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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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안대군 방석 - 0세 아들과 함께 살해당한 16세 왕세자
조선 시대 의안대군은 두 분이다. 첫 번째가 이성계의 이복동생인 이화(李和, 1348년)로 고려말의 무신으로 이성계를 도와서 위화도 회군, 정몽주 제거에 공을 세우고,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영의정을 지냈다. 묘역은 남양주 평내호평역 근처에 있다. 두 번째가 비운의 왕세자 의안대군 방석이다. 태조 이성계의 여덟째 아들이자 신덕왕후의 막내아들로 조선의 첫 왕세자 의안대군(宜安大君) 방석(芳碩, 1382~1398)이다. 이영상은 아버지 앞에서 31세 이복형에게 0세 아들과 함께 살해당한 16세 왕세자 의안대군 방석에 관한 영상
의안대군 방석 묘역 이력
1382년 이성계와 강씨부인 사이에서 차남으로 출생
1392년 8월에 세자 책봉.
1397년 심효생의 딸 심씨와 혼례.
1398년 아들이 탄생.
1398년 방원(태종)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때 아들과 함께 살해됨.
1406년(태종 6) 소도공의 시효,
1437년 세종의 6번째 아들 금성대군이 의안대군 양아들로 입적
1448년(세종 30) 세자빈 심씨 사망
1449년(세종 31) 금성대군 묘표 건립 2월, 세자빈 묘표건립 5월
1453년(단종 1) 금성대군 단종 복위운동으로 처형, 이복형제 춘성군 이당이 계승
1680년(숙종 6) 의안대군으로 추종
오랫동안 유실되었다가 1823년(순조 23) 후손들에 의해 위치가 확인되었고 1999년 무덤을 새로 단장하였다.
아버지 태조 이성계는 어린 세자의 죽음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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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성벽이 흉한 몰골로 남아있는 동대문역사공원역 3번 출구 50m 전방 - 한양도성 흔적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니 사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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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성벽이 동대문역사공원역 앞에 축대로 남아있다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광희문 달빛로드 역사투어'에 참가했다가 해설사님이 안내해 주었는데,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너무 엉성하고 보기 흉한 축대였습니다. 도성 흔적이 골목길에 숨어 있듯이 엉뚱하게 남아 있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지만, 대로변에 비참한 모양으로 노출된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의심했지만 옆에 '광희문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 흔적' 이라는 안내판까지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사진자료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강변 구용산 용머리 유적 - 읍청루, 별영창, 담담정, 남호독서당, 구용산수위관측소, 청암부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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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역과 용산전자상가 사이에 한강으로 뻗은 능선이 있습니다. 이 능선은 용산 줄기이고, 끝자락은 절벽은 절경으로 이름난 곳 이었습니다. 1758년 도화원 화원인 김석신이 그린 그림이 마포, 담담정, 읍청루의 풍경을 전하고 있습니다. 1860년 작성한 김정호의 경조오부도에는 용산 지명 아래에 읍청루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담담정은 세종 때 안평대군 정자에서 신숙주를 거쳐서 일제시대 경무총감의 별장으로, 해방후에는 이승만대통령 별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담담정, 읍청루, 남호독서당은 동국여지비고, 한경지략, 이락정집(二樂亭集) 문헌에 언급이 있다. 이락정집 에서는 담담정의 위치를 '烏石岡晩眺 岡在讀書堂西百步許淡淡亭東北'이라고 정확히 명시하고 있다. 즉 담담정의 위치는 남호독서당(南湖讀書堂)이 있던 별영창 읍청...
한강변 유적 마포 토정 이지함 집터와 스토리텔링 거리(feat 토정비결 조형물)
Просмотров 51Год назад
김석희 조각가 작품인 '귀한 소금 받아 가시구려!'라는 제목의 조형물은 토정 이지함 선생의 구휼활동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토정비결로 알려진 이지함 선생은 맨손으로 바다와 갯벌, 무인도를 이용해 수만 섬의 곡식을 쌓아 굶주린 백성에게 나눠주었는데, 그 상황을 표현한 조형물이다. 토정 이지함의 집터 표지석은 한강변 토정나들목 삼성아파트에 위치하고 있다. 마포 갈비골목, 맛깨비길을 따라 걷다 보면 토정의 동상과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물고기를 가득 잡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줬다는 일화에서 맛깨비거리가로에는 인생비법을 적은 물고기가 뗴를 이루고 있다.
한강변유적 마포 - 옛 마포나루 역사, 생활, 문화와 황포돛배를 재현한 역사체험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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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 - 청 황제가 조선에 건립한 왕립 관우사당 - 청 사신들 필수 방문지 - 임오군란 때 대원군 납치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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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북묘비 -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겪으면서 무당에 의지하게 된 고종이 쓴 역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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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역사들이 켭켭이 쌓여 있는, 그러나 흔적을 지워버린 혜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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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로 - 1963년 파괴한 한양도성 성돌들이 축대와 실내장식으로 재활용된 현장들 - 자유총연맹, 반얀트리 스파엔 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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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 광화문광장 - 평일은 외국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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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당] 일제에 의해 1925년 무악재로 이전된 남산 정상에 있던 국사당은 해방후 지금까지 복원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세란병원 - 인왕사- 국사당 - 선바위 - 한양도성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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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어기원당제 또는 용왕제 - 우연히 구경한 전통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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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이동규-j7n
    @이동규-j7n 8 месяцев назад

