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모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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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전기충격기로 남성을 위협하고 있을 때, 남성의 대처 능력
#memes
본 영상은 수익창출을 하고 있지 않은 비디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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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정윤환-x7w
    @정윤환-x7w День назад

    저거 빌린돈 안갚으면3번째 사진 저거 깡패들이 찾아온다는거임 더소름이 한꺼번에 온다는거임

  • @김민지zcvegw
    @김민지zcvegw 9 дней назад

    한국 최고 1위 이순신 및 장군들(나라 구함) 2위 세종(한글 만듬) 3위 박정희(사회 좋아지게했으나 쿠데타) [반박시 님들 말 다 맞음]

  • @골치맛
    @골치맛 11 дней назад

    체포당할때 살인자가 "도라에몽 왜!!!안도와 줬어!!"라고 말한건가요?

  • @bisangdsdww
    @bisangdsdww 12 дней назад

    🎉

  • @ThatLittelSmokyCat
    @ThatLittelSmokyCat 19 дней назад

    I live there

  • @댓글다는인간-y4p
    @댓글다는인간-y4p 25 дней назад

    ㅈㄴ웃기넼ㅋㅋㅋㅋㅋㅋㅋㅋ

  • @팔레트-f3t
    @팔레트-f3t Месяц назад

    글렙 코라블요프(1444) 생중계사건

  • @Pinksoldier_456
    @Pinksoldier_456 Месяц назад

    ÷

  • @김은지-b1z2i
    @김은지-b1z2i 3 месяца назад

    현대캐피탈 해킹사건

  • @초보-f4h
    @초보-f4h 3 месяца назад

    난 봤ㄴ.ㄴ데

  • @sd2club
    @sd2club 4 месяца назад

    삼가 고인에 명복을 빕니다.

  • @sd2club
    @sd2club 4 месяца назад

    체로노빌원전,히로시마 원폭이요

  • @이이서빈-r2h
    @이이서빈-r2h 4 месяца назад

    후쿠다에 아버지는 후쿠다를 가정학대 하며 후쿠다에 어머니는 아버지 때매 힘들어 안조ㅎ은 선택을 하였다 그렇게 키워진 후쿠다는 한 가정집에 들어가서 배관공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야요이는 부른적이 없다 했지만 문을 억지로 밀며 들어가서 검사를 하는척 하다가 야요이가 자신의 부인이 올때 오라고 했지만 후쿠다는 그녀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생후 11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야요이의 딸도 노끈으로 목이 졸라져 살해되었다 그 둘의 시체는 후쿠다가 벽장에 넣고 도라에몽 도와줘... 라고 외쳤다 대추ㅇ 그래서 후쿠다는 무기징역 받다가 반성하는 맘이 안 보여서 사형을 집행 받았다

  • @TV-ze2ey
    @TV-ze2ey 4 месяца назад

    후쿠치야마선탈선사고되나요?

    • @우모충사
      @우모충사 6 дней назад

      늦은 답변 죄송합니다. 제작 들어가겠습니다.

  • @우모충사
    @우모충사 4 месяца назад

    원래는 일본의 대부업체인 산와파이낸스주식회사의 한국 법인이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버블 붕괴 이후 불황에 빠지면서 사채 규제가 강력해지자 산와머니를 필두로 한 일본 대부업체들은 한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마침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IMF의 권고에 따라서 한국이 이자율 상한제를 폐지하고,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자 일본에서 제로 금리와 엔고 현상을 이용해서 손쉽게 조달한 자금을 가지고 한국 시장에 대대적으로 진출하였으며, 이후 엄청난 고금리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비록 외환위기 직후 IMF의 강요에 따른 고육지책이었다고 해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시기 일본 대부업체들의 초고금리 영업은 2002년 카드 대란,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와 함께 서민 경제에 큰 상처를 남겼다.

