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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처럼
Южная Корея
Добавлен 29 апр 2021
다윗처럼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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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2장해석, 2장의 표제는 순여역(순명과 불순명)으로, 성경 구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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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2장해석, 2장의 표제는 순여역(순명과 불순명)으로, 성경 구약
손가락 도 제대로 못움직이고 2년 이라는 시간 을 전신마비 되여서 재활병원에 입원한 56세 아들 위해서 80넘은 노모 , 가 간병을 했고 얼마전 아들 요양병원 으로 옮기고 간병은 간병인들 도움, 받고있으며 그 엄마 는 매일 묵주기도 를 합니다. 저도 그엄마 와 9일 기도 하며 오늘은 구일기도 감사 14일째 입니다 얼굴도 믓본 누군가 를 위해서 기도할수 있음에.,. 사랑하는 주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아멘.. +
아엔❤❤❤❤❤❤
김정식 로제리오님~ 잘 계시죠~? 기도처럼 부르시는 노래...언제 들어도 정말 좋네요...😊
아멘
아멘
마음이 평안 해 집니다 좋은 글 주 예수 사랑 감사합니다❤
Today’s Meditation (Tuesdays in 19 weeks of the year) Matthew 18 is Jesus’ teaching on the life of the Church. After the words about the children in today’s Gospel, we are told not to cause even one of these little ones to sin, and then again after the words about the lost sheep, we are told to warn our brothers when they sin. So the problem here is that it is not enough for me alone to not sin and be saved alone. Even if ninety-nine of the hundred, including me, did not go astray and returned home safely, it is not enough. That is why in today’s reading, Ezekiel, who received the scroll with the word of God and ate it, is given the mission to go and warn his own people. God tells the prophet that if he does not warn, he will be held responsible for the death of the wicked. I remember something from long ago. I was walking a long way with a priest, and we stopped at a small rest stop-like store. The sister in the store said that she had been indifferent for a long time. The priest persistently persuaded the sister to go to confession. At that time, it honestly seemed to me that the priest was being too pushy, and I thought that even if the sister went to confession right then and there, she would probably become indifferent again the next day, so I thought it was just creating more problems for her. do I remember that event so clearly, even though it happened more than twenty years ago? Am I the only one who remembers it? Does that sister remember it too? Even if she was indifferent again later, the memory of that day will continue to call her to church. And in that priest’s appearance at that time, I saw a shepherd looking for one sheep. ⊕
오늘의 묵상(연중제19주간 화요일) 마태오 복음서 18장은 교회의 삶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들입니다. 오늘 복 음에서 읽은 어린이에 관한 말씀 다음에는 그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오고, 그다음에 다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대한 말씀 다음에는 형제가 죄를 지으면 깨우쳐 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의 문제는, 나 혼자만 죄를 짓지 않고 나 혼자만 구원되 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백 마리 가운데 나를 포함한 아 흔아홉 마리가 길을 잃지 않고 집으로 잘 돌아갔다고 하여도 충분하지 않 습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받아먹은 에 제키엘에게도, 동족에게 가서 경고하라는 사명이 주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에게, 그가 경고를 하지 않는다면 악인이 죽은 책임을 그에게 묻겠다 고 하십니다. 오래전 일이 떠오릅니다. 어떤 신부님과 꽤 먼 길을 가던 중에, 작은 휴 게소 같은 가게에 들렀습니다. 가게에 있던 자매님은 자기가 오래전부터 냉 담 중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그 자매님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결 국 고해성사를 보게 하였습니다. 그때 저에게는 솔직히 신부님이 너무 강요 하는 것처럼 보였고, 자매님은 그 자리에서 성사를 보아도 내일부터 다시 냉 담을 할 텐데 괜히 마음에 걸리는 일을 더 만드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십 년도 더 지난 그 일이 왜 이렇게 뚜렷이 기억날까요? 그 일 을 저만 기억하고 있을까요? 그 자매님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요? 혹시 그뒤에 또다시 냉담하였다 하더라도, 그날의 기억은 이 자매님을 계속 교회로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그 신부님의 모습에서 저는 양 한 마리 를 찾는 목자를 보았습니다. ⊕But why
한주간도 예수안에서승리합시다.
