대림절 제13(12월 10일/금) 제목/ '크리스마스를 경험하게 하는 성령‘ 묵상말씀/ 누가 1:35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1:35) 예수님의 탄생에서 그 중심역할을 감당하신 성령님을 우리가 간과한채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의 탄생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역사가 없었으면 크리스마스도 없었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구약에서 메시야 탄생에 영감을 불어넣으셨고, 신약에서 이를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성령님의 기적입니다. 성령님은 다른 사람에게도 역사하셔서, 태중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도 충만하게 하고 태중에 있는 예수님을 보자 기뻐 뛰었습니다. 또 사가랴도 엘리사벳도 성령으로 충만하였고, 그가 예언하여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 성령께서 나이 많은 시므온에게 임하셔서 그가 약속의 메시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임을 알게 하셨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께로 인도하여 안고 경배하게 하였고, 또 마리아에게 십자가 죽으심으로 그 마음이 아플 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즐거워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음을 압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안다고 해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아이심을 고백하고 믿고, 예수님께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요청드려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마스 정신을 수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아들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예수를 믿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였을 때 베들레헴에서 발생한 단 한번의 사건이지만, 지금도 죄인들이 믿음으로 예수님께 돌아서서 그분을 부르며 구원을 요청할 대마다 반복적으로, 우리 안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는 것입니다. 이 경험을 중생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우리 죄를 용서받는 것과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촛불을 켜고 케익을 자르는 것으로 기념하는 것을 넘어서, 아기 예수님께서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셔서 우리 마음속에 함께 하시며, 이 예수님을 경험하며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 대림절 제13(12월 10일/금) 제목/ '크리스마스를 경험하게 하는 성령‘ 묵상말씀/ 누가 1:35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1:35) 예수님의 탄생에서 그 중심역할을 감당하신 성령님을 우리가 간과한채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의 탄생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역사가 없었으면 크리스마스도 없었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구약에서 메시야 탄생에 영감을 불어넣으셨고, 신약에서 이를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성령님의 기적입니다. 성령님은 다른 사람에게도 역사하셔서, 태중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도 충만하게 하고 태중에 있는 예수님을 보자 기뻐 뛰었습니다. 또 사가랴도 엘리사벳도 성령으로 충만하였고, 그가 예언하여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 성령께서 나이 많은 시므온에게 임하셔서 그가 약속의 메시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임을 알게 하셨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께로 인도하여 안고 경배하게 하였고, 또 마리아에게 십자가 죽으심으로 그 마음이 아플 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즐거워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음을 압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안다고 해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아이심을 고백하고 믿고, 예수님께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요청드려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마스 정신을 수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아들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예수를 믿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였을 때 베들레헴에서 발생한 단 한번의 사건이지만, 지금도 죄인들이 믿음으로 예수님께 돌아서서 그분을 부르며 구원을 요청할 대마다 반복적으로, 우리 안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는 것입니다. 이 경험을 중생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우리 죄를 용서받는 것과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촛불을 켜고 케익을 자르는 것으로 기념하는 것을 넘어서, 아기 예수님께서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셔서 우리 마음속에 함께 하시며, 이 예수님을 경험하며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 대림절 제12(12월 9일/목) 제목/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묵상말씀/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8:9) 하나님께서는 은혜 가운데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을 주셨고, 하나님께서는 자비 가운데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할 것(심판)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성취하신 것으로 인하여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를 선택하여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셨고, 이는 은혜의 행위였습니다. (크게 은혜를 받은 자여 기뻐할지어다 눅1:28) 그래서 마리아 찬가에서는 마리아는 어떠한 칭찬도 취하지 않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광대하시기 때문에 바울은 ‘그의 은혜의 풍성함’(엡1:7)으로 인하여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어떠한 삶의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은혜의 결정은 인간의 행위나 완전함이 아니라 전적인 주님의 은혜의 풍성함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인하여 구원받았고,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부요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부요함은 물질적인 부요함이 아니라 도둑맞지도 않고 영원히 남아있는 영적인 부요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 세상은 이 은혜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선행으로 자기 의로 구원받고 천국간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열심히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의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그래서 우리 모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갑시다.
▣ 대림절 제11일(12월 8일/수) 제목/ '예수의 탄생과 하나님의 영광‘ 묵상말씀/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으심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40:6,8)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영광스럽고, 주님의 영광은 변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광은 타오르는 불꽃과 같아서 잠깐 동안 눈부시게 한 후 사라질 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특권인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이스라엘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이 영광을 돌리고, 그 영광을 누리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모세가 성막을 봉헌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반복적으로 죄악을 범함으로 그 영광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또 다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또 이스라엘은 반복하여 죄를 지었고 그 영광은 떠나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님게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실 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구세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잠시 하늘의 영광을 포기하셨고, 이 땅에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시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으며, 다시 부활 승천하셔서 천국으로 가셔서 이 영광을 다시 취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온 성도들도 이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기 예수 탄생때, 별이 나타나 동방박사를 인도하며 영광을 선포했고, 목자들에게 천군천사들이 나타나 영광을 선포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탄생하신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할 때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하나님의 영광이 주의 몸된 교회인 성도들에게 그리고 공교회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우리도 그 영광을 누리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선택하신 목적입니다. 오직 예배중에 그리고 삶에서 아기 예수께 영광을 올려드립시다.