  • @감마-b8s
    @감마-b8s 4 месяца назад

    이사건을 아는사람님 논란 터져서 여기로 넘어옴

  • @해와달-d9h
    @해와달-d9h 4 месяца назад

    얼빡 빻았노 돼지 😂😂😂

  • @IIIIBBAI
    @IIIIBBAI 4 месяца назад

    미국이였음 징역 50은 때림. 이사아사님 유튜브쪽 사건들 많이 해주세요.

  • @파랑이-p2u
    @파랑이-p2u 4 месяца назад

    전두환이 저지른게 너무많다. 지옥에서도 반성하면서 살으렴

  • @파랑이-p2u
    @파랑이-p2u 4 месяца назад

    참 인간이라는것은 믿을수도 없고 무서운존재다

  • @우모충사
    @우모충사 4 месяца назад

    2024년 7월 10일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 라이브 방송을 통해 구제역의 휴대폰에서 확보한 녹취 중 구제역, 전국진, 카라큘라 등의 온라인견인차 공제회에 소속된 일부 유튜버들이 쯔양에게 과거사를 폭로하지 않는 조건으로 수천만 원의 거금을 갈취하는 정황이 담긴 녹취를 폭로하였고 이에 쯔양이 직접 수십 억의 수익금 갈취, 데이트 폭력, 협박, 공갈 등의 범죄 피해를 스스로 밝히면서 논란이 된 사건. 이 녹취를 통해 알려진 또 다른 피해자로는 BJ수트 등이 있다. 가로세로연구소가 제보받아 입수한 구제역의 휴대전화 속 17000여 건의 통화 녹취 파일 중 영상을 통해 일부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쯔양의 과거를 빌미로 구제역과 전국진이 관계자들을 협박하여 금품을 갈취할 계획을 세우고 카라큘라와 의견을 나눈 뒤 구제역이 이를 시행하여 금전을 갈취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서로 "이번 거는 터뜨리면 쯔양 은퇴해야 한다",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게 낫다. 쯔양이 버는 돈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괜찮게 챙겨줄 것 같다", "그년은 이 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 등의 대화로 쯔양 측을 압박할 계획을 세운 뒤 이를 실행에 옮겼다. 구제역은 전국진과의 통화에서 "이런 걸로 잘해서 GV80을 샀다. 저도 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잘 접촉해 보겠다. 쯔양이 입막음 비용으로 예전에 같이 일했던 여성들에게 매달 600만 원씩 주는 걸로 알고 있다"라며 "고소를 당해봤자, 벌금 몇백만 원만 나올 거다. 내가 한 번 크게 하려면 이건 2억 원은 현찰로 받아야 한다."라고 말한 뒤 다음 통화에서 자신이 쯔양 측으로부터 1100만 원을 받았다고 주장한 뒤 전국진에게 300만원을 전달했다. 이후 공개된 녹취록에서 구제역은 쯔양 측과 온라인견인차 공제회에서 쯔양을 다루지 않겠다는 리스크 매니지먼트 차원으로 5500만 원에 달하는 계약과 지인의 식당을 쯔양의 유튜브에 출연시켜 홍보해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한다.

  • @우모충사
    @우모충사 4 месяца назад

    전라남도 화순군 출생 학생운동가이며 1980년대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인물. 1987년 6월 9일 최루탄에 피격당하고 동년 7월 5일 후유증으로 사망하여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 @우모충사
    @우모충사 4 месяца назад

    2003년 2월 1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역대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손 꼽히는 대형 참사로, 전 세계 지하철 사고 사망자 수 2위를 기록한 철도 사고다. 더불어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방화 사건이자 최악의 대량살인 사건이고 최악의 묻지마 테러 사건이다. 대한민국의 건축 안전을 성수대교 붕괴 사고(1994)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1995)가, 해상 안전과 학생 안전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2014)가, 야외에서의 군중 안전을 이태원 압사 사고(2022)가 크게 바꾸었다면 대한민국의 철도 안전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크게 바뀌게 되었다. 사건 발생 24분 후 대구 지하철 참사를 보도한 연합뉴스의 유일한 1보 기사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라는 말만 봐서는 흔하디 흔한 단순 화재 같아 보이지만 이후 방화범이 검거되었다. 최종 사망자는 192명에 실종 6명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항공 사고를 제외한 사건들 중 6번째로 많은 대규모 인명 피해를 기록한 사고이다.