    태조 , 이성게 와 무학 대사 가 자주 상봉 하던 , 회암 사(寺) 빈터 , 앞 으로 무슨 계획 이 있는 지 요?. 미관상(美觀 想) ?. 위화도 에서 , 꿈 해몽, 이성계 를 보고 , 무학 , 스님 , 曰 ,( 左君 左君 , 右君 右君,) 어떤 스 님은 , 問 자 를 , 보고, 問, 앞에 口 , 을 ,뎃다고,,乞人,팔자 ?. (耳顯鈴 , 鼻顯鈴,)?.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영상을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다나까야마시다
    @다나까야마시다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아.주문진요?아들바위 말씀하시는군요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영상을 시청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다나까야마시다
    @다나까야마시다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아마?않되지십죠 로스터교가.원조인 이종교.쌍심지켜고 반대할겁니다.지구연대가 6024년이라고.굿게밋으니까요.지구나이는.45억년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영상을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bumjinlee9945
    @bumjinlee9945 Год назад

    이십수는 나무이름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십수하는 다양한 해석이 있더군요. 제가 참고하는 책은 이응수 엮음, 문세화 평역의 김립시집 소고 라는 도서 입니다만, 스무나무 번역이 아쉽웠습니다. 이 영상에서는 네이버 자산동 쉼터의 해석을 따랐습니다.

  • @redarishem
    @redarishem Год назад

    우리의 역사............. 국권 수호........... 다시금 일본에 더럽혀지고 독립운동가를 모욕하고 일본에 세금을 몰아주는 윤석열을 규탄합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오타 수정 - 1:13 정조, 순조 때 도화서 화원 김석진 - 김석신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대원군 납치 장소는 운현궁, 용산청군진영, 동묘 등 여러 설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용산청군진영으로 나와있으나 내용이 전체적으로 왜곡되어 있습니다. 이 영상은 납치장소는 정황으로 동묘라고 가정하고 만들었습니다. 대원군이 천진에서 쓴 일기 - 대원군 천진왕환일기가 빠른 시일내에 한글화되고 공개되기를 바랍니다. 대원군이 천진으로 행차하였다. - 고종실록 19권, 고종 19년 7월 13일 정유 2번째기사 【오늘 오후에 대원군이 정여창, 마건충 두 사람이 머물고 있는 둔지미(屯地尾-용산을 지칭)의 청나라 군영에 가서 답례 방문을 하고 사의를 표한 다음 병선(兵船)을 타고 중국으로 떠났다.

  • @키스를날려쓰러뜨리자

    하루빨리 철거해야겠군요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대원군이 청군진영에 손님으로 초대받아 갔다가 납치된 역사는 은폐되어 왔다고 봅니다. 와신상담 - 굴욕을 복수로 갑는다 - 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길빛-k2h
    @길빛-k2h Год назад

    박노수. 친일파라는 거는 알고 계시나요

    • @이진호-i5l
      @이진호-i5l Год назад

      나이가 있어서 친일을 할 시간은 없었을 듯

    • @최배달의만족
      @최배달의만족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고 계시네요. 친일파의 딸이 살던집을 인수해서 살았을 뿐이지 무슨 친일을... 모르면 좀 가만히 계시는게 좋겠네요.

  • @고로짱-x3h
    @고로짱-x3h Год назад

    복원 하세요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어설프게 복원할 바에는 폐허상태로 그냥 두는 것도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유교탈레반들의 만행으로도 보존할 의미가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샤론-t3n
    @샤론-t3n Год назад

    선생님 같은 분들과 답사하고 싶네요 내일 가 보려구요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관심과 덕담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양주 회암사지는 삼국시대부터 개성에서 한양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길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임진강부터 낮게 이어지는 연봉의 봉우리마다 보루와 산성, 봉수대들이 있어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나라라는 것을 실감한답니다. 주차시설과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습니다. 즐거움과 감동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실거라고 확신(^^)합니다.

    • @샤론-t3n
      @샤론-t3n Год назад

      @@역사나침반 차가 없어서 지하철. 타고 버스 타려구요. 답글 감사합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샤론-t3n 대중교통으로 방문하시려면 조금 불편할텐데요. 작년 코로나 시국 방문이어선지 덕정역 78번 버스의 경우 10분~15분 이라고 하는데, 40분 간격이기도 하니 버스 간격 확인해 보시구 출발하세요. 근처를 통과하는 버스 노선들도 여럿있더군요.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샤론-t3n
      @샤론-t3n Год назад

      감사드립니다

  • @shinseunghoh
    @shinseunghoh Год назад

    아주 귀한 경험을 하셨네요. 덕분입니다. 영상 잘 봤습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예, 제 기억속의 광화문광장은 공사중이거나, 시위하거나, 행사하거나였습니다. 평화로운 풍경이 너무 신기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귀한 시간을 즐겼습니다. 귀한 보물을 간직한 느낌이었습니다. 덕담에 감사드립니다.

