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5:18.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불러서,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으셨기 때문이다. 저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음에도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는 너무나 막연했습니다. 성령하나님, 예수님, 하나님 삼위의 하나님께서 각자의 역할이 다르지만 서로 동등한 관계이며, 모두 하나님 한분이라는 진리가 머리로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교회에 와서야, '관계와 질서'라는 표현을 통해서 알음알음 배워가는 중입니다. 내가 처음에 믿은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독생자이며, 나의 구원자가 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2020년에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셨지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내게 부어주셔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보증 서주시는 것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 아버지가 내 삶에 개입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나의 진짜 아버지이신 것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3가지의 역할이 필요하셨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이 중에서 한 분이라도 빠질 수 없고, 모두 나의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신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설교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아버지의 계획을 내게 알려주시고, 예수님의 양식을 먹게끔하는 것이 오늘날 나는 실제로 사는지를 들춰집니다. 성령님께서 구하는 것, 예수님의 양식인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나는 관계와 질서에 순종하고 있는가? 사실 아닐 때가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나의 죄의식을 분명히 하게 가르쳐주시는 것이 '정죄'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 부활, 구원, 사랑'에 집중하게 해주셨습니다. 도제.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거나 받는 사람인 것은 아들과 하나님의 관계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질서와 역할을 그대로 본으로 보여주셔서, 내가 예수님 안에서 'yes'해야하는 이유를 직접 가르쳐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이 내 안에 예수님의 안에 거하며 자아에 따라 살지 말아야하는 것을 오늘 성경 구절을 통해서 구체적이게 배우게 됩니다. 제가 이 삼위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를 더욱 구체적이고 친밀하며 순종할 수 있게 해주세요. 계속해서 내가 하나님을 배워가고 경험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렇게 성령님이 구체적이게 가르쳐주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묵상글 적기에 순종하기를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에겐 삶은 행복 자체이다" 제목이 이렇게 바뀌었는데, 이 말에 동의하기에는 갈등이 참 많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에 대한 낙인을 갖고 있는가? =불행" -욕구 불만, 나의 가치관, 나의 가치하락, 심리적 불안, 영적 문제 등... 제가 얼마나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극단적으로 바뀌는지도 경험하고 있고, 내가 일상 중에 일부는 감사드리지만 아직까지도 나의 욕구가 불만이며 나의 가치를 하찮게 여길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히2:11.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한 분이신 아버지께 속합니다. 그러하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위의 구절들을 읽으면 뭉클하여 눈물이 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그대로 내어주실 만큼 나를 사랑하시며, 지금 상황과 환경을 축복이라고 여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해주셔서 입니다. 내가 나의 가치와 존재를 수시로 깎으려고 하고 스스로 수치스러워 하지만 예수님은 나를 동생이라고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는 것에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감사함을 고백하였어도, 여전히 내 삶에는 불만과 불행하다 여기는 것들을 바꾸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가족'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것은 불편함을 겪어 마땅하고, 죄인인 그들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도 마땅하다는 것을 이전 교회모임에서 계속 고백해왔습니다. 지금 점점 성령님께서 부모님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시고 사랑하게 하시는 과정에서, 나는 갈등을 참 많이했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원에서는 내 가족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수치스러웠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저 나를 같은 대학원 동기로 보았던 사람들이 내 가정사를 들으면 동정하거나 다른 태도로 바뀌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결국에 이런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고, 나도 거기에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하는. 내 삶을 행복이라고 여기지 못하고 일부는 불행한 것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나의 자아가 있음을 오늘 설교를 통해서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전부)를 주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로 내가 하나님의 전부인 것을 증명 받은 것이라는 것이 참 가슴이 벅찹니다. 내가 죄인의 성품이 이 땅에 사는 동안 평생 바뀌지 않더라도, 나를 거룩하게 해주신 예수님이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온 우주에 선포한다는 것을.. 몇번을 듣더라도 눈물이 나도록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행복이신 것을, 그리고 그 예수님이 내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내 삶의 전체가 행복인 것을 고백합니다. 이 진리를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님. 이제 내 자아에 따라서 슬픔, 우울, 분노하고 그 공허함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시16:2" 나더러 야훼에 대해 말하라면 '하나님은 나의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내게 행복이 없다'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이 실제가 되는 한 주되게 해달라 기도합니다.
제게 "병이 낫게 해줄 못"과 같이 허황된 목표는 심리학이고 그 중심에는 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종교로 불리우는 모든 것들을 무시했습니다. 심리학은 사회과학이기에, 직접 증거가 없이 믿는다는 것들은 다 미신행동이라고 무시했었던 것입니다. 그런 내게 "심리학을 열심히 공부함=행복해짐 /병이 낫는 못에 들어감=병이 나음" 이렇게나 비슷하다는 것을 설교말씀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요즘들어 나의 행복은 예수님만 되실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셨습니다. 가족들로 인해 힘들 일이나 대학원 내에서 사람들과의 불편할 상황은 끊이지가 않는데, 내가 거기에서 조금 괜찮게 보냈다고 행복한 것이 아녔습니다. 나도 스스로가 문제가 없는 일상이고 사람들과 놀 때 재미있었지만, 굉장히 공허했습니다. 제가 삼위하나님과 직접 사귀도록 집중하고 몰입할 시간인 성경을 묵상하고 글로 적어 공유하고, 설교 말씀을 듣고 댓글을 적어보자는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꾸만 "나중에"라고 미뤘기에 하루중 감사할 순간에도 온전히 감사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병자에게 직접 먼저 찾아와주신 것처럼, 나에게도 먼저 찾아와주심에 감사합니다. 나는 병자처럼 "낫게 해줄 못(세상)"에 관심이 쏠려있었는데 나를 있는 모습그대로 용서해주시고 사랑해주심으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주신 처음에 거절했었고, 그 뒤로도 수차례 거절했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다려주시고, 내가 예수님을 맞아들이려할 때 한결같은 사랑으로 날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성경의 병자처럼,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 만족되지 않는다면, 신세를 한탄하고 불평불만했는데 예수님 자체가 내 행복이 되어주셔서, 구원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몸이 아프거나 좋지 않은 상황이, 하나님께서 벌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최고의 상황과 환경을 주셨다고 기쁘게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것들이 내게 없어도 행복인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가 취소되지 않아서 그게 너무 자유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22:37-39, 쉬운성경]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네 모든 마음과 모든 목숨과 모든 정성을 다해서, 네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38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계명이다. 39 두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여라'인데 이것도 첫째 계명과 똑같이 중요하다. 어제는 위 말씀으로 혼자서 지지고 볶고 했습니다. 교회 단톡방에 이야기 했던 것 처럼, 대학원에 관계하기 껄끄러워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와 용납이 안 되었던 것은, 우리 가정이 그만큼 특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족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과도 관계를 할 때, 나는 하나님의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범죄를 계속 해서 들춰주셨습니다. 사소한 말에도 상처받고 갈대바람에도 상처받는 그 모습이 어젯밤에는 맘에 확 안 들었습니다. 하나님 명령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아버시께서 그 기쁜 뜻을 이뤄주신다는 통치를 받음을 제가 못하는 상태임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새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말씀을 내가 자꾸 의심해버린 것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어제부터 나는 계속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나약하고 사랑이 1도 없는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용서해주심을 성령님께서 알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불편하고 껄끄러울 수 밖에 없는 세상에, 나도 껄끄러움을 주는 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싫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안되면 우울에 빠지는 모습이 싫었습니다. 이런 내게 건내주시는 위로가, 다시 삼위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를 회복시켜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어제 욥기를 다 읽었을 때, 하나님께 계속해서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모습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다 들어주신 하나님. 그가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의 회복되도록 도와주신 모습을 보고, 내게도 지금 그렇게 해주시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편을 싫어하고, 편한 것을 선택하려는 것이라 결코 뺏길일 없는 행복을 다 받은 자인 것을 경험하게 도와달라고, 온전히 성령님께 통치 받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나의 불행과 행복의 기준과 근거는 무엇인가? 이 세상 자체가 불행, 어둠, 죄이며 영적으로 죽음이 불행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피조물, 새사람이 된 나는 복 있는 자이며 행복한 자 입니다. 내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는 하늘의 복을 받은자이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자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행복의 기준은 바로 하나님, 예수님 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그리고 믿은 후에도 지금까지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은 불행이라고 잘못 생각해왔습니다. 너무나 내 중심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내 생각이 깨어지고 예수님의 생각으로 채워져 가기까지 많은 시간들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내가 교회 또는 교회 지체들을 예수님의 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기를 거절했던 부분을 고백하려고 합니다. 마22:37-3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요13:34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일3:23-24 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 그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는 압니다. 요일4:2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볼 때마다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사랑도 모르고 관계도 모르는 내가 사랑을 해야 한다고 하니, 조금 흉내내보다가 내 맘에 안들고 실수가 있으면 바로 포기해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거절하였으며, 옛사람으로 돌아와버리기 일쑤였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 전 세상의 어둠속에 있을 때에 가졌던 생각과 행동 그대로 교회로 가져와 있었던 것입니다. 내 마음에 안드는 사람과 관계할 때면 내가 먼저 관계를 끊어버리는 내 죄성이, 교회안에서는 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표현이 되었을 것입니다. 목사님을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지만, 교회에서 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했지, 진짜 교회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교회에 온 이후로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속에 있지 않으니, 지체들과 친분은 조금 쌓을 수 있었을지언정 예수님 안에서 관계를 맺어가고 서로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죄를 범했음을 고백합니다. 내 마음대로 되어지지 않으면 금방 슬픔과 우울에 빠지고, '하나님께서는 다른 지체들은 사랑하시지만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라며 말도 안되는 내 생각으로 하나님을 거절하고 떠났던 때에 나를 용납해주시고 용서해주시고 기다려주신 지체들을 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은 율법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길 원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고, 나와 같이 영원한 생명을 가진 내 지체들을 사랑하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구체적으로 알게 해주시고, 순종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시오.
요3: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요3:4. 니고데모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3: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 요3:7.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한다고 내가 말한 것을, 너는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그 당시에 종교 지도자였으며 율법학자들 조차도,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자신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오늘 말슴으로 직접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이후에는 예수님을 믿고 장사지냄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된다. 율법주의학자도 이렇게 변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자 사도 요한은 썼을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시는데.. 위에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에 왜 물을 넣었는지 물 논쟁을 하는 것은 오늘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나는 부쩍 상황윤리를 내가 만들기를 좋아하였다는 것을, 다른 자매를 통해서 보여주셔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성 관계에서 '~해야 해'라는 말이 굉장히 불편했었는데, 왜 불편했는지 내 감정을 먼저 예수님 안에서 풀어내고 성령님께 분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시 태어난 삶에서, 내가 이렇게 "A 상황에서는 B행동을 해야해"라는 것이 딱 율법으로 정해지는 상황 윤리는 틀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불안한 상황에, 내 양심적(내 기준)으로 판단하여 율법대로 행한다면 나는 성령님께 여쭤볼 이유도 없어지며, 삼위하나님과 관계와 질서가 전혀 필요없게 여긴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마치 과거의 율법학자와 종교지도자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 같아 보이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처럼 "이것은 건들지 마세요 예수님. 이건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라는 엉터리 신앙으로 살게 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다양한 상황과 환경을 주시고 거기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너무나 다양한 이 땅의 삶입니다. 하물며 같은 사람이라도 영적 상태, 마음(심리적) 상태, 신체적 상태의 전인격으로 대하려면 매번 같은 상황과 같은 행동을 정하는 상황윤리는 틀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묵상하며 가르쳐주셨습니다. 나도 최근에 상황윤리처럼, '예수님 안에서 목소리를 빚어가보자. 상대의 관심을 요구하는 어린 아이 같은 목소리가 아니라, 이제 상대에게 집중하고 관심을 가져줌으로서 나오는 부드러운 목소리(두성)로 다듬어져 갈거야'라는 말씀을, 내가 해보려고 했습니다. 막상 평상시보다 목소리를 낮게 해보려고 의식하니 경직되어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요즘 무슨 힘든 일 있냐"라고 물어보는 일도 생길 정도 였습니다. 내 전인격이 예수님 안에서 빚어져 가야한다는 말씀을 내가 내 나름대로 해석해서, 마치 발성연습 훈련으로 바꿔버리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시는 것이, 앞서 내게 상황윤리를 이야기한 자매를 정죄할 것도 아니며, 나의 상황윤리를 만드는 죄인의 성품도 마찬가지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알려주셨기에, 아직 모르는 것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저 내가 이 땅에 살면서 점점 분별의 영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경험하게 해주시려고 이 일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 진짜로 내 생각과 가치관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이유와 근거와 원인이 되게끔 자라가게 해주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 불편한 말을 하는 것 같은 껄끄러운 대상도, 예수님께서 사랑할 수 있게끔 다 들춰주시는 과정인 것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버린 구원이 이미 취소되지 않았다는 새 삶을 더욱 누리도록 도와달라 기도드립니다.
요한복음 2장 13-25절 성전에서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진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번 설교영상을 통해서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은 종교가 아니나, 내가 예수님을 종교로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알려주셨습니다. 종교는 내 마음을 달래줄 어떤 신을 정해놓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인데, 아직까지도 나는 예수님을 그런 존재로 생각해 온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종교로 생각하다 보니 예수님께 진정한 위로를 받는 것이 실제가 되질 않았고, 내가 먼저 예수님께 위로 받는다는 것이 어떤건지 잘 몰랐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위로는 내 감정이 다른사람 혹은 어떤 것에 의해 달래진 상태로 알고 있었고, 그 생각을 예수님께도 똑같이 적용하여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불편한 상황이 오면 내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예수님을 거절하기도 하고, 계속 내가 원하는 상황이 되지 않으면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쉽게 관계를 깨버리는 죄를 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진짜 '위로'는 내마음이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의 관계회복이 진짜 위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더 알아가고 더 순종하게 되는 것이 위로라는 것이 실제가 되어감에 감사합니다. 내 생각, 내 관점은 다 틀린것, 믿음도 내 관점이 아니라 예수님의 관점이라야 진짜입니다. 내가 깨달아 알수가 없습니다. 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니, 내가 할 수 있는것이 없고, 예수님이 내 안에서 다이루시며 예수님이 전부입니다. 내가 거짓으로 예수님을 알지 않고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며 그 사랑을 더 알아가고 누려가길 기도합니다.
[요2:13-25, 쉬운성경] 13 유대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워 오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14 예수님께서는 성전 뜰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있는 사람들과 또 상에 앉아서 돈을 바꿔 주는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15 예수님께서는 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비롯하여 모든 짐승을 성전 뜰에서 쫓아 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뒤엎으시고, 그 사람들의 돈을 흩트리셨습니다. 16 그리고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것들을 여기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시장터로 만들지 마라!" 17 이 때, 제자들은 성경에 "주님의 집에 대한 나의 열심이 불처럼 나를 삼켜 버렸다"라고 기록된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18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당신은 당신에게 이런 일들을 행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무슨 표적을 행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19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삼 일 만에 이것을 다시 세우겠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20 그러자 유대인들은 "이 성전을 건축하는 데 사십육 년이 걸렸는데, 당신이 삼 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는 겁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21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그분 자신의 몸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 그분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였고, 그들은 성경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유월절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분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2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그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25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계셨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서 어느 누구의 증언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유월절의 본질을 잊어버린 채 종교화 시켜버린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보았습니다. 오늘 수요모임에서 내가 종교화 시켰던 것 중에 하나가 '예배시간에는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시간이고 나는 조용히 해야해'라는 관습을 나도 모르게 만들었던 것을 성령님께서 들춰주셨습니다. 이전부터 임석현 목사님께서 '내가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예배시간에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다'라고 셀 수 없이 전하셨습니다. 목사님만이 이끌어가는 모임이 아니라, 우리 각 지체가 모이는 진짜 교제시간이 되기를 바라신다고 수차례 말했음에도 내 귀에 그게 전혀들리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유월절을 종교화 시켜버리고 시장바닥처럼 바꿔버린 그 악랄함은, 오늘날 내게도 동일하게 있음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니,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종교화시켜버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며 예수님 마음을 노엽게 하는 범죄인지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게 알게 모르게 있었던 종교적 관념, 우리 교회가 종교화시켜버린 것들이 있다면 성령님께서 밝히 들춰주셔서 멈출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상을 엎어버려주실 때 순종할 수 있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진짜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 예수님의 성전이자 하나님의 성전이 진짜 누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모여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전이 되어갈 것이 정말 소망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기준이되고 예수님만이 이유와 근거가 되기를 기도할 때, "아이고 갈 길이 멀다!"라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새피조물로 바꾸셨고 새삶을 누리도록 이뤄가시는 과정임을 신뢰하고 싶습니다. 온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서 예수님을 사랑할 능력은 내게 1도 없습니다. 순전히 예수님의 대접을 직접 받고 그 사랑과 순종함을 직접 배울 수 있게 도와달라 기도합니다. 이제 영적인 죽음에서 벗어난 '행복'을 그 누구도 뺏어갈 수 없다는 진리가 실제가 되어, 배워가고 자라가는 과정에서의 갈등과 고난과 고통도 기쁘게 참여하고 싶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도 '불행'은 내가 가진 기준(세상적 기준)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기에 우울, 분노, 억울함, 죄책감 등등.. 여러가지 마음의 병과도 이어지는 것 고백합니다. 이전부터 내가 다시 종양제거 수술을 해야할 수 있으며, 통증이 있어서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것에서 이야기 나눴습니다. 난 이미 그 불평불만을 꺼낼 때 '나는 불행해'라고 자기연민에 빠진 상태였습니다. 내가 묵상글에 구체적이게 적지 않고 거짓말 했던 것은.. 난 욥처럼 스스로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꽤 오랜 시간동안 '제발 날 죽여주세요 하나님.'이라고 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내가 간절히 기도했던 적이 있느냐고, 나는 이땅에 남겨놔봐야 아버지의 선하신 일을 이루는데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테니 차라리 데려가달라고 울며 소리쳤습니다. 나를 그렇게 존귀하게 대접해주시고, 자기 목숨까지도 모두 내어줄 정도로 사랑을 확증해주신 주님께 정말 말도 안될 기도였습니다. 성령님에 의해서 한 기도도 아닌 떼쓰기밖에 안 되었어요. 그런 나를 기다려주시고, 회개함으로 관계와 질서를 회복 시켜주시기를 셀 수 없이 반복해주셨습니다. 정말로 오늘 설교말씀처럼 내가 새삶을 살겠다고 아무리 다짐해도 안되고, 새피조물로 바꿔주시고 그렇게 살게해주시는 주권이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예수님과 사귐도 깨버리고, 성령님의 통치함을 받지 않는 나를 용서해주시고 용납해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흠없는 자, 자녀로 세워주심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나는 임석현 목사님을 질투했던 것도 회개합니다. 다리가 아프셔도, 가족들로 인해서 마음이 아프셔도 늘 삼위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를 깨트리지 않으시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저 가슴아픈 고백을 듣고,.. 왜 나보다 목사님은 덜 힘들거라고 생각했을까, 왜 갈등하시며 자라가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가 이미 세상의 기준으로 불행에 빠지니, 우리 지체들과 사귀지 못할 정도로 눈앞이 뿌얘진 것도 성령님께서 들춰주셨습니다. 갈등하고 넘어지더라도, 난 평생 순종할 수 있는 성품이 1도 없더라도, 내가 내 자신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그만 거절하고 싶습니다. 그만 거절하게 도와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직 예수님께 쳐복종할 수 있기를, 행복 그 자체이신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 그 참행복을 누리는 한 주 되고 싶습니다.