Today's Meditation For the next two weeks, we will read the book of Ezekiel on weekdays. Ezekiel began his prophetic work about five years before the complete fall of Jerusalem and continued until about fifteen years after the fall. Before the fall, when people believed that Jerusalem would not be destroyed, he proclaimed destruction, and after the fall, when people were in despair, he proclaimed salvation, always going against the expectations of others. When he was first called to be a prophet, the Babylonians had already attacked Jerusalem once and taken many people, including King Jehoiachin, to Babylon. The people did not understand or accept this situation. They thought that the current situation was only a temporary difficulty and that the exiles would soon return. Ezekiel, a priest, belonged to the upper class of society, and so he was also exiled and was in the "land of the Chaldeans" (Ezek. 1:3). But in that very land of the Chaldeans, the word of the Lord comes to Ezekiel, and he meets God there. The four living creatures in today's reading have wings and wheels (verses 1, 15, and 21 Creation). God does not only stay in the temple of Jerusalem, but rides on a throne with wings and wheels, and is everywhere and gives His word from anywhere. Even if you go and live in the 'land of the Chaldeans,' God is with His people there too. The time is near for the temple of Jerusalem to be destroyed. Why must the temple be destroyed? The destruction of the temple will destroy the thoughts of those who confine God only in the temple.
오늘의 묵상 오늘부터 두 주간 동안 평일에는 에제키엘서를 읽습니다. 에제키엘은 대략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기 오 년 전쯤부터 예언 활동을 시작하여, 멸망하 고 십오 년쯤 지난 때까지 활동합니다. 그는 멸망 전에 사람들이 설마 예루 살렘이 파괴되지는 않으리라고 믿던 때에 멸망을 선포하고, 멸망한 뒤 사람 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구원을 선포하여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거스르는 예언자였습니다. 처음 그가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던 때는, 이미 바빌론이 한 번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여호야킨 임금을 비롯하여 꽤 많은 사람을 바빌론으로 끌고 간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지금의 상황이 다만 일시적인 어려움일 뿐이라고, 유배 간 이들이 곧 돌아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제였던 에제키엘은 사회의 지도층에 속하고, 그래서 그도 유배를 가서 "칼데아인들의 땅"(에제 1,3)에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칼데아인들의 땅에 서 주님의 말씀이 에제키엘에게 내리고, 그는 거기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오늘 독서의 네 생물들에게는 날개가 있고, 또 바퀴가 있습니다(1.15.21절 창 조).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만 머물러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날개와 바 퀴가 달린 어좌를 타시고, 어디라도 계시며 어디에서도 당신 말씀을 내리십 니다. '칼데아인들의 땅'에 가서 살고 있어도, 하느님께서는 거기에서도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허물어질 때가 머지 않았습니다. 왜 성전이 무너져야 할까요? 성전 파괴는, 하느님을 성전 안에만 가두어 두는 사람들의 생각을 허물어뜨릴 것입니다.
Today's Meditation How wonderful is the faith we already have? When Jesus said, "I am the bread that came down from heaven" (John 6:41), people had a hard time accepting it. They saw Jesus in person, heard his words, saw the signs he performed, and yet they did not believe. They also could not accept the fact that he came down from heaven because they knew his family. But we believe that He is God, that God became man, that He was born of a human mother, that He gave us His body to eat, that the Eucharist we receive is His body, and that His body gives us eternal life. All of the things listed so far are basic doctrines, and if you do not believe them, you should not be a believer. How can we believe this? Perhaps it is inexplicable. Some people have been believers since childhood before considering the logic of the doctrine, while others have accepted the faith for other reasons and circumstances as they grow up, and in rare cases, they are persuaded by books or words. When we try to explain the faith to others, some accept it and others reject it. If you have been a believer for a long time, you may not be surprised that you have faith. However, Jesus tells those who do not believe, "No one can come to me unless the Father who sent me draws him" (6.44). If I have even a little faith, it is because the Father led me to Jesus.