  • @Travelingineverydaylife
    @Travelingineverydaylife Год назад

    Like 3~~영상 감사드려요 즐청하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힐링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덕담에 감사드립니다. 일상속여행님도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 @Travelingineverydaylife
    @Travelingineverydaylife Год назад

    Like 8~~좋은 영상 잘 보고 이웃되어 갑니다. 즐거운 목요일 되시기 바랍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격려와 덕담에 감사드립니다. 일상속 여행님은 힐링속 여행으로 살고 계시더군요. 힐링 나눔이 부럽습니다.

    • @Travelingineverydaylife
      @Travelingineverydaylife Год назад

      @@역사나침반 감사합니다 유친님^^

  • @koei88kr
    @koei88kr Год назад

    그럴 필요 까지야. 일제시대도 역사. 성리학 탈레반 국가 조선시대 돈 들여서 굳이. 광화문에 돈 들여서 복원한 것도 반대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조선초기 왕권이 신권보다 우위에 있을 때까지, 숭유억불을 내세운 유교국가에서 불교와 무속을 국민통합차원(?)에서 인정했다라는 포장이 광화문광장을 뜯어고치기 반복 보다 더 그럴 듯 하다고 생각합니다. 의견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julria8638
    @julria8638 Год наза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는데 .. 요즘 점점 현실이나 정부의 인식을 보면 너무 안타까울 뿐입니다 . 다시 한번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역사를 지식으로 배우고 시험으로 끝나는 과정이라는 학습의 결과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위 영상의 성동구의 경우 옥수역이 대마도 출정 장소였고, 잠실대교 자양동 낙천정이 대마도정벌 승전환영식 장소였다고 하니 성동구민 한강변 대마도정벌 기념 걷기대회와 같은 행사를 하면 좋을텐데 아쉽더군요. 그리고 해당지역의 공지에 해당역사 관련 벽화나 조각으로 장식하면....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 @julria8638
    @julria8638 Год назад

    귀한 영상 감사합니댜 .문화재가 보존 되지 못하고 파괴되고 유실 되어 가는게 마음이 아플뿐이에요 ..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어릴때 미끄럼타고 놀던 언덕이 작년에 가보니까 왕가의 릉이었더군요. 지금은 담을 둘러치고 숭인원과 영휘원이란 문패를 걸고 입장료를 내야 들어 갈 수 있답니다.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회복되어야 할 곳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이런곳들 영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 @sinsugimo
    @sinsugimo Год назад

    잘 보고 갑니다 ~ 복받으실거에요. 금호동에서 사춘기를 보냈었는데 지금은 참 .아파트가 다 들어서서 가끔은 씁쓸하기도 하더라구요 .... 머 물론 그전에는 너무 고옥이라...재개발을 했어야 했긴 하지만요 ..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덕담에 감사드립니다. 70년대의 추억이 아련하시겠군요. 옥수역 근처 미타사를 가끔 방문합니다만, 동호일대가 중국까지 알려진 절경지역이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답니다. 1531년에 한강 동호 실경 그림인 '독서당회계도'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 @sinsugimo
    @sinsugimo Год назад

    유투브에서 울동네를 보다니 ㅎㅎ 반갑네요. ㅋㅋ 26년전에 저 라인 신문배달했던...ㅋㅋ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하하 축하드립니다. 제가 살던 동네는 통째로 대단지로 개발되어서 살던 집이 어디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더군요.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의 심정을 쪼금 느꼈답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잘못된 정보가 있습니다. 4:46 동묘는 제갈공명사당으로를 관우사당으로 바로잡습니다.

  • @고재춘-j3w
    @고재춘-j3w Год назад

    0:42 자막은 중국 만리장성 비하 내용인가요? 도시에 없으니까 인공구조물일 뿐입니까? 아! 도시에 없는 것들은 그냥 인공구조물이군요.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0만 인구로 설계된 한양도성이 천만인구로 100배 이상 폭증하면서도 거주지, 도로, 철도, 상하수도등 기반시설확충과 재개발속에도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례는 세계사적으로 유일하다고 봅니다. 그런의미에서 한양도성은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만큼 자랑스런 인류문화역사산업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뽕이 지나친가요?