  • @우모충사
    @우모충사 4 месяца назад

    1994년 10월 21일 한강에 위치한 성수대교의 중간 부분이 갑자기 무너져내려 현장을 지나던 시내버스와 차량들이 그대로 추락하면서 큰 인명피해를 낸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와우아파트 붕괴사고와 함께 대한민국 3대 붕괴 사고로 불리며 이미 연이은 사건사고로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던 문민정부 시대의 굵직한 기록으로 남겨진 참사다. 32명이라는 사망자 수만으로 본다면 광복 이후의 인명참사 규모로 10위권 밖이다. 그러나 인명피해가 많은 사건들은 대부분 비행기가 추락, 배 침몰, 기차 탈선, 대규모 자동차 교통사고 등 애초에 어느 정도 사고 위험을 감수하고 이용하는 것들이었다. 반면 이 사고는 수도 한복판에 있는 한강 다리 일부가 갑자기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믿을 수 없는 사고이다. 영화에서도 테러나 사고가 아닌 이상 갑자기 다리가 혼자 무너지는 장면은 없다. 무슨 건설 후 100년~ 200년이나 된 낡은 다리도 아니고 공진현상 등으로 흔들리다가 깨진 것도 아니다. 그래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처럼 국민들의 뇌리에 남은 대형 사고이다. 물론 그 이전인 1992년에도 창선교 붕괴 사고, 신행주대교 붕괴사고 등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가 없진 않았으나 서울 한복판에서 한강의 주요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앞선 두 사고보다 훨씬 충격이 컸다. 결정적으로 앞서 언급한 두 사고는 인명피해도 이 사고에 비해 적었다.

  • @이사건을아는사람-q9z
    @이사건을아는사람-q9z 4 месяца назад

    ㅎㄷㄷ

  • @우모충사
    @우모충사 4 месяца назад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정동에서 발생했던 미제사건. 신원미상의 남성으로 추정되는 범인이 각각 2005년 6월 6일, 2005년 11월 20일, 2006년 5월 31일에 여성을 납치, 성추행, 살해 후 유기한 사건이다. 피해자는 총 3명으로 피살자 2명, 생존자 1명이다. 범인은 2인 1조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피해자이자 생존자 박 씨를 납치한 용의자와 2명의 피해자를 살해한 용의자가 동일한 범인이라면 2인 1조로 추정해 볼 수 있다.

  • @우모충사
    @우모충사 4 месяца назад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탑승하였으며, 단원고 학생 325명 중 250명이 사망하고 교사 11명이 사망하였다. 일반인 사망자는 43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총 사망자는 304명이다. 구조자는 단원고 학생 75명, 교사 3명, 일반인 94명으로 총 172명이다.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기에 국민들의 사회적 충격이 다른 사건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엄청나게 컸다. 이 사고로 단원고가 있는 경기도 안산시와 사고 해역이 있는 전라남도 진도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으며, 안산 올림픽기념관과 안산 화랑유원지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분향소가 설치되었다. 이 사고로 대한민국에는 엄청난 후폭풍이 닥치게 되었고, 대한민국 현대사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국민들은 참사가 일어난 것에 애통하며 함께 울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막을 수도 있었던 이 사고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사고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고 책임자는 강력히 처벌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정부는 은폐했고 회피했다. 이해할 수 없는 정부의 태도에 국민들은 분노하며 시국 선언문을 쏟아냈지만, 정부는 유가족 간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며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려고만 했다. 이후 국민들의 분노는 촛불 집회로 이어졌다. 또한 자녀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기로 소문난 한국 학부모들의 마인드를 크게 뒤바꾸어 놓은 전환점이 된 대형 사고이다.