저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을 '이햐. 이런 기적도 만드시는구나.'하고 넘어갔었던 것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막연히 여겼던 것을 고백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요구를 거절한 것 같았는데, 결국에 정결의식항아리에 물을 담게해서 포도주로 바꿔주셨을까? 이 역사는 왜 성령님께서 성경에 쓰셨으며, 지금 내게 이를 통해서 하실 말씀이 무엇일까? 신약을 그리 읽어봐도 이렇게 질문한 적은 처음입니다. 이렇듯 나는 하나님께서 내 상황과 환경에 개입하시거나, 나를 동참시키기 위해 초대해주셔도 나는 '제 3자'처럼 무반응을 할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최근에 집단상담 프로그램, 집단상담 교과목 수업 2가지를 통해서 자꾸만 내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 시간들이 생겼습니다. 조만간 내 가족에 대해서 평가해서 가족심리평가 과목에서는 기말과제 발표까지 해야합니다. 저는 이번학기가 너무나 불편해하며,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왜 이런 상황과 환경을 내게 주셨는지 고민하고 질문해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기에 물이 포도주가 바뀐, 통치함을 받았던 역사를 오늘 보며... 내가 하나님의 개입을 막았던 범죄를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가족사에 대한 수치감, 내 자책과 정죄함을 회복시켜주시는 시간이 될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예수님을 드러내는 간증이 될 수도 있는 상황과 환경을 주셨구나. 처음에 '이렇게 해보자'라고 말씀하실 때 나는 거절하고 불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 없었듯이. 내 수준의 것을 멈추게 도와주세요. 여전히 나는 성경을 묵상하기도, 설교말씀을 묵상하기도 꾸준히 지속적이게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려주실 때 자책하고 고통스럽게 받기를 멈추겠습니다. 멈춰주시겠다고 약속해주신 것을 신뢰하고 싶습니다. 고전3:10. 말씀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놓치지 않고 고난에 기쁘고 즐겁게 동참하는 하루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기준으로 불행과 행복은 세상의 것과 다릅니다. 세상의 것들(돈,건강,명예 등등)을 얻지 못하고, 눈의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그것이 불행하다고 마귀로부터 배워왔지만, 하나님 기준에서의 불행은 '영적인 죽음'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생각하는 불행이 없어진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기준에서의 행복은 영적으로 살아나고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회복되어 아버지의 사랑안에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내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를 통해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회복이 된 '새피조물' 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예수님 믿기 전부터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생각들을 들춰주셨고, 그 생각들이 예수님 안에서 쳐복종 되어야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지난 주일 영상에서 두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이 행동하길 바라고 그렇게 되어지지 않으면 분노한다고 고백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아이의 모습은 세상의 기준입니다. 엄마아빠 말을 잘 듣고, 말썽안부리고 공부를 잘 하는 것 등 아이가 이런 내 기준을 맞춰준다면 행복할 것만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서는 이런 내 생각이 다 틀렸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사실은 지금도 제 마음속에 세상의 기준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이렇게 되어지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불행'하다고도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에서 잠깐 표현하신 '박사나부랭이'라는 말씀을 듣고는, 우리 아이들도 그런 말을 들어도 좋으니 공부를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오기도 하였고, 안되는 아이들을 내마음대로 포기했다가 집착했다가 세상의 기준으로 쥐락펴락하였습니다. 아이들을 복음으로 양육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길 기도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세상의 복도 주시라고 하나님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교만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마는, 육정을 따라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싸움에 쓰는 우리의 무기는, 육체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요새라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는 궤변을 무찌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는 모든 교만을 쳐부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킵니다. " (고후10:3-5) 세상은 어둠이고, 죄 자체이며 나도 그 속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나는 빛으로 나왔으나 여전히 예수님이 기준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을 많이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런 나를 예수님의 피속에서 용서와 용납해주시고, 예수님의 위로안에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다시는 범죄하지 않고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또 그렇게 되어지지 않는 모습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쳐복종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몇주 동안 주일 설교 영상에서는 예수가 살아주시는 새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열심으로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많은 부분들이 나의 열심으로 살아왔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 자체가 어둠, 암흑 그 자체이고, 죄 자체이고 나도 그 속에 있었지만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나는 세상에서 하나님나라로 옮겨진 자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을 가지고 그대로 살고 있는탓에 하나님을 떠나 똑같이 범죄하며 혹은 죄의식도 없이 사는 부분이 많습니다. 내가 세상의 윤리와 도덕을 갖고 왔다면 불안과 공포도 갖고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몇주째 계속 고백하고 있는 나의 옛사람의 모습 중에 하나는 '불안'인데, 이 불안은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나약한 '멘탈'의 문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불안은 내가 원하는대로 되어지지 않을 때, 내 열심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발생되고 내 중심적인 생각때문에 오는 것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예수 믿기 전, 그리고 지금도 범죄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하길 바라고 그렇게 되어지지 않으면 화를 내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제공해줘야 하는지,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예수님과의 사귐속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좌지우지 하려고 하였습니다. 뭐든지 내 뜻대로 내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상황이 되길 바랬고 내가 '갑'이 되고 싶어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빌4:6~7)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이 무엇인지 나에게 알려주시고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 되어 간구하게 되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안이루어질까봐 내 불안으로 내 열심으로 해보려다 염려함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것이니 하나님께 맡기고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대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나다니엘의 모습이, 참 나와 똑닮은 것을 오늘 성령님께서 들춰주십니다. 그당시 목수의 아들인 예수님을 무시하고, 이미 나다니엘 스스로가 착하고 문제없다는 듯이 구는 모습이 내가 죄의식 없이 살던, 믿기 전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이란 존재는 허구이며 신화라고 무시했고, 나는 스스로도 착하고 잘살고 있으니 믿어서 천국갈 필요가 없다는 교만함이 있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이런 날 신뢰해주는 것이 이상합니다. 이해가 전혀 안 갈 정도로 그분의 사랑이 너무 크고 깊고 높고 넓다고 생각이 듭니다... 나다니엘 같이 교만하고 예수님을 무시했던 나를, 참 이스라엘사람이라고.. 간사함과 거짓이없다고 어떻게 신뢰해주실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나의 죄된 모습을 그대로 보면 신뢰받지 못하는 건 마땅해보이는데.. 눈앞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지금 이자리에서도 어떻게 한결같이 용서하고 용납해주실 수 있을까.. 사실 저도 예수님을 그대로 믿기보다,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이해해보려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수준으로만,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을 경험하고 알아가야하는데 그것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런 내 자기 중심성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런 죄성을 가진 그대로 보혈로 덮혀진 것을 어제와 오늘도 경험했습니다. 부활을 놓치면 지금 이자리에서 내 원하는대로 예수님을 끌고 올 때가 많았습니다. 최근에 건강에 대해서 스스로 화가나고 자책할 때, '이런 범죄하는 나를 예수님은 버리실거야. 그래야 마땅해'라는 망언을 하였습니다.. 부활을 경험하면서 성령의 삶을 실제로 살아야한다는 것을 너무나 절실히 경험하는 중입니다. 믿기 전과 같이 악랄하며 성령님과 적대하는 내 모습이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부활이 뭘까..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내어조신 사랑의 확증시켜주신 것. 죽은 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나실 예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이시며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이라는 것을 믿는 것. 그가 죽었다 살아나셔야했던 이유가 이미 내가 믿지 않은 죄로 인해서 심판받아서 영적으로 죽어있기 때문에, 그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나의 주님되시기 위하셨다는 것을.. 부활을 놓치지 않게, 영적인 것을 늘 구체적이게 성령의 삶으로 살며 자라가고 싶습니다. 나다니엘과 같은 강성현이 예수님의 빚어가심으로,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여가고 싶습니다.
나는 어떤 사건, 환경, 상황에 집중하는가? 나의 유익과 손해에 관심이 있는가? 이것들로 인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충실하는가? 어떤해결에 중점을 두는가? 아니면 세상이 보지 못하는 예수를 보며, 사귀며, 예수께 순종하는가? 산헤드린공회와 그 조사단은 눈에 보이는 침례 요한 그 자체를 궁금해할 뿐 그런 말과 행동을 하게 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내 모습도 그들과 같습니다. 내 눈앞에서 보여지는 상황에만 집중되고, 또한 손해를 보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그 생각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당해 살아왔고 아직도 살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제 모임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장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 모습은 나의 전부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귀며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 빠져서 불안을 스스로 자초하며 다른 사람 혹은 다른 무언가를 통해 불안감을 해결하고 싶어하였습니다. 예수님마저도 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 생각, 내 감정, 불안 이 모든 것들이 그 어떤것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고, 오직 예수님하고만 살아야 함을 알려주셨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생기는 걱정과 불안이 오늘하루도 마음에 안들고 그 불안을 어떻게 해서든 해결하고 싶지만, 이 모든 생각을 잠재우고 예수님과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는 영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이 내 죄 때문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살아계시고 그분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부활로 확증된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되기를.. 내가 원하는대로 무언가를 해결해보고자 하지 않고, 내안에서 활동하셔서 예수님이 살아주시는 삶이 전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요한복음을 쓸 당시의 이스라엘의 사회적 배경을 구체적이게 알 수 있게 되어서 감사했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그 당시에 이스라엘 종교자)들의 종파와 각각 그들이 어떤 자인지를 알고 나니, 오늘날 우리가 종교행위 하는 것과 그닥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1:19-27, 쉬운성경] 19 요한이 증언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이 제사장과 레위인 몇 사람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묻게 했습니다. 20 요한은 그 질문에 거절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21 그러자 그 사람들이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엘리야입니까?"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나는 엘리야가 아닙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장차 오시기로 한 그 예언자입니까?" 요한은 또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22 그러자 그들이 요한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십니까? 우리는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대답해 주십시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3 요한은 그 사람들에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했습니다. "나는 광야에서 '주님을 위하여 길을 곧게 만들어라' 하고 외치는 사람의 소리입니다." 24 보냄을 받은 유대 사람들 중에는 바리새인이 보낸 사람이 있었습니다. 25 그 사람들이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면 왜 사람들에게 세례를 줍니까?" 26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줍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서 계십니다. 27 그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나온 산헤드린 공의회 사람과 조사단 사람들이, 예수님을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산적같은 행색을 하고 있는 이상한 요한만 궁금해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질문: 나는 어떤 사건, 환경, 상황에 집중하는가? 유익/ 손해에 관심이 가있는가? 자신의 생각과 관심에 충실하는가? 아니면 보지 못하는 예수님을 보며 사귀며 순종하는가? 어제의 내가 엄마에게 분노하였던 것은 사건, 환경, 상황에만 집중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가 나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생각하고 결국 내 생각과 관심에 충실했습니다. 성경 묵상글을 적고 나서 예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엄마와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를 예배당에 와서 더 구체적이게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죄인이며, 나에게 어떤 부모인지만에 꽂혀서 결국에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사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끼워 팔거나, 예수님에 나를 끼워팔 때도 구체적이게 여쭤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으면, 그런 결과가 있기까지 삼위 하나님과 사귀지도 않았으면서 '감사합니다'라고 퉁치는 모습. 복음을 전한다고 얼렁설렁 '예수님이 해주신 것이죠'라고 나에 예수님을 끼워파는 모습. 모두 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난 뒤의 모습이었습니다. 맞습니다.저는 주보의 기도제목에 전에 적었던 것처럼, '나는 타인의 반응을 신경씁니다. 칭찬에 놀아나기도 하고 금새 교만해집니다.'라는 고백 그 자체로 내 모습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요한이 볼품없는 행색을 하고 사는 것이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오직 예수님께만 관심을 가지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주신 성령님의 일하심에. 그게 내 삶에 실제가 되었으면 바란다고 기도합니다. 이제 내가 가족들에 대해서 구체적이게 알게 되는 것이 '나의 손해, 혹은 유익'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을 보게 경험하게 해주세요. 그들과 관계하면서 나는 충만하지 못하여 분노하고 미워하기도 할 수 있지만, 점점 나를 자라가게 해주시고 충만한 것이 무엇인지 직접 경험하게 해주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롬1:16, 쉬운성경]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복음이 유대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방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말 새 피조물이 되었는가?? 이번 주일 영상과 주일 예배 모임을 통해 던져주신 질문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있고 예수님 안에 있으니 새피조물이 맞아' 라고 생각은 하지만 새피조물, 새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아니오, 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통치자인 마귀의 영을 따라 살다가 예수님을 믿었지만, 여전히 예수님께 내 전부를 맡기고 예수님이 살아주시는 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생각이 사로잡혀 삽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께서 이미 끝내신 '죽음의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때문에 목사님을 만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지만, 믿었으니 이제는 내 안에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 죽음의 공포에 아직도 짓눌리고 있는 삶은 새피조물의 삶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왜 이렇게 아직도 옛생각을 가지고 계속 범죄하는가? 나는 하나님이, 예수님이, 성령님이, 그리고 영적인 아비인 목사님이, 교회지체들이 주시는 많은 좋은 것을 거절해왔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도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꼭 하라고 하는 영상댓글달기와 성경묵상 나누는 것을 저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이걸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내가 이런것까지 나누어야하나', '글도 못쓰는데 하고싶지가 않다' 등 온갖 나의 변명, 핑계로 하나님을 거절해왔습니다. 그러나 내생각이 다 틀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들을 계속 거절하면 새피조물이 아니라 나는 가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죄를 고백할지라도 난 또 똑같을 거야라고 이순간에도 마귀가 생각을 넣어주지만, 지금까지 그 마귀의 생각에 놀아나 하나님의 일을 많이 포기해왔기에 그 생각을 끊어버리고 싶습니다. 지난 주일 모임에서 예수를 믿는 것이 수많은 복중에 하나가 아니라 유일무이한 복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육체로 왔다가 부활하심이 나에게 복이고 기적입니다. 오늘도 순간순간 들어오는 내 생각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허망한 것들을 붙들지 않고, 성령이 믿게 해주신 그 예수가 살아주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설교는 재밌어야할까? 제목을 지어야할까? 교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일까? 임석현 형제 개인의 말일까? 영상에 오늘 여러가지 질문을 던져주시는 것 같습니다. 고후5:17 절에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새 피조물이 된 것을 고백했던 2020년도가 생각났습니다. 그당시에 정말 예수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고, 내게 말씀만 해주신다면 다 순종하고자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사복음서를 읽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 받으시다가, 부활하신 그 실제역사를 읽으며 얼마나 감사의 눈물을 흘렸는지가 기억납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시켜만 주신다면 뭐든 다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맹세는 참으로 거짓부렁이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인가 해내는 율법으로 믿음을 얻은 것이 아니기에, 예수님을 믿고도 여전히 옛사람의 습관을 가진 모습이었습니다. 저를 하나님께서 주함교회에 오게하셔서, 그런 율법주의가 틀렸다는 것을 가르쳐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원래 소속되어있던 선교단체에서 나와서 종교생활과 신앙생활의 구분점도 모른 체 혼란 스러웠던 상태었기 때문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관계중심이시며, 그 관계 중에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주함교회에와서 오랫동안 배우는 중입니다. 이제 조금 알게 되었다고 '이건 내가 아는 거야'라고 지루해하던 나 자신을 회개합니다. 설교영상을 보고 댓글을 달아야한다고 명령하셔서 순종한다고 하지만, 내가 영상을 통해 말씀하실 때 기뻐환희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목사님을 통해서 계속해서 예수님을 전할 때, '이건 나한테 너무 익숙해.당연한 거야'라며 시큰둥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창피해졌습니다. 설교가 참신하고 재밌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제목도 필수적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임석현 목사님의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것들을 내가 귀를 닫고 안들어버릴 때가 참 많았습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무감정적이다... 얼마나 마음아플일인지 지금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제는 육신의 잣대로 살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모르게 범죄함에 사느라 새 피조물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멈추게해주세요. 이제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피조물을 사는 삶을, '너를 위해서 사는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설교말씀과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라는 명령을 셀 수 없이 하신 것을 듣고 있습니다. 나는 했다 안했다를 반복하기도 했고 순종이 아니라 내 열심으로 하려 한적도 많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싶습니다. 사람의 반응을 신경쓰느라 벌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활을 놓치지 않는 한 주 되게 해주세요.
[요1:15-17, 쉬운성경] 15 요한이 그분에 대해서 증언하며 외쳤습니다. "내가 전에 '내 뒤에 오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나보다 더 위대하신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분이 바로 내가 말한 그분이다." 16 그분의 충만하신 것에서 우리 모두는 넘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17 그것은 율법이 모세를 통해 주어졌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창세 전부터 존재하시는 예수님께서, 나를 충만하게 해주신다는 말씀을 오늘 어떤 단어인지 구체적이게 배우게 됩니다. 은혜와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다고 하였을 때, '내가 왜 충만하지 못하였을까?'라는 질문도 하게됩니다. 나는 예수님 안에 머무르게 해주시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충만함을 누린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 여러번 고백했듯이,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를 놓치고 죄책감에 빠져서 끙끙 앓은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 영상이 올라온 토요일 예배모임 중에서도, '내가 본 두 자매는 굉장히 율법주의로 행동하기에 틀렸다. 그런데 나에게도 그런 성품이 있다고 성령님께서 들춰주셨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모임 중에 고백을 했지만, 묘하게 불편한 감정이 남아있었고 두통이 와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게 되었습니다. 임석현 목사님께서 차로 데려다주시는 길에, 교제 나누던 중 결국에 내가 은혜와 진리 가운데 있지 않았던 것들도 발견했습니다. 나는 그 율법주의 자매들을 보고 내 감정이 상한 것과 그들을 사랑하지 못함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은혜와 진리에 자유함을 누리십니까, 율법에 얽매여있습니까? 여전히 손해볼까봐 떨고 있습니까? " 이 질문에 나는 목요일날 내 손해에 벌벌하며 율법 주의라는 자매들을 보며 나도 율법주의적이었던 것을 고백합니다. 율법을 대신해서 은혜와 진리로 오신 예수님 품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관계와 질서를 깨버릴지라도 다시 회복시켜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전부가 되게 해주세요. 내가 손해받고 내가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빛가운데에 없고 범죄에 빠지지 않게 해주세요. 예수님을 우선으로도 못 두는 나를, 성령님 앞에서 순종함으로 예수님이 전부가 되는 삶을 제게도 직접 경험하게 해주세요. 계속해서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여 자라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요1:9-14, 쉬운성경] 9 참빛이 있었습니다. 그 빛은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췄습니다. 10 참빛이 되신 말씀이 세상에 계셨습니다. 세상은 그분을 통하여 지음을 받았는데도, 그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11 그분은 자기의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들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12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들, 그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13 좋은 가문에 태어난 사람들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의 계획이나 바람에 의해서, 그리고 그들의 조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에서 사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 영광은 오직 아버지의 독생자만이 가질 수 있는 영광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은혜와 진리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구체적인 용어를 통해서 배울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요한복음 1장 말씀 전체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 자체를 부정하고 있으니, 어떻게 창세전에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저도 의심됐습니다. 예수라는 인물이 성경이나 여러 역사책에서 실존인물이라고 하니, 거기까지는 동의하지만 부활과 십자가는 신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요 1:14. 말씀처럼 이 땅에 나를 구원하시려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아버지께서 하라는 그대로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창조주이신 것 영광돌린 예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라는 기동이 마지막도 잘 몰랐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니, 오늘 설교말씀처럼 하나님과 동등하기도다 좀 더 아래라고 무시무시한 착각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고 나서야, 태초의 말씀이시며 참빛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내게 주님이신 동등하신 하나님이시구나 감탄했습니다. 자격이 없는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이며, 불변하는 진리 자체로 제게 와주셔서. 저를 사랑해주시 용납하고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회에 가면 '하나님 아버지'라고 무작정 부르고, 삼위 하나님을 모르면서 무작정 '주님'이라고 부른다." 오늘 설교 중 이 말씀이 제게 콕콕 박힙니다. 주함교회에 와서, '삼위의 각각의 하나님과 사귐으로 비로소 내 주님이 된다'라는 말씀이 처음에는 너무나 아리송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모두가 하나님이시며, 각각의 위치가 다르실 뿐 나의 주님이 되신다는 사실이 내게 너무나 막연했습니다. 그래서 '주님' 혹은 '하나님'이라고 막연한 호칭으로 불렀습니다. 이제는 성령님이 누구이시며, 예수님은 누구이신지, 창조주 하나님은 누구이신지 각각의 성경에서 가르쳐주셔서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얼마나 '관계와 질서'를 몰랐는지도 들춰지게 됩니다. 롬8:15. 여러분은 또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영이시며, 자녀로 삼으시는 성령을 내게 부어주셔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제 역사를 믿게 해주심으로, 내가 예수님의 동생이며 하나님의 딸이 된 것을! 오늘 이렇게 설교 말씀을 통해서 구체적이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에 나는 '성장했다, 자랐다'라는 말을 들을 때, 마음이 불편했었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받는 칭찬의 기준에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황과 환경이 어려워진다 싶으면 금방 몸을 끙끙 앓아버리는 나약한 내가 싫고, 미움과 원망이 불쑥 드러나는 미성숙함이 싫었습니다. 내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되고, 예수님만이 오직 기준이고 근거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배웠지만 정작 내 삶에서 실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도 임석현 목사님처럼, 어떤 상황과 환경이여도 순종하고 잘 넘어가는 모습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시기질투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너무나 악랄하고 하나님 앞에서 해서는 안되는 범죄인지를..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업신여기고, 내가 상속받은 하늘나라의 신령한 복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그분을 내 주님으로 모시지 않는 것과 같은 태도였습니다. 이번주 기도제목에 적었습니다. "칭찬에 금새 놀아나버리는 나, 타인의 반응을 신경쓰는 나입니다. 목소리 마저도 꾸미고 연극하는 듯이 냅니다. 칭찬을 받을 때, 나를 칭찬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성령님 안에서 분별할 수 있게 해주세요. 오직 예수님만이 이유와 근거와 원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노력하고, 완벽하는 내 기준으로 살지 않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을 진짜로 누리는 한 주 되게 해주세요.
내 이름 자체가, 내 인격(몸, 마음, 영혼)이라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성현아'이름으로 부르시며 내 전인격을 그대로 사랑해주시는 하나님께 오늘도 감사합니다. '사람의 유한한 언어이지만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인격이신 하나님을 대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오늘 설교 말씀에서 '말 뿐만인 신앙생활은 꽝이다. 하나님의 언어로 설명을 들어도 내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성경말씀을 아무리 성령께서 알려주셔도,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하라고 하신대로 하는 것도 예배에요?'라는 질문을 할 정도로 내 기준대로 받아들였던 어리석은 모습을 다 들춰주셨습니다. 그래서 너무 감사합니다. 내 스스로 알지 못하고 내 열심이 아니라, 이제 나를 들춰주시고 피드백 해주셔서 백지상태로 만들어가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님과 적대한 상태라면 나는 내가 지금 어떤지 아예 듣지도 보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또 성령님을 슬프게 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을 읽으며, 오늘은 결혼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질문하고 고민하고 여쭤보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신 것도 정말 감사합니다. 배우자 기도, 결혼을 해야말아야하나에 대한 내 착각과 편견 등을 하나님의 것으로 다 뒤집어지도록 기도합니다. 주여주여 말로만 하고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의 삶을 살지 않고 싶습니다. 이런 내 범죄에 따라 천국이 취소되었다가, 착한일로 다시 천국티켓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이 실제 삶이 되게 나와 우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이제 내 범죄가 들춰질 때 기뻐 춤춘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순종할 수 있도록 쳐복종하게 도와주세요. [고후13:5, 쉬운성경] 여러분은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점검하고 자신을 시험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까? 이것을 모르면 여러분은 시험에서 불합격한 사람들입니다.
요5: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대로 따라 할 뿐이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아들도 그대로 한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고, 예수님의 동생이며, 전부 상속받은 자라는 뜻이 무엇인지 무겁게 내 머리에 내리 앉은 느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의 주님' 이라는 명칭을 너무나 가볍게 쓰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10월 10일 정말 오랜만에 교회 지체들에게 성경묵상글을 나눴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전부로 두기는 커녕, 우선순위로도 두지 않고 내 바쁜 일상들에 허우적대기만 했습니다. 성령님께 '왜 그래야하는가?' 여쭤봐야할 때, 내 판단을 앞서 하기 바빴습니다. 여호사밧이 전쟁을 치루기 전에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응답 받는 그 관계를 보고 몹시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요14:31. 다만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내게 본부하신 그대로 내가 행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다. 일어나거라. 여기에서 떠나자. 나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예수님께 그 관계와 질서를 직접 배워가고 싶습니다. 이미 그런 신령한 복을 다 상속받은 자인 것을 믿고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그렇게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오뚜기 같은 나의 믿음의 뿌리가 되어주셔서, 다시 일으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요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보혜사 성령님, 하나님의 영이시기에 하나님의 뜻(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시고 자라가게 해주세요. 넘어질 때 기쁘게 넘어지고, 다시 사랑 안에 머물러서 기쁘게 춤출 수 있게 해주세요!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과 십자가를 증거하라. 행1: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황인종인 내가 흑인 아이를 낳았다면? 참 나는 의심을 하기 좋아하는 존재인 것을 오늙 고백합니다. 내가 스스로 부활과십자가를 경험하고 증거할 수 없음을 말씀을 통해서 봅니다. 내가 할 수 없고, 오직 예수님께서 하라는대로만 해보는 순종이 지금 너무나 낯설고 갈등됩니다. 이 과정 중에 의심이 듭니다. 주보에 제 기도제목 중, '대학원의 일이 많습니다. 업무가 조정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안된다고 할지라도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은 하나님을 경험하길'이라는 기도제목을 썼습니다. 그러나 오늘까지도 자잘하고 새로운 업무들은 2개가 더 생겼고, 아무도 나와 업무를 나눠가지지 않으며, 나에게 일을 주시는 사람은 업무를 나누지말고 총책임자가 되라는 회의결과를 주셨습니다. "아버지.. 이게 맞나요.. 이게 내가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를 증거하는데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까?" 의심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하고 ~하면 상대방이 복음을 듣고 믿겠지'라는 내 판단과 내 종교행위를 해본 적은 있지만, 지금의 과정은 내가 계획하지 않은 상황과 환경대로 몰아가지는 느낌입니다. 이미 심판 아래에 놓여져있어서 사망한 나를, 하나님의 사랑아래에 옮기고 싶어하신 주님. 신뢰하지 않는다면 다 때려치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내 솔직한 심정은 부담스러움과 억울함이 있습니다. 내가 이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듭니다. 성령님께서 날 부활과 십자가의 증인으로 세워주신 것이지, 내가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언제나 의심이 많고, 부활을 믿었음에도 경험했음에도 삶에서 실재로 살지 못하는 나. 그러한 나를 오늘도 들춰주시고 용서하시고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전해 받은 예수님을 전하기를 소망하게 끝까지 집중하고 순종하길 기도해주세요.