(성 도미니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대전 카톨릭대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오늘의 묵상(2024.8.11. 연중제 19주일) 우리가 이미 지니고 있는 믿음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는 하 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요한 6,41)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 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뵙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서 이루 시는 표징들을 보았는데도 믿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을 알고 있다 는 사실 때문에, 그분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셨다는 사실도 받아들이지 못하 였습니다.그러나 우리는 그분께서 하느님이심을 믿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음 을 믿으며, 인간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셨음을 믿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먹으라고 내주셨다는 것도 믿고, 우리가 받아 모신 성체가 그 몸이라는 것도 믿으며, 그 몸이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것도 믿습니다. 지금 까지 열거한 내용은 모두 기본 교리이고,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신자가 아니 라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 다. 교리의 논리성을 따지기 전에 어려서부터 이미 신자가 되어 있던 경우도 있고, 성장해서 다른 어떤 이유와 사정으로 믿음을 받아들인 경우도 있으 며, 드물게는 책이나 말로 설득되어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신앙을 다른 사람 에게 이해시키려 할 때도,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거부합니다. 오랫동안 신앙을 지니고 있다 보면, 내가 신앙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놀 랍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믿지 못하는 이들에 게,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 다."(6.44)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조그마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예수님께 이끌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묵상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2024.8.10) 밀알은 죽지 않고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으면 실제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 다. 그 밀알이 없어져야 싹이 트고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복음 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려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 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이 자기 목숨을 사랑하여 자기 자신에게 매달려 있으 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놓기가 쉽지는 않 은 모양입니다. 어쩌면 인간이 참 어리석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밭에 뿌려진 씨앗은 죽을지 말지 생각을 하거나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씨앗은 죽고 다음 세대의 열매가 자랍니다. 또 그렇게 자라난 열매들은 누군가에게 먹히거나 아니면 다시 씨앗이 되어 그다음 세대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들은 본성에 따라 자연 질서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뜻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있어서, 때로는 열매를 맺지 못할 길 을 스스로 갑니다. "자기 목숨"(요한 12,25) 때문입니다. 눈앞에 있는 작은 언덕이 멀리 있는 큰 산보다 크게 보이는 법이지요. 그래서 잠시 누릴 수 있는 눈앞의 이익, 편안함,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나서지 못하고 밀알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으려 합니다. 더 큰 것을 위하여 작은 것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밀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죽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의 길이 아닙니다. "자기 목숨"을 택하는 것은 사실은 어리석음입니다. 밀알에게 배우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됩시다.⊕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대전 카톨릭대 안소근 실비아 수녀)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대전 카톨릭대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오늘의 묵상(2024.8.9) 나홈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라고들 합니다. 기원전 612년에 아시리아 의 수도 니네베가 멸망한 것에 대하여 말하면서, 니네베가 철저히 파괴되기 를 기원하고 그 함락을 지나치게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의 첫 부분에서는 니네베의 함락을 "기쁜 소식"이라고, 그 소 식을 알려 주는 이는 "평화를 알리는 이의 발"(나훔 2,1)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홈서의 첫머리에서는 “주님은 보복하시는 분"(1,2)이라고 선포합니다. 매우 비슷한 구절이 이사야서 52장 7절에 있습니다. 거기에서도 "기쁜 소식 을 전하는 이의 발"이 "평화를 선포"한다고 말합니다. 유배 간 이스라엘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이사야서의 구절은 훨씬 듣기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동전의 다른 면입니다. 유배 간 이스라엘에게 해방 이 선포되려면 바빌론이 멸망하여야 합니다. 이사야서에서 말하는 기쁜 소 식 또한 압제자가 몰락하여야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나훔서의 상황은 이 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과 주변의 작은 나라들이 억압에서 풀려 나려면 아시리아가 무너져야 하였습니다. 그래서 "피의 성읍"(3,1)에 대한 하 느님의 심판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의 "기쁜 소식"은 듣기 좋다고 생각하면서 나홈서의 "기쁜 소식"은 거북하다고 느낀다면, 매우 비현실적입니다. 아니, 비논리적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하느님의 정의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나훔서가 말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힘을 지닌 아시리아라 하더라도 그 힘을 심판하시는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입니다. 힘이 곧 정의가 되지 않으려면, 세상을 지배 하는 것은 아시리아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이 드러나야 합니다.⊕
