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고초왕이 박사를 보내 왜 태자의 스승을 시켰는데 그건 친밀한 관계가 아닌가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오래된 다리가 인덕이 만든 다리인데 그천의 원래이름이 백제천이고 백제인들의 거주지에 궁을 지웠는데 인덕이 백제계 아니고 그렇게. 하냐고 즉 적어도 4세기부터 두나라는 친밀한 관계를 넘어선 관계
당시 😂😂😂신라 당나라 초기 전쟁에서 신라가 패함. 😂 근데 사람도 잡아먹는다는 심장위구르 하고 티베트 유목민들이 당나라 수도까지 쳐들어가는 일이 발생함. 그래서 이기회를 잡아서 신라는 당나라를 반격해버림. 웃긴건 신라 조상은 흉노 선비족임. 이건 문무왕 비석에 나와있음. 😂근데 수나라 당나라 황실도 신라 하고 똑같은 흉노 선비족😂 근데 수나라 당나라는 유교화 되서 유목민 정신 잃어버리고 신라는 신라 발해하고 남북국 시대 가기 전까지 신라는 유목민 정신과 셔머니즘 불교 사상등등 유목민 종교사상 유지함. 😂 그리고 왕씨 고려에게 나라가 망하자. 😂 신라 왕실 후손중 하나인 경주김씨 김함보가 만주로 가서 나중에 그 후손들이 금나라 청나라 건국하게됨. 😂 금느라 청나라 정사에도 나와있어😂 여진족 만주족 조상은 신라 왕자 김함보로 부터 왔다고 😂 이건 중국 공산당도 인정하는 정사임. 근데 우리만 인정 안함. 😂 일본도 인정한 역사인데😂 우리만 인정 안해😂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지역을 다스렸던 거대 제국이었습니다.~!!!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梁書(양서)>, <南史(남사)>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삼국사 기록>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한반도 신라>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대륙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백제에 의탁하니, 백제(초기 백제의 위치 : 낙양, 숭산, 태산 일대)가 동쪽 땅(산동반도 일대, 양자강 안휘성 일대)을 할해하여 내줘서 그곳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 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중국측 사서인 "사고전서", "명의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우공추지" 기록>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사서혹문" 기록>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구당서" 기록>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쿠데타로 나라가 망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초기 고대 역사서 마저 불태우고, 삼국사마저 편집되어 원본이 소실된것입니다. 진짜역사는 많은 중국측 사서와 고려사, 삼국사 원문을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삼국사 해석은 오류 투성이 입니다.
경주=낙양=신라+고려+조선 태종3년 까지. 1460년간 수도, 지금 한반도는. 옛 동예의 땅, 일제(+서양)가 1918년 이후 대륙에서 양반들을 한반도로 이주 시켰다, 영동도, 호남도, 호북도, 영서도, 영남도, 남해도, 등이 없어 졌다. 아시아의. 맨 가운데=제일 높은산이. 태백산=히말라야. 정썰 올림.
고령가야 틀림
어차피다 귀족들병력이라 동원도 하기힘듬 귀족들이 얼마나 말을안듣는디--
근고초왕이 박사를 보내 왜 태자의 스승을 시켰는데 그건 친밀한 관계가 아닌가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오래된 다리가 인덕이 만든 다리인데 그천의 원래이름이 백제천이고 백제인들의 거주지에 궁을 지웠는데 인덕이 백제계 아니고 그렇게. 하냐고 즉 적어도 4세기부터 두나라는 친밀한 관계를 넘어선 관계
좋은 컨텐츠 감사하며 언제나 함께 하겠습니다. 홧팅입니다. 건강 행복 가득한 하루 되세요👍
일본을 건국한게 백제 세력이다. 멍충씨! 야마토 왜는 가야고~~
연개소문은 665년에 죽음
배경을 중국 프로그램으로 그리는 것처럼 고증안된 기모노처럼 굵은 허리띠를 한 한복 그림이 나옴.
중3때배움.
기억 하시다니.. 대단하시네요!
