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 1985-1991 현대호랑이 115경기..1991-1992 일화 천마 12경기 <신연호> 1987-1994 울산 현대 155경기 <김판근> 1987-1993 대우 로얄즈 167경기..1994-1995 LG 치타스 58경기 ..1996-1997 안양 LG 치타스 42경기..1998-2001 마르코니 스탤리언스 69경기 <김종부> 1988-1989 포항제철 아톰즈 33경기..1990-1993 대우 로얄즈 37경기.. 1993-1994 일화 천마 3경기..1995 대우 로얄즈 3경기
고등학교 다닐 때 중간고사 기간이었음에도 공부보다 경기결과에 심장이 두근거리던 옛 추억이 떠오른다. 스포츠 신문에선 외신들이 활약이 두드러진 여러 명을 (한국은 신연호) 미래의 축구 백만장자 후보들로 꼽기도 했는데... 신연호는 말할 것도 없고 국대의 모든 선수들 특히 김종부, 김종건 등등 정말 기대만빵이었음. 아마도 축구 국대가 상당한 돈이 된다는 것과 박종환 숏패스 전술 등 축구라는 것이 감독 놀음이라는 것을 일반인들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아쉽게도 83청대 최고의 스타였던 신연호의 A매치 경력은 12경기로 끝났습니다. 김종부도 25경기밖에 뛰지 못했죠. 김판근처럼 국대에서 자리잡은 명선수도 배출됐지만, 대체로 한국축구는 83청대가 배출한 유망주들을 잘 키워내지 못했죠. 축구계 어른들이 83청대를 이용해먹기만 했지 그들의 앞날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봐요. 김종부 스카웃 파동만 봐도 알 수 있죠.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어느 시골에서 살 때였는데, 전경기를 풀영상으로 보지 않고 뉴스에서 하일라이트로 띄엄띄엄 봤던 기억이 있는데, 특히 4강 대 브라질전에서 김종부 선수의 선제골이 가장 설레고, 인상적이었었는데, 결국 2대1 역전패. 축구 최강국인 브라질을 맞아 우리가 먼저 골을 넣은 건 이 때가 최초였을 겁니다. 우리 팀은 이 대회에서 유독 2대1 스코어가 많았던 듯. 이겼을 때도 2대1, 졌을 때도 2대1
이 대회 주역중에 훗날 성인무대에서 성공한 선수는 김종부 하나.. 김종부는 86월드컵 불가리아전에서 동점골 터뜨려 스타가 됨. 신연호도 이 대회에서 골을 많이 넣고 스타가 되었지만 훗날 성인무대에서는 피어보지 못하고 사라져감. 김판근도 훗날 올림픽 대표가 되지만 월드컵 스타는 되지 못했음. 그러니 청소년 대표 선수가 성인 무대에서도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수 있다.
<우루과이> Jose PERDOMO, Carlos AGUILERA, Ruben SOSA <네덜란드> Johnny VAN T SCHIP, Gerald VANENBURG, Marco VAN BASTEN <브라질> BEBETO,J ORGINHO, DUNGA <미국> Paul CALIGIURI, Tab RAMOS <오스트리아> Toni POLSTER <쏘련> Gennadi LITOVCHENKO, Oleg PROTASOV <아르헨티나> Luis ISLAS, Jorge BORELLI <나이지리아> Yisa SHOFOLUWE
브라질 멤버중에는 후에 94월드컵 우승주역인 둥가와 베베투도 있었음.. 둥가가 일본에도 뛰었지만 두번정도 한국와서 친선전에도 뛰었는데 소속팀인 주빌로 이와타의 일본선수들이 안일한 플레이를 할때면 니들은 한국선수들의 정신력을 본받아라라고 할정도로 높이 평가했음
노태우인지 노인우인지 그저 주는 떡도 제대로 못받아 처먹은놈...
청소년 스타병 때문에 성인 무대에선 성공을 못한건가요? 이름이 다들 생소하네요
<김종건> 1985-1991 현대호랑이 115경기..1991-1992 일화 천마 12경기 <신연호> 1987-1994 울산 현대 155경기 <김판근> 1987-1993 대우 로얄즈 167경기..1994-1995 LG 치타스 58경기 ..1996-1997 안양 LG 치타스 42경기..1998-2001 마르코니 스탤리언스 69경기 <김종부> 1988-1989 포항제철 아톰즈 33경기..1990-1993 대우 로얄즈 37경기.. 1993-1994 일화 천마 3경기..1995 대우 로얄즈 3경기
고 박종환 감독의 스파르타식 훈련이 결실을 맺은거지요 히딩크는 체력훈련이 빛을 본것이고
故 조춘제 캐스터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춘제 캐스터 오늘 돌아가셨다고 하던데.