  • @우모충사
    @우모충사 4 месяца назад

    서울의 삼풍백화점이 붕괴하여 502명이 사망했으며 부상자도 937명에 달했다. 대한민국 단일 사건 중에서는 최대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당시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이후 2개월 만이며, 이전해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 8개월 만의 사고였다. 세계의 건물 붕괴 관련 참사 중 사망자 11위를 기록했다. 원인이 부실공사로 밝혀지자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함께 안전불감증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었고, 전국적인 건축물 안전 실태 조사와 건축법의 강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사회적으로 매우 큰 충격을 주어 많은 작품들에서 소재로 삼기도 했다. 고객의 생명보다 자신의 회사에 대한 티끌만 한 이익을 더 중시했던 삼풍건설산업의 모습에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게 되었고 앞선 성수대교 사건과 더불어 문민정부에 사고 공화국이란 오명을 씌워버린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으며, 한편으로 이 사건은 곧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던 이른바 '천민자본주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 되기도 했다.

  • @happy41973
    @happy41973 4 месяца назад

    이한열 연세대생 피격사건 되나요?

  • @핑클린스
    @핑클린스 4 месяца назад

    삼풍백화점,씨랜드 참사,세월호,성수대교,홍콩 핼로키티,엽기토끼,대구 지하철,등등

  • @우모충사
    @우모충사 4 месяца назад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는 1999년 6월 30일 0시 30분 경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백미리 궁평항 인근의 '씨랜드 청소년수련의 집'이라는 청소년 수련원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 사고다. 해당 수련원은 1998년 초부터 영업을 시작해 1999년 3월 수련원 인가를 받았으며 총 부지 면적은 11,606m² / 건축면적은 2,576m²로써 A, B, C동으로 분리되었다. 당시 A동은 658m²로 강의실 및 식당, B동은 156m²로 생활관/관리사무실/양호실/휴게실로 각각 이루어졌으며 특히 화재가 난 C동 건물은 1,762m² 규모로 1층 콘크리트 건물 위쪽 2~3층에 컨테이너 52개를 쌓아 외벽은 흰색 목재, 지붕은 샌드위치 패널로 마감된 건물로서 생활관 겸 지도자 숙소로 사용되어 총 59개 객실에 63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컨테이너부터 저가 제품을 썼다는 것인데 해당 컨테이너는 두께 1.6mm 철판으로 열전도성이 강했으며 그 이음새에 용접도 아닌 실리콘을 바르고 목재나 샌드위치 패널 등 인화성 물질로 감싸져 있었고 화재 경보기는 작동을 멈췄고 소화기도 텅텅 비어 있어 초동진압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특히 건물 지붕에 사용된 샌드위치 패널은 한쪽 면에 벽체로 사용되는 철판이 빠져 내부의 스티로폼 단열재가 그대로 노출된 형태였고 각 방의 벽재도 스티로폼 단열재 위에 합판만 올린 부실한 자재에 벽지만 대충 발라 때운 것이었다. 이렇다 보니 불길이 단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번진 것은 물론, 단열재가 불에 타면서 대량의 유독가스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컨테이너를 쌓아서 건물을 완공하는 데는 고작 15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당시 수련원 대표는 토지 실소유주 김 모씨였고 수련원장은 토지 임대자 박 모 씨가, 영업은 황 모 씨가 각각 맡았다. 게다가 수영장 자리는 원래 양어장 자리였는데 1987년에 시설주가 양어장을 수영장으로 불법 변경해 벌금을 문 바 있었으며 1997년에도 무허가 소규모 놀이동산을 차려 장사하다 적발된 바 있었다.

  • @우모충사
    @우모충사 4 месяца назад

    1999년 홍콩에서 빚을 청산하지 못한 한 여성이 아파트에 감금 및 납치당한 후 살해된 사건. 홍콩판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끔찍했음은 물론 은폐된 시신이 헬로키티 인형 안에 들어 있었다는 괴이한 점에서 많은 화제가 되었다.