    • @고재춘-j3w
      @고재춘-j3w Год назад

      @@역사나침반 사실 중국은 지켜야할 영토 범위가 넓기 때문이고 한국은 그냥 작은 나라이니까 그런 것이지요. 국뽕은 아니신 것 같지만 한국과 다르다고 해서 타국의 문화유산을 '인공구조물일 뿐'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고재춘-j3w 관심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만리장성과 한양도성은 역사적가치와 규모, 유지와 관리에 있어서 비교 대상은 아닙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우리나라가 문화 유산 보존에 눈을 뜬게 2000년대라고 봅니다. 먹고 살만하니까 부자가 골동품 수집하듯이 우리 유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초등학생시절이었던 1970년대 전후로 많은 유적들이 흔적도 없이 우리손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때는 아무도 그것들이 소중한 재산인지 몰랐습니다. 학자들도 유적이 뭔지 몰랐습니다. 1961년 서울대에 고고학과가 개설되었는데, 유적발굴이 뭔지 몰랐었다고 고백하는 학자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습니다(올림픽공원 백제한성박물관 영상자료). 어느덧 나이들고 찾아 보니 깨끗하게 사라졌더군요.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표지석 조차 없는 유적들이 널려 있습니다. 대궐 집에 있는 금송아지 보다는 내 집에 있는 할아버지 찌그러진 숟가락이 더 소중하다. 그 숟가락을 통해서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의 삶을 느낄 수 있다. 그게 소중한 보물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보잘것 없다고 무시하지 말자. 과장된 표현으로 상처받으셨다면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 @고재춘-j3w
      @고재춘-j3w Год назад

      @@역사나침반 맞습니다. 저도 2000년대 들어서야 한국은 유산 보존에 눈을 떴다고 생각합니다. 그전까지는 정말 미개했죠. 얼마나 미개하면 자신의 나라를 짓밟은 일제가 세운 조선총독부를 국립박물관으로 쓰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으니까요. 자기 국민들을 고문해 죽인 일제의 본거지를 국립박물관으로 쓰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것입니다.

  • @elfyuna
    @elfyuna Год назад

    돌을가져왔다는 😂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경기고와 아이파크 자리는 백제 토성이 있던 규모가 큰 성이었습니다. 남한산성처럼 멀리서 보이는 흰돌성이었답니다. 지금은 돌하나 남지 않고 사라졌고, 2021년도에 고개 정상에 삼성리토성 표지석을 세웠답니다. 흰돌을 볼 때마다 삼성동 토성이 떠오른답니다. 감사합니다.

  • @gony0101
    @gony0101 Год назад

    와..진심 대단하십니다. 이런 연구와 탐구가 우리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일본을 보면서 참 부러운게 많았는데 역시 우리나라도 이런분이 계시군요!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연구와 탐구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한양성곽길을 돌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사단(?)이 났습니다. 제가 본게 사실이면 뉴스거리였을텐데, 해당 장소도 서울 시내 중심지여서 보는 눈들이 많이 있을텐데.. 하면서 궁금증을 찾게 되었답니다. 과거에(아마 1970년 이전으로 어렴풋 기억) 일본에서 구도심지역 재개발할 때 성벽과 같은 유적을 밀어내고 도시기반시설-도로, 철도, 상하수도 -을 했다고 기억합니다. 일제시대 한양에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구도심지역이 도시확장하고 도로시설을 확충하면서 남대문, 동대문이 남아있는 것은 예외적이라고 하는 글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격려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navyan7935
    @navyan7935 Год назад

    이것도 일제의 잔재인가요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 정확한 답변드리기 위해서 검색을 다시 해 보았습니다. 제 영상에서 같은 주제가 실린 기사가 2021년 9월 11일 아틀라스 신문사에서 보도하였더군요. 제가 영상을 만들면서도 이 주제가 이슈가 되지 않은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여튼 발견한 기사에 따르면 1930년대에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이 일대(첨언 - 신당동)에 문화주택 단지를 조성하면서 한양도성의 상당 부분을 훼손했으며 해방 후 1960~70년대에 신축된 주택들도 성벽을 파괴했다. 주택가를 들어가 보면, 주택의 담장이나 축대로 사용되고 있는 성돌이 눈에 띤다. - 기사 이외에 장충단로 신라호텔에서 반얀트리 리조트 까지 대로변 축대, 반얀트리 한남대교 방향 축대 는 정부에서 반공센터단지를 건설하면서 파괴하였답니다. 다음은 기사 링크입니다. 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97

    • @navyan7935
      @navyan7935 Год назад

      정확한 답변으로 배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광화문 월대복원에 관해서 언론에서 뼈아픈 역사 일제의 만행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과연 맞는것인가 개인적으로 혼돈이 오고있습니다. 뼈아픈역사인 것은 맞지만, 과연 일제가 허문 궁궐과 백성이 허문 궁궐은 다른 것일까 하는 말입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navyan7935 원하시는 답변과 연결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2018년 겨울에 아일랜드를 혼자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더불린 작가 박물관에 갔다가, 우리나라의 친일작가 같은 분들이 정면에 전시되고, 펍에 흉상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곤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일랜드태생 영국인인 버나드 쇼같은 경우는조국에 대한 망언을 서슴지 않았는데, 더불린의회에서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난상토론끝에 결론은 모국에 대한 폄하보다는 인류발전에 기여한 공이 더 크다. 아일랜드를 거짓과 위선으로 마비된 나라로 묘사한 제임스 조이스는 국부 대우를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귀국해서 '한국에서는 제임스 조이스 같은 작가는 파멸감인데, 너희가 존경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생각을 제임스 조이스 협회 게시판에 문의를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답을 주셨습니다. 공통점은 인류의 위대한 보배였는데, 아일랜드에 태어나서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생전에 그를 이해해주지 못한 죄의식을 갖고 있다.로 귀결됩니다. 제임스 조이스는 1941년 스위스에서 사망하였고, 아일랜드 국민이 시신의 귀국을 반대하였습니다. 지금은 그의 묘지를 아일랜드로 이장하려는데 스위스의 반대로 불가능하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결정을 받아 들이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일랜드가 완전 독립하면서 선출한 초대 대통령은 영국계 아일랜드인이며 성공회신자를 의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선출하였습니다. 아일랜드는 독립과정에서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노선차이로 분열하여 1년간 치열한 내전이 벌어졌던 나라입니다. 지금 아일랜드는 국민소득 세계 2위 10만불이 넘습니다. 영국의 2배가 넘습니다. 잘 살게 되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라고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일본의 2배가 되면 일본은 우리의 안중에 없게 될 것입니다. 영국에서 아일랜드로 넘어가면 입국심사가 까다로운데,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넘어가면 입국심사가 없더군요. 국력의 차이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봅니다. 장황한 글이라 죄송합니다. 진지한 관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막동이-t9u
    @막동이-t9u Год назад