고전15:3.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오늘 나는 부끄러운 말과 생각을 하였습니다. "차라리 나 말고 우리 가족 중 다른 사람이 먼저 믿었더라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내 가족들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이 범죄함이며, 나도 사실은 가해자였던 것을 성령님께서 들춰주시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렇게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가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보는 기쁨을 누리고 있지만.. 그들의 범죄가 멈추지 않을테니 마음은 여전히 아픕니다. 때로는 '부모님의 그 모습에 제가 아파요'라고 말을 하더라도, 왜 제가 아픈지 전혀 이해 못하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허망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던 중, 가족 중 한명이 유튜브 영상 을 보냈습니다. '당신의 어렸던 부모를 용서하세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의 나이가 어려서 그랬던 겁니다.'라는 말을 듣고, 순간 화가 훅 올라왔습니다. "차라리 이해가 안 간다면, 공감을 못하겠으면 함부로 말하지나 말지!" 그 이름도 모르는 유튜브 강연자의 말에 "부모가 지금은 더 악랄하게 나를 대하고 있다면 어쩔거냐. 말 참 쉽게 한다!"라고 반박하고 그의 말에 화를 내는 내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머리로는 '나를 건져내주시고 구원해주신 것이 감사하지'라고 할지라도, 내가 내 이웃(육신의 가족)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양육을 하고 싶진 않았던 내 악랄하고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남동생을 돌보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나보다 나이 많은 부모, 친척들은 싫었습니다. 이것이 내 진짜 감정이었나봅니다. 고전 15:3절과 임석현 목사님의 기도제목을 보고, 화가 났던 내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더 빨개졌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아버지의 뜻)은 나만 구원 받고 끝이 아니라, 나도 전해 받은 예수를 가족과 이웃들에게 전하는 것임을 잊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날 위해 죽으신 그 실제 역사를 믿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이 창조주이신 것을 믿게 해주시고 구원해주심에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해했는지.. 오늘 설교말씀을 통해서 쭉 돌이켜주셨습니다. 이제는 내가 하늘의 신령한 복을 다 받은 자이고, 예수님의 핏값으로 산 존귀한 존재인 것을. 그들에게 마음이 또 아플 수 있으나, 점점 더 그들이 나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없을 것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나를 붙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창2:7.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생령)이 되었다. 나의 죄목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실제 역사를 보여주셨음에도 내가 거절한 것. 창세기를 묵상하며 구체적이게 '왜 내가 죄인인가' 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신 이유가 전인격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만든 피조물인데, 그 관계과 질서를 깨버리고 살았던 것이 얼마나 악랄한 죄인지를 또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내 죄는 아니다, 무슨 연좌제도 아니고 까마득한 죄를 내가 왜 반성해야하는가' 불평불만 했습니다. 창세기에 죄의 시작을 이야기한 것은, 아담과 하와만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똑같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를 동일하게 범죄하는 것을 성령을 부어주셔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나는 똑같은 착각과 범죄를 저지른 것 중 하나가 '나는 부모와 다르다'라는 착각입니다. 나는 부모님보다 나은 것이 없었고, 죄짓는 성품을 그대로 똑같이 형성된 자였습니다. 오늘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면서, "나정도 되니까 참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이다"라는 교만하고 오만방자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구나'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요8:2. 그래서 나는,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내가 곧 나(야훼 하나님)'임을 너희가 밎지 않으면, 너희는 너희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죄인이다'라고 말하시는데, 범죄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죄 가운데서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런 죄의식 하나도 없이 살다가 죽었을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섬뜩한지 모릅니다. 질문1: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살아계심을 인정하는가? 질문2: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까? -> 예, 이전까지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에 쓰여진 나의 죄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나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역사를 성령님을 통해서 믿게 해주셨기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군요!'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도 거절하였던 그 악랄한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고 죽어주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 죄인인 나를 인정하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시며, 살아있는 나의 주님이 되어주신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라는 성경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질문3: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랑의 대상으로 만든 피조물임을 마음중심에 인정하는가? -> 예.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 진리를 내가 잊어버리지 않고 싶습니다. 내가 사랑의 대상인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세상의 마귀에게 속지 않고 싶습니다. 질문4: 당신은 사단을 따라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보다 높고자 하여 하나님을 창조주로 마음중심에 인정하지 않았고, 두기 싫어하는 죄인임을 인정하는가? -> 예. 내가 죄인이며 죄인의 성품이 이미 형성되어 버린 자인 것을 철저하게 인정합니다.
사단의 정체에 대해 성경말씀이 정리된 것을 쭉 읽고, '(엡4: 27)왜 틈을 주지 말라고 하셨는가'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원수이며 대적자, 훼방자 미혹하고 유욕하는 자 헐뜯는 자, 거짓말쟁이, 사람에게 생각을 넣어주고 행동하게 함 위의 내용을 정말 문자 정보로만 알고 넘겼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저런 적대자가 내가 틈만 보이면 넘어트리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인 것을 망각하고 지냈습니다. 임석현 목사님의 고백을 들으며, 성령님께서 나의 갈등도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저도 부모님과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어찌나 이 상황이 부끄러운지, 교회 지체들에게 나누고 싶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내 안에 분노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중인데,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라'라고 말씀하셔도 그러질 못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되지 못하고, 예수님께 순종하지 못한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고백하고 회개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나를 성령님께서 가족들과 흩어지지 않게 붙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에 임석현 목사님께, "목사님도 영적으로 자라야해요?"라고 질문했던 것에 참 부끄럽습니다. 나는 나만 갈등하고, 나의 넘어짐에만 집중하였는데 얼마나 그것이 어리석은 착각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내가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 지체 한 사람 한사람이 다 자라가는 것이 교회이며, 예수님 안에서 교회의 관계와 질서를 배워가는 것을 이번에 보여주세요.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해서, 추석기간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던 순간들을 피드백 해주셨습니다. '가족들과 있으면 손해야. 불편해. 가기 싫어'라는 내 속의 악랄한 마음들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예수님께서 군산의 가족들을 보러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셨고, 성령님께서 가라하실 때 순종의 복을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속에서 정말 난감하거나 화가났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학교를 휴학하고 동생을 돌봐라, 네가 동생 공부를 가르키면되지 않겠느냐"라는 요구들에 속이 부글부글 끌었던 것이 바로 작년 추석입니다. 그때마다 성령님께서는 내 원망, 분노 등의 감정을 절제시켜주셨습니다. '말하기와 노하기를 더디하고 듣기를 속히해라'라고 말씀하시며, 인내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오가며 착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영적으로 양육하는 것이 우리 가족들을 위한 일들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당장 예수님께 오늘 오셨으면, 하나님의 자녀는 성현이이고 그들은 불신자로 심판받을 입장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여주시고 동참하게 해주시는 것이, 나에게 먼저 유익하고 기쁘기 때문이란 것을 잘 몰랐었습니다. [롬5:2, 쉬운성경]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또 믿음으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합니다. "나랑 같이 있는 곳이 은혜의 자리야" 지금까지 추석기간 중에, 무엇이 불편한지 명확하지만 그 불편함에 우울해하며 손해봤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처음 경험이었습니다. 설교 말씀 중에 내 마음이 콕콕 찔렸던 것 중에 하나는, "아직도 부모가 두려우십니까?"입니다. 네. 지금도 두렵고 떨릴 때가 많습니다. '이 말을 하면 어떤 반응이실까?' 제일 먼저 이 생각이 듭니다. 이런 나를 용서하고 용납해주시고, 그자리에서 내 이런 하나님만을 경외하지 못하는 범죄함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부모님께, 나의 상처나 아픈 것들을 부드럽게 표현하며 거절하는 것을 성령님께서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내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다가, '절제의 영'이신 성령님 말씀에 따르려니 참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보이는 세계(마귀)에 벌벌 떨지 않고, 지금 말씀해주시는 것에 끝까지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 죄인으로 살다가, 예수님의 부활가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강성현입니다. 나는 왜 존재하며, 어떤 가치인가? : 이전에는 내가 내가 주인되고, 마귀의 자녀로 살았지만 창조주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인 나를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를 믿도록 성령을 부어주셔서 '영원한 생명있는 자'로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처음 나를 창조하실 때도 '사랑하는 관계(자녀)'로 나를 만드셨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개하여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예수님 때문에 살고 있으며, 예수님 만큼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기에,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성령을 통해서 믿습니다. 지금까지 설교영상 중에, '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고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은 꾸준히 나왔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답변해보는 것 같습니다. 위의 질문은 너무 철학적이고, 추상적이며,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고 나혼자 착각했었습니다. "잘 써야한다, 정답이 뭘까" 걱정하지말고 그냥 적어보자고 성령님께서 말씀하셔서, 그저 답변을 써봤습니다. 답변을 하고 나니, 내가 저 질문들을 하지 않고 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은 예수, 삶의 목표는 부활과 십자가"라는 고백을 헛되게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 토요예배에서 '그릇된 길로 빠진다'와 같이, 위의 답변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금새 나는 상황과 환경에 빠져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지금 이 땅에 살지? 내가 얼마만큼 가치있는 존재이지? 나는 어디로 왔고(누구에게 태어났고) 어디로 다시 돌아가지? 성경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이 가르쳐주신 것. 이제 내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졌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대신 십자가에 매달은 만큼의 가치있는 존재가 나라는 사실을. 문득, 가족들의 일로 수치심, 우울함,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눈 녹듯이 사그라들었습니다. 고전15:3. 나도 전해 받는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15: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내게 온 관심을 쏟고 집중하시는 그 관계에 있으면, 지금 이 아픈 마음이 너무나 위로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역사이시고, 내게 실제가 된 삶을 계속 살고 싶습니다. 성경에 적힌 역사가 사실인 것을 영상에서 하나하나 확인 한 것처럼, 매일 내 이런 상황과 환경에서 예수님께서 역사이신 것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약5:19-20]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그릇된 길을 가다 : 벗어나다, 속이다, 길을 잃다, 나쁜 길로 인도하다. *돌아서게 하다: 되돌아가다. 야고보서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릇된 길로 빠질 때'가 제게 언제였는지를 성령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예수님과 관계와 질서를 깨트릴 때는, 이미 내가 뒤틀리고 삐뚤어진 세상(마귀)한테 속아 넘어갈 때였습니다. 올해에는 임석현 목사님께서 '그것이 세상이여~'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당장에 내 육신의 가족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것들을 알고 싶지 않고, 불편해지는 것이 마냥 싫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나쁜 길로 빠지고 있었는지 늘 성령님께 피드백 받지 않으면 나는 내가 놀란 세상에 속아넘어가버린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추석으로 군산 가족들을 보러 온 지금도, 나는 나쁜 길에 넘어갈까봐 두렵습니다. 한 지체의 범죄가 우리 교회 전체의 범죄이며, 예수님과의 관계와 질서를 깨트림은 우리 교회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를 이렇게 빛가운데 들춰주시고 용서하고 용납하시고 사랑하신다고 말씀해주신 덕에. 내 아픈 마음과, 내 범죄한 사실을 고백하게 해주셔서 돌이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일5:18.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든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신 분이 그 사람을 지켜주시므로, 악마가 그를 해치지 못합니다. 내가 이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마음에서 영접한, 새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실제로 살고 싶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세상의 마귀가를 나를 해치지 못하도록 지금 이자리에서도 지켜주시는 것을 더욱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알 수 있게 해주세요. 나의 상황과 환경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주셨습니다. 추석 연휴에 육신의 가족, 불신자를 만나는 우리 교회지체들이 '즐거운 갈등과 시련'으로 그릇된 길에 넘어가지 않고 돌이키는 시간 되길 기도합니다. 설교말씀을 들을 수록, 우리 교회가 성경의 '진짜' 교회, 성령으로 한마음 한 뜻된 교회가 아닌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뿔뿔히 흩어져있고 하나되지 못하는 나 한 사람에게 교회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 교회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시고 성령님께서 붙잡아주셔서 얼마나 감사합니 모릅니다. 계속해서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않고 배워가게 해주세요. 실제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게 해주세요.
[약5:14-18, 쉬운성경] 14 병든 자가 있습니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해 기도하게 하십시오. 15 믿음을 가지고 하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만일 그가 죄를 지었더라도, 그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16 서로 죄를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해 주십시오. 의로운 사람이 기도할 때,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17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구했더니, 삼 년 반 동안, 그 땅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18 그후, 다시 기도하자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고, 땅에서 다시 곡식이 자랐습니다. 야고보서 말씀으로 '왜 우리 교회에 사귐을 가지고, 계속해서 죄를 고백하고 묵상을 나누라고 하셨는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오늘 설교말씀을 묵상하며, 아직도 내 안에 있는 궁금증 중에 하나가 '나는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 존재가 맞을까요?'였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교회를 만난 뒤부터, 예수님의 몸으로서 어떤 한 부분도 필요하지 않은 지체가 없다고 수차례 말씀해주셨었습니다. 우연히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우리 주함교회를 원하셨다는 것. '그렇구나'라는 정보와 지식으로는 알겠으나, 나는 야고보서 말씀과 같은 교회가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교재를 복습하게 하실 때,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그 기도가 큰 역사를 이루신다'라는 것과 같은 실제 이야기를 많이 봤습니다. 시련과 시험과 유혹이 올 때,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하며 찬송하는 예배를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절제의 영이시자, 나를 늘 들춰주시는 성령님 안에서 내 죄를 고백하는 것. 병든 자들을 위해서, 죄를 지은 자를 위해서 서로 기도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시고 성령의 띄로 묶인 교회를 꼭 경험하고 싶습니다. 내게 이 마음을 주시고, 교회를 궁금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해주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선물을 꼭 주시리라 믿습니다. 내가 교회되게 해주시고, 주함교회가 교회되게 해주세요.
요2:22.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야,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서, 성경말씀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성령님께서 믿지 않는 자처럼 살게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사실 이 주일설교영상을 2번을 돌려봐도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 지금 처한 상황과 환경에서 '멍 때리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사람과의 갈등이 있는 상태였고, 그 상대방의 입장을 성령님께서 알려주시며 내가 먼저 용서와 용납을 받고 많이 회복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방금 전에 그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울렁였습니다. '아직도 삐졌어?' 이 한마디에 마음이 긁혔는지 울렁울렁합니다. 롬1:29-31. "그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 찬 사람들입니다. 또한 시기와 살인과 다툼과 속임과 적의로 가득 찼으며, 남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남들을 비방하고, 하나님을 미워하며, 거만하고 건방지며, 뽐내기를 잘합니다. 그들은 악한 일을 계획하고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양심도 없으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친절하지도 않고 동정심도 없습니다." 울렁울렁한 마음으로 성경묵상 글을 교회 지체들과 공유하려는 글도 안 적고 싶어졌었습니다. 그런 상태의 나에게 성령님께서 로마서 위의 말씀을 다시 묵상해보자고 하셨습니다. 나와 갈등이 있는 상대방 둘다 위의 말씀과 똑같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선한 것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나. 예수님께서 그런 나를 십자가 보혈로 덮어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시며 오래참아주시는지를 지금도 경험중입니다. [롬2:1-4, 쉬운성경] 1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도 변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신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므로,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셈입니다. 2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의로운 심판을 내리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판단하면서 실은 자신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한 마디 하겠습니다. 그대가 혹시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4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이 여러분을 회개로 이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분의 자비로우심과 넓으신 아량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는 것입니까? 로마서 말씀으로 '상대방은 성경말씀처럼 죄인이니까'라는 나의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경구절을 내 유리한대로 끌고 와서 합리화하지말라고 성령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죄함과 죄책감에도 빠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나와 타인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 모두 '하나님의 자비로우심, 넓으신 아량, 오래 참으심, 풍성함'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셨을 때는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나를 이전처럼 살게 내버려두시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지금도 두더지가 되지말라고 성령님께서 붙잡아주시고, 예수님과의 사귐 속에서 해결해나가도록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 공의로우심을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로 보여주셔서, 내가 그것을 믿게 해주셔서 오늘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성령님의 충만함, 성령님에 의해서 집중하고 몰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시고 내게 실제가 되게 해주세요. 주일 설교말씀처럼 하나님의 참된 은혜로, 예수를 최우선이 아닌 전부가 되는 삶이 되게 해주세요.
약5:13.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지난주 수요일날, '성령님에 의해서 집중하다, 몰입하다'가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예배의 일부인 기도와 찬송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에 따라 시작되어야한다."라는 설교 말씀에, 나는 하루 중 얼마만큼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지 여쭤봤습니다. "예배가 삶이 되고 삶이 예배가 되어야한다"라고 이전부터 여러차례 제게 말씀해주셨지만, 실제 내 삶에 고난이 왔을 때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하길 잊어버릴 때가 참 많았습니다. 설교말씀을 묵상하며, '이번 주동안 학교 과제를 하며 기도와 찬송을 잊어버렸구나'라고 들춰주셨습니다. 예배당에 가서 모이는 것만이 예배가 아님을 아는데도, 내 모든 삶의 과정에 예수님과 사귐 속에서 있어야하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도... 그 순간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내 자신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매순간 관계와 질서를 지킬까?'라는 혼자의 의문에 "'어떻게'(how, 방법)는 네게 중요하지 않다"라고 하셨습니다. 내 스스로 할 수 없고, 오직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전이라면 '내가 또 잘못했네'라고 자책하였고, 영상 속 질문들이 불편하기만 하였을 텐데 이러한 들추심과 고백하게 하심이 나를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사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롬8:26-27. 성경구절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도 다시 묵상하게 하셨습니다. 거기에서 '아들에게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주자'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생일을 맞이할 아들에게 자건거가 필요할 줄 아는 아버지가, 정성스레 선물을 준비하고 미리 준비된 선물을 아들이 받을 준비하도록 설득하고 결정하기를 기다리는 과정. 예전에는 '강청기도'라는 "내게 이걸 꼭 주세요!"라고 나 중심적인 기도를 배운 적이 있으나, 로마서 말씀과 아들의 생일선물 이야기가 관계성있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더욱 잘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고 싶어하시는 것이나 하고 싶어하시는 것을 당신이 달라고 할 때, 당신은 항상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경삶 교재의 일부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본질적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 속에서, 관계 중심의 하나님을 경험하길 기도합니다. 오늘 기도를 직접 성령님께서 알려주셨고, 관계중심의 하나님을 경험할 선물이 이미 준비 된 것을 믿습니다!
오늘은 '맹세하다'가 무엇인지 구체적이게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설교 말씀과 같이 저는 맹세하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나는 나름 약속과 맹세를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죄인의 자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높이기 위한 맹세하기만 좋아했지, 정말로 내 삶이 목표가 예수고 목적이 부활과 십자가로 다 걸어보기는 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관계 중심이시고 나는 문제해결 중심이었다" 라는 말씀을 여러차례 성령님께서 가르쳐주고 계셨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교회주보에 '기억살리기 훈련 하겠습니다. 영어공부하겠습니다'라고 맹세하였으면서 내가 원하는 만큼 성과를 못 내서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그만둬버렸습니다. 내가 관계중심이 되지 못하고, 내 상황에 영어와 기억살리기를 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밖에 여기질 못해서 그래왔던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참 마음이 따끔따끔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율법으로만 맹세하며 겉으로 보이길 좋아하는 자와 내가 같다고 똑같이 책망받았습니다. 맹세를 했느냐 안하냐 그런 합법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아니오'라고 말하기 싫어하며 율법-종교주의자-문제해결중심(삼위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를 깨트림)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관계중심에 맹세는 사랑하는 관계에서의 사랑표현이 되지만, 관계를 깨트리는 맹세도 있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배우니, 새삼 맹세를 하기 무서워지기도 합니다. 이전과 똑같이 실수를 반복할까봐 내 두려움도 듭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빛가운데 사귀고, 우리 교회 지체들과 사귀며 교회와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더욱 구체적이게 배우고 경험하게끔 하기 위해서이기에 두려워말고 또 갈등이 생길 때 직접 성령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귐이 단순한 우선이 아니라 최우선이 되도록 하고싶습니다. 나를 더욱 붙잡아주십시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을 때 처지는, 세상적인 관점으로 볼 때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울 시기이며, 대학교 입학을 포기해야할 상황이여서 나에게 내세울 만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형편이 가장 좋지 않을 때, 아무런 자랑거리가 없다고 생각한 가정에서 자란 나를 택하셔서 성령님을 통해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나의 자랑, 나의 지분 챙기기, 내가 인정 받고 싶어하는 욕심들 예수님을 믿고나서 그러한 하나님과 원수되고자하는 죄들을 인정하고 고백했지만,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 안에 있지 않는다면 바로 넘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최근에 가족과 다툼이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밝히 들추실 때, 내 상처들을 감추고 싶어하고 그만 들추시기를 바랬습니다. 가족치유 마음치유와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개인 교제시간을 가지게끔하셔서, 이미 그만큼 들추셨으면 되었지... 내가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었으며, 지금 나의 감정상태와 나의 범죄는 무엇인지 자꾸 직면하게 되니 괴로웠습니다. 고전1:30.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며,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 처음 이 말씀을 묵상할때는, 구체적이게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현재에 문제가 없으니 내가 들춰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문제가 생기면 빨리 지나가고 싶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관계 중심인 것을. 그리고 이러한 과정 중에서 내게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으며 주님만을 찬양하게 되는 삶을 살도록 하게하신다는 것을 오늘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제 내 안에 죽은 것들, 오물들이 들춰지고 버려지는 과정이. 충분히 용서와 용납과 사랑을 받고 회복되며. 나에게 상처준 이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내게 누리게끔해주시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설교 말씀처럼, 내 종교적 행위로 문제해결은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습니다. 연기자마냥 얼마나 감추기와 속이기를 잘하는지 과연 마귀의 자녀다운 죄성을 지녔습니다. 내게 영향을 준 사람들, 내가 무의식적으로 따른 문화들이 많습니다. 그들도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들이여서, 내 생각과 판단은 늘 틀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 생각, 내 노력, 내 지혜로 하나님을 1개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죄의식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 가르쳐주십시오. 직접하도록 순종 하겠습니다. 내가 들춰질 때, 내가 거룩함을 은혜로 입은 자이며 구원을 거저 선물로 받았던 것을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로 매일 상기시켜주세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약5:7.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견디십시오. 보십시오,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땅에 내리기까지 오래 참으며,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립니다. '참고 견디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였습니다. 예배당에 모여서 나의 죄를 고백할 때 공통적으로 알려주시는 것 중에 하나가, '나는 불편한 것을 참고 견디기 참 싫어하는 죄인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오늘 주일 예배 시간에도,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아라'라고 성령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에 진짜로 끝까지 순종하지 못한 나의 범죄를 고백하였습니다. 알바를 알아보라고 하셨으니, 내 생각대로 알바를 구한다음 돈을 벌고 내 생활비를 책임지는 것이 맞다고 '문제해결 중심'으로 빠졌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도, 예수님과의 사귐도 갖지 않은 채로 이미 '알바가 목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알바 원서를 10번 지원을 넣으니 3-4 곳만 답변이 왔고, 그마저도 면접에서 나를 알바생으로 쓸 수 없다는 거절만 받았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이 너무나 불편하여서, 결국에 나는 알바 지원서를 막던지기로 넣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불편한 상황과 환경을 주실 때, 이것이 나를 단련된 인격으로 빚어가신다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불편함을 빨리 피하고 싶은 나의 욕심이었습니다. 약1:2.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왜 나는 이렇게 기뻐하지 못할까"라는 자책감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열매인 '오래참음'도 결국에는 내가 스스로 결코 이뤄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시험에 빠질 때,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는 것! 하나님의 인격으로, 하나님의 성품으로만 되는 것인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내게 정보, 지식으로 알려주셨으니 실제로 내 삶에 경험되기를 기도합니다.