고구려는 중원의 지방정권이며 괴뢰국이라는걸 인정하시오 이참에 북한을 중국한테 주는것도 잊지말고😂😂😂😂
중국에 망하게 된데는 내부의 분열과 중국에 협조하는 인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러한 정당과 그걸 지지하는 인간들이 있고
당시 😂😂😂신라 당나라 초기 전쟁에서 신라가 패함. 😂 근데 사람도 잡아먹는다는 심장위구르 하고 티베트 유목민들이 당나라 수도까지 쳐들어가는 일이 발생함. 그래서 이기회를 잡아서 신라는 당나라를 반격해버림. 웃긴건 신라 조상은 흉노 선비족임. 이건 문무왕 비석에 나와있음. 😂근데 수나라 당나라 황실도 신라 하고 똑같은 흉노 선비족😂 근데 수나라 당나라는 유교화 되서 유목민 정신 잃어버리고 신라는 신라 발해하고 남북국 시대 가기 전까지 신라는 유목민 정신과 셔머니즘 불교 사상등등 유목민 종교사상 유지함. 😂 그리고 왕씨 고려에게 나라가 망하자. 😂 신라 왕실 후손중 하나인 경주김씨 김함보가 만주로 가서 나중에 그 후손들이 금나라 청나라 건국하게됨. 😂 금느라 청나라 정사에도 나와있어😂 여진족 만주족 조상은 신라 왕자 김함보로 부터 왔다고 😂 이건 중국 공산당도 인정하는 정사임. 근데 우리만 인정 안함. 😂 일본도 인정한 역사인데😂 우리만 인정 안해😂
평양성은 북경이여..
강화도령도 농민출신입니다
백제 장군이 전쟁 막바지에 반란일으켜서 의자왕 붙잡고 당나라에 투항해서 백제 망함
백제가 없었음 지금의 일본은 없을수도
백제의 영향이 당시 얼마나 큰지는 기록에도 많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어쩌라는거야? 핵심이 없고 빙빙도네
의자왕이 당나라 끌려갔어도 천민이나 노와 같은 자리가 아닌 대우를 해줬다는 내용입니다~ 증손녀(부여태비)가 태비가 된다는건 귀족이나 왕족으로 인정했다는거죠~
@@앏은지식 그래서 그게 뭐 그래서 뭘 느끼라는 건지??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지역을 다스렸던 거대 제국이었습니다.~!!!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梁書(양서)>, <南史(남사)>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삼국사 기록>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한반도 신라>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대륙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백제에 의탁하니, 백제(초기 백제의 위치 : 낙양, 숭산, 태산 일대)가 동쪽 땅(산동반도 일대, 양자강 안휘성 일대)을 할해하여 내줘서 그곳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 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중국측 사서인 "사고전서", "명의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우공추지" 기록>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사서혹문" 기록>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구당서" 기록>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쿠데타로 나라가 망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초기 고대 역사서 마저 불태우고, 삼국사마저 편집되어 원본이 소실된것입니다. 진짜역사는 많은 중국측 사서와 고려사, 삼국사 원문을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삼국사 해석은 오류 투성이 입니다.
뻥이요..
역사기록 백강전투 확인해보세요~
한강유역에다 나라를 세웠다고 어디에 나오는데 그냥 비정 추정이지
실제 한강은 남북조시대부터 사용했기 때문에 황하강 하류라고 볼수 있습니다!
현대식 3끼는 근대화 이후에나 생겼다고 들음. 원래 새벽에 일어나서 일하다 아침먹는거였는데 일하다 중간에 밥먹는 시간이 사라져서 생존용 아침을 챙겨먹고 오후에는 더워서 일하기 힘들었는데 일해야하니까 또 점심을 먹어야 했다고
맞아요 기상시간 차이가 과거와 차이가 클것으로 보입니다~
와우1빠
와우 축하드려요!!
조선 총독부가 싫어합니다 .. 3년이 너무나 길다... 그래도 3년후가 기대된다..쓰레기소각
그래서 2찍했는지 나참 친일파나라 매국노가 잘사는나라. 또팔아 먹을려고 난리인듯 해요
경주=낙양=신라+고려+조선 태종3년 까지. 1460년간 수도, 지금 한반도는. 옛 동예의 땅, 일제(+서양)가 1918년 이후 대륙에서 양반들을 한반도로 이주 시켰다, 영동도, 호남도, 호북도, 영서도, 영남도, 남해도, 등이 없어 졌다. 아시아의. 맨 가운데=제일 높은산이. 태백산=히말라야. 정썰 올림.