    6:10 오른쪽 담장집. 구 삼성가 이병철 회장집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정확히 적시해져서 감사드립니다.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는 산성같은 구조네요. 말로만듣던집을 제가 지나쳐 왔군요.

  • @khyoonphd
    @khyoonphd Год назад

    저는 순 서울사람입니다. 어릴 때 부터 돌아다니던 길과 동네의 오랜 흔적들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사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실테데 고맙다는 마음을 말로나마 전합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영원히 있을 것 같았던, 건물들, 구슬치기하고 고무줄놀이하던 놀이터였던 골목길들, 옛날이야기들을 들었던 극장이기도 했던 뒷길들이 재개발로 송두리째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속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선조들의 스토리들도 사라짐을 목격하면서 비로소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아보면서 제 허전함을 달래려 만드는 영상인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mhjin2392
    @mhjin2392 Год назад

    상식적으로 주로 일제 시대때 성벽을 허물고 도로를 많이 뚫었으니 추정되는 석재들이 어떤 경로로 지은것이지는 모르겟으나... 단순하게 지금에 와서 그걸 문화재를 파괴하고 훔친것으로 간주하면 안되지요 또 옛 성벽으로 추정되는 축대 위에 집을 지은것도 정부도 이미 파악하고 있을텐데 단순히 님께서 동네 돌아다니고 영상 찍어서 저기가 성벽으로 추정된다? 또 현재 잘 살고 있는 집들에게 그걸 협의하여 회수하여 복원하자니 그럼 현재 집을 허물고 성벽돌 회수하고 재건축이나 이주 보상해주고...... 문화재도 소중하지만 당장 그 예산을 누가 감당하며? 또 그에 따른 이주민은 대책은? 재개발이라는 호재를 만나면 당연히 회수하거나 복원하면 좋겟고 충분한 조사를 통해 데이터화하여 시간을 두고...현재 소유지에게 고지하고... 건축물 철거 신고나 신축 신고에 반영하여 회수 하는 방법을 찾아야지 단순히 님께서 그런생각이 든다고 영상 찍어서 회수해라...훔쳐 간거 같다... 에라이~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제 영상에 분노하시는 것을 이해합니다. 해당 지역에 사시는 분들은 더욱 기가차겠지요. 사유재산을 최대로 보호하면서 유적과 공존하면서 살수 있는 사례들은 개발되고 있습니다. 혜화동 혜화문과 경신중고 사이에 주택 마당에 있던 성곽 약 70m를 확보해서 소공원으로 만들었고, 서대문 돈의문지구는 재개발하면서 하단부 흔적위에 성곽을 복원하였답니다. 소유자, 개발자, 주무관청 모두 윈-윈하는 방안들이 나올 듯 합니다. 관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조무강-e7j
    @조무강-e7j Год назад

    비현실적이겠지만 도성을 싹다 복원하고 한양도성 안을 특별구 같은걸로 지정했으면 하네요.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유적도 사람도 살아야겠죠. 유적과 공존하면서 살수 있는 방법들은 혜화동 혜화문과 경신중고 사이에 70m 한양성곽소공원 확보, 서대문 돈의문지구는 재개발하면서 하단부 흔적을 찾아서 복원하였답니다. 완전체로 남아있는 유적은 관계자들이 지혜를 짜내면 윈-윈하는 방안이 나올 듯 합니다. 관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User11737
    @User11737 Год назад

    와 진짜 잘봤습니다!! 이런 주제 너무 흥미로와서 좋아요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흥미롭게 보셨다니 정말 기쁩니다. 덕담에 큰 용기를 얻습니다. 감사드리립니다.