약 5:1. 부자들은 들으십시오. 여러분에게 닥쳐올 비참한 일들을 생각하고 울며 부르짖으십시오. 듣다(아고): 데리고 가다, ~앞으로 이끌다, 인도하다, 운반하다 저는 야고보서 5장의 말씀을 읽을 때, '나는 부자가 아니니 상관없지'라는 착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신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쓰인 것이 첫번째 이유인 것을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부자들이라는 호칭에 내가 맞지 않는다'라고 착각으로 넘길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주셔서 참 민망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에는 내가 금전이나 물질이 많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눈을 돌리고 마음에 살찌우는 자(사치와 쾌락)이며 예수를 믿는 의의 일꾼들을 정죄하고 죽인다면 성령님께서 책망하는 '부자들'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부는 하나님의 축복이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는 것을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 자녀가 재물을 사용하는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제가 지금까지 재물을 사용할 때, 마음에 살찌우기 위해서 사용했던 적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내 물질은 '인간적인 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특히나 생일 선물을 여러가지 구입하고 편지까지 정성껏 써서,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고 칭찬하겠지"라는 의도로 돈을 썼습니다. 이것은 나의 엄마를 통해서 나도 똑같은 죄인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셔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르겠습니다. 작년부터는 '물질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어떻게 사용할지 성령님께 직접 여쭤보고 기도하자' 라고 말씀하셔서 조금씩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필요없는 것에 과소비하는 것, 인간적인 정으로 돈을 사용하는 것은 안된다고 가르쳐주셨고 교회의 헌금이나 생활에 필요들은 차고 넘치게 채워주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라는 말씀처럼, 내 스스로 마음을 살찌우는 자(제가 그래왔습니다)는 예수님과의 사귐 속에서 하나님의 풍요함을 누리지 못한다고 구체적이고 명확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 공동체가 모든 것을 나누고, 서로의 필요들을 채워주는 진짜 교회를 경험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여러차례 성령님께서 '나는 우리 주함교회의 지체로 꼭 필요한 사람이다'라고 가르쳐주셔도 잘 와닿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청지기의 삶을 우리 교회로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이제 성령님이 지시하는 그대로 살 수 있도록 빚어주세요.
요4: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예수님의 양식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라는 굉장히 단순하고도 간단명료하게 말씀하신 것에 굉장히 인상이 깊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고 나서도, 예수님을 믿는 자 같이 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가족들과 여행하며 복음을 전하게 될 기회를 주셨는데, 그때의 내 범죄를 다 간증으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뭘 바라시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던 것과 같이, 성경에서 가장 명확하고 간단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이루는 것'말고는 없었습니다. 내 나름대로 가족들에게 잘하려고 개고생하거나, 내가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지 죄의식 조차 없던 악랄했던 내 모습을 전부 고백하고 인정하게 하셨습니다. 정말 예수님의 양식을 먹고 사는, 성령으로 거듭난 삶을 살았냐고 물으실 때 '아니요..'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최근에도 예수님께서 나를 자라게끔 빚어가시는데도 거기에 계속 내 중심적 생각에 빠져 우울하게 집에만 있으려던 나는 여전했습니다. 진리 가운데 나를 인도해주시는 성령님이 아니셨더라면, 나는 내 범죄함도 인정하지 않고 내 범죄하는 습관을 합리화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성령님을 슬프게 하지 않고 싶습니다. 나를 보증해주시는 성령님을 지식이나 정보수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을 믿게 해주신 성령님을 내 주님으로 섬기겠습니다. 빌립보서 2:13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내 안에 활동하셔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일들을 실천하게 하심을 계속해서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이번 가족여행은 정말 즐겁고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고난도 있었으며, 참 마음이 슬플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과 환경을 내중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성령님께서 하시라는대로 순종함으로, 늦은 밤시간에는 아빠와 큰고모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내가 예상하고 계획한 것 1개도 없이, 하시라는대로 '예'하고 순종하였을 때 내 아버지가 기뻐하신다니 나도 너무나 기쁜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막 '성령님이 보증 서주신 삶'을 조금 맛 본 정도라고 하셨습니다. 싸우고 다투고 나 자신에 취해있지 않도록.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리뤄가기를! 하나님께서 가족들을 향해 일하심을 직접 보고 하나님께 끝까지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걸작품이라고 하심에, 더이상 수치심에 빠지지 않고 기쁘하고 맘껏 누리겠습니다!
야고보서 4:15절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처럼. 내가 계획하고 열심으로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직접적인 사귐에서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말씀을 오늘 실제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는 군산에 가족들을 보러 갈 때, 성령님께서 나를 보내시는 것인지 내가 가고 싶다고 가는 것인지 구분도 하지 못하였고 내가 가족들을 향해서 '이렇게 해야지'라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 제 예상대로 잘 된 적도 없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다고 성령님께 책망 받았습니다. 이번에 가족들과 계곡 여행에 왔을 때도, 제 나름의 계획은 '남동생은 내가 잘 챙겨줘야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승원이를 통제하고 다 책임진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일일 뿐더러, 가족들 간의 갈등이라 사건들도 하나님께서 일하심이 있었습니다. 4:16절 말씀같이 '지금 우쭐대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와 같이, 남동생이 제 말을 잘 들어준다 우쭐하며 이것들이 내 노력에 의한 지분이라고 생각했다고 성령님께 혼났습니다. 그렇기에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동생이 야단 받은 그 모습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고, '내가 괜히 자릴 비웠다는 죄책감'과 계속해서 큰소리가 오가는 중이라 긴장되어 두통이 왔습니다. "이런 상황과 환경도 하나님께서 내게 꼭 필요해서 주신 것이죠?"라고 하나씩 질문하고, 내 모습을 들춰주셔서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지금은 두통약을 먹고 누워서, 설교말씀을 묵상하고 쉴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ㅎㅎ 가족들의 죄인의 모습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서 마귀한테 넘어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휘청휘청 오뚜기처럼 넘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성령님이 날 휘어잡아주셔서 승리하신 예수님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누리다 가겠습니다! 에베소서 말씀과 같이, 선하신 하나님의 일을 함께 동참하여 하도록 예수님이 내 안에, 예수님이 내안에 계신 이 관계와 질서를 깨트리지 않도록 처복종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참된 은혜-성령의 삶* (갈5:19~5:21) 육체의 행실은 환히 드러난 것들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하였지만, 이제 또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나온 육체의 행실을 보며 '나는 저정도는 아니다', '나는 현재 다투고 있지 않고 분쟁하고 있지 않다' 라며 내 모습을 잘못 알아왔습니다. 그러나 설교 말씀을 통해 성령님과 사귀지 않고, 성령님을 거절하고 소멸하는 것이 성령님과 다투는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계속 말씀하시는 사귐에 대해 해도 되고 그냥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했던 범죄에 대해 회개합니다. 나는 성령님과 사귀고 있지 않았고, 범죄한 부분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내 옛모습 그대로, 내 기준으로 살았습니다. 죄의식이 없었고, 성령을 슬프게 하였습니다. 어제와 오늘은 성령님께서 도영이의 학원선생님을 통해 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학원선생님이 비인격적인 언행을 하였다는 것을 지체들에게 얘기하였지만 그모습이 바로 저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내 기준과 가치관으로, 세상의 기준으로 아이들을 보고 판단하고 정죄하며 무시하고 비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들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하였는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죄가 무겁게 느껴지지만 예수님께서 이런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용서와 용납을 보여주신 은혜를 생각합니다. 성령님과 사귀지 않는다면 예수님도 정보일 뿐입니다. 성령님과 친밀한 관계속에서 온유와 겸손함 자체이신 예수님께 배우고 순종하겠습니다.
[약4:11-12, 쉬운성경] 11 형제 여러분, 서로 헐뜯지 마십시오. 형제된 자를 헐뜯거나 판단하는 것은 율법을 헐뜯거나 판단하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판단하면, 여러분은 더 이상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재판자가 되는 것입니다. 12 율법을 만드시고 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오직 그분만이 구원하실 수도 있으며, 멸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웃에 대하여 판단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오늘 사도행전 성경묵상한 것과 같이, 내가 내 이웃을 헐뜯고 판단한 범죄를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대학원에서 일을 하게 된 과정 중에서, 내 생각과 기준에서 보았을 때 틀렸다고 판단하고 거기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율법(명령, 말씀)을 헐뜯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셔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전인격적인 관계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가 되기는 커녕, 아무런 자격도 없으면서 재판관이되려 한 악질적인 나를 용서해달라 기도하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나의 욕심에서 시작된 것이며 내 이웃들을 시기하고 다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셔서, '이건 내가 옳게 생각하고 말하는 거야'라는 착각을 할 수 없게끔 하셨습니다. 엡1:17장 말씀과 같이,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이 없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지금 상황과 환경도 내 중심 속에 빠져버린다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주님이 진짜 맞습니까?"라고 설교말씀 중 질문이 왔을 땐, 말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주님으로 섬기는 것과 전혀다른 모습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이들이 서로 형제자매가 되는 것인데, 먼저 내가 내 신앙생활에 휘청휘청하니 교회지체들과도 진짜 형제자매가 되질 못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의 하나님 아버지이시며 진짜로 믿는 자의 삶을 점점 더 풍성히 누리고 싶습니다. 아빠! 아버지!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눈 앞의 형제자매도 알지못 하고. 사귐도 없고 성장도 없는 강성현이 되지 않도록 나를 사랑으로 훈계해주세요. 남을 판단하고 헐뜯고 옛사람의 율법을 끌고 들어오는 이 습관들을 멈추라는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멈추도록 예수님의 선하신 능력으로 일으켜 세워주세요🙏
"성령님께서 우리 주함교회에 계속해서 '사귐, 그리고 글로 적어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마음이 쿡쿡 찔렸습니다. 예수님과 지속적이고 친밀한 사귐 속에 있지 않으니, 내 교회 지체들과 사귐은 커녕 다투는 것고 같은 내 현재 상태를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맞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지체들과 같은 성령님 안에서 함께 사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 옛사람의 습관 그대로 내 교회 지체들을 대할 때가 정말 많습니다. 첫째로는, 내가 영적으로 갈등하거나 이미 넘어져 버려서 소진된 상태일 때는 교회지체들을 멀리 피합니다. 그렇게 심적으로 힘든 상태일 때 교회지체들과 함께 사귄다면 나는 회복될 것을 머리로는 막연히 알지만, 나는 내 한몸이라고 불렀던 교회지체들에게 소진되고 예민해져있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의지하고 신뢰한다는 것이 잘 안됩니다. 행4:32 믿는 사람들의 무리가 다 한마음과 한 정신으로,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썼습니다. 33. 사도들은 계속해서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34. 그들 중에 부족한 것이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때로는 밭이나 집이 있는 사람이 밭이나 집을 팔아 판 돈을 사도들에게 가져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습니다. 그러면 사도들은 그 돈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었습니다. 36. 믿는 사람 중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그 사람을 바나바라고 불렀습니다. 바나바란 이름의 뜻은 '격려하는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키프로스에서 태어난 레위 지파 사람입니다. 37. 요셉이 자기의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처럼, 나도 그런 교회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왜 지금 그렇게 되지 못하는지도 제가 한 고백들로 다 들추셨습니다. 위의 행4:32 말씀처럼, 한마음 한 정신이 되지 못했습니다. '교회에 몸을 전부 맡겨버리십시오'라고 임석현 목사님을 통해서 해주신 말씀에 실제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상처받을 것이 싫고, 내 아픈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나는 교회지체들과 성령님을 적대해버렸습니다. 그 증거가 집에 틀어박혀서 휴대전화도 받지 않고 계속 잠만 자는 지난 나날들이었습니다. 둘째는, 성경을 묵상하고 적더라도 나는 우리 교회의 단톡방에 공유하는 것을 껄끄러워했습니다. 묵상글을 적을 때 성령님께서 나를 한개도 숨김없이 다 적게끔하셔서 이걸 공유하기 부끄러운 적도 있습니다. 가족과 다툰 일, 내가 청결과 위생을 교회에서 성인되고 나서 배운 일, 내가 또 영적인 갈등과 넘어짐을 반복한 일 모두 숨길 수만 있다면 숨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긴 글을 읽고 나서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가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아무도 반응을 안 할 때는 안도하게 되면서도, '이건 무슨 의미일까' 다시 내 생각과 감정에 빠져서 우울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내 말에 반응을 해주길 원하고, 칭찬과 격려를 원하는 것은 '기대함'이고 이것도 내 죄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오늘 성령님께 받은 이 벅찬 감동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가 없어서 쓸쓸하고 아쉽습니다. 왜 믿는 사람인 요셉이 '격려하는 사람'이라고 불리우었는지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나는 내가 격려 받기만을 원하였는데, '나는 우리 교회 지체들을 격려해준 적이 없구나'라고 들춰줘버리시니 참 민망했습니다. 사실 나도, 우리 지체들도 다 같은 입장인 것을 몰랐습니다. 저도 교회 단톡방에 한마디 표현하고, 그 한마디에 답변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워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겁내지 않고 다른 교회 지체들의 말에 반응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지체들이 난감한 내 가정사를 다 들어주고, 나를 용서하고 용납해준 그 마음처럼 우리 교회 지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사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원하는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인간적인 정이지만 예수님 안에서 하나도 숨김없이 벌거숭이인 채로 친밀하게 사귀는 것이 교회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사귐과 그것을 글로 적고 공유하는 것. 사도행전 말씀을 묵상하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는 아예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는 끝까지 순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나를 붙잡아주신 성령님 감사합니다. 나도 아직 교회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사랑의 관계로 격려를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나 원하시듯 우리 주함교회를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을 믿고, 저도 그런 교회가 되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선 순종, 후체험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고전6:19.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이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삶과 성령님을 적대하는 삶이 무엇인가 쭉 떠올리게 해주셨습니다. 지난 토요일부터 생리 전 증후군, 생리통에 시달리며 제 몸이 아픈 것에 화를 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자주 아프지?" 이미 이것때문에 비난을 받은 적도 있고, 스스로도 스트레스에 바로 몸이 반응하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내가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안 받은 척하면 배탈이 나거나 생리통, 두통, 눈 출혈 등 여러가지 신체 증상으로 나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들추시고 범죄함을 고백하도록 하실 때, 성령님을 적대한 적이 많습니다. 이번에도 내 생리통의 원인은 가족과의 관계에서의 고민과 스트레스였지만, 나는 그걸 인정하고 고백하지 않으면서 성령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내가 회개하기까지 성령님이 쥐포가 되도록 3일 내내 짖눌리고 나서나, '잘못했습니다'하고 인정하는 참 악랄하고 이기적인 죄인입니다.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안에서 구속의 날으 루이하여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성령님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하기에 내가 너무 무반응, 무감각하며 감히 나의 주님과의 질서에서 오만방자하다는 것을 책망하여주세요. 나의 보증 서주시며, 내 보혜사이신 성령님 없이 저는 제가 왜 아픈지, 왜 우울한지, 지금 예수님과 사귐 속에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범죄 중인지 이 모든 것들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이, 내 스스로 (내 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쳐복종함으로 이미 주신 것을 받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약4:8, 쉬운성경]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가까이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죄를 깨끗이 씻으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좇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결한 마음을 품기 바랍니다. 설교말씀과 같이 성령님을 모호히 알고, 별로 중요히 여기고 싶지 않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보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죄성이었던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었던 20년도에는 정말 성령님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도 인격이시며, 나의 주님이시라는 구체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성령의 삶이 아니라 내 도덕, 내 가치관으로 열심히 하느라 나는 하나님과 멀리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것들이 구원 받았음에도 자꾸 옛사람의 삶을 사는 이유라는 것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최근에 주변 사람을 보다가, "왜 예수님을 믿었는데 다시 옛사람대로 살지?"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 내 모습들을 다 들춰버리셨습니다. 삼위 하나님과의 전인격적인 관계와 질서를 구하는 기도를 할 때, 더 구체적이게 성령님을 배워가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다가갈 때, 날 기다려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리며 마음껏 성령님의 삶, 은혜의 삶을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약4:5, 쉬운성경]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우리를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신다"라는 성경 말씀이 아무것도 아닌 말처럼 생각됩니까? 사모하다, 그리워하다라는 뜻을 배우게 되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대하시는구나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난 누군가를 사모한다, 그리워한다라는 감정을 표현해본 적이 있을까? 하나님께서 나를 사모하고 그리워한다고 하셨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해왔지? 정말 무반응하고 냉담하게 하나님을 무시해왔던 것을 들춰주셨습니다. 부활과 십자가를 망각하고 세상에 눈을 돌린다는 것은, 나를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하나님을 거절하고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가르쳐주시는데 내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그리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오해없이 만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질투도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으로 한결같이 소개되신 그 하나님이 맞구나! 알게되었습니다. 질투하는 하나님이 와닿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언약의 관계이며 나와 하나님 사이에 무언가 끼여드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것을 알려주시고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사람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쉬는 날 어디 놀러가기를 좋아하였습니다. 토요예배에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 교회지체들과 교제시간보다 세상의 친구를 선택하기를 싫어하고 질투하신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전인격적이며, 내게 온 관심을 쏟고 몰입하시며, 전부를 걸 만큼 사랑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하기에 공의를 실천하시는 정의도 보여주신 것을. 유한한 내가 크고 높으시고 넓으신 하나님을 소개시켜주셔서 신기하고 놀라우며, 성령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질투하게 만들지 않도록, 질투하게 하여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사랑하도록 말씀하신 것이 무엇인지 실제로 누리도록 하는 한 주 되게 해주십시오!
오직 성령님에 의해서만 예수께 굴복된 삶을 살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무슨 뜻인가 고민해보게 됩니다. 설교 영상 중간에 내 옛사람의 가치관과 새삶이 얼마나 다른지를 볼 수 있도록 딱 구분되어있었습니다.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가 없다면 옛사람으로 돌아가버린다'라는 말씀을 수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중에서 '성령님'이 없이는 예수님과 친밀하고 지속적이게 사귈 수 없고, 죄의식없이 금방 범죄하며 관계와 질서를 깨트려버리는 나 자신을 여러번 보여주셨습니다. 처음 주함교회 설교 말씀을 들으며, '어떻게 사람이 늘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겠어? 속으로 예수님 단어라도 계속 떠올려야하나?'하면서 의아해 했습니다. 그때 제게 '보혜사 성령님을 내게 보내주셨다'라는 진리가 구체적이지 않았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동일하게 성령님까지 삼위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삶, 은혜의 삶, 예수께 굴복된 삶에서는 성령하나님 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것을 고백합니다. 이전에 "성경 묵상글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알려줬으면 좋겠다"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도 구체적이게 답변을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을 소개해드려야한다'라고 나중에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사람의 형상으로 떠올리게 되어 자주 부르고 가깝게 여기지만 성령님은 막연하게 여기게 될 때가 참 많습니다. 나를 인도하시고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옮겨졌다고 보증서주시며, 늘 베풀어주시는 보혜사께 감사드린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 수 있도록 성령님 제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님을 슬프게 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사귐으로서 정말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한분한분과 사귀어 '삼위하나님이 내 주님'이 됨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선순종하게습니다!
세상(나)는 사건 중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관계와 질서 중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범죄한 순간을 넘어가고 합리화하며 넘어가면, 계속 나는 관계와 질서를 깨트린 상태가 지속 중인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나를 들춰주셔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육신의 가족과 만나서 분노하고 원망한 것을 숨겼습니다. 사건 중심인 나는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나가버립니다. 그러나 나의 영적인 상태는, 예수님 안에 머무르지 않으며 공포에 빠진 상태인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사귀지 않는다면 다툼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예수님과 사귀지 않으니 교회 지체들과도 한 몸이 되지 못하고 아프게 한다는 것에 정말 슬펐습니다. 내가 욕심,탐욕 그 자체이며. 예수님과의 관계와 질서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쾌락을 쫓는다는 것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욕심대로 가족들이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고 원하는 모습을 바랬기에, 뜻대로 되지 않나 살인하는 것으로 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나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이런 나의 욕심 때문에 순종하지 않고 성령님께서 열매를 맺을 수 없었습니다. 질문1: 당신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고, 누구로부터 직접 새사람의 삶을 배우가고 있는가? -> 하나님께서 내게 최고이자 최선의 상황과 환경을 주셔서 나를 대접해주셨음을 믿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예수를 믿는 삶, 새삶이 무엇인지 알려주십니다. 나는 내게 없는 것, 내가 바랬지만 이뤄지지 않는 것들에 보면 불공평하다고 불평불만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를 거부하고 성령님을 슬프게 해왔습니다. 그 죄가 얼마나 악랄하고 죄의식이 없고 영적인 눈이 어두워진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구체적이게 알려달라 기도합니다. 오늘 수요일 예배 이후에도, 내게 가르침을 주는 대학원의 교수님을 정죄하고 그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나는 내 기준으로 옳다 그르다 심판하려고 하기에, 그리고 그것은 결국 하나님만 옳으시지 나는 100% 틀렸기에 '차별'인 것을 고백합니다. 그도 세상의 통치인 마귀에 따라 살 뿐이며, 교수라는 직책으로 내가 판단 기준을 잡으려했습니다. '그저 뒤틀리고 삐뚤어진 세상일 뿐이다'하지 못하고,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복음에 합당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나를 들추시고 순간 또 세상에 넘아갈 뻔한 나를 보호하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들추시고 책망하시는 것도 더욱 기뻐하고 춤출 수 있기를! 내가 욕심/탐욕으로 살인하고, 쾌락을 쫓는 옛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삶, 새삶을 살도록. 그 자리에서 그 즉시 '예'하며 순종하겠습니다!