이때 이경기를 지켜본 외국기자로부터 붉은악마라는 호칭을 얻었죠~^^
국민학교시절 한반에 70명씩 있었고 교실에 티비도 없던 시절이었음에도 20인치 티비를 각반마다 설치하고 전교생에게 보여주었었죠.. 마치 월드컵 같았어요
청소년인가?청중년인가 헐 진짜 청소년 축구?
정말 그시절 투혼과 투지로 똘똘 뭉쳐 사력을 다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대한민국 축구가 그립습니다.
❤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기뻐해주십시요~~~ 저때 내나이가 21세였음 대학교 2학년때였는게 생생함
한국대 브라질 경기는 중학교 3학년때 오전에 벌어졌던 경기라 너무 보고 싶었는데, 저때는 교실에 TV보고 없어서 애닳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연히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죠.
?ㅡ저 무렵이--?우리한국- 축구?-의 전성기시대?ㅡ 아니엇나?ㅡ하는?-생각이 듭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아마도?ㅡ 그 무렵이? ㅡ 우리?ㅡ한국축구의-최고? (전성기시대)?--아니엇나?ㅡ하는 생각이? 듭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83년 청소년 축구를 잊을수 없다😂😂😂
36년 뒤인 2019년 우리나라는 U-20 월드컵에서 우승할 뻔했다고 한다.
오늘 박종환 감독님 별세소식을 듣고 유튜브에서 찾아서 들어와봤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승기도 골넣지않앗나??
저는 고1 때.. 브라질 전은 교실에 티비 가져와서 수업 대신 응원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저때 엄청난 관중으로 더 기억에 남았던 대회.....아무리 축구 인기 국가라고 하더라도 청소년 월드컵 경기는 썰렁한 경우 허다했는데 저 멕시코 대회는 매 경기마다 관중이 꽉 참.......진짜 멕시코 관중 동원 수준은 최고.
고등학교 다닐 때 중간고사 기간이었음에도 공부보다 경기결과에 심장이 두근거리던 옛 추억이 떠오른다. 스포츠 신문에선 외신들이 활약이 두드러진 여러 명을 (한국은 신연호) 미래의 축구 백만장자 후보들로 꼽기도 했는데... 신연호는 말할 것도 없고 국대의 모든 선수들 특히 김종부, 김종건 등등 정말 기대만빵이었음. 아마도 축구 국대가 상당한 돈이 된다는 것과 박종환 숏패스 전술 등 축구라는 것이 감독 놀음이라는 것을 일반인들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아쉽게도 83청대 최고의 스타였던 신연호의 A매치 경력은 12경기로 끝났습니다. 김종부도 25경기밖에 뛰지 못했죠. 김판근처럼 국대에서 자리잡은 명선수도 배출됐지만, 대체로 한국축구는 83청대가 배출한 유망주들을 잘 키워내지 못했죠. 축구계 어른들이 83청대를 이용해먹기만 했지 그들의 앞날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봐요. 김종부 스카웃 파동만 봐도 알 수 있죠.
박종환이 실제로 요리실력이 좋은 편이라 자신이 직접 요리해서 선수단에게 먹이기도 했답니다.