  • @ehdgns128
    @ehdgns128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씨랜드 참사,,,,,,,그위에 수목원 카페,,

  • @오늘의유흥거리
    @오늘의유흥거리 5 месяцев назад

    ㄷㄷㄷㄷ

  • @wsx_48
    @wsx_48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어우ㅅ

  • @우모충사
    @우모충사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999년 4월 14일, 오후 2시 30분 무렵 야마구치현 히카리시의 한 아파트에 후쿠다 타카유키(당시 18세)가 침입했는데 배수구 검사를 하러 왔다고 가장해서 들어간 뒤 집에 있던 피해자 모토무라 야요이(당시 23세)를 강간하려고 쓰러뜨렸지만, 야요이가 맹렬하게 저항하자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체 대상 범죄를 저질렀다. 더욱이 시간을 하면서 생후 11개월 밖에 안 된 야요이의 딸 모토무라 유카가 울자 시끄럽다는 빌미를 내세워 마루에 내던진 뒤에 노끈으로 목 졸라 살해해 버린 뒤 모녀의 시신을 벽장에 숨기고, 벽장에 있던 지갑을 훔쳐서 달아났다. 이후 지갑에 있던 화폐로 오락실을 전전하다가 사건으로부터 4일 뒤인 1999년 4월 18일에 체포되었다.

  • @우모충사
    @우모충사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육군 장교들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 이 사건으로 인하여 제2공화국의 장면 내각은 출범 9개월 만에 무너졌고, 박정희를 수반으로 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등장했다. 당시 대한민국 국군에는 이승만 정부 때부터 군의 심각한 부정부패와 비리, 승진가도 중단에 불만을 품고 4.19 혁명 이후 정군 운동을 벌여 미국과 충돌했던 일군의 장교 세력들이 있었다. 육군 소장 박정희와 1961년 2월 강제 예편당한 김종필을 비롯한 육군사관학교 8기생을 중심으로 한 장교들은 이로 인해 1961년 5월 말 강제 예편이 예정되었고, 이에 비밀리에 쿠데타를 기획하게 된다. 박정희 등은 이승만 정부 때 쿠데타를 하려 했으나, 4.19로 무산됐다가 다시 진행한 것이다. 쿠데타 세력은 예비 사단 병력과 포병단, 해병대와 육군 제1공수특전단 등을 동원하여 1961년 5월 16일 새벽 서울을 비롯 대구시, 부산시 등의 방송국 등 주요 시설을 무력으로 점거하였다. 이들은 주한미군과 주한미국대사관의 공식적인 반대 성명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장도영과 통수권자 대통령 윤보선을 회유함으로써 국무총리 장면을 사퇴시키고 봉기 60여시간 끝에 제2공화국을 무너뜨린다. 결국 쿠데타 세력은 불법적인 수단으로 행정, 입법, 사법 삼권을 탈취하여 앞으로 자신들이 조직한 소위 군사혁명위원회가 대한민국의 모든 통치권을 행사한다고 선언한다. 이튿날 아침 박정희는 군사혁명위원회를 장도영을 의장으로 하고 자신을 부의장으로 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편하였으며, 1962년 12월 31일까지 전국의 모든 정치인 활동을 일체 불법화하고 언론 사전 검열을 실시함은 물론, 정기 간행물 1,200여 종을 모두 폐간시킨 뒤 2년 반 가량 군정을 실시했다. 예전에는 이 사건이 군사혁명(보수계 세력), 군사반란(진보계 세력), 군사정변 등 여러 이름으로 통했다. 5.16 주체 세력이 정권을 잡고부터 6월 항쟁 이전까지는 5.16 군사혁명으로,민주화 후 문민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으로 "5.16 군사정변"이 공식 표현으로 자리잡았다.

  • @은유-o3h
    @은유-o3h 5 месяцев назад

    헬로키티 사건

  • @이사건을아는사람-q9z
    @이사건을아는사람-q9z 5 месяцев назад

    도라에몽 살인사건 되나요?