요5:18.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불러서,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으셨기 때문이다. 저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음에도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는 너무나 막연했습니다. 성령하나님, 예수님, 하나님 삼위의 하나님께서 각자의 역할이 다르지만 서로 동등한 관계이며, 모두 하나님 한분이라는 진리가 머리로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교회에 와서야, '관계와 질서'라는 표현을 통해서 알음알음 배워가는 중입니다. 내가 처음에 믿은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독생자이며, 나의 구원자가 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2020년에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셨지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내게 부어주셔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보증 서주시는 것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 아버지가 내 삶에 개입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나의 진짜 아버지이신 것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3가지의 역할이 필요하셨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이 중에서 한 분이라도 빠질 수 없고, 모두 나의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신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설교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아버지의 계획을 내게 알려주시고, 예수님의 양식을 먹게끔하는 것이 오늘날 나는 실제로 사는지를 들춰집니다. 성령님께서 구하는 것, 예수님의 양식인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나는 관계와 질서에 순종하고 있는가? 사실 아닐 때가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나의 죄의식을 분명히 하게 가르쳐주시는 것이 '정죄'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 부활, 구원, 사랑'에 집중하게 해주셨습니다. 도제.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거나 받는 사람인 것은 아들과 하나님의 관계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질서와 역할을 그대로 본으로 보여주셔서, 내가 예수님 안에서 'yes'해야하는 이유를 직접 가르쳐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이 내 안에 예수님의 안에 거하며 자아에 따라 살지 말아야하는 것을 오늘 성경 구절을 통해서 구체적이게 배우게 됩니다. 제가 이 삼위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를 더욱 구체적이고 친밀하며 순종할 수 있게 해주세요. 계속해서 내가 하나님을 배워가고 경험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렇게 성령님이 구체적이게 가르쳐주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묵상글 적기에 순종하기를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에겐 삶은 행복 자체이다" 제목이 이렇게 바뀌었는데, 이 말에 동의하기에는 갈등이 참 많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에 대한 낙인을 갖고 있는가? =불행" -욕구 불만, 나의 가치관, 나의 가치하락, 심리적 불안, 영적 문제 등... 제가 얼마나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극단적으로 바뀌는지도 경험하고 있고, 내가 일상 중에 일부는 감사드리지만 아직까지도 나의 욕구가 불만이며 나의 가치를 하찮게 여길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히2:11.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한 분이신 아버지께 속합니다. 그러하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위의 구절들을 읽으면 뭉클하여 눈물이 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그대로 내어주실 만큼 나를 사랑하시며, 지금 상황과 환경을 축복이라고 여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해주셔서 입니다. 내가 나의 가치와 존재를 수시로 깎으려고 하고 스스로 수치스러워 하지만 예수님은 나를 동생이라고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는 것에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감사함을 고백하였어도, 여전히 내 삶에는 불만과 불행하다 여기는 것들을 바꾸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가족'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것은 불편함을 겪어 마땅하고, 죄인인 그들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도 마땅하다는 것을 이전 교회모임에서 계속 고백해왔습니다. 지금 점점 성령님께서 부모님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시고 사랑하게 하시는 과정에서, 나는 갈등을 참 많이했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원에서는 내 가족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수치스러웠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저 나를 같은 대학원 동기로 보았던 사람들이 내 가정사를 들으면 동정하거나 다른 태도로 바뀌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결국에 이런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고, 나도 거기에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하는. 내 삶을 행복이라고 여기지 못하고 일부는 불행한 것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나의 자아가 있음을 오늘 설교를 통해서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전부)를 주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로 내가 하나님의 전부인 것을 증명 받은 것이라는 것이 참 가슴이 벅찹니다. 내가 죄인의 성품이 이 땅에 사는 동안 평생 바뀌지 않더라도, 나를 거룩하게 해주신 예수님이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온 우주에 선포한다는 것을.. 몇번을 듣더라도 눈물이 나도록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행복이신 것을, 그리고 그 예수님이 내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내 삶의 전체가 행복인 것을 고백합니다. 이 진리를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님. 이제 내 자아에 따라서 슬픔, 우울, 분노하고 그 공허함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시16:2" 나더러 야훼에 대해 말하라면 '하나님은 나의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내게 행복이 없다'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이 실제가 되는 한 주되게 해달라 기도합니다.
제게 "병이 낫게 해줄 못"과 같이 허황된 목표는 심리학이고 그 중심에는 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종교로 불리우는 모든 것들을 무시했습니다. 심리학은 사회과학이기에, 직접 증거가 없이 믿는다는 것들은 다 미신행동이라고 무시했었던 것입니다. 그런 내게 "심리학을 열심히 공부함=행복해짐 /병이 낫는 못에 들어감=병이 나음" 이렇게나 비슷하다는 것을 설교말씀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요즘들어 나의 행복은 예수님만 되실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셨습니다. 가족들로 인해 힘들 일이나 대학원 내에서 사람들과의 불편할 상황은 끊이지가 않는데, 내가 거기에서 조금 괜찮게 보냈다고 행복한 것이 아녔습니다. 나도 스스로가 문제가 없는 일상이고 사람들과 놀 때 재미있었지만, 굉장히 공허했습니다. 제가 삼위하나님과 직접 사귀도록 집중하고 몰입할 시간인 성경을 묵상하고 글로 적어 공유하고, 설교 말씀을 듣고 댓글을 적어보자는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꾸만 "나중에"라고 미뤘기에 하루중 감사할 순간에도 온전히 감사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병자에게 직접 먼저 찾아와주신 것처럼, 나에게도 먼저 찾아와주심에 감사합니다. 나는 병자처럼 "낫게 해줄 못(세상)"에 관심이 쏠려있었는데 나를 있는 모습그대로 용서해주시고 사랑해주심으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주신 처음에 거절했었고, 그 뒤로도 수차례 거절했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다려주시고, 내가 예수님을 맞아들이려할 때 한결같은 사랑으로 날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성경의 병자처럼,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 만족되지 않는다면, 신세를 한탄하고 불평불만했는데 예수님 자체가 내 행복이 되어주셔서, 구원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몸이 아프거나 좋지 않은 상황이, 하나님께서 벌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최고의 상황과 환경을 주셨다고 기쁘게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것들이 내게 없어도 행복인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가 취소되지 않아서 그게 너무 자유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22:37-39, 쉬운성경]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네 모든 마음과 모든 목숨과 모든 정성을 다해서, 네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38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계명이다. 39 두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여라'인데 이것도 첫째 계명과 똑같이 중요하다. 어제는 위 말씀으로 혼자서 지지고 볶고 했습니다. 교회 단톡방에 이야기 했던 것 처럼, 대학원에 관계하기 껄끄러워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와 용납이 안 되었던 것은, 우리 가정이 그만큼 특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족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과도 관계를 할 때, 나는 하나님의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범죄를 계속 해서 들춰주셨습니다. 사소한 말에도 상처받고 갈대바람에도 상처받는 그 모습이 어젯밤에는 맘에 확 안 들었습니다. 하나님 명령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아버시께서 그 기쁜 뜻을 이뤄주신다는 통치를 받음을 제가 못하는 상태임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새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말씀을 내가 자꾸 의심해버린 것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어제부터 나는 계속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나약하고 사랑이 1도 없는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용서해주심을 성령님께서 알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불편하고 껄끄러울 수 밖에 없는 세상에, 나도 껄끄러움을 주는 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싫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안되면 우울에 빠지는 모습이 싫었습니다. 이런 내게 건내주시는 위로가, 다시 삼위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를 회복시켜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어제 욥기를 다 읽었을 때, 하나님께 계속해서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모습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다 들어주신 하나님. 그가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의 회복되도록 도와주신 모습을 보고, 내게도 지금 그렇게 해주시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편을 싫어하고, 편한 것을 선택하려는 것이라 결코 뺏길일 없는 행복을 다 받은 자인 것을 경험하게 도와달라고, 온전히 성령님께 통치 받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나의 불행과 행복의 기준과 근거는 무엇인가? 이 세상 자체가 불행, 어둠, 죄이며 영적으로 죽음이 불행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피조물, 새사람이 된 나는 복 있는 자이며 행복한 자 입니다. 내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는 하늘의 복을 받은자이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자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행복의 기준은 바로 하나님, 예수님 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그리고 믿은 후에도 지금까지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은 불행이라고 잘못 생각해왔습니다. 너무나 내 중심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내 생각이 깨어지고 예수님의 생각으로 채워져 가기까지 많은 시간들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내가 교회 또는 교회 지체들을 예수님의 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기를 거절했던 부분을 고백하려고 합니다. 마22:37-3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요13:34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일3:23-24 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 그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는 압니다. 요일4:2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볼 때마다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사랑도 모르고 관계도 모르는 내가 사랑을 해야 한다고 하니, 조금 흉내내보다가 내 맘에 안들고 실수가 있으면 바로 포기해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거절하였으며, 옛사람으로 돌아와버리기 일쑤였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 전 세상의 어둠속에 있을 때에 가졌던 생각과 행동 그대로 교회로 가져와 있었던 것입니다. 내 마음에 안드는 사람과 관계할 때면 내가 먼저 관계를 끊어버리는 내 죄성이, 교회안에서는 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표현이 되었을 것입니다. 목사님을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지만, 교회에서 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했지, 진짜 교회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교회에 온 이후로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속에 있지 않으니, 지체들과 친분은 조금 쌓을 수 있었을지언정 예수님 안에서 관계를 맺어가고 서로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죄를 범했음을 고백합니다. 내 마음대로 되어지지 않으면 금방 슬픔과 우울에 빠지고, '하나님께서는 다른 지체들은 사랑하시지만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라며 말도 안되는 내 생각으로 하나님을 거절하고 떠났던 때에 나를 용납해주시고 용서해주시고 기다려주신 지체들을 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은 율법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길 원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고, 나와 같이 영원한 생명을 가진 내 지체들을 사랑하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구체적으로 알게 해주시고, 순종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시오.
요3: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요3:4. 니고데모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3: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 요3:7.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한다고 내가 말한 것을, 너는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그 당시에 종교 지도자였으며 율법학자들 조차도,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자신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오늘 말슴으로 직접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이후에는 예수님을 믿고 장사지냄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된다. 율법주의학자도 이렇게 변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자 사도 요한은 썼을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시는데.. 위에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에 왜 물을 넣었는지 물 논쟁을 하는 것은 오늘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나는 부쩍 상황윤리를 내가 만들기를 좋아하였다는 것을, 다른 자매를 통해서 보여주셔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성 관계에서 '~해야 해'라는 말이 굉장히 불편했었는데, 왜 불편했는지 내 감정을 먼저 예수님 안에서 풀어내고 성령님께 분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시 태어난 삶에서, 내가 이렇게 "A 상황에서는 B행동을 해야해"라는 것이 딱 율법으로 정해지는 상황 윤리는 틀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불안한 상황에, 내 양심적(내 기준)으로 판단하여 율법대로 행한다면 나는 성령님께 여쭤볼 이유도 없어지며, 삼위하나님과 관계와 질서가 전혀 필요없게 여긴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마치 과거의 율법학자와 종교지도자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 같아 보이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처럼 "이것은 건들지 마세요 예수님. 이건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라는 엉터리 신앙으로 살게 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다양한 상황과 환경을 주시고 거기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너무나 다양한 이 땅의 삶입니다. 하물며 같은 사람이라도 영적 상태, 마음(심리적) 상태, 신체적 상태의 전인격으로 대하려면 매번 같은 상황과 같은 행동을 정하는 상황윤리는 틀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묵상하며 가르쳐주셨습니다. 나도 최근에 상황윤리처럼, '예수님 안에서 목소리를 빚어가보자. 상대의 관심을 요구하는 어린 아이 같은 목소리가 아니라, 이제 상대에게 집중하고 관심을 가져줌으로서 나오는 부드러운 목소리(두성)로 다듬어져 갈거야'라는 말씀을, 내가 해보려고 했습니다. 막상 평상시보다 목소리를 낮게 해보려고 의식하니 경직되어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요즘 무슨 힘든 일 있냐"라고 물어보는 일도 생길 정도 였습니다. 내 전인격이 예수님 안에서 빚어져 가야한다는 말씀을 내가 내 나름대로 해석해서, 마치 발성연습 훈련으로 바꿔버리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시는 것이, 앞서 내게 상황윤리를 이야기한 자매를 정죄할 것도 아니며, 나의 상황윤리를 만드는 죄인의 성품도 마찬가지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알려주셨기에, 아직 모르는 것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저 내가 이 땅에 살면서 점점 분별의 영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경험하게 해주시려고 이 일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 진짜로 내 생각과 가치관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이유와 근거와 원인이 되게끔 자라가게 해주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 불편한 말을 하는 것 같은 껄끄러운 대상도, 예수님께서 사랑할 수 있게끔 다 들춰주시는 과정인 것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버린 구원이 이미 취소되지 않았다는 새 삶을 더욱 누리도록 도와달라 기도드립니다.
요한복음 2장 13-25절 성전에서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진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번 설교영상을 통해서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은 종교가 아니나, 내가 예수님을 종교로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알려주셨습니다. 종교는 내 마음을 달래줄 어떤 신을 정해놓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인데, 아직까지도 나는 예수님을 그런 존재로 생각해 온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종교로 생각하다 보니 예수님께 진정한 위로를 받는 것이 실제가 되질 않았고, 내가 먼저 예수님께 위로 받는다는 것이 어떤건지 잘 몰랐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위로는 내 감정이 다른사람 혹은 어떤 것에 의해 달래진 상태로 알고 있었고, 그 생각을 예수님께도 똑같이 적용하여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불편한 상황이 오면 내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예수님을 거절하기도 하고, 계속 내가 원하는 상황이 되지 않으면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쉽게 관계를 깨버리는 죄를 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진짜 '위로'는 내마음이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의 관계회복이 진짜 위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더 알아가고 더 순종하게 되는 것이 위로라는 것이 실제가 되어감에 감사합니다. 내 생각, 내 관점은 다 틀린것, 믿음도 내 관점이 아니라 예수님의 관점이라야 진짜입니다. 내가 깨달아 알수가 없습니다. 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니, 내가 할 수 있는것이 없고, 예수님이 내 안에서 다이루시며 예수님이 전부입니다. 내가 거짓으로 예수님을 알지 않고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며 그 사랑을 더 알아가고 누려가길 기도합니다.
[요2:13-25, 쉬운성경] 13 유대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워 오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14 예수님께서는 성전 뜰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있는 사람들과 또 상에 앉아서 돈을 바꿔 주는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15 예수님께서는 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비롯하여 모든 짐승을 성전 뜰에서 쫓아 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뒤엎으시고, 그 사람들의 돈을 흩트리셨습니다. 16 그리고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것들을 여기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시장터로 만들지 마라!" 17 이 때, 제자들은 성경에 "주님의 집에 대한 나의 열심이 불처럼 나를 삼켜 버렸다"라고 기록된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18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당신은 당신에게 이런 일들을 행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무슨 표적을 행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19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삼 일 만에 이것을 다시 세우겠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20 그러자 유대인들은 "이 성전을 건축하는 데 사십육 년이 걸렸는데, 당신이 삼 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는 겁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21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그분 자신의 몸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 그분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였고, 그들은 성경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유월절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분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2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그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25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계셨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서 어느 누구의 증언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유월절의 본질을 잊어버린 채 종교화 시켜버린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보았습니다. 오늘 수요모임에서 내가 종교화 시켰던 것 중에 하나가 '예배시간에는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시간이고 나는 조용히 해야해'라는 관습을 나도 모르게 만들었던 것을 성령님께서 들춰주셨습니다. 이전부터 임석현 목사님께서 '내가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예배시간에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다'라고 셀 수 없이 전하셨습니다. 목사님만이 이끌어가는 모임이 아니라, 우리 각 지체가 모이는 진짜 교제시간이 되기를 바라신다고 수차례 말했음에도 내 귀에 그게 전혀들리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유월절을 종교화 시켜버리고 시장바닥처럼 바꿔버린 그 악랄함은, 오늘날 내게도 동일하게 있음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니,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종교화시켜버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며 예수님 마음을 노엽게 하는 범죄인지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게 알게 모르게 있었던 종교적 관념, 우리 교회가 종교화시켜버린 것들이 있다면 성령님께서 밝히 들춰주셔서 멈출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상을 엎어버려주실 때 순종할 수 있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진짜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 예수님의 성전이자 하나님의 성전이 진짜 누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모여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전이 되어갈 것이 정말 소망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기준이되고 예수님만이 이유와 근거가 되기를 기도할 때, "아이고 갈 길이 멀다!"라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새피조물로 바꾸셨고 새삶을 누리도록 이뤄가시는 과정임을 신뢰하고 싶습니다. 온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서 예수님을 사랑할 능력은 내게 1도 없습니다. 순전히 예수님의 대접을 직접 받고 그 사랑과 순종함을 직접 배울 수 있게 도와달라 기도합니다. 이제 영적인 죽음에서 벗어난 '행복'을 그 누구도 뺏어갈 수 없다는 진리가 실제가 되어, 배워가고 자라가는 과정에서의 갈등과 고난과 고통도 기쁘게 참여하고 싶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도 '불행'은 내가 가진 기준(세상적 기준)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기에 우울, 분노, 억울함, 죄책감 등등.. 여러가지 마음의 병과도 이어지는 것 고백합니다. 이전부터 내가 다시 종양제거 수술을 해야할 수 있으며, 통증이 있어서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것에서 이야기 나눴습니다. 난 이미 그 불평불만을 꺼낼 때 '나는 불행해'라고 자기연민에 빠진 상태였습니다. 내가 묵상글에 구체적이게 적지 않고 거짓말 했던 것은.. 난 욥처럼 스스로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꽤 오랜 시간동안 '제발 날 죽여주세요 하나님.'이라고 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내가 간절히 기도했던 적이 있느냐고, 나는 이땅에 남겨놔봐야 아버지의 선하신 일을 이루는데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테니 차라리 데려가달라고 울며 소리쳤습니다. 나를 그렇게 존귀하게 대접해주시고, 자기 목숨까지도 모두 내어줄 정도로 사랑을 확증해주신 주님께 정말 말도 안될 기도였습니다. 성령님에 의해서 한 기도도 아닌 떼쓰기밖에 안 되었어요. 그런 나를 기다려주시고, 회개함으로 관계와 질서를 회복 시켜주시기를 셀 수 없이 반복해주셨습니다. 정말로 오늘 설교말씀처럼 내가 새삶을 살겠다고 아무리 다짐해도 안되고, 새피조물로 바꿔주시고 그렇게 살게해주시는 주권이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예수님과 사귐도 깨버리고, 성령님의 통치함을 받지 않는 나를 용서해주시고 용납해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흠없는 자, 자녀로 세워주심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나는 임석현 목사님을 질투했던 것도 회개합니다. 다리가 아프셔도, 가족들로 인해서 마음이 아프셔도 늘 삼위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를 깨트리지 않으시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저 가슴아픈 고백을 듣고,.. 왜 나보다 목사님은 덜 힘들거라고 생각했을까, 왜 갈등하시며 자라가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가 이미 세상의 기준으로 불행에 빠지니, 우리 지체들과 사귀지 못할 정도로 눈앞이 뿌얘진 것도 성령님께서 들춰주셨습니다. 갈등하고 넘어지더라도, 난 평생 순종할 수 있는 성품이 1도 없더라도, 내가 내 자신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그만 거절하고 싶습니다. 그만 거절하게 도와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직 예수님께 쳐복종할 수 있기를, 행복 그 자체이신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 그 참행복을 누리는 한 주 되고 싶습니다.
저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을 '이햐. 이런 기적도 만드시는구나.'하고 넘어갔었던 것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막연히 여겼던 것을 고백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요구를 거절한 것 같았는데, 결국에 정결의식항아리에 물을 담게해서 포도주로 바꿔주셨을까? 이 역사는 왜 성령님께서 성경에 쓰셨으며, 지금 내게 이를 통해서 하실 말씀이 무엇일까? 신약을 그리 읽어봐도 이렇게 질문한 적은 처음입니다. 이렇듯 나는 하나님께서 내 상황과 환경에 개입하시거나, 나를 동참시키기 위해 초대해주셔도 나는 '제 3자'처럼 무반응을 할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최근에 집단상담 프로그램, 집단상담 교과목 수업 2가지를 통해서 자꾸만 내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 시간들이 생겼습니다. 조만간 내 가족에 대해서 평가해서 가족심리평가 과목에서는 기말과제 발표까지 해야합니다. 저는 이번학기가 너무나 불편해하며,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왜 이런 상황과 환경을 내게 주셨는지 고민하고 질문해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기에 물이 포도주가 바뀐, 통치함을 받았던 역사를 오늘 보며... 내가 하나님의 개입을 막았던 범죄를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가족사에 대한 수치감, 내 자책과 정죄함을 회복시켜주시는 시간이 될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예수님을 드러내는 간증이 될 수도 있는 상황과 환경을 주셨구나. 처음에 '이렇게 해보자'라고 말씀하실 때 나는 거절하고 불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 없었듯이. 내 수준의 것을 멈추게 도와주세요. 여전히 나는 성경을 묵상하기도, 설교말씀을 묵상하기도 꾸준히 지속적이게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려주실 때 자책하고 고통스럽게 받기를 멈추겠습니다. 멈춰주시겠다고 약속해주신 것을 신뢰하고 싶습니다. 고전3:10. 말씀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놓치지 않고 고난에 기쁘고 즐겁게 동참하는 하루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기준으로 불행과 행복은 세상의 것과 다릅니다. 세상의 것들(돈,건강,명예 등등)을 얻지 못하고, 눈의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그것이 불행하다고 마귀로부터 배워왔지만, 하나님 기준에서의 불행은 '영적인 죽음'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생각하는 불행이 없어진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기준에서의 행복은 영적으로 살아나고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회복되어 아버지의 사랑안에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내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를 통해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회복이 된 '새피조물' 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예수님 믿기 전부터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생각들을 들춰주셨고, 그 생각들이 예수님 안에서 쳐복종 되어야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지난 주일 영상에서 두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이 행동하길 바라고 그렇게 되어지지 않으면 분노한다고 고백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아이의 모습은 세상의 기준입니다. 엄마아빠 말을 잘 듣고, 말썽안부리고 공부를 잘 하는 것 등 아이가 이런 내 기준을 맞춰준다면 행복할 것만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서는 이런 내 생각이 다 틀렸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사실은 지금도 제 마음속에 세상의 기준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이렇게 되어지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불행'하다고도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에서 잠깐 표현하신 '박사나부랭이'라는 말씀을 듣고는, 우리 아이들도 그런 말을 들어도 좋으니 공부를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오기도 하였고, 안되는 아이들을 내마음대로 포기했다가 집착했다가 세상의 기준으로 쥐락펴락하였습니다. 아이들을 복음으로 양육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길 기도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세상의 복도 주시라고 하나님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교만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마는, 육정을 따라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싸움에 쓰는 우리의 무기는, 육체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요새라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는 궤변을 무찌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는 모든 교만을 쳐부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킵니다. " (고후10:3-5) 세상은 어둠이고, 죄 자체이며 나도 그 속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나는 빛으로 나왔으나 여전히 예수님이 기준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을 많이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런 나를 예수님의 피속에서 용서와 용납해주시고, 예수님의 위로안에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다시는 범죄하지 않고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또 그렇게 되어지지 않는 모습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쳐복종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귀한 묵상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매님과 자녀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리길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화이팅입니다 자매님!