AMEN THANK YOU MY LORD ❤️❤️❤️❤️🙏🙏🙏🙏🙏
데이비드 오워 일탄 세월호 세계진리베리재앙전도 이탄전도 역사지리적 전도삼탄 종교개혁 빈국사업 전쟁예고 전도 사탄 베리칩바코드 오탄 제걸 삐내서 자기가 큰냥 자랑하며 하겠다해 베리로 끝내야 심판을 알것이다 중동에게 넘겼네요 선한사마리아인 낫다 ᆢ팔레스타인 괴롭힌 이스라엘. 상관없는 이란은 보복으로 돕기도 하고요 불의를 기뻐히지 않습니다 다 엉터리라 남꺼빼서 자기것처럼 주님주신 보물 진리빼 떠들자랑웃기나 좋아 베리가 나와 심판으로 끝내야먄 한다 생각합니다❤❤❤❤❤❤❤❤~^^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대전 카톨릭대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오늘의 묵상(2024.8.6)연중18주간 화요일 오늘 미사의 감사송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의 의미가 무엇인지 뚜렷이 밝혀 줍니다. 주님의 변모는 그분께서 본래 누구이신지를 드러내시는 사건입니다. 장차 그분께서 수난과 죽음을 겪게 되셔도, 제자들에게 그분께서 하느님이시라는 믿음을 잃지 않게 하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듭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마르 9.9)이 변모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신다면,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비로소 제자들에게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러니 아직 부활을 알지 못하면서 예수님의 수난을 겪는 이들의 처지 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의 시점에서 다시 복음을 읽어 봅시다. 예수님께서 수난받으실 때 제자들은 그분의 부활을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도 주님의 수난은 이해하 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이신 분께서, 전능하신 분께서 왜 그렇 게 무력하게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셔야 하였는지 인간의 논리 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변모 때에 그 자리에 있었던 증인인 모세와 엘리야가 이를 보여 줍니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그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루카 9,31)을 이야기하였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영광 이 드러난 그 순간에, 그분의 수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과 예언서는, 하느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시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거부하리라는 것까지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수난과 죽음이 예수님의 무력함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분께서 참으로 하느님께서 오신 분이심을 보여 주는 표지들이라고 알려 줍니다. 이들의 증언이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주기 를 청합니다.
2024.8.5/ 오늘의 묵상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대전 카톨릭대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예레미야는 하난야의 말에 "주님께서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 소!"(예레 28,6)라고 말합니다. 그는 멸망을 바라지 않지만, 하느님의 말씀이 심판을 선고하라는 것이었기에 그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난야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는데도 임금과 백성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 고, 하느님의 말씀을 물리쳐 버립니다. 내 마음 안에도 참예언자와 거짓 예언자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알 아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때는 명백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고 받아들일 때도 있지만, 알면서 거부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있는 거짓 예언자가 나를 속이는 순간에는, 정말 깊이 돌아 보지 않으면 속아 넘어갑니다. 사람들이 하난야의 말을 따라가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네부카드네자르의 멍에를 부수시고 성전 기물들을 되찾게 하여 주신다는 말이, 그들이 믿고 싶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안에서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 마음 으로 속게 됩니다. 그런 마음은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대면서 하느님의 뜻이라고 속삭입니다. 식별은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예측을 벗어나기 때문에, 어떤 도식에 따라 간단하게 알아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난야에게, 평화를 예언할 때는 그 말이 이루어져야 참예언자 로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멸망을 예언할 때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판 선고를 들은 이들이 회개하면 그 심판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을 때는, 진실하 게 깨어 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아멘입니다. 행복한,거룩한주일보내세요~
2024.8.4/ 오늘의 묵상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대전 카톨릭대 안소근 실비아 수녀) 이집트의 고기 냄비는 '옛 인간'의 생활 방식입니다. 그런데 옛 인간의 삶은 충만하지 않습니다. 광야 길에 지친 이스라엘이 이미 잊은 듯하지만, 이집트 는 설령 먹을 것이 있었다 하여도 종살이하던 집이었습니다. 그 땅에서 이스 라엘이 억눌려 부르짖었기에 하느님께서 들으시고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는 데, 이스라엘은 그 해방을 잊고 음식이 주는 쾌락을 찾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람을 속이는 욕망"(에페 4,22)이라는 표현이 특별히 눈에 들어옵니다. 욕망, 어떤 것을 좋다고 여겨 그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지 요. 그것이 사람을 속인다고 말하는 것은 그 대상이 참으로 좋은 것이 아니 기 때문입니다. 호수 건너편까지 애써 예수님을 따라간 이들은 무엇을 찾고 있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 빵을 청하지만, 막상 예수님께서 당신께서 바로 생명의 빵 이시라고 말씀하실 때는 그분을 떠나갈 것입니다.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이 옛 인간에게 속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음식을 구하려고 수고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지금 찾고 있는 것을 더 이상 찾지 말라고, 그 빵이 생명을 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실 때 그들은 옛 인 간을 벗어 버리지 못합니다. 