▣ 대림절 제10일(12월 7일/화) 제목/ '이성을 뛰어 넘는 믿음과 역사‘ 묵상말씀/ 눅1:20, 45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20)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눅1:20, 45) 모든 사람은 믿음을 따라 산다. 가브리엘 천사가 사가랴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늙었는데 어떻게 낳느냐? 며 믿지않았지만, 마리아는 믿음으로 순종하였고, 엘리사벳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눅1:45)라며 축복해주었습니다. 우리가 믿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약속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설명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사가랴는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1:18) 그는 자기와 그의 아내가 너무 늙었기 때문에 기도로 간구해놓고 그 응답에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다보니 하나님의 약속에 기뻐하기보다 합리적인 상세한 설명을 원하다가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1:34) 이 질문은 의심이기보다 오히려 순결을 이야기합니다. 요셉과 정혼을 하였지만 순결한데 어찌 아기를 낳을 수 있습니까? 그러자 가브리엘은 ‘성령의 능력이 그녀를 ’덮으시리니‘라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것만 믿으려고하는데, 이 세상의 일은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믿음은 이성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기 때문에 그 분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사가랴는 침묵하는 동안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믿음으로 반응함으로 그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그 아들 요한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엇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획에 자기를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임신이 만들 문제와 소문거리를 앎에도 자신을 다 맡기고 순종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인생을 단순하게 편리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벗어나 하나님의 손 안에서 안식하고 모험을 즐기며, 그분이 이루어가시는 일에 놀라기 원하신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세례요한은 태어났고 예수님도 오셔서 인류를 구원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우리가 먼저 반응하는 것입니다.
▣ 대림절 제9일(12월 6일/월) 제목/ '서로 세워주는 성도와 공동체‘ 묵상말씀/ 눅1:39-45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눅1:43-45) 엘리사벳은 연세가 많은 할머니지만 하나님의 큰 은총으로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 세례 요한을 잉태한 가장 축복받은 여인입니다. 남편과 함께 그녀는 의롭고 흠이 없는 신앙으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두 부부는 끝까지 자식을 하나님께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세례 요한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여인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하여 천사의 인도로 엘리사벳에게 왔을 때, 태중에 메시아를 잉태한 것을 축복하며 마리아를 위로했습니다. 80이 넘은 할머니가 15살의 어린 소녀의 놀란 마음을 위로하고 안정을 시켜주며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엘리사벳도 아기 예수의 탄생을 예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영적 어른이 아주 필요합니다. 혼란 가운데 있는 젊은 성도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인도할 성숙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필요합니다. 성숙하고 말씀과 사랑으로 세워주는 공동체가 아주 필요한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복중에 예수를 잉태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려줍니다. 그리고 태중에 있는 세례요한도 성령에 감동되어 기뻐뛰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이렇게나 놀랍고 최고의 위대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믿고 우리 마음속에 함께 거하고 있다는 것이 기적인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45절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마리아는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임을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알려줍니다. 이렇게 주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고, 말씀 듣기를 사모하는 사람은 참으로 복됩니다. 말씀으로 성도들을 위로하고 세워주는 공동체요 동역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 대림절 제6일(12월 3일/금) 제목/ '약속을 믿고 메시아를 만난 시므온‘ 묵상말씀/ 눅2:28-32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은 영원한 왕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축복의 사람입니다. 또 시므온도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26) 성령님의 지시로 약속을 들었습니다. 그는 의롭고 경건하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로, 성령이 그 위에 계셨다고 했습니다. 먼저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로마의 압제로 고통받는 이스라엘이 위로받고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갈망했습니다. 우리도 삶의 여러 어려운 문제로 지금 위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을 갈망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시므온의 특징은 성령이 충만하고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시므온에게 축복의 약속을 선물합니다. 죽기전에 그리스도를 본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로한 구원자를 본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이 약속이 성취됩니다. 아기 예수가 정결례를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오고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를 만나서, 아기를 안고 찬송합니다. ‘주재여 이제 메시아를 보게 하시고 평안히 놓아주십니다’ 나이 든 시므온이 이제 평안히 눈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백하기를 ‘만민 앞에 예비하신 메시아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이스라엘의 영광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온 세상의 메시아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향하여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라니’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도 예언합니다. 바로 시므온은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엇던 것입니다. 우리도 시므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듣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때 축복의 약속이 우리 인생을 복되게 합니다.
아멘
문목사님 축복합니다. 늘 힘내시고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얼마나 좋은지요. 고맙습니다 목사님.
은혜 받았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