몇주 동안 주일 설교 영상에서는 예수가 살아주시는 새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열심으로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많은 부분들이 나의 열심으로 살아왔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 자체가 어둠, 암흑 그 자체이고, 죄 자체이고 나도 그 속에 있었지만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나는 세상에서 하나님나라로 옮겨진 자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을 가지고 그대로 살고 있는탓에 하나님을 떠나 똑같이 범죄하며 혹은 죄의식도 없이 사는 부분이 많습니다. 내가 세상의 윤리와 도덕을 갖고 왔다면 불안과 공포도 갖고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몇주째 계속 고백하고 있는 나의 옛사람의 모습 중에 하나는 '불안'인데, 이 불안은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나약한 '멘탈'의 문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불안은 내가 원하는대로 되어지지 않을 때, 내 열심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발생되고 내 중심적인 생각때문에 오는 것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예수 믿기 전, 그리고 지금도 범죄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하길 바라고 그렇게 되어지지 않으면 화를 내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제공해줘야 하는지,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예수님과의 사귐속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좌지우지 하려고 하였습니다. 뭐든지 내 뜻대로 내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상황이 되길 바랬고 내가 '갑'이 되고 싶어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빌4:6~7)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이 무엇인지 나에게 알려주시고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 되어 간구하게 되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안이루어질까봐 내 불안으로 내 열심으로 해보려다 염려함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것이니 하나님께 맡기고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대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나다니엘의 모습이, 참 나와 똑닮은 것을 오늘 성령님께서 들춰주십니다. 그당시 목수의 아들인 예수님을 무시하고, 이미 나다니엘 스스로가 착하고 문제없다는 듯이 구는 모습이 내가 죄의식 없이 살던, 믿기 전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이란 존재는 허구이며 신화라고 무시했고, 나는 스스로도 착하고 잘살고 있으니 믿어서 천국갈 필요가 없다는 교만함이 있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이런 날 신뢰해주는 것이 이상합니다. 이해가 전혀 안 갈 정도로 그분의 사랑이 너무 크고 깊고 높고 넓다고 생각이 듭니다... 나다니엘 같이 교만하고 예수님을 무시했던 나를, 참 이스라엘사람이라고.. 간사함과 거짓이없다고 어떻게 신뢰해주실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나의 죄된 모습을 그대로 보면 신뢰받지 못하는 건 마땅해보이는데.. 눈앞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지금 이자리에서도 어떻게 한결같이 용서하고 용납해주실 수 있을까.. 사실 저도 예수님을 그대로 믿기보다,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이해해보려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수준으로만,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을 경험하고 알아가야하는데 그것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런 내 자기 중심성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런 죄성을 가진 그대로 보혈로 덮혀진 것을 어제와 오늘도 경험했습니다. 부활을 놓치면 지금 이자리에서 내 원하는대로 예수님을 끌고 올 때가 많았습니다. 최근에 건강에 대해서 스스로 화가나고 자책할 때, '이런 범죄하는 나를 예수님은 버리실거야. 그래야 마땅해'라는 망언을 하였습니다.. 부활을 경험하면서 성령의 삶을 실제로 살아야한다는 것을 너무나 절실히 경험하는 중입니다. 믿기 전과 같이 악랄하며 성령님과 적대하는 내 모습이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부활이 뭘까..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내어조신 사랑의 확증시켜주신 것. 죽은 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나실 예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이시며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이라는 것을 믿는 것. 그가 죽었다 살아나셔야했던 이유가 이미 내가 믿지 않은 죄로 인해서 심판받아서 영적으로 죽어있기 때문에, 그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나의 주님되시기 위하셨다는 것을.. 부활을 놓치지 않게, 영적인 것을 늘 구체적이게 성령의 삶으로 살며 자라가고 싶습니다. 나다니엘과 같은 강성현이 예수님의 빚어가심으로,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여가고 싶습니다.
나는 어떤 사건, 환경, 상황에 집중하는가? 나의 유익과 손해에 관심이 있는가? 이것들로 인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충실하는가? 어떤해결에 중점을 두는가? 아니면 세상이 보지 못하는 예수를 보며, 사귀며, 예수께 순종하는가? 산헤드린공회와 그 조사단은 눈에 보이는 침례 요한 그 자체를 궁금해할 뿐 그런 말과 행동을 하게 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내 모습도 그들과 같습니다. 내 눈앞에서 보여지는 상황에만 집중되고, 또한 손해를 보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그 생각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당해 살아왔고 아직도 살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제 모임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장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 모습은 나의 전부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귀며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 빠져서 불안을 스스로 자초하며 다른 사람 혹은 다른 무언가를 통해 불안감을 해결하고 싶어하였습니다. 예수님마저도 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 생각, 내 감정, 불안 이 모든 것들이 그 어떤것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고, 오직 예수님하고만 살아야 함을 알려주셨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생기는 걱정과 불안이 오늘하루도 마음에 안들고 그 불안을 어떻게 해서든 해결하고 싶지만, 이 모든 생각을 잠재우고 예수님과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는 영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이 내 죄 때문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살아계시고 그분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부활로 확증된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되기를.. 내가 원하는대로 무언가를 해결해보고자 하지 않고, 내안에서 활동하셔서 예수님이 살아주시는 삶이 전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귀한 간증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을 쓸 당시의 이스라엘의 사회적 배경을 구체적이게 알 수 있게 되어서 감사했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그 당시에 이스라엘 종교자)들의 종파와 각각 그들이 어떤 자인지를 알고 나니, 오늘날 우리가 종교행위 하는 것과 그닥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1:19-27, 쉬운성경] 19 요한이 증언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이 제사장과 레위인 몇 사람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묻게 했습니다. 20 요한은 그 질문에 거절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21 그러자 그 사람들이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엘리야입니까?"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나는 엘리야가 아닙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장차 오시기로 한 그 예언자입니까?" 요한은 또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22 그러자 그들이 요한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십니까? 우리는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대답해 주십시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3 요한은 그 사람들에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했습니다. "나는 광야에서 '주님을 위하여 길을 곧게 만들어라' 하고 외치는 사람의 소리입니다." 24 보냄을 받은 유대 사람들 중에는 바리새인이 보낸 사람이 있었습니다. 25 그 사람들이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면 왜 사람들에게 세례를 줍니까?" 26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줍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서 계십니다. 27 그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나온 산헤드린 공의회 사람과 조사단 사람들이, 예수님을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산적같은 행색을 하고 있는 이상한 요한만 궁금해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질문: 나는 어떤 사건, 환경, 상황에 집중하는가? 유익/ 손해에 관심이 가있는가? 자신의 생각과 관심에 충실하는가? 아니면 보지 못하는 예수님을 보며 사귀며 순종하는가? 어제의 내가 엄마에게 분노하였던 것은 사건, 환경, 상황에만 집중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가 나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생각하고 결국 내 생각과 관심에 충실했습니다. 성경 묵상글을 적고 나서 예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엄마와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를 예배당에 와서 더 구체적이게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죄인이며, 나에게 어떤 부모인지만에 꽂혀서 결국에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사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끼워 팔거나, 예수님에 나를 끼워팔 때도 구체적이게 여쭤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으면, 그런 결과가 있기까지 삼위 하나님과 사귀지도 않았으면서 '감사합니다'라고 퉁치는 모습. 복음을 전한다고 얼렁설렁 '예수님이 해주신 것이죠'라고 나에 예수님을 끼워파는 모습. 모두 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난 뒤의 모습이었습니다. 맞습니다.저는 주보의 기도제목에 전에 적었던 것처럼, '나는 타인의 반응을 신경씁니다. 칭찬에 놀아나기도 하고 금새 교만해집니다.'라는 고백 그 자체로 내 모습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요한이 볼품없는 행색을 하고 사는 것이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오직 예수님께만 관심을 가지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주신 성령님의 일하심에. 그게 내 삶에 실제가 되었으면 바란다고 기도합니다. 이제 내가 가족들에 대해서 구체적이게 알게 되는 것이 '나의 손해, 혹은 유익'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을 보게 경험하게 해주세요. 그들과 관계하면서 나는 충만하지 못하여 분노하고 미워하기도 할 수 있지만, 점점 나를 자라가게 해주시고 충만한 것이 무엇인지 직접 경험하게 해주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롬1:16, 쉬운성경]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복음이 유대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방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말 새 피조물이 되었는가?? 이번 주일 영상과 주일 예배 모임을 통해 던져주신 질문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있고 예수님 안에 있으니 새피조물이 맞아' 라고 생각은 하지만 새피조물, 새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아니오, 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통치자인 마귀의 영을 따라 살다가 예수님을 믿었지만, 여전히 예수님께 내 전부를 맡기고 예수님이 살아주시는 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생각이 사로잡혀 삽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께서 이미 끝내신 '죽음의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때문에 목사님을 만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지만, 믿었으니 이제는 내 안에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 죽음의 공포에 아직도 짓눌리고 있는 삶은 새피조물의 삶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왜 이렇게 아직도 옛생각을 가지고 계속 범죄하는가? 나는 하나님이, 예수님이, 성령님이, 그리고 영적인 아비인 목사님이, 교회지체들이 주시는 많은 좋은 것을 거절해왔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도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꼭 하라고 하는 영상댓글달기와 성경묵상 나누는 것을 저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이걸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내가 이런것까지 나누어야하나', '글도 못쓰는데 하고싶지가 않다' 등 온갖 나의 변명, 핑계로 하나님을 거절해왔습니다. 그러나 내생각이 다 틀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들을 계속 거절하면 새피조물이 아니라 나는 가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죄를 고백할지라도 난 또 똑같을 거야라고 이순간에도 마귀가 생각을 넣어주지만, 지금까지 그 마귀의 생각에 놀아나 하나님의 일을 많이 포기해왔기에 그 생각을 끊어버리고 싶습니다. 지난 주일 모임에서 예수를 믿는 것이 수많은 복중에 하나가 아니라 유일무이한 복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육체로 왔다가 부활하심이 나에게 복이고 기적입니다. 오늘도 순간순간 들어오는 내 생각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허망한 것들을 붙들지 않고, 성령이 믿게 해주신 그 예수가 살아주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설교는 재밌어야할까? 제목을 지어야할까? 교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일까? 임석현 형제 개인의 말일까? 영상에 오늘 여러가지 질문을 던져주시는 것 같습니다. 고후5:17 절에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새 피조물이 된 것을 고백했던 2020년도가 생각났습니다. 그당시에 정말 예수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고, 내게 말씀만 해주신다면 다 순종하고자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사복음서를 읽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 받으시다가, 부활하신 그 실제역사를 읽으며 얼마나 감사의 눈물을 흘렸는지가 기억납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시켜만 주신다면 뭐든 다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맹세는 참으로 거짓부렁이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인가 해내는 율법으로 믿음을 얻은 것이 아니기에, 예수님을 믿고도 여전히 옛사람의 습관을 가진 모습이었습니다. 저를 하나님께서 주함교회에 오게하셔서, 그런 율법주의가 틀렸다는 것을 가르쳐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원래 소속되어있던 선교단체에서 나와서 종교생활과 신앙생활의 구분점도 모른 체 혼란 스러웠던 상태었기 때문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관계중심이시며, 그 관계 중에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주함교회에와서 오랫동안 배우는 중입니다. 이제 조금 알게 되었다고 '이건 내가 아는 거야'라고 지루해하던 나 자신을 회개합니다. 설교영상을 보고 댓글을 달아야한다고 명령하셔서 순종한다고 하지만, 내가 영상을 통해 말씀하실 때 기뻐환희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목사님을 통해서 계속해서 예수님을 전할 때, '이건 나한테 너무 익숙해.당연한 거야'라며 시큰둥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창피해졌습니다. 설교가 참신하고 재밌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제목도 필수적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임석현 목사님의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것들을 내가 귀를 닫고 안들어버릴 때가 참 많았습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무감정적이다... 얼마나 마음아플일인지 지금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제는 육신의 잣대로 살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모르게 범죄함에 사느라 새 피조물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멈추게해주세요. 이제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피조물을 사는 삶을, '너를 위해서 사는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설교말씀과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라는 명령을 셀 수 없이 하신 것을 듣고 있습니다. 나는 했다 안했다를 반복하기도 했고 순종이 아니라 내 열심으로 하려 한적도 많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싶습니다. 사람의 반응을 신경쓰느라 벌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활을 놓치지 않는 한 주 되게 해주세요.
[요1:15-17, 쉬운성경] 15 요한이 그분에 대해서 증언하며 외쳤습니다. "내가 전에 '내 뒤에 오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나보다 더 위대하신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분이 바로 내가 말한 그분이다." 16 그분의 충만하신 것에서 우리 모두는 넘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17 그것은 율법이 모세를 통해 주어졌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창세 전부터 존재하시는 예수님께서, 나를 충만하게 해주신다는 말씀을 오늘 어떤 단어인지 구체적이게 배우게 됩니다. 은혜와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다고 하였을 때, '내가 왜 충만하지 못하였을까?'라는 질문도 하게됩니다. 나는 예수님 안에 머무르게 해주시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충만함을 누린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 여러번 고백했듯이,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를 놓치고 죄책감에 빠져서 끙끙 앓은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 영상이 올라온 토요일 예배모임 중에서도, '내가 본 두 자매는 굉장히 율법주의로 행동하기에 틀렸다. 그런데 나에게도 그런 성품이 있다고 성령님께서 들춰주셨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모임 중에 고백을 했지만, 묘하게 불편한 감정이 남아있었고 두통이 와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게 되었습니다. 임석현 목사님께서 차로 데려다주시는 길에, 교제 나누던 중 결국에 내가 은혜와 진리 가운데 있지 않았던 것들도 발견했습니다. 나는 그 율법주의 자매들을 보고 내 감정이 상한 것과 그들을 사랑하지 못함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은혜와 진리에 자유함을 누리십니까, 율법에 얽매여있습니까? 여전히 손해볼까봐 떨고 있습니까? " 이 질문에 나는 목요일날 내 손해에 벌벌하며 율법 주의라는 자매들을 보며 나도 율법주의적이었던 것을 고백합니다. 율법을 대신해서 은혜와 진리로 오신 예수님 품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관계와 질서를 깨버릴지라도 다시 회복시켜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전부가 되게 해주세요. 내가 손해받고 내가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빛가운데에 없고 범죄에 빠지지 않게 해주세요. 예수님을 우선으로도 못 두는 나를, 성령님 앞에서 순종함으로 예수님이 전부가 되는 삶을 제게도 직접 경험하게 해주세요. 계속해서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여 자라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요1:9-14, 쉬운성경] 9 참빛이 있었습니다. 그 빛은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췄습니다. 10 참빛이 되신 말씀이 세상에 계셨습니다. 세상은 그분을 통하여 지음을 받았는데도, 그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11 그분은 자기의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들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12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들, 그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13 좋은 가문에 태어난 사람들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의 계획이나 바람에 의해서, 그리고 그들의 조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에서 사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 영광은 오직 아버지의 독생자만이 가질 수 있는 영광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은혜와 진리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구체적인 용어를 통해서 배울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요한복음 1장 말씀 전체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 자체를 부정하고 있으니, 어떻게 창세전에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저도 의심됐습니다. 예수라는 인물이 성경이나 여러 역사책에서 실존인물이라고 하니, 거기까지는 동의하지만 부활과 십자가는 신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요 1:14. 말씀처럼 이 땅에 나를 구원하시려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아버지께서 하라는 그대로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창조주이신 것 영광돌린 예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라는 기동이 마지막도 잘 몰랐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니, 오늘 설교말씀처럼 하나님과 동등하기도다 좀 더 아래라고 무시무시한 착각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고 나서야, 태초의 말씀이시며 참빛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내게 주님이신 동등하신 하나님이시구나 감탄했습니다. 자격이 없는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이며, 불변하는 진리 자체로 제게 와주셔서. 저를 사랑해주시 용납하고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상을 다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덕분에, 제게 오늘 꼭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늘 설교 말씀을 유튜브 영상으로 올려주시기 위해서 수고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교회에 가면 '하나님 아버지'라고 무작정 부르고, 삼위 하나님을 모르면서 무작정 '주님'이라고 부른다." 오늘 설교 중 이 말씀이 제게 콕콕 박힙니다. 주함교회에 와서, '삼위의 각각의 하나님과 사귐으로 비로소 내 주님이 된다'라는 말씀이 처음에는 너무나 아리송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모두가 하나님이시며, 각각의 위치가 다르실 뿐 나의 주님이 되신다는 사실이 내게 너무나 막연했습니다. 그래서 '주님' 혹은 '하나님'이라고 막연한 호칭으로 불렀습니다. 이제는 성령님이 누구이시며, 예수님은 누구이신지, 창조주 하나님은 누구이신지 각각의 성경에서 가르쳐주셔서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얼마나 '관계와 질서'를 몰랐는지도 들춰지게 됩니다. 롬8:15. 여러분은 또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영이시며, 자녀로 삼으시는 성령을 내게 부어주셔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제 역사를 믿게 해주심으로, 내가 예수님의 동생이며 하나님의 딸이 된 것을! 오늘 이렇게 설교 말씀을 통해서 구체적이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에 나는 '성장했다, 자랐다'라는 말을 들을 때, 마음이 불편했었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받는 칭찬의 기준에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황과 환경이 어려워진다 싶으면 금방 몸을 끙끙 앓아버리는 나약한 내가 싫고, 미움과 원망이 불쑥 드러나는 미성숙함이 싫었습니다. 내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되고, 예수님만이 오직 기준이고 근거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배웠지만 정작 내 삶에서 실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도 임석현 목사님처럼, 어떤 상황과 환경이여도 순종하고 잘 넘어가는 모습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시기질투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너무나 악랄하고 하나님 앞에서 해서는 안되는 범죄인지를..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업신여기고, 내가 상속받은 하늘나라의 신령한 복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그분을 내 주님으로 모시지 않는 것과 같은 태도였습니다. 이번주 기도제목에 적었습니다. "칭찬에 금새 놀아나버리는 나, 타인의 반응을 신경쓰는 나입니다. 목소리 마저도 꾸미고 연극하는 듯이 냅니다. 칭찬을 받을 때, 나를 칭찬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성령님 안에서 분별할 수 있게 해주세요. 오직 예수님만이 이유와 근거와 원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노력하고, 완벽하는 내 기준으로 살지 않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을 진짜로 누리는 한 주 되게 해주세요.
이 영상은 10월 16일 수요예배 영상으로 녹화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10월 13일 주일영상이랑 똑같은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주일 영상이 올라가지 않고 16일 수요일 영상을 두번 올렸네요. 미안합니다.
내 이름 자체가, 내 인격(몸, 마음, 영혼)이라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성현아'이름으로 부르시며 내 전인격을 그대로 사랑해주시는 하나님께 오늘도 감사합니다. '사람의 유한한 언어이지만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인격이신 하나님을 대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오늘 설교 말씀에서 '말 뿐만인 신앙생활은 꽝이다. 하나님의 언어로 설명을 들어도 내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성경말씀을 아무리 성령께서 알려주셔도,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하라고 하신대로 하는 것도 예배에요?'라는 질문을 할 정도로 내 기준대로 받아들였던 어리석은 모습을 다 들춰주셨습니다. 그래서 너무 감사합니다. 내 스스로 알지 못하고 내 열심이 아니라, 이제 나를 들춰주시고 피드백 해주셔서 백지상태로 만들어가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님과 적대한 상태라면 나는 내가 지금 어떤지 아예 듣지도 보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또 성령님을 슬프게 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을 읽으며, 오늘은 결혼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질문하고 고민하고 여쭤보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신 것도 정말 감사합니다. 배우자 기도, 결혼을 해야말아야하나에 대한 내 착각과 편견 등을 하나님의 것으로 다 뒤집어지도록 기도합니다. 주여주여 말로만 하고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의 삶을 살지 않고 싶습니다. 이런 내 범죄에 따라 천국이 취소되었다가, 착한일로 다시 천국티켓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이 실제 삶이 되게 나와 우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이제 내 범죄가 들춰질 때 기뻐 춤춘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순종할 수 있도록 쳐복종하게 도와주세요. [고후13:5, 쉬운성경] 여러분은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점검하고 자신을 시험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까? 이것을 모르면 여러분은 시험에서 불합격한 사람들입니다.
요5: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대로 따라 할 뿐이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아들도 그대로 한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고, 예수님의 동생이며, 전부 상속받은 자라는 뜻이 무엇인지 무겁게 내 머리에 내리 앉은 느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의 주님' 이라는 명칭을 너무나 가볍게 쓰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10월 10일 정말 오랜만에 교회 지체들에게 성경묵상글을 나눴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전부로 두기는 커녕, 우선순위로도 두지 않고 내 바쁜 일상들에 허우적대기만 했습니다. 성령님께 '왜 그래야하는가?' 여쭤봐야할 때, 내 판단을 앞서 하기 바빴습니다. 여호사밧이 전쟁을 치루기 전에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응답 받는 그 관계를 보고 몹시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요14:31. 다만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내게 본부하신 그대로 내가 행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다. 일어나거라. 여기에서 떠나자. 나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예수님께 그 관계와 질서를 직접 배워가고 싶습니다. 이미 그런 신령한 복을 다 상속받은 자인 것을 믿고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그렇게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오뚜기 같은 나의 믿음의 뿌리가 되어주셔서, 다시 일으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요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보혜사 성령님, 하나님의 영이시기에 하나님의 뜻(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시고 자라가게 해주세요. 넘어질 때 기쁘게 넘어지고, 다시 사랑 안에 머물러서 기쁘게 춤출 수 있게 해주세요!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과 십자가를 증거하라. 행1: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황인종인 내가 흑인 아이를 낳았다면? 참 나는 의심을 하기 좋아하는 존재인 것을 오늙 고백합니다. 내가 스스로 부활과십자가를 경험하고 증거할 수 없음을 말씀을 통해서 봅니다. 내가 할 수 없고, 오직 예수님께서 하라는대로만 해보는 순종이 지금 너무나 낯설고 갈등됩니다. 이 과정 중에 의심이 듭니다. 주보에 제 기도제목 중, '대학원의 일이 많습니다. 업무가 조정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안된다고 할지라도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은 하나님을 경험하길'이라는 기도제목을 썼습니다. 그러나 오늘까지도 자잘하고 새로운 업무들은 2개가 더 생겼고, 아무도 나와 업무를 나눠가지지 않으며, 나에게 일을 주시는 사람은 업무를 나누지말고 총책임자가 되라는 회의결과를 주셨습니다. "아버지.. 이게 맞나요.. 이게 내가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를 증거하는데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까?" 의심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하고 ~하면 상대방이 복음을 듣고 믿겠지'라는 내 판단과 내 종교행위를 해본 적은 있지만, 지금의 과정은 내가 계획하지 않은 상황과 환경대로 몰아가지는 느낌입니다. 이미 심판 아래에 놓여져있어서 사망한 나를, 하나님의 사랑아래에 옮기고 싶어하신 주님. 신뢰하지 않는다면 다 때려치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내 솔직한 심정은 부담스러움과 억울함이 있습니다. 내가 이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듭니다. 성령님께서 날 부활과 십자가의 증인으로 세워주신 것이지, 내가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언제나 의심이 많고, 부활을 믿었음에도 경험했음에도 삶에서 실재로 살지 못하는 나. 그러한 나를 오늘도 들춰주시고 용서하시고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전해 받은 예수님을 전하기를 소망하게 끝까지 집중하고 순종하길 기도해주세요.