마치 이집트의 음식을 그리워하여 종살이에서 해방되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처럼, 내 손으로 붙잡을 수 있어 보이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더 큰 선물을 받지 못합니다. 이들은 배까지 마련하여 예수님을 따라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들이 찾고 있는 것은 옛 인간을 만족시키는 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을 찾아 나섰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024.8.3 /Today's Meditation (St. Dominic Missionary Sisters, Daejeon Catholic University, Sister Sylvia Ansogeun) When Herod heard that Jesus was performing miracles and thought that John the Baptist had come back to life, it means that he did not fully know who John was, but he recognized the power that John had. He was not afraid of John at all, but he did not touch him because the crowd regarded him as a prophet. He must have truly recognized that he was a man of God. However, the one who killed John was Herod. Making excuses was useless. Did he want to say that he killed him because of Herodias and Salome? It was Herod who promised and swore to Herodias' daughter, and it was Herod who ultimately ordered John's head to be cut off. He knew the truth, but he killed the truth with his own hands. The reason is clear. He had 'something more important'. His heart was divided. If he followed the truth and God 80 percent of his divided heart, can that be considered enough? No. Such a person can abandon the truth at any moment. This is because there is the remaining 20 percent that he cannot yield. We cannot follow the truth when something remains that we cannot let go of. John the Baptist is killed for the truth. Jeremiah puts his life in the hands of men. For them, the word of God is more important than anything else. It is more important than their own lives, and they give 100 percent, not 80 percent, to the word. "If anyone comes to me and does not hate his own life, he cannot be my disciple" (Luke 14:26). Following demands 'all'.
2024.8.3/ 오늘의 묵상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대전 카톨릭대 안소근 실비아 수녀) 헤로데가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다는 말을 듣고 세례자 요한이 다시살아났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는 요한이 누구인지 온전히 알지는 못하 였지만 요한이 지닌 능력을 인정하기는 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은 요한을 전 혀 두려워하지 않는데 다만 군중이 그를 예언자로 여기기 때문에 건드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그가 하느님의 사람임을 알아보았던 것이겠지요. 그런데 요한을 죽이는 사람은 결국 헤로데입니다. 핑계를 대어도 소용없 습니다. 헤로디아 때문에, 살로메 때문에 죽였다고 말하고 싶었을까요? 헤로 디아의 딸에게 약속하고 맹세한 것도 헤로데이고, 요한의 목을 베라고 끝내 명령을 내린 것도 헤로데입니다. 그는 진리를 알고 있었으나 자기 손으로 진 리를 죽입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은 갈라졌습니다. 갈라진 마음에서 80퍼센트 정도 진리를 따르고 하느 님을 따르면, 남아 있 을 때 그 진리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진리를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목숨 을 사람들의 손에 맡깁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이 무엇보다. 자기 목 숨보다 중요하였고 80퍼센트가 아닌 100퍼센트를 그 말씀에 바쳤기 때문입 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 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따름은 '전부'를 요구합니다.
배경화면,음악 너무좋아요.
감사합니다
2024.8.2 Today's Meditation (St. Dominic Missionary Sisters, Daejeon Catholic University, Sister An So-geun Sylvia) God tells Jeremiah to "repeat every word" (Jer 26:2), and Jeremiah proclaims that the temple in Jerusalem will be like Shiloh. Shiloh had a sanctuary during the time of Joshua and the time of the Judges, but it was judged and abandoned. Now, Jerusalem will be destroyed and desolated in the same way. However, those who hear this word accuse Jeremiah of being a false prophet and insist that he be killed. This is because they believe that God cannot proclaim destruction to Jerusalem. Their mistake is that they determine God's will for themselves. God can only proclaim salvation to Jerusalem, not judgment. Humans limit God's freedom and the scope of God's actions. They think that God should only move within the limits that can be expected. But this illusion collapsed along with the destruction of the Temple of Jerusalem. For their illusion to be shattered, the Temple had to collapse, and God allowed His house, the Temple, to collapse. The same is true of the people of Nazareth in the Gospel. They thought that the Word of God could not be proclaimed through an ordinary man, the carpenter's son, who knew his parents and brothers. I decide the channel through which the Word of God comes to me. What happens then? It is clear. They cannot hear the Word of God. When God speaks to them, they do not think of it as the Word of God. If we want to hear the Word of God 'without missing a single word', we must open our ears to hear whatever He says, whatever the channel through which He speaks.