6학년 때 이 경기 때문에 수업 중단하고 모두가 교실에 설치된 흑백 TV 앞에 모여서 시청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방울방울~
저때 진짜 실미도 이상으로 훈련 구타했을세대인데 그거아님 저런성적없음 규모환경보면
이 축구를 연구해봐봐...박종환감독...진짜 대단
폭력이(스파르타식)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성과. 박종환 감독이 선수들 때려도 이상하지 않았던 시대
박종환 감독... 호랑이 감독으로 선수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켜 선수들을 길러내셨지요... 귀국길에 카퍼레이드 하며 환영해 주던 국민들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붉은 악마 응원단의 태동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어느 시골에서 살 때였는데, 전경기를 풀영상으로 보지 않고 뉴스에서 하일라이트로 띄엄띄엄 봤던 기억이 있는데, 특히 4강 대 브라질전에서 김종부 선수의 선제골이 가장 설레고, 인상적이었었는데, 결국 2대1 역전패. 축구 최강국인 브라질을 맞아 우리가 먼저 골을 넣은 건 이 때가 최초였을 겁니다. 우리 팀은 이 대회에서 유독 2대1 스코어가 많았던 듯. 이겼을 때도 2대1, 졌을 때도 2대1
역시 감독은 박종환이 최고다. 국대 감독으로 복귀시켜야 한다
저때가1965~1968년 출생자로 구성되었을겁니다. 그이후 홍명보 황선홍 이운재등 선수들이 나오기시작했고 저때는 한국축구 전성기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네요
그때가 저가 국민학교 6학년때 인데 잊을수 없었다
이 대회 주역중에 훗날 성인무대에서 성공한 선수는 김종부 하나.. 김종부는 86월드컵 불가리아전에서 동점골 터뜨려 스타가 됨. 신연호도 이 대회에서 골을 많이 넣고 스타가 되었지만 훗날 성인무대에서는 피어보지 못하고 사라져감. 김판근도 훗날 올림픽 대표가 되지만 월드컵 스타는 되지 못했음. 그러니 청소년 대표 선수가 성인 무대에서도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수 있다.
아~한국 축구 살아있는 전설 박종환 감독님! 고질 병폐 인맥때문에 올림픽,월드컵 감독 모두 맡질 못 하고,,,,,,,,,,,, 야구는 김성근~ 축구는 박종환~ 👍👍👍👍👍♥️♥️♥️♥️♥️
저 대회 때는 신연호 씨가 구세주셧네요 ㄷㄷㄷ
신연호 3골, 김종부 2골 , 김종건 1골, 그리고 수비수 김판근, 감독 박종환.. 다 추억속의 선수들이네요.
2022 카타르월드컵 도플갱어~ 이 글은 성지가 된다.
붉은 악마의 탄생! 지금 봐도 아주 조직적이고 호흡도 좋고 개인기량도 뛰어난 멋진 모습입니다.
이시대에도 내리갈굼이 엄청 심했고 이 선수들이 잘되는 꼴을 못봤씀, 그래서 비리니 부정 계약이니 해서 죄다 매장시킨거임. 이 경기에 뛴 선수들은 단 한명도 크질 못했음,
미드필드 강재순은 저와 절친 고교동기입니다. 현재 화천wfc 여자축구 감독하고 있지요~
<우루과이> Jose PERDOMO, Carlos AGUILERA, Ruben SOSA <네덜란드> Johnny VAN T SCHIP, Gerald VANENBURG, Marco VAN BASTEN <브라질> BEBETO,J ORGINHO, DUNGA <미국> Paul CALIGIURI, Tab RAMOS <오스트리아> Toni POLSTER <쏘련> Gennadi LITOVCHENKO, Oleg PROTASOV <아르헨티나> Luis ISLAS, Jorge BORELLI <나이지리아> Yisa SHOFOLUWE
몬태레이겅기장이 아니고 과달라하라 경기장입니다
지금껏 젤로 감명깊은축구는 멕시코청소년축구였어요.
조춘재 아나운서 그립네요...
저시절 박감독 현시절 손ㅇ
이때는박종환축구가 빛을 발했지 ㅠㅠ짦은패스축구로 조직력을 극대화!!!!!!!!간단명료한 패스 한박자더뛰는 정신력!과 체력!!모든게 박종환의 잣품!!
박종환감독이 선수들 무자비하게 훈련시키기는 했지만 유럽이나 남미팀에게 개인기와 체력이 열세였던 우리선수들을 스파르타 식으로 훈련시켜 짧은기간에 조직력을 저정도로 끌어올리지 않았으면 불가능 한 결과였다고 봄.
와~~ 유럽경기 보는것같이 힘이 살아있네~~ 요즘은 똥볼 투성인데...
39년전이구나.붉은 악마로 불리우며 4강 진출로 들떠있었떤 20대 였던 80년대 그 시절이 그립구나.부모님,어동생,친구,와이프,처남내외 등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저땐 세리모니가 없었네 근데 왜 멋대가리 없이 만세만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