  • @하이라이트명장면
    @하이라이트명장면 5 месяцев назад

    516 군사정변 부탁드립니다!! 1빠

  • @하이라이트명장면
    @하이라이트명장면 5 месяцев назад

    ㄷㄷㄷㄷ

  • @우모충사
    @우모충사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춘재가 1986년 ~ 1991년에 걸쳐서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반경 3km 이내에서 저지른 성폭행 결합 연쇄살인 사건.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 살인 사건이자 개구리 소년 실종·살인 사건,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영구 미제사건이었다. 수십년 동안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미제사건이라서 2019년 범인 이춘재가 특정되기 전까지는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불렸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발생한 10차례의 연쇄 살인 사건이 모두 당시의 화성군 일대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범인은 논두렁, 수풀 등에 숨어있다가 밤 늦게 귀가하는 여성을 노려 성폭행 후 살해하였는데, 대부분의 살인에 스타킹·브래지어·양말 등 피해자의 소지품을 이용하였다.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으며, 젊은층에 한정되지 않고 13세부터 71세까지 다양하였다. 피해자의 사는 곳과 직업도 달라 연관이 없었다. 2019년 9월 18일에 DNA 대조로 유력 용의자 이춘재가 특정되었고 2019년 10월 1일 조사에서 이춘재가 30여 년 만에 화성 연쇄살인 사건 범행을 자백하였다. 이로써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중 제일 인지도가 높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은 결국 과학수사의 발전으로 미제사건의 틀에서 벗어났다. 영구 미제사건으로 생각되던 장기 미제사건들이 해결되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대한민국의 미제사건 중 가장 악명 높은 연쇄살인 사건으로, 수십 년에 걸친 노력 끝에 범인이 특정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범죄사 교과서에 길이 남을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소위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 포함된 사건들은 공소시효가 2006년 4월 2일부로 모두 만료되었다. 또 이춘재가 추가로 자백한 살인 14건과 강간, 강도 등 9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되었다. 이로써 이춘재의 처벌은 영원히 불가능하게 되었다.

  • @우모충사
    @우모충사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928년 10월 13일 오전 5시 20분경, 영국 글로스터셔 차필드 마을에서 철도 사고가 발생하였다. 리즈를 떠나 브리스틀로 향하던 급행열차가 신호착오로 인해 차필드 역에서 멈춰 서 있던 열차와 충돌해서 발생한 사고로, 급행열차는 불길에 휩싸였는데 당시에는 객차가 나무로 되어 있어 피해가 컸다. 승객 60명 중 사망자는 16명, 부상자는 41명이었다. 물론 큰 사고이긴 하지만 이 사고 자체만으로는 미스터리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3등칸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두 아이가 문제였다. 이것이 바로 이 사건이 영국 철도 사고 역사상 가장 이상한 미스터리로 떠오르게 된 원인이었다.

  • @양순이부계임
    @양순이부계임 5 месяцев назад

    범인들은 다 총살 당하거나 자살하였습ㄴ다

  • @우모충사
    @우모충사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 화재는 1871년 10월 8일에 시작되었다. 원인은 알 수 없다. 캐서린 오리어리라는 이주민의 암소가 헛간의 등불을 걷어찬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이는 당시 마이클 아헌이라는 신문 기자가 꾸며낸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당시 아일랜드 계에 대한 만연한 차별 역시 이 소문의 확산에 부채질을 했다.[4] 여러 가지 다른 설도 있지만 현재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설은 없다. 당시 화재는 수평 화재였다. 한 곳에 불이 나면 가연성 물질로 지어진 다른 건축물에 순식간에 옮겨 붙었다. 화재가 나기 직전 한 주에만도 20건의 화재를 다루었던 시카고 시 소방 당국은 화재 신고가 들어왔을 때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고 소방관들이 도착했을 때는 많은 수의 목조 주택과 농장이 불길에 휩싸인 데다가 강한 바람이 불길을 걷잡을 수 없이 퍼뜨리고 있었다. 목조 건물, 도시에 쌓여 있는 많은 양의 재목, 나무로 된 보도가 불길이 타오르는 데 일조했다. 하필이면 당시 시카고에서 축산 엑스포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축사들 사이사이에는 나무 보도블록과 톱밥을 섞은 흙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기까지 했다. 소방국은 비교적 폭이 넓은 시카고 강을 마지노 선으로 삼아 진화에 나섰지만 불길은 시카고 강을 건너 상수도 시설을 파괴했고 따라서 소방관은 더욱 애를 먹었다. 불길이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로 일어나면 화재 폭풍이 일어나는데 이 불의 회오리는 불똥을 마구 사방에 흩뜨린다. 대형 산불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시카고 도심에서 벌어졌다. 실제 증언에 의하면 베개만 한 불덩이가 시카고 강을 건너서 떨어지는 광경을 보았다고 한다. 또한 시카고 시민들 사이에 내려오는 설화에 따르면 산업 폐기물이 둥둥 떠다니던 시카고 강의 표면 기름층에 불이 옮겨붙어 강 자체가 타오르는 바람에 속수무책이었다고 한다. 시어스 타워 역사박물관에 기록된 내용이다. 10월 9일 월요일 이른 오전에는 중앙 상업 지구가 황폐해지고 은행들도 모조리 불에 타 버렸다. 지하의 은행 금고들은 불길로부터 버텨냈지만 며칠 동안 문조차 열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문을 열자마자 외부 공기와 접촉하면 과열된 금고 안에서 자연 발화가 일어나 내용물이 모조리 타버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새로 지은 오페라 하우스와 법원 건물도 불탔다. 카운티 홀(군청)의 종탑은 오전까지 버텼으나 그날 오후 결국 지하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 지역에서만 수천 명이 불길을 피해 피난을 가야 했다.