  • @와덕부부
    @와덕부부 Год назад

    말씀대로 이순신의 생가터임을 알릴 수 있는 흔적이 좀 더 있었으면 싶네요 ~~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길바닥에 새긴 영웅일대기는 잘 보이지도 않거니와 걸어갈 때 영웅을 짓밟는 기분입니다. 당장 이것부터 걷어냈으면 합니다. 일본을 탓하기보다 우리손으로 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멋지개 해결하면 자부심과 국격도 올라갑니다. 옥수동에 대마도정벌 출정식 장소가 있고, 자양동에는 대마도정벌 귀환 환영식 장소도 있답니다. 이런 역사적인 장소부터 대대적으로 회복하면서 후손들에게 알려야 하는게 우선이라고 보면서 유툽을 하고 있답니다. 전철 놓느라 파괴한 광화문 월대로 핏대 올리는 것은 모양이 썩 좋지 않습니다.제 밥상도 못챙기는 위인들의 열등감의 표현이라고 보이니까요? 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soonhan1
    @soonhan1 Год назад

    와..뭔가 반가운 돌 들입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주택가 축대에서 성돌들을 찾아 보는 것은 보물찾기 같다고 할 것 같습니다. 축대에 일반돌들과 섞여 숨어있거나, 성곽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그위에 건물을 건축한 곳들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제6군
    @제6군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진짜 몰랐던 역사의 장소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연히 옥수역 옆의 대마도 정벌 출정식을 기념하는 기해동정비를 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조선초기 중심 항구였고, 왕가들의 저택들이 있었던 풍광좋은 지역. 독서당은 왕이 유생들이 경치좋고 한적한 곳에서 더 수련하라고 만든 수련터였다는 사실, 더 놀라운 것은 이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이 중국까지 알려져서 사신들의 필수 여행코스였고 압구정에 정자에 사신들이 몰려들자 주인 한명회가 불편함을 표했다가 파직당하게되는 역사적 사실들, 진경산수화, 실경산수화들로 사진같은 모습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장소입니다. 산수화의 비경지는 강북은 한남동쪽에 절벽들 위에 한옥집들, 강남은 절벽위에서있는 압구정자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최고의 주택입니다. 알면 알 수록 놀랍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 @bacchustan
    @bacchustan Год назад

    친일파 윤석열이가 잘도 하겠네요... 민주정부에서도 안하는 것을...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시내 중심지 노른자위에 위치하고 있고, 땅 소유권이 얽히고 섥혀있어서 진행히 쉽지 않을 것으로 짐작해봅니다. 아쉬운 곳이 두 군데 더 있습니다. 한양에서 대마도 정벌에 관련된 장소들입니다. 옥수역 일대 한강변은 세종과 태종이 참석하여 대마도정벌 출정을 떠나는 이종무 장군등을 격려한 두모포 항구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잠실대교 북단 광양고등학교 뒷편 낙청정은 대마도 정벌 귀환 환영식이 열린 장소라고 합니다. 저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의미있는 장소라고 보고 있습니다. 외각이고 한강변이어서 이순신장군 생가터 보다 수월하게 개발해서 민족 자긍심을 키울 수 있다고 봅니다. 관심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여상용-o1o
    @여상용-o1o Год назад

    90년대 대학생 시절 서울극장 근처에 유성룡의 생가터 알림 표지석을 보곤 했는데, 이순신 장군 생가도 가까이에 있었네요. 어릴 적 부터 친구 사이라더니, 집이 가까우니 서로 교류하셨을 듯 합니다. 한국가면 함흥냉면 먹으러 오장동에 가곤 했는데, 다음엔 이순신 장군 생가터 먼저 돌아보고 싶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하신 유성룡과 이순신 장군의 형과 친구사이 였다고 문헌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조카인 이분(李芬)이 지은 〈행록(行錄)〉에 어린시절 전쟁놀이를 즐겼는데 대장역할을 맡았는 기록이 있습니다. 3살 어린 이순신을 눈여겨 보았을 듯 합니다. 7~8세경 충남 아산 외가로 이주하였다는 전언을 기억합니다. 홍길동을 쓴 허균이 지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 34채 가옥이 있었는데, 많은 인물이 동시대에 배출되었다며 자신의 형인 허성, 유성룡, 이순신 등을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다음에 한국을 방문하실 때는 생가터에 기념관이 들어설 듯 합니다. 2010년대부터 꾸준히 논의가 있었는데, 곧 진척이 있는 듯합니다. 혹 공사중이라면 영웅을 알아본 유성룡집터 표지석을 다시 한 번 구경하시고 오장동 함흥 냉면을 즐기세요. 옛맛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동네김동희
    @동네김동희 Год назад