고전15:3.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오늘 나는 부끄러운 말과 생각을 하였습니다. "차라리 나 말고 우리 가족 중 다른 사람이 먼저 믿었더라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내 가족들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이 범죄함이며, 나도 사실은 가해자였던 것을 성령님께서 들춰주시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렇게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가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보는 기쁨을 누리고 있지만.. 그들의 범죄가 멈추지 않을테니 마음은 여전히 아픕니다. 때로는 '부모님의 그 모습에 제가 아파요'라고 말을 하더라도, 왜 제가 아픈지 전혀 이해 못하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허망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던 중, 가족 중 한명이 유튜브 영상 을 보냈습니다. '당신의 어렸던 부모를 용서하세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의 나이가 어려서 그랬던 겁니다.'라는 말을 듣고, 순간 화가 훅 올라왔습니다. "차라리 이해가 안 간다면, 공감을 못하겠으면 함부로 말하지나 말지!" 그 이름도 모르는 유튜브 강연자의 말에 "부모가 지금은 더 악랄하게 나를 대하고 있다면 어쩔거냐. 말 참 쉽게 한다!"라고 반박하고 그의 말에 화를 내는 내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머리로는 '나를 건져내주시고 구원해주신 것이 감사하지'라고 할지라도, 내가 내 이웃(육신의 가족)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양육을 하고 싶진 않았던 내 악랄하고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남동생을 돌보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나보다 나이 많은 부모, 친척들은 싫었습니다. 이것이 내 진짜 감정이었나봅니다. 고전 15:3절과 임석현 목사님의 기도제목을 보고, 화가 났던 내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더 빨개졌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아버지의 뜻)은 나만 구원 받고 끝이 아니라, 나도 전해 받은 예수를 가족과 이웃들에게 전하는 것임을 잊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날 위해 죽으신 그 실제 역사를 믿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이 창조주이신 것을 믿게 해주시고 구원해주심에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해했는지.. 오늘 설교말씀을 통해서 쭉 돌이켜주셨습니다. 이제는 내가 하늘의 신령한 복을 다 받은 자이고, 예수님의 핏값으로 산 존귀한 존재인 것을. 그들에게 마음이 또 아플 수 있으나, 점점 더 그들이 나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없을 것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나를 붙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창2:7.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생령)이 되었다. 나의 죄목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실제 역사를 보여주셨음에도 내가 거절한 것. 창세기를 묵상하며 구체적이게 '왜 내가 죄인인가' 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신 이유가 전인격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만든 피조물인데, 그 관계과 질서를 깨버리고 살았던 것이 얼마나 악랄한 죄인지를 또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내 죄는 아니다, 무슨 연좌제도 아니고 까마득한 죄를 내가 왜 반성해야하는가' 불평불만 했습니다. 창세기에 죄의 시작을 이야기한 것은, 아담과 하와만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똑같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를 동일하게 범죄하는 것을 성령을 부어주셔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나는 똑같은 착각과 범죄를 저지른 것 중 하나가 '나는 부모와 다르다'라는 착각입니다. 나는 부모님보다 나은 것이 없었고, 죄짓는 성품을 그대로 똑같이 형성된 자였습니다. 오늘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면서, "나정도 되니까 참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이다"라는 교만하고 오만방자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구나'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요8:2. 그래서 나는,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내가 곧 나(야훼 하나님)'임을 너희가 밎지 않으면, 너희는 너희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죄인이다'라고 말하시는데, 범죄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죄 가운데서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런 죄의식 하나도 없이 살다가 죽었을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섬뜩한지 모릅니다. 질문1: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살아계심을 인정하는가? 질문2: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까? -> 예, 이전까지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에 쓰여진 나의 죄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나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역사를 성령님을 통해서 믿게 해주셨기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군요!'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도 거절하였던 그 악랄한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고 죽어주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 죄인인 나를 인정하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시며, 살아있는 나의 주님이 되어주신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라는 성경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질문3: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랑의 대상으로 만든 피조물임을 마음중심에 인정하는가? -> 예.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 진리를 내가 잊어버리지 않고 싶습니다. 내가 사랑의 대상인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세상의 마귀에게 속지 않고 싶습니다. 질문4: 당신은 사단을 따라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보다 높고자 하여 하나님을 창조주로 마음중심에 인정하지 않았고, 두기 싫어하는 죄인임을 인정하는가? -> 예. 내가 죄인이며 죄인의 성품이 이미 형성되어 버린 자인 것을 철저하게 인정합니다.
사단의 정체에 대해 성경말씀이 정리된 것을 쭉 읽고, '(엡4: 27)왜 틈을 주지 말라고 하셨는가'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원수이며 대적자, 훼방자 미혹하고 유욕하는 자 헐뜯는 자, 거짓말쟁이, 사람에게 생각을 넣어주고 행동하게 함 위의 내용을 정말 문자 정보로만 알고 넘겼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저런 적대자가 내가 틈만 보이면 넘어트리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인 것을 망각하고 지냈습니다. 임석현 목사님의 고백을 들으며, 성령님께서 나의 갈등도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저도 부모님과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어찌나 이 상황이 부끄러운지, 교회 지체들에게 나누고 싶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내 안에 분노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중인데,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라'라고 말씀하셔도 그러질 못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되지 못하고, 예수님께 순종하지 못한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고백하고 회개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나를 성령님께서 가족들과 흩어지지 않게 붙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에 임석현 목사님께, "목사님도 영적으로 자라야해요?"라고 질문했던 것에 참 부끄럽습니다. 나는 나만 갈등하고, 나의 넘어짐에만 집중하였는데 얼마나 그것이 어리석은 착각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내가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 지체 한 사람 한사람이 다 자라가는 것이 교회이며, 예수님 안에서 교회의 관계와 질서를 배워가는 것을 이번에 보여주세요.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해서, 추석기간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던 순간들을 피드백 해주셨습니다. '가족들과 있으면 손해야. 불편해. 가기 싫어'라는 내 속의 악랄한 마음들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예수님께서 군산의 가족들을 보러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셨고, 성령님께서 가라하실 때 순종의 복을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속에서 정말 난감하거나 화가났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학교를 휴학하고 동생을 돌봐라, 네가 동생 공부를 가르키면되지 않겠느냐"라는 요구들에 속이 부글부글 끌었던 것이 바로 작년 추석입니다. 그때마다 성령님께서는 내 원망, 분노 등의 감정을 절제시켜주셨습니다. '말하기와 노하기를 더디하고 듣기를 속히해라'라고 말씀하시며, 인내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오가며 착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영적으로 양육하는 것이 우리 가족들을 위한 일들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당장 예수님께 오늘 오셨으면, 하나님의 자녀는 성현이이고 그들은 불신자로 심판받을 입장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여주시고 동참하게 해주시는 것이, 나에게 먼저 유익하고 기쁘기 때문이란 것을 잘 몰랐었습니다. [롬5:2, 쉬운성경]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또 믿음으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합니다. "나랑 같이 있는 곳이 은혜의 자리야" 지금까지 추석기간 중에, 무엇이 불편한지 명확하지만 그 불편함에 우울해하며 손해봤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처음 경험이었습니다. 설교 말씀 중에 내 마음이 콕콕 찔렸던 것 중에 하나는, "아직도 부모가 두려우십니까?"입니다. 네. 지금도 두렵고 떨릴 때가 많습니다. '이 말을 하면 어떤 반응이실까?' 제일 먼저 이 생각이 듭니다. 이런 나를 용서하고 용납해주시고, 그자리에서 내 이런 하나님만을 경외하지 못하는 범죄함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부모님께, 나의 상처나 아픈 것들을 부드럽게 표현하며 거절하는 것을 성령님께서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내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다가, '절제의 영'이신 성령님 말씀에 따르려니 참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보이는 세계(마귀)에 벌벌 떨지 않고, 지금 말씀해주시는 것에 끝까지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8:25 (8분 25초) 부터 목사님 말이 많이 끊겼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 죄인으로 살다가, 예수님의 부활가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강성현입니다. 나는 왜 존재하며, 어떤 가치인가? : 이전에는 내가 내가 주인되고, 마귀의 자녀로 살았지만 창조주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인 나를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를 믿도록 성령을 부어주셔서 '영원한 생명있는 자'로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처음 나를 창조하실 때도 '사랑하는 관계(자녀)'로 나를 만드셨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개하여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예수님 때문에 살고 있으며, 예수님 만큼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기에,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성령을 통해서 믿습니다. 지금까지 설교영상 중에, '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고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은 꾸준히 나왔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답변해보는 것 같습니다. 위의 질문은 너무 철학적이고, 추상적이며,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고 나혼자 착각했었습니다. "잘 써야한다, 정답이 뭘까" 걱정하지말고 그냥 적어보자고 성령님께서 말씀하셔서, 그저 답변을 써봤습니다. 답변을 하고 나니, 내가 저 질문들을 하지 않고 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은 예수, 삶의 목표는 부활과 십자가"라는 고백을 헛되게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 토요예배에서 '그릇된 길로 빠진다'와 같이, 위의 답변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금새 나는 상황과 환경에 빠져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지금 이 땅에 살지? 내가 얼마만큼 가치있는 존재이지? 나는 어디로 왔고(누구에게 태어났고) 어디로 다시 돌아가지? 성경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이 가르쳐주신 것. 이제 내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졌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대신 십자가에 매달은 만큼의 가치있는 존재가 나라는 사실을. 문득, 가족들의 일로 수치심, 우울함,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눈 녹듯이 사그라들었습니다. 고전15:3. 나도 전해 받는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15: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내게 온 관심을 쏟고 집중하시는 그 관계에 있으면, 지금 이 아픈 마음이 너무나 위로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역사이시고, 내게 실제가 된 삶을 계속 살고 싶습니다. 성경에 적힌 역사가 사실인 것을 영상에서 하나하나 확인 한 것처럼, 매일 내 이런 상황과 환경에서 예수님께서 역사이신 것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약5:19-20]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그릇된 길을 가다 : 벗어나다, 속이다, 길을 잃다, 나쁜 길로 인도하다. *돌아서게 하다: 되돌아가다. 야고보서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릇된 길로 빠질 때'가 제게 언제였는지를 성령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예수님과 관계와 질서를 깨트릴 때는, 이미 내가 뒤틀리고 삐뚤어진 세상(마귀)한테 속아 넘어갈 때였습니다. 올해에는 임석현 목사님께서 '그것이 세상이여~'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당장에 내 육신의 가족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것들을 알고 싶지 않고, 불편해지는 것이 마냥 싫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나쁜 길로 빠지고 있었는지 늘 성령님께 피드백 받지 않으면 나는 내가 놀란 세상에 속아넘어가버린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추석으로 군산 가족들을 보러 온 지금도, 나는 나쁜 길에 넘어갈까봐 두렵습니다. 한 지체의 범죄가 우리 교회 전체의 범죄이며, 예수님과의 관계와 질서를 깨트림은 우리 교회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를 이렇게 빛가운데 들춰주시고 용서하고 용납하시고 사랑하신다고 말씀해주신 덕에. 내 아픈 마음과, 내 범죄한 사실을 고백하게 해주셔서 돌이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일5:18.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든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신 분이 그 사람을 지켜주시므로, 악마가 그를 해치지 못합니다. 내가 이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마음에서 영접한, 새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실제로 살고 싶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세상의 마귀가를 나를 해치지 못하도록 지금 이자리에서도 지켜주시는 것을 더욱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알 수 있게 해주세요. 나의 상황과 환경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주셨습니다. 추석 연휴에 육신의 가족, 불신자를 만나는 우리 교회지체들이 '즐거운 갈등과 시련'으로 그릇된 길에 넘어가지 않고 돌이키는 시간 되길 기도합니다. 설교말씀을 들을 수록, 우리 교회가 성경의 '진짜' 교회, 성령으로 한마음 한 뜻된 교회가 아닌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뿔뿔히 흩어져있고 하나되지 못하는 나 한 사람에게 교회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 교회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시고 성령님께서 붙잡아주셔서 얼마나 감사합니 모릅니다. 계속해서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않고 배워가게 해주세요. 실제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게 해주세요.
[약5:14-18, 쉬운성경] 14 병든 자가 있습니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해 기도하게 하십시오. 15 믿음을 가지고 하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만일 그가 죄를 지었더라도, 그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16 서로 죄를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해 주십시오. 의로운 사람이 기도할 때,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17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구했더니, 삼 년 반 동안, 그 땅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18 그후, 다시 기도하자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고, 땅에서 다시 곡식이 자랐습니다. 야고보서 말씀으로 '왜 우리 교회에 사귐을 가지고, 계속해서 죄를 고백하고 묵상을 나누라고 하셨는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오늘 설교말씀을 묵상하며, 아직도 내 안에 있는 궁금증 중에 하나가 '나는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 존재가 맞을까요?'였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교회를 만난 뒤부터, 예수님의 몸으로서 어떤 한 부분도 필요하지 않은 지체가 없다고 수차례 말씀해주셨었습니다. 우연히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우리 주함교회를 원하셨다는 것. '그렇구나'라는 정보와 지식으로는 알겠으나, 나는 야고보서 말씀과 같은 교회가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교재를 복습하게 하실 때,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그 기도가 큰 역사를 이루신다'라는 것과 같은 실제 이야기를 많이 봤습니다. 시련과 시험과 유혹이 올 때,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하며 찬송하는 예배를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절제의 영이시자, 나를 늘 들춰주시는 성령님 안에서 내 죄를 고백하는 것. 병든 자들을 위해서, 죄를 지은 자를 위해서 서로 기도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시고 성령의 띄로 묶인 교회를 꼭 경험하고 싶습니다. 내게 이 마음을 주시고, 교회를 궁금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해주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선물을 꼭 주시리라 믿습니다. 내가 교회되게 해주시고, 주함교회가 교회되게 해주세요.
요2:22.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야,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서, 성경말씀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성령님께서 믿지 않는 자처럼 살게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사실 이 주일설교영상을 2번을 돌려봐도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 지금 처한 상황과 환경에서 '멍 때리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사람과의 갈등이 있는 상태였고, 그 상대방의 입장을 성령님께서 알려주시며 내가 먼저 용서와 용납을 받고 많이 회복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방금 전에 그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울렁였습니다. '아직도 삐졌어?' 이 한마디에 마음이 긁혔는지 울렁울렁합니다. 롬1:29-31. "그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 찬 사람들입니다. 또한 시기와 살인과 다툼과 속임과 적의로 가득 찼으며, 남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남들을 비방하고, 하나님을 미워하며, 거만하고 건방지며, 뽐내기를 잘합니다. 그들은 악한 일을 계획하고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양심도 없으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친절하지도 않고 동정심도 없습니다." 울렁울렁한 마음으로 성경묵상 글을 교회 지체들과 공유하려는 글도 안 적고 싶어졌었습니다. 그런 상태의 나에게 성령님께서 로마서 위의 말씀을 다시 묵상해보자고 하셨습니다. 나와 갈등이 있는 상대방 둘다 위의 말씀과 똑같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선한 것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나. 예수님께서 그런 나를 십자가 보혈로 덮어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시며 오래참아주시는지를 지금도 경험중입니다. [롬2:1-4, 쉬운성경] 1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도 변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신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므로,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셈입니다. 2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의로운 심판을 내리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판단하면서 실은 자신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한 마디 하겠습니다. 그대가 혹시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4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이 여러분을 회개로 이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분의 자비로우심과 넓으신 아량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는 것입니까? 로마서 말씀으로 '상대방은 성경말씀처럼 죄인이니까'라는 나의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경구절을 내 유리한대로 끌고 와서 합리화하지말라고 성령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죄함과 죄책감에도 빠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나와 타인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 모두 '하나님의 자비로우심, 넓으신 아량, 오래 참으심, 풍성함'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셨을 때는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나를 이전처럼 살게 내버려두시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지금도 두더지가 되지말라고 성령님께서 붙잡아주시고, 예수님과의 사귐 속에서 해결해나가도록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 공의로우심을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로 보여주셔서, 내가 그것을 믿게 해주셔서 오늘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성령님의 충만함, 성령님에 의해서 집중하고 몰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시고 내게 실제가 되게 해주세요. 주일 설교말씀처럼 하나님의 참된 은혜로, 예수를 최우선이 아닌 전부가 되는 삶이 되게 해주세요.
약5:13.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지난주 수요일날, '성령님에 의해서 집중하다, 몰입하다'가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예배의 일부인 기도와 찬송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에 따라 시작되어야한다."라는 설교 말씀에, 나는 하루 중 얼마만큼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지 여쭤봤습니다. "예배가 삶이 되고 삶이 예배가 되어야한다"라고 이전부터 여러차례 제게 말씀해주셨지만, 실제 내 삶에 고난이 왔을 때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하길 잊어버릴 때가 참 많았습니다. 설교말씀을 묵상하며, '이번 주동안 학교 과제를 하며 기도와 찬송을 잊어버렸구나'라고 들춰주셨습니다. 예배당에 가서 모이는 것만이 예배가 아님을 아는데도, 내 모든 삶의 과정에 예수님과 사귐 속에서 있어야하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도... 그 순간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내 자신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매순간 관계와 질서를 지킬까?'라는 혼자의 의문에 "'어떻게'(how, 방법)는 네게 중요하지 않다"라고 하셨습니다. 내 스스로 할 수 없고, 오직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전이라면 '내가 또 잘못했네'라고 자책하였고, 영상 속 질문들이 불편하기만 하였을 텐데 이러한 들추심과 고백하게 하심이 나를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사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롬8:26-27. 성경구절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도 다시 묵상하게 하셨습니다. 거기에서 '아들에게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주자'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생일을 맞이할 아들에게 자건거가 필요할 줄 아는 아버지가, 정성스레 선물을 준비하고 미리 준비된 선물을 아들이 받을 준비하도록 설득하고 결정하기를 기다리는 과정. 예전에는 '강청기도'라는 "내게 이걸 꼭 주세요!"라고 나 중심적인 기도를 배운 적이 있으나, 로마서 말씀과 아들의 생일선물 이야기가 관계성있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더욱 잘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고 싶어하시는 것이나 하고 싶어하시는 것을 당신이 달라고 할 때, 당신은 항상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경삶 교재의 일부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본질적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 속에서, 관계 중심의 하나님을 경험하길 기도합니다. 오늘 기도를 직접 성령님께서 알려주셨고, 관계중심의 하나님을 경험할 선물이 이미 준비 된 것을 믿습니다!
오늘은 '맹세하다'가 무엇인지 구체적이게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설교 말씀과 같이 저는 맹세하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나는 나름 약속과 맹세를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죄인의 자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높이기 위한 맹세하기만 좋아했지, 정말로 내 삶이 목표가 예수고 목적이 부활과 십자가로 다 걸어보기는 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관계 중심이시고 나는 문제해결 중심이었다" 라는 말씀을 여러차례 성령님께서 가르쳐주고 계셨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교회주보에 '기억살리기 훈련 하겠습니다. 영어공부하겠습니다'라고 맹세하였으면서 내가 원하는 만큼 성과를 못 내서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그만둬버렸습니다. 내가 관계중심이 되지 못하고, 내 상황에 영어와 기억살리기를 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밖에 여기질 못해서 그래왔던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참 마음이 따끔따끔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율법으로만 맹세하며 겉으로 보이길 좋아하는 자와 내가 같다고 똑같이 책망받았습니다. 맹세를 했느냐 안하냐 그런 합법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아니오'라고 말하기 싫어하며 율법-종교주의자-문제해결중심(삼위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를 깨트림)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관계중심에 맹세는 사랑하는 관계에서의 사랑표현이 되지만, 관계를 깨트리는 맹세도 있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배우니, 새삼 맹세를 하기 무서워지기도 합니다. 이전과 똑같이 실수를 반복할까봐 내 두려움도 듭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빛가운데 사귀고, 우리 교회 지체들과 사귀며 교회와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더욱 구체적이게 배우고 경험하게끔 하기 위해서이기에 두려워말고 또 갈등이 생길 때 직접 성령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귐이 단순한 우선이 아니라 최우선이 되도록 하고싶습니다. 나를 더욱 붙잡아주십시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을 때 처지는, 세상적인 관점으로 볼 때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울 시기이며, 대학교 입학을 포기해야할 상황이여서 나에게 내세울 만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형편이 가장 좋지 않을 때, 아무런 자랑거리가 없다고 생각한 가정에서 자란 나를 택하셔서 성령님을 통해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나의 자랑, 나의 지분 챙기기, 내가 인정 받고 싶어하는 욕심들 예수님을 믿고나서 그러한 하나님과 원수되고자하는 죄들을 인정하고 고백했지만,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 안에 있지 않는다면 바로 넘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최근에 가족과 다툼이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밝히 들추실 때, 내 상처들을 감추고 싶어하고 그만 들추시기를 바랬습니다. 가족치유 마음치유와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개인 교제시간을 가지게끔하셔서, 이미 그만큼 들추셨으면 되었지... 내가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었으며, 지금 나의 감정상태와 나의 범죄는 무엇인지 자꾸 직면하게 되니 괴로웠습니다. 고전1:30.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며,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 처음 이 말씀을 묵상할때는, 구체적이게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현재에 문제가 없으니 내가 들춰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문제가 생기면 빨리 지나가고 싶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관계 중심인 것을. 그리고 이러한 과정 중에서 내게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으며 주님만을 찬양하게 되는 삶을 살도록 하게하신다는 것을 오늘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제 내 안에 죽은 것들, 오물들이 들춰지고 버려지는 과정이. 충분히 용서와 용납과 사랑을 받고 회복되며. 나에게 상처준 이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내게 누리게끔해주시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설교 말씀처럼, 내 종교적 행위로 문제해결은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습니다. 연기자마냥 얼마나 감추기와 속이기를 잘하는지 과연 마귀의 자녀다운 죄성을 지녔습니다. 내게 영향을 준 사람들, 내가 무의식적으로 따른 문화들이 많습니다. 그들도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들이여서, 내 생각과 판단은 늘 틀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 생각, 내 노력, 내 지혜로 하나님을 1개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죄의식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 가르쳐주십시오. 직접하도록 순종 하겠습니다. 내가 들춰질 때, 내가 거룩함을 은혜로 입은 자이며 구원을 거저 선물로 받았던 것을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로 매일 상기시켜주세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약5:7.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견디십시오. 보십시오,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땅에 내리기까지 오래 참으며,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립니다. '참고 견디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였습니다. 예배당에 모여서 나의 죄를 고백할 때 공통적으로 알려주시는 것 중에 하나가, '나는 불편한 것을 참고 견디기 참 싫어하는 죄인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오늘 주일 예배 시간에도,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아라'라고 성령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에 진짜로 끝까지 순종하지 못한 나의 범죄를 고백하였습니다. 알바를 알아보라고 하셨으니, 내 생각대로 알바를 구한다음 돈을 벌고 내 생활비를 책임지는 것이 맞다고 '문제해결 중심'으로 빠졌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도, 예수님과의 사귐도 갖지 않은 채로 이미 '알바가 목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알바 원서를 10번 지원을 넣으니 3-4 곳만 답변이 왔고, 그마저도 면접에서 나를 알바생으로 쓸 수 없다는 거절만 받았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이 너무나 불편하여서, 결국에 나는 알바 지원서를 막던지기로 넣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불편한 상황과 환경을 주실 때, 이것이 나를 단련된 인격으로 빚어가신다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불편함을 빨리 피하고 싶은 나의 욕심이었습니다. 약1:2.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왜 나는 이렇게 기뻐하지 못할까"라는 자책감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열매인 '오래참음'도 결국에는 내가 스스로 결코 이뤄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시험에 빠질 때,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는 것! 하나님의 인격으로, 하나님의 성품으로만 되는 것인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내게 정보, 지식으로 알려주셨으니 실제로 내 삶에 경험되기를 기도합니다.