역사를 배우고 알아야하는이유
그래서 역사를 알려주시는 역사선생님들을 존경합니다!
그곳은 지금의 경주가 아니고 중공에 있는경주라던데요
우리나라 경주가 맞습니다ㅜㅜ ※ 기록 : 혜공왕 15년(779년) 봄 3월에 지진이 일어나, 백성들의 집이 무너지고 죽은 사람이 1백여 명이었다.
보복 전쟁이 답이다
잊지말아야합니다.
잊혀져서도 안됩니다ㅜㅜ
이영상을 국짐이 싫어합니다~
300만명
45cm라..
나와 같다니..
5~6세기 정교한 섬세하고 정교한 황금보검
예술에 가치가 있죠ㅎ
진짜 이게멋있어서 쓰는지는몰라도 우리나라역사 이야기하면서 이딴그림쓰지맙시다 왜 우리나라역사를 중국풍그림우로 소개함??
조금 더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
한민족의 역사는 더러운 중국놈들과 일본놈들에 의해 철저히 왜곡 되어졌다. 대한민국은? 한민족 역사를 모조리 재점검 해야한다. 중국/일본에 딸랑대던 역사학자들이 만든 왜곡된 역사 모조리 퇴출 시키고, 진실과 자부심에 근거 역사다시 수립해라.
역.사.왜.곡
역.사.분.석
만리장성은 겁먹고 죽기 싫어서 축조한거고 천리장성은 첩보를 위하여 축조한거지. 고구려는 옆 나라에 풍작을 위하여 기도 한적도 있는데
만리장성과는 다르게 토축성이라 영구적인 방어시설이라 보기 힘들어 같아요~
부영순고동데옥민동무삼단상
무슨뜻인지 알 수 있을까요?ㅎ
민며느리제~~~
민며느리제2
단군조선의 영토를 회복하는 대한민국 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원2
기원 3
기원 4
신기하네요 ~~ 😊😊
만파식적 주제로 영화, 드라마에서 많이 등장합니다~ 국보로 전해져 내려와서 그런가봐요
18세기 뿐만 아니라 40년 전에도 시골엔 온돌 이었음..
고대 한국사에 기록이 많습니다~
이런거 만들지마
아니 망하기전에는 없다가 망하고 나오는건 머지
토나오고 역겨운 AI이미지 도대체 어느나라 군대인지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내용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유전병으로 모두 끝장났버림😅
그래도 박씨나 석씨와도 결혼했어요 그들도 왕족이니까요
유전병 관련 역사기록 있는지도 찾아봐야겠네요~
1😅😅😅😅😅@@김정수-h4s😅😅😅😅😮😅😅😅😅😅😅😅😅😅😅😅😅😅😅😅😅😅😅😮😅😅😮😅😅😅😅😅😅😅😮😅😅😅😅😮😅😅😅😅
😅😅😅😅😅😅😅😅😅😅😅😅😮😅😅😅😅😅😅😅😅😅😅😅😅😅😅😅😅😅😅😅😅😅😅😅😮😅😅😅😅😅😅😅😅😅😅😅😅😅😅😅😅😅😅😅😅😅😅😅
백제는 한반도에 없었죠 일본이 만든 한반도사관입니다 백제는 대륙입니다
유전자병이 생길 법도 한데...기록을 안 남겼나?...
일본의 유전병과 흡사할거 같아요~
지금은 백제민이 수도로 다올라와 수없이번식해 서울경기를 점령후 더부러를 지지하는 악의 숙주가되었지.
정조대왕....
아직까지는 정조대왕으로 불리진 않은듯 합니다..ㅠ
길가던 역사학도인데 사료가 너무 부족합니다. 계백이 가족 다베고 황산벌에 갔을때도 5천인데 나주엥 3만명 5만명이 나왔다는것도 아이러니하고 발해멸망 미스테리백제멸망 미스테리나 비슷하다고 추정됩니다. 왕권의 힘이 약햇던 백제인데 후백제나 하나의 맹장 하나의 왕으로 발해부흥이 일어난것도 미스테리이기도 하죠. 발해는 호족국가였으니까요