    윗븐들 머하십니까 ? 이런곳에 신경을 좀 쓰시지요 어찌 세워진 대한민국인데...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신세계백화점 - 명동 - 백병원 - 중구청 - 장충동이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 집단거주였다고합니다. 일본인 거주지 중심점에 이순신장군 생가터가 있었답니다. 충무로 가로명에 임진왜란의 영웅을 불러오는 의미와 생가터 2가지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2010년대부터 생가터 성역화 계획은 관할인 중구청에서 구체적으로 꾸준히 보도가 되고 있는데 진척이 없더군요. 조감도까지 보도가 된지가 2015년경으로 기억합니다. 2023년 2월 5일 기사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추진한다는 기사가 있더군요. 7년~8년이 소요된다는 설명이 함께 있습니다. 잘 진행되기를 기대하면서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다른 분의 댓글을 첨언합니다. 시내 중심지 노른자위에 위치하고 있고, 땅 소유권이 얽히고 섥혀있어서 진행히 쉽지 않을 것으로 짐작해봅니다. 아쉬운 곳이 두 군데 더 있습니다. 한양에서 대마도 정벌에 관련된 장소들입니다. 옥수역 일대 한강변은 세종과 태종이 참석하여 대마도정벌 출정을 떠나는 이종무 장군등을 격려한 두모포 항구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잠실대교 북단 광양고등학교 뒷편 낙청정은 대마도 정벌 귀환 환영식이 열린 장소라고 합니다. 저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의미있는 장소라고 보고 있습니다. 외각이고 한강변이어서 이순신장군 생가터 보다 수월하게 개발해서 민족 자긍심을 키울 수 있다고 봅니다. 관심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가족의행복가족의행복
      @가족의행복가족의행복 Год назад

      이런데나 신경쓰지 어찌하여 윤통은 일본한테만 신경 쓰는지

    • @동네김동희
      @동네김동희 Год назад

      @@가족의행복가족의행복 나라꼴이 엉망이네요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가족의행복가족의행복 역대 모든 정권이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투자에 비해서 흥행 효과가 미미하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박기호-u3p
    @박기호-u3p Год назад

    안타깝습니다 자세한 내용 감사합니다 저는 통제영이었던 곳이라 통영이란 지명을 갖게된 곳에 사는 시민입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먼 곳에서 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생가터가 충남 아산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생가터 성역화 계획은 2010년대부터 꾸준히 중구구청신문에 보도가 되고 있는데 진척이 없더군요. 2024년부터 공사가 진행된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생가터를 방문해 보곤, 학자들의 노력에 감사하면서, 정치권이 포기 또는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nadinx
    @nadinx Год назад

    제가 1959년부터 1980년 까지 어릴 때와 청년기를 보낸 신당동 근처 이야기라 반갑네요. 남산, 장충단, 광희문 등 제 어릴 때의 기억이 가득한 곳입니다. 감사합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성동여실고가 글로벌경영고로 이름이 바뀐 것 만큼 주변에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한양공고가 그대로 있는 것처럼 시간이 멈추어 있는 뒷골목길들이 남아 있어 향수를 자극합니다. 장충고등학교쪽 성곽길은 현대와 근대와 과거(조선)가 잘 조합된 산책로가된 느낌입니다.제가 어린시절을 보낸 곳은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서 흔적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무척 허전하더군요. 감사합니다.

  • @땐슁창
    @땐슁창 Год назад

    제가 살던 동네네요~ 신당동서 30년 살고 그중 10년은 영상에서 보이는 장충동 건너편 성곽길에서 살았습니다~ 어릴땐 몰랐던 문화유산의 흔적들~ 지금 다시보니 너무 소중해 보입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성벽 자리에 양쪽으로 주택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지요. 능선을 절개해서 길을 만든 구간은 아쉽지만, 대부분 성벽은 좁은 골목 길로 남아 있습니다. 능선길을 따라 걷다보면 한양도성을 건축한 태조 이성계, 토성을 석성으로 보수한 세종, 전면 수축한 숙종과 순성놀이를 즐기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호흡을 느낄 수 있답니다. 재개발이 되면 남아있는 길조차 사라지겠죠. 어디까지가 유적이고, 희미하게 남겨진 유적을 어떻게 보존해야 좋을지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쵸코-d7f
    @쵸코-d7f Год назад

    장충동 큰집들 삼성1세대 집들입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장충동 능선길에는 아파트 단지가 없지만, 대궐집들과 빌라들, 연립주택들, 단독주택들, 조각주택들 여러 형태의 주택들, 좁고 긴 미로같은 골목이 혼재되어 있어서 근대사 유적의 보고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막동이-t9u
      @막동이-t9u Год назад

      장충동 일대는 일제시대 고급주택단지인데 이병철집도 일제시대 건축물입니다. 흔히 적산가옥이라고 하는 집들. 지금도 수백평 규모의 적산가옥들이 몇채 남아 있음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막동이-t9u 큰 골목에서 볼 수 있는 대궐집도 있고, 경비가 서있는 좁은 골목 안쪽으로도 대궐집들이 있더군요.

  • @fhdsfhddy7047
    @fhdsfhddy7047 Год назад

    0yuuewfg

  • @아재-r9d
    @아재-r9d Год назад

    더 위에 윤동주기념관 숙정문 인왕산등산로 북암동 주민센타 기준입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진심어린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윤동주기념관 아래쪽에 청운공원에 청운문학관도서관이 있습니다.약간 외진장소에 한옥으로 건축되었는데, 좌식이라 불편할 수 있지만, 조용하게 쉬면서 책읽기 좋습니다. 초소책방카페 위쪽 등산로 숲속에도 현대적인 통나무로된 숲속 도서관이 숨어있습니다.