  • @우모충사
    @우모충사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사건의 발단은 1935년 4월 17일에 시드니의 쿠지 해변에서 잡힌 뱀상어 1마리에서 시작되었다. 이 뱀상어는 길이 4m, 몸무게 500kg가 나가는 상어였는데 쿠지 해변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서 물 밖으로 나와 있는 게 발견되어 근처에 있는 쿠지 아쿠아리움으로 옮겨졌다. 쿠지 아쿠아리움으로 옮겨진 이 상어는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사람의 팔을 토했다. 원래 쿠지 해변 일대는 상어의 출몰이 잦았고 사람이 상어에게 물리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도 처음에는 어떤 사람이 바다에서 수영하다가 상어를 만나 잡아먹혔고 소화가 되지 않은 팔이 상어 뱃속에 남아 있었다가 토하면서 나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경찰 측에서는 상어 뱃속에서 발견된 팔의 주인이 상어에게 잡아먹힌 게 아니라 살해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어는 사람을 잡아먹은 게 아니라 그냥 바다에 버려져 있던 사람의 팔을 삼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일 피해자가 상어에게 잡아먹힌 것이었고 발견된 팔이 소화가 덜 된 부위였다면 최소한 상어의 뱃속에서 다른 신체 부위도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 게다가 피해자의 팔이 상어에게 물어뜯긴 것이라면 상어의 이빨 자국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게 없고 오히려 칼에 잘린 것처럼 깨끗하게 잘라져 있었다는 게 경찰 측에서 주장하는 살해 정황이었다.

  • @5학년다이아몬드V25
    @5학년다이아몬드V25 5 месяцев назад

    ㄷㄷ

  • @다시힘차게
    @다시힘차게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직접 찾아보시는일은 없도록하는게 좋아요

  • @우모충사
    @우모충사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020년 8월 31일 로니는 "내가 인생 전반에 느끼는 것"이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의 라이브 스트림(생방송)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켰고 처음엔 시청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소통 방송을 진행했는데, 전과는 다르게 술에 취한 상태로 방송을 진행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산탄총을 꺼내 보이며 방송의 분위기는 범상치 않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생방송을 보고 있던 로니의 친구인 조슈아 스틴(Joshua Steen)은 자살을 막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고 페이스북 측에 라이브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청했지만 페이스북은 지침 위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기각하여 이 영상은 불특정 다수에게 고스란히 노출되어 버렸다. 만일 페이스북이 이 때라도 라이브를 강제로 중단했더라면 끔찍한 자살 영상은 유포되지 않았을 것이다.

  • @bisangdsdww
    @bisangdsdww 5 месяцев назад

    ㄷㄷ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