약 5:1. 부자들은 들으십시오. 여러분에게 닥쳐올 비참한 일들을 생각하고 울며 부르짖으십시오. 듣다(아고): 데리고 가다, ~앞으로 이끌다, 인도하다, 운반하다 저는 야고보서 5장의 말씀을 읽을 때, '나는 부자가 아니니 상관없지'라는 착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신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쓰인 것이 첫번째 이유인 것을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부자들이라는 호칭에 내가 맞지 않는다'라고 착각으로 넘길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주셔서 참 민망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에는 내가 금전이나 물질이 많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눈을 돌리고 마음에 살찌우는 자(사치와 쾌락)이며 예수를 믿는 의의 일꾼들을 정죄하고 죽인다면 성령님께서 책망하는 '부자들'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부는 하나님의 축복이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는 것을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 자녀가 재물을 사용하는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제가 지금까지 재물을 사용할 때, 마음에 살찌우기 위해서 사용했던 적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내 물질은 '인간적인 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특히나 생일 선물을 여러가지 구입하고 편지까지 정성껏 써서,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고 칭찬하겠지"라는 의도로 돈을 썼습니다. 이것은 나의 엄마를 통해서 나도 똑같은 죄인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셔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르겠습니다. 작년부터는 '물질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어떻게 사용할지 성령님께 직접 여쭤보고 기도하자' 라고 말씀하셔서 조금씩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필요없는 것에 과소비하는 것, 인간적인 정으로 돈을 사용하는 것은 안된다고 가르쳐주셨고 교회의 헌금이나 생활에 필요들은 차고 넘치게 채워주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라는 말씀처럼, 내 스스로 마음을 살찌우는 자(제가 그래왔습니다)는 예수님과의 사귐 속에서 하나님의 풍요함을 누리지 못한다고 구체적이고 명확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 공동체가 모든 것을 나누고, 서로의 필요들을 채워주는 진짜 교회를 경험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여러차례 성령님께서 '나는 우리 주함교회의 지체로 꼭 필요한 사람이다'라고 가르쳐주셔도 잘 와닿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청지기의 삶을 우리 교회로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이제 성령님이 지시하는 그대로 살 수 있도록 빚어주세요.
요4: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예수님의 양식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라는 굉장히 단순하고도 간단명료하게 말씀하신 것에 굉장히 인상이 깊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고 나서도, 예수님을 믿는 자 같이 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가족들과 여행하며 복음을 전하게 될 기회를 주셨는데, 그때의 내 범죄를 다 간증으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뭘 바라시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던 것과 같이, 성경에서 가장 명확하고 간단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이루는 것'말고는 없었습니다. 내 나름대로 가족들에게 잘하려고 개고생하거나, 내가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지 죄의식 조차 없던 악랄했던 내 모습을 전부 고백하고 인정하게 하셨습니다. 정말 예수님의 양식을 먹고 사는, 성령으로 거듭난 삶을 살았냐고 물으실 때 '아니요..'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최근에도 예수님께서 나를 자라게끔 빚어가시는데도 거기에 계속 내 중심적 생각에 빠져 우울하게 집에만 있으려던 나는 여전했습니다. 진리 가운데 나를 인도해주시는 성령님이 아니셨더라면, 나는 내 범죄함도 인정하지 않고 내 범죄하는 습관을 합리화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성령님을 슬프게 하지 않고 싶습니다. 나를 보증해주시는 성령님을 지식이나 정보수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을 믿게 해주신 성령님을 내 주님으로 섬기겠습니다. 빌립보서 2:13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내 안에 활동하셔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일들을 실천하게 하심을 계속해서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이번 가족여행은 정말 즐겁고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고난도 있었으며, 참 마음이 슬플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과 환경을 내중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성령님께서 하시라는대로 순종함으로, 늦은 밤시간에는 아빠와 큰고모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내가 예상하고 계획한 것 1개도 없이, 하시라는대로 '예'하고 순종하였을 때 내 아버지가 기뻐하신다니 나도 너무나 기쁜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막 '성령님이 보증 서주신 삶'을 조금 맛 본 정도라고 하셨습니다. 싸우고 다투고 나 자신에 취해있지 않도록.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리뤄가기를! 하나님께서 가족들을 향해 일하심을 직접 보고 하나님께 끝까지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걸작품이라고 하심에, 더이상 수치심에 빠지지 않고 기쁘하고 맘껏 누리겠습니다!
야고보서 4:15절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처럼. 내가 계획하고 열심으로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직접적인 사귐에서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말씀을 오늘 실제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는 군산에 가족들을 보러 갈 때, 성령님께서 나를 보내시는 것인지 내가 가고 싶다고 가는 것인지 구분도 하지 못하였고 내가 가족들을 향해서 '이렇게 해야지'라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 제 예상대로 잘 된 적도 없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다고 성령님께 책망 받았습니다. 이번에 가족들과 계곡 여행에 왔을 때도, 제 나름의 계획은 '남동생은 내가 잘 챙겨줘야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승원이를 통제하고 다 책임진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일일 뿐더러, 가족들 간의 갈등이라 사건들도 하나님께서 일하심이 있었습니다. 4:16절 말씀같이 '지금 우쭐대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와 같이, 남동생이 제 말을 잘 들어준다 우쭐하며 이것들이 내 노력에 의한 지분이라고 생각했다고 성령님께 혼났습니다. 그렇기에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동생이 야단 받은 그 모습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고, '내가 괜히 자릴 비웠다는 죄책감'과 계속해서 큰소리가 오가는 중이라 긴장되어 두통이 왔습니다. "이런 상황과 환경도 하나님께서 내게 꼭 필요해서 주신 것이죠?"라고 하나씩 질문하고, 내 모습을 들춰주셔서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지금은 두통약을 먹고 누워서, 설교말씀을 묵상하고 쉴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ㅎㅎ 가족들의 죄인의 모습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서 마귀한테 넘어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휘청휘청 오뚜기처럼 넘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성령님이 날 휘어잡아주셔서 승리하신 예수님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누리다 가겠습니다! 에베소서 말씀과 같이, 선하신 하나님의 일을 함께 동참하여 하도록 예수님이 내 안에, 예수님이 내안에 계신 이 관계와 질서를 깨트리지 않도록 처복종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참된 은혜-성령의 삶* (갈5:19~5:21) 육체의 행실은 환히 드러난 것들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하였지만, 이제 또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나온 육체의 행실을 보며 '나는 저정도는 아니다', '나는 현재 다투고 있지 않고 분쟁하고 있지 않다' 라며 내 모습을 잘못 알아왔습니다. 그러나 설교 말씀을 통해 성령님과 사귀지 않고, 성령님을 거절하고 소멸하는 것이 성령님과 다투는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계속 말씀하시는 사귐에 대해 해도 되고 그냥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했던 범죄에 대해 회개합니다. 나는 성령님과 사귀고 있지 않았고, 범죄한 부분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내 옛모습 그대로, 내 기준으로 살았습니다. 죄의식이 없었고, 성령을 슬프게 하였습니다. 어제와 오늘은 성령님께서 도영이의 학원선생님을 통해 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학원선생님이 비인격적인 언행을 하였다는 것을 지체들에게 얘기하였지만 그모습이 바로 저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내 기준과 가치관으로, 세상의 기준으로 아이들을 보고 판단하고 정죄하며 무시하고 비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들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하였는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죄가 무겁게 느껴지지만 예수님께서 이런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용서와 용납을 보여주신 은혜를 생각합니다. 성령님과 사귀지 않는다면 예수님도 정보일 뿐입니다. 성령님과 친밀한 관계속에서 온유와 겸손함 자체이신 예수님께 배우고 순종하겠습니다.
[약4:11-12, 쉬운성경] 11 형제 여러분, 서로 헐뜯지 마십시오. 형제된 자를 헐뜯거나 판단하는 것은 율법을 헐뜯거나 판단하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판단하면, 여러분은 더 이상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재판자가 되는 것입니다. 12 율법을 만드시고 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오직 그분만이 구원하실 수도 있으며, 멸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웃에 대하여 판단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오늘 사도행전 성경묵상한 것과 같이, 내가 내 이웃을 헐뜯고 판단한 범죄를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대학원에서 일을 하게 된 과정 중에서, 내 생각과 기준에서 보았을 때 틀렸다고 판단하고 거기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율법(명령, 말씀)을 헐뜯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셔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전인격적인 관계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가 되기는 커녕, 아무런 자격도 없으면서 재판관이되려 한 악질적인 나를 용서해달라 기도하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나의 욕심에서 시작된 것이며 내 이웃들을 시기하고 다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셔서, '이건 내가 옳게 생각하고 말하는 거야'라는 착각을 할 수 없게끔 하셨습니다. 엡1:17장 말씀과 같이,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이 없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지금 상황과 환경도 내 중심 속에 빠져버린다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주님이 진짜 맞습니까?"라고 설교말씀 중 질문이 왔을 땐, 말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주님으로 섬기는 것과 전혀다른 모습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이들이 서로 형제자매가 되는 것인데, 먼저 내가 내 신앙생활에 휘청휘청하니 교회지체들과도 진짜 형제자매가 되질 못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의 하나님 아버지이시며 진짜로 믿는 자의 삶을 점점 더 풍성히 누리고 싶습니다. 아빠! 아버지!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눈 앞의 형제자매도 알지못 하고. 사귐도 없고 성장도 없는 강성현이 되지 않도록 나를 사랑으로 훈계해주세요. 남을 판단하고 헐뜯고 옛사람의 율법을 끌고 들어오는 이 습관들을 멈추라는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멈추도록 예수님의 선하신 능력으로 일으켜 세워주세요🙏
영상 초반에 마이크 소리가 끊기네요! 수요예배영상 풀 버전도 소리가 끊깁니당
"성령님께서 우리 주함교회에 계속해서 '사귐, 그리고 글로 적어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마음이 쿡쿡 찔렸습니다. 예수님과 지속적이고 친밀한 사귐 속에 있지 않으니, 내 교회 지체들과 사귐은 커녕 다투는 것고 같은 내 현재 상태를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맞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지체들과 같은 성령님 안에서 함께 사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 옛사람의 습관 그대로 내 교회 지체들을 대할 때가 정말 많습니다. 첫째로는, 내가 영적으로 갈등하거나 이미 넘어져 버려서 소진된 상태일 때는 교회지체들을 멀리 피합니다. 그렇게 심적으로 힘든 상태일 때 교회지체들과 함께 사귄다면 나는 회복될 것을 머리로는 막연히 알지만, 나는 내 한몸이라고 불렀던 교회지체들에게 소진되고 예민해져있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의지하고 신뢰한다는 것이 잘 안됩니다. 행4:32 믿는 사람들의 무리가 다 한마음과 한 정신으로,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썼습니다. 33. 사도들은 계속해서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34. 그들 중에 부족한 것이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때로는 밭이나 집이 있는 사람이 밭이나 집을 팔아 판 돈을 사도들에게 가져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습니다. 그러면 사도들은 그 돈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었습니다. 36. 믿는 사람 중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그 사람을 바나바라고 불렀습니다. 바나바란 이름의 뜻은 '격려하는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키프로스에서 태어난 레위 지파 사람입니다. 37. 요셉이 자기의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처럼, 나도 그런 교회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왜 지금 그렇게 되지 못하는지도 제가 한 고백들로 다 들추셨습니다. 위의 행4:32 말씀처럼, 한마음 한 정신이 되지 못했습니다. '교회에 몸을 전부 맡겨버리십시오'라고 임석현 목사님을 통해서 해주신 말씀에 실제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상처받을 것이 싫고, 내 아픈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나는 교회지체들과 성령님을 적대해버렸습니다. 그 증거가 집에 틀어박혀서 휴대전화도 받지 않고 계속 잠만 자는 지난 나날들이었습니다. 둘째는, 성경을 묵상하고 적더라도 나는 우리 교회의 단톡방에 공유하는 것을 껄끄러워했습니다. 묵상글을 적을 때 성령님께서 나를 한개도 숨김없이 다 적게끔하셔서 이걸 공유하기 부끄러운 적도 있습니다. 가족과 다툰 일, 내가 청결과 위생을 교회에서 성인되고 나서 배운 일, 내가 또 영적인 갈등과 넘어짐을 반복한 일 모두 숨길 수만 있다면 숨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긴 글을 읽고 나서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가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아무도 반응을 안 할 때는 안도하게 되면서도, '이건 무슨 의미일까' 다시 내 생각과 감정에 빠져서 우울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내 말에 반응을 해주길 원하고, 칭찬과 격려를 원하는 것은 '기대함'이고 이것도 내 죄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오늘 성령님께 받은 이 벅찬 감동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가 없어서 쓸쓸하고 아쉽습니다. 왜 믿는 사람인 요셉이 '격려하는 사람'이라고 불리우었는지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나는 내가 격려 받기만을 원하였는데, '나는 우리 교회 지체들을 격려해준 적이 없구나'라고 들춰줘버리시니 참 민망했습니다. 사실 나도, 우리 지체들도 다 같은 입장인 것을 몰랐습니다. 저도 교회 단톡방에 한마디 표현하고, 그 한마디에 답변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워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겁내지 않고 다른 교회 지체들의 말에 반응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지체들이 난감한 내 가정사를 다 들어주고, 나를 용서하고 용납해준 그 마음처럼 우리 교회 지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사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원하는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인간적인 정이지만 예수님 안에서 하나도 숨김없이 벌거숭이인 채로 친밀하게 사귀는 것이 교회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사귐과 그것을 글로 적고 공유하는 것. 사도행전 말씀을 묵상하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는 아예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는 끝까지 순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나를 붙잡아주신 성령님 감사합니다. 나도 아직 교회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사랑의 관계로 격려를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나 원하시듯 우리 주함교회를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을 믿고, 저도 그런 교회가 되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선 순종, 후체험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고전6:19.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이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삶과 성령님을 적대하는 삶이 무엇인가 쭉 떠올리게 해주셨습니다. 지난 토요일부터 생리 전 증후군, 생리통에 시달리며 제 몸이 아픈 것에 화를 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자주 아프지?" 이미 이것때문에 비난을 받은 적도 있고, 스스로도 스트레스에 바로 몸이 반응하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내가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안 받은 척하면 배탈이 나거나 생리통, 두통, 눈 출혈 등 여러가지 신체 증상으로 나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들추시고 범죄함을 고백하도록 하실 때, 성령님을 적대한 적이 많습니다. 이번에도 내 생리통의 원인은 가족과의 관계에서의 고민과 스트레스였지만, 나는 그걸 인정하고 고백하지 않으면서 성령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내가 회개하기까지 성령님이 쥐포가 되도록 3일 내내 짖눌리고 나서나, '잘못했습니다'하고 인정하는 참 악랄하고 이기적인 죄인입니다.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안에서 구속의 날으 루이하여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성령님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하기에 내가 너무 무반응, 무감각하며 감히 나의 주님과의 질서에서 오만방자하다는 것을 책망하여주세요. 나의 보증 서주시며, 내 보혜사이신 성령님 없이 저는 제가 왜 아픈지, 왜 우울한지, 지금 예수님과 사귐 속에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범죄 중인지 이 모든 것들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이, 내 스스로 (내 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쳐복종함으로 이미 주신 것을 받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약4:8, 쉬운성경]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가까이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죄를 깨끗이 씻으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좇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결한 마음을 품기 바랍니다. 설교말씀과 같이 성령님을 모호히 알고, 별로 중요히 여기고 싶지 않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보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죄성이었던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었던 20년도에는 정말 성령님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도 인격이시며, 나의 주님이시라는 구체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성령의 삶이 아니라 내 도덕, 내 가치관으로 열심히 하느라 나는 하나님과 멀리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것들이 구원 받았음에도 자꾸 옛사람의 삶을 사는 이유라는 것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최근에 주변 사람을 보다가, "왜 예수님을 믿었는데 다시 옛사람대로 살지?"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 내 모습들을 다 들춰버리셨습니다. 삼위 하나님과의 전인격적인 관계와 질서를 구하는 기도를 할 때, 더 구체적이게 성령님을 배워가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다가갈 때, 날 기다려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리며 마음껏 성령님의 삶, 은혜의 삶을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약4:5, 쉬운성경]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우리를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신다"라는 성경 말씀이 아무것도 아닌 말처럼 생각됩니까? 사모하다, 그리워하다라는 뜻을 배우게 되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대하시는구나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난 누군가를 사모한다, 그리워한다라는 감정을 표현해본 적이 있을까? 하나님께서 나를 사모하고 그리워한다고 하셨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해왔지? 정말 무반응하고 냉담하게 하나님을 무시해왔던 것을 들춰주셨습니다. 부활과 십자가를 망각하고 세상에 눈을 돌린다는 것은, 나를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하나님을 거절하고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가르쳐주시는데 내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그리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오해없이 만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질투도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으로 한결같이 소개되신 그 하나님이 맞구나! 알게되었습니다. 질투하는 하나님이 와닿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언약의 관계이며 나와 하나님 사이에 무언가 끼여드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것을 알려주시고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사람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쉬는 날 어디 놀러가기를 좋아하였습니다. 토요예배에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 교회지체들과 교제시간보다 세상의 친구를 선택하기를 싫어하고 질투하신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전인격적이며, 내게 온 관심을 쏟고 몰입하시며, 전부를 걸 만큼 사랑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하기에 공의를 실천하시는 정의도 보여주신 것을. 유한한 내가 크고 높으시고 넓으신 하나님을 소개시켜주셔서 신기하고 놀라우며, 성령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질투하게 만들지 않도록, 질투하게 하여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사랑하도록 말씀하신 것이 무엇인지 실제로 누리도록 하는 한 주 되게 해주십시오!
오직 성령님에 의해서만 예수께 굴복된 삶을 살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무슨 뜻인가 고민해보게 됩니다. 설교 영상 중간에 내 옛사람의 가치관과 새삶이 얼마나 다른지를 볼 수 있도록 딱 구분되어있었습니다.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가 없다면 옛사람으로 돌아가버린다'라는 말씀을 수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중에서 '성령님'이 없이는 예수님과 친밀하고 지속적이게 사귈 수 없고, 죄의식없이 금방 범죄하며 관계와 질서를 깨트려버리는 나 자신을 여러번 보여주셨습니다. 처음 주함교회 설교 말씀을 들으며, '어떻게 사람이 늘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겠어? 속으로 예수님 단어라도 계속 떠올려야하나?'하면서 의아해 했습니다. 그때 제게 '보혜사 성령님을 내게 보내주셨다'라는 진리가 구체적이지 않았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동일하게 성령님까지 삼위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삶, 은혜의 삶, 예수께 굴복된 삶에서는 성령하나님 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것을 고백합니다. 이전에 "성경 묵상글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알려줬으면 좋겠다"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도 구체적이게 답변을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을 소개해드려야한다'라고 나중에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사람의 형상으로 떠올리게 되어 자주 부르고 가깝게 여기지만 성령님은 막연하게 여기게 될 때가 참 많습니다. 나를 인도하시고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옮겨졌다고 보증서주시며, 늘 베풀어주시는 보혜사께 감사드린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 수 있도록 성령님 제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님을 슬프게 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사귐으로서 정말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한분한분과 사귀어 '삼위하나님이 내 주님'이 됨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선순종하게습니다!
세상(나)는 사건 중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관계와 질서 중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범죄한 순간을 넘어가고 합리화하며 넘어가면, 계속 나는 관계와 질서를 깨트린 상태가 지속 중인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나를 들춰주셔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육신의 가족과 만나서 분노하고 원망한 것을 숨겼습니다. 사건 중심인 나는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나가버립니다. 그러나 나의 영적인 상태는, 예수님 안에 머무르지 않으며 공포에 빠진 상태인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사귀지 않는다면 다툼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예수님과 사귀지 않으니 교회 지체들과도 한 몸이 되지 못하고 아프게 한다는 것에 정말 슬펐습니다. 내가 욕심,탐욕 그 자체이며. 예수님과의 관계와 질서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쾌락을 쫓는다는 것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욕심대로 가족들이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고 원하는 모습을 바랬기에, 뜻대로 되지 않나 살인하는 것으로 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나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이런 나의 욕심 때문에 순종하지 않고 성령님께서 열매를 맺을 수 없었습니다. 질문1: 당신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고, 누구로부터 직접 새사람의 삶을 배우가고 있는가? -> 하나님께서 내게 최고이자 최선의 상황과 환경을 주셔서 나를 대접해주셨음을 믿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예수를 믿는 삶, 새삶이 무엇인지 알려주십니다. 나는 내게 없는 것, 내가 바랬지만 이뤄지지 않는 것들에 보면 불공평하다고 불평불만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를 거부하고 성령님을 슬프게 해왔습니다. 그 죄가 얼마나 악랄하고 죄의식이 없고 영적인 눈이 어두워진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구체적이게 알려달라 기도합니다. 오늘 수요일 예배 이후에도, 내게 가르침을 주는 대학원의 교수님을 정죄하고 그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나는 내 기준으로 옳다 그르다 심판하려고 하기에, 그리고 그것은 결국 하나님만 옳으시지 나는 100% 틀렸기에 '차별'인 것을 고백합니다. 그도 세상의 통치인 마귀에 따라 살 뿐이며, 교수라는 직책으로 내가 판단 기준을 잡으려했습니다. '그저 뒤틀리고 삐뚤어진 세상일 뿐이다'하지 못하고,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복음에 합당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나를 들추시고 순간 또 세상에 넘아갈 뻔한 나를 보호하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들추시고 책망하시는 것도 더욱 기뻐하고 춤출 수 있기를! 내가 욕심/탐욕으로 살인하고, 쾌락을 쫓는 옛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삶, 새삶을 살도록. 그 자리에서 그 즉시 '예'하며 순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