  • @아재-r9d
    @아재-r9d Год назад

    더 밑에 석파장 서울미술관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유홍준 교수 강연에서 비오는 날 석파정 뷰가 최고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안채 뒤 별서, 제일 위쪽 한옥 툇마루에서 우수속에 보는 북악과 인왕이 절경인 것 같습니다. 운이좋지 않으면 대기줄을 서야 하는게 함정입니다. ^^

  • @아재-r9d
    @아재-r9d Год назад

    자하미술관 오진암의 모든 자재를 뜯어서 옮긴 무계원 목원박물간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비오는 날 자하미술관 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설악산에 온 듯한 느낌이더군요. 무계원 뒤편 긴 골목길은 덕수궁 돌담길 축소판 같구요.

  • @아재-r9d
    @아재-r9d Год назад

    세상에 어떻게 댓글이 하나도 없죠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하하, 제 능력 부족이죠. 목인박물관에 갔다가 호기심에 옆길로 들어갔었습니다. 고개를 넘으니 신천지가 펼쳐지더군요. 마치 도연명이 무릉도원을 본 느낌이었습니다. 그 느낌을 전하고 싶었답니다. (옆에 있던 아내는 미친사람 취급) 감사합니다.

  • @Jeong-eun
    @Jeong-eun Год назад

    저 돌들 현대 기술로 만들었는데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썸네일 사진은 성벽 능선을 절개해서 길을 낸 자리인데, 충분한 공간과 여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런 표지가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많았답니다. 그러한 마음 떄문에 제가 잘못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 @soonhan1
      @soonhan1 Год назад

      @@역사나침반 조사해볼 충분한 가치는 있어 보입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soonhan1 광화문 월대가 왕궁의 상징을 모욕한 것이라고 뉴스 타이틀을 보았습니다. 남아 있는 성곽을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시공너머로
    @시공너머로 Год назад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경신고등학교 담장도 서울 성의 일부 같던데요... 서울시에서 다시 돌려 받아 복원 되길 바랍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그렇군요. 안타깝네요. 천자문이 새겨진 각자성석이 장충단고갯길 축대에 거꾸로 밖혀있기도 합니다. 더 많은 분들 관심이 모아지면 차례로 해결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감사드립니다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경신고등학교 뒷길은 제가 생략한 구간이더군요. 2023.3.3 에 확인차 답사를 갔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입니다. 제가 경신고등학교에서 1달간 근무한 적도 있었는데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혜화문과 경신고 사이 약 50m 정도 구간에 주택가 담장에 있던 성벽을 노출하고 공원으로 만들었더군요. 옆에는 경과와 취지를 알리는 안내판도 세워져 있어서 흐믓했습니다. 관심주셔서 제가 지식을 업데이트 할 수 있었습니다.

  • @와덕부부
    @와덕부부 Год назад

    겸재 정선과 무슨 관련이 있나 궁금해서 시청했는데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ㅎㅎㅎ😁👍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겸재와 관련없는 지역으로 알고 있는데, 공공건물들과 거리 표지판들을 보면 가장 진심으로 겸재를 공경하는 지역으로 느껴진답니다. 관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와덕부부
      @와덕부부 Год назад

      @@역사나침반 진심으로 겸재를 공경하는 지역이라는 말씀 완전 공감입니다 ~~ ^^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와덕부부 두 분의 영상속 대화가 너무 신선했습니다. 같은 공감대를 유지하면서 동반자로 인생을 즐기는 모습이 '백년해로'의 전형같답니다. ^^;

    • @와덕부부
      @와덕부부 Год назад

      @@역사나침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영상은 조작이 가능하다는 사실 ~~^^싸운 모습은 삭제합니다

  • @와덕부부
    @와덕부부 Год назад

    경천사지 10층석탑 멋진 모양의 탑이라 생각했는데 …영상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경천사지 10층탑은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는, 그러면서 열린 마음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탑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김영호-y9y
    @김영호-y9y Год назад

    회암사 조선최고 명당자리입니다 74년도 이곳에서 군생활했습니다 천보산은 금강산 마지막 줄기입니다 풍수를 모르는 내가봐도 그냥 명당으로보임니다 시간내서 한번씩가보세요~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잘 아시는 분께서 관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현재처럼 개발되기 전의 회암사 주변 모습이 궁금합니다. 회암사폐사지를 지인에게 여러차례 추천받고 방문했습니다만, 회암사 낮은 능선을 한바퀴 걷는 김삿갓풍류길도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낮고 길게 반달모양으로 누운 천보산(맥) 자락 감상은 덤이구요. 삼화상(지공, 나옹, 무학) 부도 아래에 있는 약수가 좋은지 방문할 때 마다 사람들이 물통을 들고 물을 담는 것을 보았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아들 태종에게 실권을 빼았기고 쫓겨가듯 회암사에 간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가도 들었습니다. 권력보다 더 매력있던 풍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감사합니다.

  • @안떵현
    @안떵현 Год назад

    회암사 약수터 물맛좋습니다 ㅋ

    • @역사나침반
      @역사나침반 Год назад

      지나갈 때마다 물통으로 운반하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다음에는 반드시 저도 물통을 들고가서 물맛을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