2024.8.2 오늘의 묵상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대전 카톨릭대 안소근 실비아 수녀)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당신 말씀을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예레 26,2) 전하라고 하시고,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이 실로처럼 되리라고 선포합니 다. 실로에는 여호수아 시대와 판관 시대에 성소가 있었지만, 심판을 받아 버려졌습니다. 이제 예루살렘도 그렇게 멸망하고 황폐하게 되리라는 것입 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예레미야를 거짓 예언자라고 비난하며 그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에게 멸망을 선포하실 수는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잘못은 하느님의 뜻을 자신들이 결정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느 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구원을 선포하실 뿐, 심판을 말씀하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유를, 하느님의 행동 범위를 인간이 제한합니다. 하느 님께서는 예상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만 움직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러나 이 착각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지고 맙니다. 그들의 착각이 깨지려면 성전이 무너져야 하였던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집인 그 성전을 무너지게 두셨습니다. 복음서의 나자렛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부모와 형제를 자신 들이 다 알고 있는 그 평범한 사람, 목수의 아들을 통해서는 하느님의 말씀 이 선포될 수 없다고 여깁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나에게 오는 통로를 내가 결 정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명확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 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실 때, 그것을 하느님의 말씀이 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들 으려 한다면, 어떤 말씀을 하시더라도 어떤 경로로 말씀하시더라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 놓아야 합니다.
Amen Hallelujah ✝️✝️✝️✝️✝️
My lord 🙏🏻 Almighty God 🙏🏻 thank you for everything 🙏🏻 you do for us 🙏🏻 All 🙏🏻Amen 🙏🏻🙏🏻🙏🏻♥️💛♥️💛🌹❤️🕯🌹♥️
덕분에 좋은 성가로 마음을 씻었네요 축복많이 받으세요
기도 해야 응딥하시는 알아서 다 해주시는건 없는거 같네요 우는 아이에게 젖준다는 속담이 딱 맞는 말
아멘
아멘.
한주를시작하는월욜입니다. 모두들 주님사랑하십시요. 주님주시는힘으로 주님보시기부끄럽지않은 한주간되시길~ 화이팅~
🙏 평화를빕니다~
바오로딸 수녀님들의 아름다운성가 천상의 목소리 계속 듣고싶네요. 마음의 평화를 얻네요
나무아미티불
불신자께서도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
진리는 하나입니다~ 종교대통합이 되는 계기가 되길빕니다 결코 하늘나라에서는 부처님과 예수님께서 원수지간이 아닐겁니다~
노래는타의추종을불허!! 다른인생살이는불합격!!
인정합니다~ 어떻게 활용할지는 그 분 계획이고 뜻이라서요
월욜아침에 너무은혜됩니다 넘넘감사합니다. 더위에지치지않게건강관리잘하십시요.
감사하는주일입니다. 비오는주일 은해도촉촉히받으시길~
김종찬 목사님 이시다
목사님 되시었군요♡♡♡
옳습니다.아멘입니다. 언제고늘 강건하소서~
배경두,음악도,무엇보다말씀도. 은혜가됩니다. Fighting~
Bạn có muốn cầu nguyện để khỏi bệnh hoàn toàn không?
Amen Lạy Mẹ Ma Ria Con Xin Mẹ Chưa Con Khỏi Bệnh Con Xin Tạ Ơn Thiên Chúa Và Mẹ Ma Thánh Cả Gu Se Amen
Love It ❤❤❤❤❤
감사합니다 ^^ 평화를 빕니다~
출근길에말씀묵상하며,차분한음악들으며갑니다.오늘하루도 여러분모두화이팅하세요.
주님안에서 행복한 날들되세요~❤❤❤
늘 좋은말씀,새로운장르음악 매우 좋습니다.
주님오실그때를준비해야하는데. ~
주님의 간절함의 표현이 이런방식으로라도 표현하시는 걸로 생각해봅니다~
아멘입니다. 거룩한주일 ,보혈로 옷입읍시다 주의사랑으로사랑합니다.
🙏 🙏 🙏
말씀과 함께 천상의 소리 '알렐루야'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